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조-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일본인 납치범죄에 대해 사과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시인(是認)’이라고 의아해하고 있지만 이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후세인 다음의 공격 대상이 자신의 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현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현재 김정일의 최대 목표는 자신의 정권유지 이며 이것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할 것이다.
이번에 김정일은 북한(조선)의 일본인 납치 범죄에 대해 사과하면서 “일부 망동(妄動)주의자와 영웅주의자가 저지른 일이며 이들을 처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내에 망동주의자와 영웅주의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정일 자신이며, 처벌받아야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 역시 김정일 자신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날은 1974년 2월 13일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집무를 보기 시작한 이 날을 북한은 지금도 크게 기념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때부터 ‘당중앙(黨中央)’으로 불리면서 ‘유일사상체계’라는 무기를 들고 권력을 장악해 나갔으며 그중 가장 관심을 갖고 집중했던 분야가 대남(對南) 공작과 내부 반대파 숙청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본인이 직접 챙겼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완전히 독점하고 안정화하는 단계에 접어들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일본인 납치범죄’에 대해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공작원 한 명을 파견하는데도 김정일이 일일이 점검하고 임무를 주었다는 것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증언에서 확인된 바이다.

아주 많이 양보해 김정일의 집권 시점을 후계자로 공식 인정된 1980년 10월의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로 늦춰 보더라도 그는 온갖 범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북한에서 총 한방, 수류탄 하나 던지려고 해도 김정일의 지시가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아는 이치인데, 이번에 김정일은 이른바 괴선박(怪船舶) 사건에 대해서도 “군부(軍部) 일부의 소행”이라고 둘러댔다. 비겁하게 왜 자꾸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우려 하는가. 우리는 그에게서 일말의 반성의 빛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김정일이 숱한 납치와 테러, 밀수, 반(反)인권 행위에 대해 솔직히 시인하고 당장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악수하고 미소지으면서, ‘별것도 아닌 것들 그냥 시인해 버리고 경제 지원을 받아내 시한부(時限附) 정권을 연장해 보자’는 꼼수를 부리고 있지만, 그것으로 투쟁의 예봉(銳鋒)을 피해갈 수는 없다. 수십, 수백 억불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김정일은 박정희가 될 수 없다. 박정희 정권 하에 남한 국민이 누리던 자유의 10분의 1만이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허용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곧장 타도되고 만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저지른 죄과만으로도 최악이다. 비겁하고 쩨쩨하게 굴지말고, 죄를 더 쌓지 말고 퇴진하라! 이것이 북한 인민과 전 세계인이 김정일을 향해 외치는 단 하나의 요구이다.

※ 2002년 9월 18일 발표한 성명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