북한의 장마당은
북한에서 출간한 경제사전에 따르면 장마당(농민시장)은 “협동농장들의 공동경리와 협동농민들의 개인부업경리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축산물의 일부를 농민들이 일정한 장소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직접 파는 상업의 한 형태”이고 “농민시장에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정해지며 따라서 가치법칙이 어느 정도 맹목적으로 작용한다”고 하여 장마당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가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장마당의 역사는 해방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북한의 시장은 1950년까지 ‘인민시장’의 이름으로 존속했고 보통 1개 군에 3-4개소 설치되어 매일 개장했다. 읍면(邑面) 단위의 재래식 농촌시장 역시 존재했다. 1950년부터는 ‘농촌시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이것을 통해서 여유농산물과 개인상공업에서 생산된 물품을 주로 거래했다. 이런 형태는 1958년 북한의 농촌에서 농업협동화가 완료되고 개인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된 후에 그 규모를 제한하기는 했지만 계속 존속했다.

1969년에 김일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부업생산이나 농민시장이 남아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으며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인민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 특히 소소한 일용품들과 부식물들을 다 국가에서 넉넉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조건에서 그것들을 개인들이 부업경리에서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습니까?”(김일성저작집 제5권) 라고 하며 장마당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장마당이 없어지려면 인민들에게 모든 물품이 충분히 공급할 정도로 생산력이 증대하고 전 인민적 소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장마당’은 생산력이 원활치 않으면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 국영상업망의 기능이 떨어지고 소비품 공급이 크게 떨어져 장마당이 다시 활성화되었고 그 숫자도 불어나게 된다. 특히 1990년 중반이후의 식량난 속에 장마당은 인민들의 굶주림을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장마당의 현황은
1999년 한국농촌경제원의 조사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옥수수, 쌀 등 식량의 약 60%와 생필품의 약 70%를 구입하고 있으며 북한에는 약 300∼350개의 장마당이 상설 운영되고 거래품목도 중국에서 들어온 물품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과 각종 외국에서 들어온 원조식량도 거래되는 등 수 백가지가 넘는 품목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는 고양이 뿔 빼놓고는 다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장마당이 지역별로 특산품화 전문화하는 현상까지 보이기도 했다. (아주 최근에 장마당이 속속 폐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은 논외로 한다.) 일례로 평안남도 평성은 외제 가전제품과 경공업품, 나진 청진은 수산물, 혜산 무산 등 변경지역은 약초류와 금속류 등이 주로 유통된다. 1990년 중반이후 식량난의 악화될 때에는 각 종 공장의 기계와 전선 등도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마당에서 유통되는 상품은 지역에 따라서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까지 나오고 컬러TV 냉장고 등도 있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물건을 못산다” 는 말이 나돌고 있는 정도이다. 지난 8월 SBS 8시 뉴스에서 연속으로 방영한 ‘변화하는 북한’ 시리즈 중 혜산 장마당을 보여주면서 “냉동명태가 유통되고 있다, 쌀도 북한산 외국산이 다양하게 있다”고 마치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듯 보도했는데 이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있던 것들이다.

■ 북한의 대표적 장마당

신의주-농민시장, 남신의주시장, 신의주 락원시장, 룡천시장, 백마시장, 동상지구 시장, 남하농민시장, 채하시장
회령- 회령시장마당, 오봉장마당등 골목마다장마당
함흥- 평수장마당, 삼일장마당, 사포장마당, 동흥산장마당 등
청진- 청진시시장, 수남구역장마당
개성- 개성시장마당, 야매시장 5개시장
강원도-김화군 농민시장 (소규모)
평양- 송신시장(사동구역두루동), 칠골시장(만경대구역칠골동),새살림시장(동대원구역새살림동), 평양 산업시장(선교구역산업동), 평천시장(평천구역봉지동), 룡흥시장(대성구역용복동), 서평양시장(서성구역하신동)
(출처 : 북한의 산업화와 경제정책, 김연철, 2001년)

장마당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입해왔고 경제난이 심화된 이후에는 그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장마당의 물가는 지역별로 약간의 편차가 존재한다. 대체로 북-중 접경지대가 물건이 많이 들어오니 물가가 낮은 편이고, 대도시는 중간수준이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일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 식량인 쌀의 경우 평균가격을 100으로 할 때 신의주 80.8, 평양 106.1, 단천 121.2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한에서 들어온 상품의 경우는 중국산에 비하여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추진한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장마당의 거래가격과 국정가격을 어느 정도 일치시킴으로서 국가가 물자의 유통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가의 배급이 유명무실해지고 인민들은 장마당을 통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장사를 하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장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경제거래가 통제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커져버려 점차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 자라나는 것을 북한당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방송과 언론매체 중의 일부가 북한 변화의 중요한 척도로 장마당의 존재를 들고 그 속에서 상거래가 활발하고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근거 없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일단 존재 자체로만 본다면 북한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장마당이 존재하고 있었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북한 인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였다. 장마당의 상거래는 국가부문에서 생산·공급되지 않는 분야를 보충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것 역시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또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식량난 이후 의존도가 더욱 커졌을 뿐이지 북한 당국은 여전히 장마당의 거래 일체를 불법으로 취급한다.

진정한 개혁개방은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획기적인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는 정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개방은 북한 정권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않된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하여 일반 주민들 사이에 자유주의, 자본주의적 사고가 들어가게 되면 현 북한의 체제는 한시도 존재할 수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절대’ 전면적 개혁 개방의 길로 나갈 수 없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북한의 체제특성상 경제적 변화를 위해서는 정치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 시스템의 변화가 되지 않고는 경제적 변화를 이룰 수 없다. 그리고 정치시스템의 변화는 현 독재체제의 개혁 내지 독재자의 교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이번 조치가 북한 인민들에게 희망적인 뉴스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를 통해서 주민들의 의식에 변화를 주고 북한 정권이 원하던 원치 않던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폐쇄된 북한 사회에 조금이라도 흘러 들어간다면 북한의 본질적 변화를 촉진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자신이 생계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질수록 인민은 생활과 사고에서 더 많은 자유를 원할 것이고 이것은 변화의 주요 동인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엄청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장마당을 활성화시키게 되면 체제가 붕괴되고, 장마당을 철저히 폐쇄시켜버려도 체제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그 갈림길에서 꼼수를 부린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느 길로 가든 “김정일 정권은 타도되고 만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