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연’이라고 하면 몰라도 ‘반쪽이’라고 하면 “아, 그 사람!”하고 고개를 끄덕일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반쪽이의 육아일기’로 유명한 만화가인데요, 위 만화는 그가 1989년에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라는 제목으로 펴낸 시사만화집에 실렸던 네 컷 만화입니다.

보시다시피 만화는 한 학생이 책을 읽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컷에는 책을 댓 권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돈이 떠오릅니다. 두 번째 컷에는 두 배쯤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제 감투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더 많은 책이 쌓여 있고, 이제는 점잖은 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듯 노트와 펜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키만큼 책이 쌓였을 때, 난데없이 그의 머리에는 ‘수갑’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얕은 지식을 가졌을 때에는 부와 권력, 명예를 탐하지만, 정말 높은 지식을 쌓게 되면 변혁을 꿈꾼다.” 사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고, 특히 80년대 학생운동권이 정말 남들보다 많이 알아서 운동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변혁운동을 하려는 사람이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호 Keys는 ‘북한문답집’이라는 특집호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로 편집자의 편지를 대신할까 합니다. 항간에 우스개 소리로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모르는 것이 약일지 몰라도 개인의 생명보다 사회적 집단의 생명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는 것이 힘입니다.

북한(조선) 땅에 민주화의 새봄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북한을 잘 아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고 의무이며 힘입니다.

시중에 북한과 관련된 서적이 많지만 북한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북한의 이모저모를 문답식으로 풀어놓은 책도 몇 권 있지만 대개 평면적 나열에 불과하고 분량만 두껍지 주민 생활과는 무관한 당, 행정조직 체계표나 잔뜩 그려놓은 수준이어서 ‘언젠가 북한문답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야 완성이 되어 내어놓습니다. 아직 많이 미약하고 욕심만큼 담지 못한 내용이 쌓여 있지만, 이번 호의 내용만 제대로 숙지하여도 북한학 박사 열 댓 명이 부럽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호가 독자 여러분에게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각 학교와 단체에서 유용하게 쓰인다면 너무나 행복하겠습니다. 문답집 발간을 위해 오랫동안 고생하신 이주일 편집위원과 도움을 주신 탈북인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갑을 차고 혹은 목숨을 잃을 각오까지 하여야 하는 변혁운동을 하는데 있어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를 위해 살겠다는 양심과 지조, 용기라는 말을 사족으로 덧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