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일련의 경제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에 접하면서 문득 사람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장마당에서 ‘꺽기’로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들이다. 내가 북한에서 처음으로 ‘꺽기’를 알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고안해 냈다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 ‘꺽기’

1995년 평안남도 덕천시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친구들 사이에 “그동안 굶지나 않고 지냈나?”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93년까지 이런 인사말은 없었다. 식량난과 더불어 친구간의 인사말도 이렇게 변했다. 굶지 않고 그럭저럭 지냈다면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고등중학교 동창생과 후배들이다. 그 중 한 친구가 있다. 유년시절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함께 만들어 온 가장 가까운 친구다. 우리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대학공부를 한다고 이 고장을 떠났고 친구는 군대에 간다, 체육을 한다 하더니 축구선수가 되어 겸직(兼職) 체육단(특급 기업소들에서 운영하는 체육단)에 들어갔다. 몸이 날렵한 친구였다.

그동안의 이야기도 잠시, 만났으니 ‘한 잔’해야 하지 않겠는가. 친구가 앞장을 섰다. 그런데 그 어디를 가나 굶어죽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판에 이 친구가 도대체 어디서 돈이 나고 쌀이 나서 술판을 벌릴지 의문스러웠다. ‘겸직 체육단’이란 것도 경기를 해야만 노임도 나오고 배급도 줄텐데 말이다.

하지만 곧 이것이 공연한 걱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는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고안했다는’ 독특한 수법이 있었다. 그 수법이 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는 일명 ‘꺽기’다. ‘꺽기’는 식량난으로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식량과 물건값이 턱없이 껑충 뛰어오르면서 생겨났다. ‘꺽기’라는 말은 그들이 처음 만들어낸 그들만의 은어이다.
‘꺽기’란 한마디로 “장마당에서 구매자가 쌀이나 물건을 흥정하는 척 하면서 지폐뭉치를 줄 때 겉면에만 돈을 씌워놓고 돈뭉치 속에는 종이를 넣어 판매자를 속이는 사기의 한 형태”이다.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나중에 북한 땅 전역에 널리 퍼진 수법이니 알아두었으면 한다.

‘꺽기’가 생겨난 배경은 우선, 상품 값이 뛰어 오르니 식량 및 물건을 사고 팔 때 많은 량의 뭉치 돈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마당 내에는 법규정이 아리송하여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식이기 때문이다. 안전원들, 규찰대원들은 기분에 따라,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장사꾼들을 단속한다. 생계유지를 위한 장사꾼들은 눈치를 보며 물건 팔기에 급급하다. 주위를 맴도는 꽃제비들의 ‘덥치기’에도 늘 주의를 돌려야 한다. 어디에서 튀어나와 물건을 덮쳐 가지고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마당 장사꾼들은 이모저모로 ‘사냥감’이다. 이러한 환경은 영리한 건달꾼들에게 쉽게 목돈을 벌 수 있는 각종 아이디어를 착상케 했다. 장마당의 모든 장사품목은 그들의 사기대상 이지만 그 가운데서 값있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알곡(쌀)과 중국산 필터 담배다.

가짜돈을 넣어주고 유유히 사라져

자, 그러면 ‘꺽기’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 수법을 알아보자.
모든 사기에는 준비가 필요하듯 꺽기도 사전준비를 해야한다. 예를 들어 실례로 입쌀 10㎏에 500원이라면 10원짜리로 된 ‘진짜 돈’ 51개를 준비한다. 그리고 10원짜리 지폐와 규격이 같은 ‘가짜 돈(백지)’ 49개를 준비한다. 50개를 묶어 진짜 돈뭉치를 만들고 종이돈 49개에 진짜돈 하나를 얹어 가짜 돈뭉치를 만든다. 이러면 어떠한 수법인지 알만 할 것이다.

준비물(?)이 완성되면 3∼명이 한 조가 되어 장마당으로 나간다. 이중 손가락 놀림이 빠른 자가 코치(일종의 ‘주연’)가 되고 나머지는 방조자(‘바람잽이’에 해당)가 된다.
장마당에서 코치는 쌀사러온 구매자처럼 쌀 장사꾼들의 주위를 오가며 대상자를 찾는다. 방조자는 코치와는 무관한 사람처럼 약간 멀찍이 떨어져서 눈치를 살핀다. 코치가 쌀 장사꾼과 마주하고 쌀값 흥정에 들어 갈 때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어슬렁거리면서 지켜보는 것이다. 방조자의 역할은 기회를 보아 흥정중인 장사꾼의 시선을 혼돈 시키는 것이다. 너무 빨리 접근하여도 안되고 늦게 접근하여도 안 된다.

코치는 쌀을 살 듯, 말 듯 흥정하다가 장사꾼의 반응을 파악하여 단호하게 돈을 넘겨준다. 물론 이때는 진짜 돈뭉치이다. 장사꾼은 뭉치 돈을 세여 볼 것이다. 그리고 10㎏이나 팔았다며 흡족해 하며 돈을 자기 가방에 넣고 쌀은 코치의 배낭에 넣어줄 것이다.
이때가 중요한 기회다. 코치는 장사꾼에게 “돈을 좀 모자라게 건네준 것이 아니냐”며 다시 세어 볼 것을 요구한다. 장사꾼 역시 들뜬 마음에 대강 세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코치의 말대로 돈 뭉치를 냉큼 꺼내 확인한다.

장사꾼이 액수가 맞다고 안심할 때 코치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장사꾼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내가 직접 확인해 주겠다”고 요구한다. 장사꾼은 코치의 정직한 행동에 감동되어 서슴없이 돈 뭉치를 넘긴다. 코치는 돈을 받아 세는 척한다.

방조자가 접근 할 시기는 이때이다. 코치는 진짜 돈을 세고 있고 장사꾼은 이것을 보고 있는 사이 방조자는 새로운 사람으로 그 틈에 끼어 든다. 그리하여 시선을 혼란시키며 코치가 가짜 돈으로 바꿔칠 기회를 제공한다. 장사꾼이 새로운 손님을 만나 ‘오늘 정말 장사 잘되네’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코치는 잽싸게 돈 뭉치를 교체하여 이상이 없다는 듯 가짜 돈 뭉치를 접어 장사꾼에게 넘겨준다. 방조자는 장사꾼이 넘겨받은 돈 뭉치를 다시 확인하지 못하도록 쌀값을 물으며 징그럽게 달라붙는다.

이 기회에 코치는 쌀 배낭을 메고 사람들 속에 묻혀들어 간다. 그리고 곧이어 마주 오는 또 다른 방조자에게 배낭을 슬쩍 넘긴다. 코치는 미리 준비한 모자를 푹 눌러 쓰거나 다른 겹옷을 덧입는 등 재빨리 변장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온다.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도 하나의 심리전이다. 사기 당한 장사꾼은 쌀 배낭을 메고 멀리 달아나는 코치만 찾으려고 할 뿐 변장하고 마주 오리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순간은 2∼3분, 장사꾼이 돈 뭉치를 펼쳐보며 아연 질색한다. 허겁지겁 코치가 방금 사라진 곳으로 따라 달려가지만 빈 몸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스쳐 지나는 코치를 알아볼 수가 없다.

잠시 후 코치를 잡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장사꾼은 대성통곡을 한다. “500원 어치의 쌀을 단돈 10원에 팔았으니 장사 밑천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고 말이다. 동정 없이 바라볼 수 없는 숨막히는 광경이다.

이렇게 장마당에서 수확한 쌀은 다시 되거래(되파는 거래) 장사꾼에게 팔아 넘긴다. 쌀은 다른 물건보다 회전이 빠르다. 1∼2원만 싸게 팔아도 저마다 넘겨받겠다고 아우성이다. 이것도 ‘꺽기생’들이 노린 점의 하나다.

강도로 전락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

그 날 그들은 스파이 영화 같은 연기로 1,500원이나 벌어들었다. 우스운 것은 ‘꺽기’ 행동시 각자의 연기를 지적해주고 연구하는 진지한(?) 그들의 태도였다. 장마당에 갈 때는 매일 옷을 바꿔 입는다, 주로 여자 장사꾼을 선정한다, 장사꾼을 혼돈 시키는 방법 등 자기들낄히 모여서 다양한 수법들을 구상하고 있었다.

몇 달 후, 덕천시 장마당 장사꾼들 속에 이들의 수법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도 알면서도 속는 것이 ‘꺽기’였다. 아무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장사를 한다 해도 당하는 사람은 계속 당한다. 결국 장사꾼들은 집에 있는 “멍멍이”(할 일이 없어 집만 지키는 남편)를 장사에 투입하여 호신용 멍멍이로 만든다.

언제부턴가는 이 수법이 안전원들에게 까지 알려져 범인들을 붙잡으려고 장마당 감시를 강화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이 수법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전국의 방방곡곡 장마당을 누비며 ‘원정’을 떠났다. 한번 원정을 떠나 여러 장마당을 거치면서 수천 원의 현금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 그들에게 ‘꺽기’는 생계의 수단 이었다. 또 실전 속에서 후배 양성하는 등 건달들을 체계적으로(?) 키웠다.

7월 1일 경제조치 후 그들에게는 보다 유리한 환경이 되었으리라. 장마당 단속을 강화하고 식량판매소를 내왔다 하더라도 수요에 따르는 국가적 공급이 따라서지 못하기 때문에 암시장은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또 식량 값의 폭등, 돈 가치의 하락은 장사꾼들을 보다 쉽게 속여넘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천 원짜리 화폐까지 등장한 조건에서 종전의 10원짜리 대신 100원짜리로 대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의 행동은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가려는 최하층 서민들을 울리는 못 쓸 짓이다. 그러나 사기와 협잡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도둑놈 사회에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주민들에게 10여 년 동안 임금, 식량 등 노동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그 책임을 하급 일꾼들에게 떠넘기는 ‘김정일’만한 도둑놈도 있는데 말이다. 그들이 칼을 들고 강도로 전락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