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북자들의 잇따른 '주중(駐中) 외국공관 진입'
2. 김정일을 세계 매스컴에 띄워 올린'악의 축'
3. 인민의 목을 더욱 졸라댄 '아리랑'
4. 김정일의 자충수 '서해 교전'
5. 허망한 몸부림 '7.1 경제관리개선조치'
6.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신의주 특구'
7. 독재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일본인 납치 시인'
8. AGAIN 1994?'핵 개발 재개 위협'
9. 부산 아시안게임 최고의 화제 '북한 미녀 응원단'
10. 온 세계에 메아리 친 '북한 민주화 함성'

1. 탈북자들의 잇따른 '주중(駐中) 외국공관 진입'

3월 14일 오전 10시, 단체 여행객으로 가장하고 베이징 시내 대사관 구역을 걷던 탈북자 14명이 갑작스레 스페인대사관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의 진입 장면이 CNN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고 진입 직후 일본의 '북조선 난민 구원 기금'이 신속하게 영문성명을 주요 언론에 배포하는 등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에 북한관련 NGO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때부터'기획망명'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생겨났다.

5월 8일, 선양(沈陽)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하려던 장길수 군의 친척들이 정문 앞에서 체포되었다. 바닥을 뒹구는 엄마와 그 옆에 내팽겨쳐진 두 살배기 한미양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일본 영사관 직원의 모습이 보도되면서 한국과 일본의 여론이 들끓었다. 며칠 뒤인 6월 13일에는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중국 공안이 영사관 건물 안까지 들어가 끌고 나온 비상식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연행을 제지하려는 영사관 직원, 한국 기자들과 중국 공안의 몸싸움이 있었으며, 이 광경이 보도되면서 이번에는 한국과 중국 정부 사이의 외교마찰로 이어졌다.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은 계속 이어졌다. 독일대사관, 미국대사관, 일본총영사관에 이어 한국총영사관에도 수 십 명의 탈북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뛰어들었다. 중국 공안의 경계가 대폭 강화되었고 비상경계령까지 선포되었다. 하지만 자유를 찾고자 하는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행렬을 막을 수는 없었다. 최초의 스페인대사관, 일본총영사관 진입은 NGO의 도움이 있었으나 이후 수 십 건의 외국공관 진입은 탈북자들 스스로 '개척한'길이었다. 알바니아 대사관, 에콰도르 대사관, 독일대사관 학교, 칭다오(靑島) 한국총영사관, 광저우(廣州) 한국총영사관 등 범위도 확대되었다.
2002년 한해동안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 수는 1000명을 넘었다.

<2002년 탈북자들의 주중 외국공관 진입일지>

- 신문에 보도된 내용만 정리한 것이며 실제 진입자 수는 훨씬 많다.
■ 2002. 3. 14 베이징 스페인대사관 (25명) ■ 2002. 4. 25 베이징 독일대사관 (1명) ■ 2002. 4. 26 베이징 미국대사관 (2명) ■ 2002. 4. 29 베이징 한국대사관 (5명 시도 - 3명 체포, 2명 도주) ■ 2002. 5. 8 선양(沈陽) 일본총영사관 (길수 친척 5명 시도 - 실패 / 中-日 합의로 한국행) ■ 2002. 5. 8 선양 미국총영사관 (2명) ■ 2002. 5. 9 선양 미국총영사관 (1명) ■ 2002. 5. 11 베이징 캐나다대사관 (2명) ■ 2002. 5. 23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5. 24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2명) ■ 2002. 5. 27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6. 1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6. 8 베이징 캐나다대사관 (2명) ■ 2002. 6. 9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3명) ■ 2002. 6. 11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9명) ■ 2002. 6. 13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2명 시도 - 1명 실패 / 외교관, 특파원 폭행으로 韓-中 외교마찰 / 韓-中 합의로 한국행) ■ 2002. 6. 17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2명) ■ 2002. 6. 20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6. 21 베이징 한국대사관 (2명) ■ 2002. 6. 24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7. 2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7. 11～25 베이징 한국총영사관 (11명) ■ 2002. 8. 13 베이징 알바니아대사관 (2명) ■ 2002. 8. 26 베이징 중국 외교부 청사 (7명 시위- 전원 연행) ■ 2002. 9. 2 베이징 에콰도르대사관 (12명 - 실패) ■ 2002. 9. 3 베이징 독일 학교 및 외교관 숙소 (15명) ■ 2002. 9.13 베이징 독일 학교 (5명 시도 -3명 성공, 2명 실패) ■ 2002. 10. 7 베이징 독일 학교 (3명) ■ 2002. 10. 10 칭다오(靑島) 한국총영사관에 진입 (3명 진입 - 2명 성공하여 분신위협, 1명 실패) ■ 2002. 10. ? 베이징 독일대사관 (1명) ■ 2002. 10. 31 베이징 독일학교 (7명 시도 - 2명 성공, 두 가족 5명 실패) ■ 2002. 11. 27 광저우(廣州) 한국총영사관 (1명) ■ 2002. 12. 10 베이징 독일 학교 (2명) ■ 2002. 12. 17 베이징 말레이시아대사관 (2명시도-보안요원이 끌어냄-독일 학교로 재진입- 성공)

2. 김정일을 세계 매스컴에 띄워 올린 '악의 축'

북한 고위층에 있었던 탈북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세계 언론에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비록 그것이 악명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02년은 김정일에게 분명 '신나는 한 해'였을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 29일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면서 그 중 북한은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 것은 김정일에 대한 경고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2월 20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내가 북한에 대해 강하게 언급(악의 축 발언을 지칭)한 것은 정권에 대한 것이며, 김정일 정권이 북한 주민들을 자유롭게 하고, 주민들에 대해 김 위원장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정말 표현하기 전에는 김 위원장에 대한 내 의견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거부감은 대단해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부국장 밥 우드워드(Woodward)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I loathe Kim Jong il)'고 하면서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이 자(this guy)에게 본능적인 반발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가족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고문하는 데 이용되는 거대한 수용소에 대한 첩보도 봤다'고 말했다. 5월 16일에는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을 피그미(원래 아프리카와 동남아에 거주하는 난쟁이족. 보잘 것 없는 사람, 무능한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인다고 함)에 비유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아무튼 김정일로서는 처음으로 강적(强敵)을 만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인민의 목을 더욱 졸라댄 '아리랑'

4월 29일부터 8월 15일까지 대집단체조 및 예술공연 '아리랑'이 평양 릉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열렸다. 원래 4월부터 6월까지 공연하기로 되었으나 두 달 연장하였다. 어린이와 청년학생, 군인 등 10만여 명이 출연한 이 공연을 북한 당국의 선전에 의하면 내-외국인을 합쳐 270여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부시 대통령의 김정일 비판은 약간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쓸데없는 체제선전용 집단체조를 만든 궁리나 하고 있는 것도 김정일의 주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관람하고온 방문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외화벌이를 위한 각종 상점을 신설하는 등 몇가지 개선의 모습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것이 외화획득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실제 외국인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았고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편의시설이 별로 없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국 아리랑은 내부 결속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한 것 같다. 김정일은 이러한 행사라도 자주 만들어서 닦달해야 해이해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22일 노동신문은 '라남의 봉화 따라 강성부흥의 북소리 높이 울리자'라는 사설을 통해 '라남의 봉화'라는 말을 처음 등장시켰다. '라남의 봉화'는 함북청진에 있는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2001년 8월 김정일이 러시아 방문을 마친 후 현지지도한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노동자들의 투쟁기풍을 전 사회에 일반화하자는 슬로건이다. 2002년 신년공동사설에는 '격동하는 오늘의 현실은 라남의 봉화가 온 나라에 타 번질 것을 요구한다'면서 '라남의 봉화'를 2002년의 공식적인 슬로건 중 하나로 추켜 올렸다.

2002년 1월 17일 노동신문은 '1950년대의 투쟁정신으로 살며 일하자'는 또 하나의 장문 사설을 실었다. '1950년대 정신'이라는 신종 슬로건을 등장시킨 것이다. '아리랑', '라남의 봉화', '1950년대 정신'을 이어 내년에는 또다시 무엇으로 인민들을 괴롭힐지, 참으로 분통이 터진다.

4. 김정일의 자충수 '서해 교전'

월드컵 준결승전이 있던 날. 붉은 티셔츠와 응원도구를 준비하고 있었을 한국 국민들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다급한 뉴스 속보가 떴다.'서해상 남북 해군 교전, 아군 병사 사망'월드컵 4강 신화의 들뜬 가슴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었다.

6월 29일 오전 10시25분쯤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측 경비정의 기습 포격으로 남북 해군 간에 교전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27명이 탑승했던 남측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했으며, 이 고속정을 지휘하던 윤영하(28) 대위 등 해군 4명이 전사하고 1명이 실종됐다. 또 19명이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다. 실종자 1명은 41일 후에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부상자중 1명도 치료도중 사망했다. 확인할 수 없는 정보이지만, 당시 북한 해군도 24명 정도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사건 당일 오후 4시 조선중앙방송은'남조선 군이 서해 해상에서 우리 인민군 해군경비함에 총포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남측 해군사령부에서는 즉각 반박성명을 냈다. 누가 선제공격을 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남북간 설전이 이어졌고, 북측은 '이 문제의 본질은 위법적인 NLL에 있다'며 NLL 무효화를 집중 거론했다. 이에 남한의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 남측 어선의 NLL 침범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북측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정황을 정리해볼 때 6월 19일의 교전은 북측 해군의 선제공격임이 명백하다. 설령 교전이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남측 어선의 NLL 침범에서 비롯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경고방송 한 번 없이 조타실을 정조준하여 한번에 날려버리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교전에 앞서 북한 해군이 자기측 어선을 미리 NLL 이북으로 대피시켰다든지, 교전 직후에도 함정의 긴급 출동이나 교신량 증가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선제공격임이 확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하는 의견이다.

총 한 자루, 대포알 하나라도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북한군의 특성으로 볼 때, 해상에서 경비정이 선제공격 하는 작전을 김정일의 지시 없이 감행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일각에서는 '북한내 군부강경파의 독자적인 행동'을 이야기했지만, 만약 그 작전이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김정일의 비준 없이 군대가 움직였다고 하면 성패(成敗)를 떠나 관련자 전원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럼 나서는 의문점은 무엇 때문에 김정일은 해상도발을 감행했느냐는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서해교전은 북측의 입장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북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고 - 물론 서해교전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는 받지 않은 채 마치 무언가 빚 진 것이라도 있는 듯 다급하게 김정일에게 내어주기를 재개한 남한 정부의 자세 때문에 그리 복잡하게 꼬이지도 않았지만 - 국제사회에는 대화상대로서의 적합하지 않다는 인상을 다시 한번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NLL 문제를 북미간 협상과제로 삼고 싶다는 메시지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그러한 도발이 협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태도변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추리해보면 99년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 혹은 월드컵 분위기를 어떻게든 흔들어보려는 생각 이외에는 별다른 의도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것은 김정일 개인의 감정적인 위안은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북한이라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전혀 실익이 없는 행동이다. 전략적인 판단 없이 내키는 대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김정일식 사고의 한 단면을 서해교전에서 읽을 수 있다.

5. 허망한 몸부림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부터 임금과 물가를 인상하고 공장 기업소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단행했다. 임금 인상 조치로 노동자의 임금은 생산노동자를 기준으로 기본급을 110원에서 2000원으로 평균 18배 인상하고, 직업별로 인상폭의 차등을 두었으며, 생산자 우대의 원칙을 적용하여 광부의 경우 기본임금을 6000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분배방식에 있어서도 평균주의를 지양하고 개인별, 기업별로 자신이 수익을 올린 만큼을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임금인상과 더불어 모든 상품의 가격을 종전보다 25배 인상하였는데, 물가는 모든 생산물을 본래 가치대로 계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기본식량인 쌀 가격을 기준으로 삼았다. 기존에 쌀은 국가에서 1㎏을 80전에 수매하여 배급소에서 주민들에게 8전에 판매해 왔으나 7월 1일 이후 수매가격은 40원, 판매가격은 44원으로 올렸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우선 북한 주민들은 갑작스런 정책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화폐개혁을 단행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돈 가진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고, 일단 월급이 오른다니까 좋긴 하지만 '도대체 국가가 어디에서 갑자기 돈이 생겨 월급을 올린다는 것일까'하고 의아해 했다.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남새(채소)와 가축을 제외한 모든 장사가 전면 금지되어 생계의 위협에 직면했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개혁'개방의 신호탄'이라는 견해에서부터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통제정책'이라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공통적인 것은 '공급(供給) 확보가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었다. 식량 및 물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고 공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은 채 무작정 실시되는 임금 및 물가인상, 장마당 폐쇄가 그리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최근 북한 내부 소식에 의하면 김정일은 장마당 장사를 다시 허용했다고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정책을 어쩌자고 실시해서 인민들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인지....

6.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신의주 특구'

9월 21일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9월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신의주를 최소한 50년 동안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갖는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이 지역을 국제적인 금융-무역-상업-공업-첨단과학-오락 관광지구로 개발하는 내용의 '신의주특별행정구기본법'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개된 '신의주특별행정구기본법'은 정치-경제-문화-주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기구,구기(區旗)와 구장(區章) 및 부칙 등 총 6장 101조로, 특구 운영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중앙정부가 직접 통제하던 기존의 경제특구와는 다르게 신의주특별행정구는 입법-행정-사법권을 갖고 외교권의 일부까지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국가 내에 다른 체제의 자치국가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방안이었다. 특구 내에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상속권도 보장된다고 했다. 홍콩을 모델로 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것이 본격적인 개방의 신호탄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곧이어 이 중요한 특구의 초대행정장관을 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장성택(김정일의 매제)이 할 것이다, 연형묵(자강도당 책임비서)이 유력하다, 김남기(국가계획위원장)나 홍석형(함북도당 책임비서)도 가능성이 있다는 항간의 추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9월 24일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에 중국의 2대 부호인 양빈(楊斌 39)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을 내정했다 는 소식이 머릿기사로 보도되었다. 이번에는 양빈이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다.

양빈은 김정일만큼 '튀는'인물이었다. 행정장관 임명장을 받고 난 인터뷰에서 그는 '외국인을 초대 경찰국장으로 뽑을 것'이라면서 '미국인이 신의주 특별행정구 경찰국장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신의주를 세계 일류급의 현대적인 도시로 꾸릴 것'이라는 포부와 함께 '특구 132㎢ 안에서는 세금도 비자도 필요 없는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등 달콤한 계획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무비자 출입이 가능하며 별천지가 뚝딱 만들어질 것 같은 신의주 특구 사업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신의주 무비자 출입이 중국 정부와 사전 조율과정이 없는 일방적 선언이었음이 드러냈다. 이어서 9월 30일로 예정됐던 외국 기자의 무비자 입경(入境) 취재가 북한 당국의 거부로 무산됐다. 북한 당국과도 사전 조율이 없었던 것이다. 양빈은 '신의주 특구 정부가 정식으로 성립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일 뿐'이라면서 '오늘(9월 30일) 오후 북한 외교부와 협의해 내일(10월 1일) 중 한국 기자들의 신의주행 문제를 해결하겠다' 말했지만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0월 1일, '신의주 외곽에 타 지역과의 격리 장벽이 설치될 때까지 (무비자 입국은) 기다려야 한다'고 양빈이 말함으로써 신의주 특구는 그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어우야 그룹의 주식거래가 중지되었고, '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지하며 김정일을 존경한다'는 양빈의 말에 사람들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군' 하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양빈이 중국 정부에 의해 가택 연금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어서 양빈은 허위 출자와 뇌물 공여, 계약 사기, 농지 불법 점용 등 혐의로 정식 구속됐다. 양빈의 구속으로 신의주 특구도 당분간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경제특구나 특별행정구 개발을 통해 인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적극 환영할 일이지만, 김정일의 꼼수는 어떻게든 뒤틀리고 만다는 것을 2002년 '신의주 특구 소동'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7. 독재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일본인 납치 시인'

9월 17일 북일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면서 사과했다. 세계가 '놀라운 시인(是認)'이라고 의아해했고, 일본 열도가 들끓었다. 물론 김정일은 '일부 망동(妄動)주의자와 영웅주의자가 저지른 일이며 이들을 처벌했다'는 변명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우선은 '일부 망동주의자와 영웅주의자가 저지른 일'이라는 표현부터 생각해보자. '서해교전'을 통해서도 언급했지만 외국인을 납치하여 북한으로 데려오고 이들을 공작원 교육에 활용하는 중차대한 일을 김정일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공작원이 남한으로 향할 때마다 일일이 만나서 악수하고 임무를 준다는 김정일이 아니던가. 더구나 김정일은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한 뒤 도주하다 30시간 만인 2001년 12월 22일 동중국해에서 침몰한 괴선박(怪船舶) 사건에 대해서도 '군부(軍部) 일부의 소행'이라며 사과했다. 비겁한 독재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왜 대뜸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을까' 하는 것도 2002년을 마감하면서 흥미롭게 생각해볼 부분이다. 사실 일본측에서도 북일정상회담에서 그런 성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한다. 김정일의 다급한 현재 처지와 심정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악의 축'3개 국가를 타깃으로 하여 점점 목을 죄여오고 있는 상태에서 김정일로서는 어떻게든 북일관계라도 정상화시켜 놓아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일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납치문제를 시인해버리고 납치자들을 돌려보내면 그에 따르는 상응한 대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납치문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독재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다. 달콤한 대가를 기대했던 김정일에게 돌아온 것은 일본 국민들의 거센 비난 여론이었다.

급한 김에 이제 어떻게 대비책을 만들어 보려한 김정일은 실수를 연발했다. 우선 피납 일본인 중 5명이 생존해있고 8명이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사망자의 사인(死因)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살, 연탄가스 중독(2명), 교통사고(2명), 간경변, 익사, 심장병 등으로 모두 20-40대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고, 대부분 유해도 없었다. 수해(水害) 때문에 묘가 떠내려갔다고 변명했지만 사망자들의 묘가 함께 모여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꺼번에 쓸려갈 수가 있겠는가.
또한 사망자의 것이라고 가져온 유골(遺骨)은 두 번 화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골이 두 번 화장되면 DNA 감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유골이 재차 화장된 시점이 북일정상회담 발표가 있던 날이라는 사실은 여론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며칠 후에는 생존자들이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형태의 비디오가 전달됐다. 내용은 '보고 싶으니 북한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가족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9월 15일 납치되었던 일본인 5명이 2주일동안의 '일시 귀국'이라는 조건으로 20여 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북한으로 돌아갈 시한이 훨씬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이들을 송환하지 않고 있다. 12월 19일 생존자들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고이즈미 총리에게 전달했다.

8. AGAIN 1994?'핵 개발 재개 위협'

2002년은 '시인(是認)'의 한 해였다.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한 북한이 이번에는 핵 개발 사실을 시인했다. 제임스 켈리(Kelly)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0월 3일부터 3일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핵 개발 사실을 시인하였다. 나아가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갖고 있다'며 핵무기 이외의 다른 대량살상무기도 개발했음을 시사했다.
시인의 배경은 우선 켈리 차관보가 '물러설 수 없는 확정적 증거'를 들이대면서 '핵 개발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다그쳐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증거'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라늄을 고농축하는 '원심분리기'의 구입 영수증을 제시하였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첫날에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 당국자들이 다음날에는 오히려 당당하게 '그렇다, 어쩔래?'하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켈리 차관보가 제시한 증거가 핵 개발을 시인하게 된 배경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눈앞에 똑똑히 보이는 증거가 있다 할지라도 인정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내 눈에는 안 보여'하고 우겨댈 김정일 정권이기 때문이다. 이제 갈 때까지 갔으니 한번 맞불을 지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에 켈리 차관보의 방북이 계기가 되었다는 견해가 더 정확할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핵 개발 시인은 1994년 북미간에 체결된 제네바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써, 12월 22일 북한이 영변 원자로 봉인을 제거함으로써 이제 제네바합의는 완전히 물 건너가고 북핵문제는 다시 한번 국제적인 관심거리로 급부상하였다.

남한의 일부 사람들, 심지어는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까지도 '제네바합의를 위반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기회주의적인 양비론 - 사실은 미국 비판에 치우친 - 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제네바합의와 핵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제네바합의의 전제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성실한 핵사찰을 이행한다는 것이었으며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주고 건설기간동안 중유(重油)를 공급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즉 제네바합의 이전 북한은 핵 개발의 이유를 줄곧 '전력난'이라고 이야기해왔으며 미국은 일단 그것을 인정한다는 차원아래 합의서에 서명을 해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시인한 핵 개발 프로그램은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이다. 과거에 북한 핵 문제가 흑연감속로와 재처리시설을 이용해 플루토늄 폭탄을 만들려 한다는 의혹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번에는 '핵무기로 직행하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당연히 전력난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경수로 건설이 지연되니까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했다는 말은 무지의 극치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 대응하기 위해 핵을 개발했다'는 주장도 김정일 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밖에는 안 된다. 농축우라늄 추출의 핵심시설인 원심분리기를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한 것은 1998년으로 부시행정부가 등장하기 전이다. 또한 부시행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2월 '악의 축' 발언 이후로, 대테러전쟁이 2단계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북한은 가지면 안되냐'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핵무기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세계 어느나라(집단)도 갖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미국이 아직도 이것을 갖고 있으니 전량 폐기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핵 개발을 한다니까 '미국도 갖고 있으니 북한도 상관없다'는 논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잘못되었으면 다 잘못된 것이니, 약자가 소유하면 정의이고 강자가 소유하면 횡포란 말인가.

또한 북한의 핵 개발이 정당하고 그들의 표현대로 '핵 자주권'이라면 당당하게 국제사회에 내어놓고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지, 겉으로는 '우리가 필요한 건 발전용 핵일 뿐'이라고 해놓고 음지에서 핵무기를 만드는 비적(匪賊)들이나 할 행동을 '핵 자주권'으로 미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94년과 2002년은 상황이 다르다. 김정일은 1994년과 같이 벼랑 끝 상황으로 가다보면 또 뭔가 소득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핵 개발을 시인했는지 모르겠지만, 1994년과는 상대(미국 정부)가 다르고 국제정세도 확연히 다르다. 앞서 말했듯 핵의 의도가 다르다는 것도 분명하다. 요즘 국제 사회는 핵무기로 위협하는 불량배 국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의사표명을 분명히 하고 있다.

9. 부산 아시안게임 최고의 화제 '북한 미녀 응원단'

제14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9. 29～10. 14)의 화제는 단연 '북한'이었다. 남한에서 개최하는 국제경기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북한은 총 665명의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다. 선수단보다 관심을 끈 것은 355명의 북측 응원단이었다.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는 남한 내에서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왔다. 일단은 개막식에 남북한이 동시입장하면서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나오기로 한 것이 문제가 되었으며, 북한의 인공기를 게양하는 문제, 북한 선수 우승시 북한 애국가를 방송하는 문제들이 대두됐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하더라도 UN에 가입한 공인된 국가이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남북합의서마저 교환한 마당에 인공기-애국가 논쟁은 상당히 진부한 시비거리였다.
아무튼 만경봉 92호를 타고 온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은 이곳을 숙소로 삼으면서 부산에 또 다른 '섬'을 형성했다. 응원단에는 아름다운 북한 여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가는 곳 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미녀 응원단을 소재로 한 인터넷 카페까지 생겨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북한 응원단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대중목욕탕마저 사양할 만큼 외부와의 접촉을 어떻게든 차단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일부에서는 김정일이 미녀응원단을 통해 남한 사람들의 대북인식을 흔들어 놓으려 한다고 우려했다. 그들의 우려야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편견과 불신을 씻어내는 일은 권장할 일이지 막아설 일이 아니다. 다만 남한 사람들이 미녀응원단에 갖는 관심만큼 북한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성분 좋은 사람 중 사상검증을 철저히 거쳐 보낸 미녀 응원단도 북한 인민이지만, 기아와 독재에 신음하는 2천만명의 북한 인민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0. 온 세계에 메아리 친'북한 민주화 함성'

2002년 역시 북한의 인권-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세계 각 국 정부와 언론, 단체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구체화된 전진의 한 해였다.
미국의 연방정부기관인 국제종교자유위원회는 1월 24일 북한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독일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Vollertsen)씨, 개천교화소의 실상을 폭로한 탈북자 이순옥씨,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장 김상철씨 등 3인을 초청하여 북한의 인권 탄압 실상을 청취한 참석자들은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 어떠한 접근법을 시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기구의 마이클 영(Young)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13개항을 권고했다.

2월 9일부터 3일간 일본 도쿄(東京)에서는 북한인권시민연합 주최로 '제 3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가 열렸다. 8개국 40여명의 전문가가 발표하고 수 백 명이 참석한 이 행사의 마지막 날에는 '국제사회가 모든 대북접촉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의제에 포함시킬 것'등 7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행사기간중 한-일 대학생 25명(한국 11명, 일본 14명)은 일본 오사카를 출발하여 동경에 이르는 자전거 순례를 진행하여 북한인권 난민문제의 심각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국제회의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3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연례 세계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북한을 '독재체제(dictatorship)'라고 규정하면서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으며 종교자유가 없는 국가'라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주민들은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권리가 없으며 북한지도부는 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을 국가와 당의 목표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북한의 현실에 대해 서술했다.

4월 17일에는 미국 하원 인권 모임 주최로 북한 인권 설명회가 열렸다. 이 단체 의장인 공화당 마크 커크(Kirk) 의원은 자신이 1997년과 98년 북한을 방문한 경험과 연변지역에서 탈북자 실태를 직접 현장 조사한 사례를 지적하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 행사에는 칼 거쉬먼(Gershman) 민주주의기부재단 회장, 수잰 솔티(Scholte) 디펜스포럼재단 회장, 마커스 놀랜드(Noland)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 안재훈 라디오프리아시아 한국어 방송 국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 북한의 참혹한 인권 상황을 고발했다.

이어서 5월 4일 미국 하원은 북한인권청문회를 개최했으며 ABC 방송은 '숨겨진 삶(Hidden Lives)'이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ABC 방송의 간판격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Nightline)'을 통해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교포 다큐멘터리 감독 김정은씨가 중국 내 탈북자들의 힘겨운 삶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그림자와 속삭임(Shadows and Whispers)'을 3회 분량으로 편집한 것이다. 나이트라인의 앵커 테드 카플(Koppel)은 '이 필름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잔인하고도 비참한 선택들을 목격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안다'면서 북한인과 탈북자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5월 8일 중국 선양(沈陽)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장길수 군의 친척 3명이 중국 공안요원에 의해 끌려가는 장면이 보도되고, 이어 6월 13일 베이징(北京)주재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를 중국 공안요원이 진입해 끌고 나온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내 북한인권단체들의 항의 시위도 잇따랐다. '피납 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는 6월 14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으며, 7월 25일에는 북한 인권관련 단체들이 함께 '주중 탈북난민 강제송환 반대 결의대회'을 가졌다.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시위도 연중 끊임없이 이어졌다. 3월 13일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주최로 '정부의 무성의한 6.25 납북인사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다. 납북자관련 단체들은 7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쌀 30만톤 대북지원에 6.25 납북자 8만여명의 생사확인을 조건으로 제시하라!'는 대정부 요구안을 제시하였으며, 8월 13일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신라호텔 앞에서 '김정일 만행규탄 납북자 생사확인 송환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9월 24일에는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을 만나 '정부는 모든 (남북)협상에서 납북자 문제를 첫번째 의제로 삼을 것'을 요구하였고, 10월 16일 인천연안부두 유람선 선착장에서 '납북자 생사확인 및 송환촉구 선상 결의대회'를 가진 후 어선을 타고 해상시위를 벌였다.

7월 2일부터 5일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백두한라회, 푸른공동체21의 공동주최로 '북한의 인권개선과 민주화 촉구를 위한 탈북자와 대학생 기아체험'이 진행됐다. 참가한 학생들은 대학로를 중심으로 문화공연과 김정일 모의재판, 북한 인권 선전의 거리 등을 운영하면서 북한동포의 고통을 체험하고 북한민주화운동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법륜(法輪)스님이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것도 북한 인권운동에 있어 기록할만한 일이다. 법륜 스님은 정토회를 이끌면서 정치적 정파에 개의치 않고 탈북자 지원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평화 및 국제이해 부문(Peace International Understanding)의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9월 10일 열린 수상기념식에서 법륜스님은 막사이사이상 수상금 5만 불(한화 약 6천만 원)을 북한 돕기에 나서고 있는 유진벨 재단,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 각각 2천만원씩 기증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