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편지: 반전 반핵 김정일 고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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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 걸고 나가자... ”

80년대의 유행했던 운동가요 중 하나입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된 특집을 준비하면서 새삼 이 노래가 떠올라 계속 흥얼거리며 자료를 준비하고 글을 썼습니다. 머릿속에는 자꾸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던 그 ‘이 땅의 양심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그 중에는 이제 가정에서는 보통 두 아이 정도의 아버지, 어머니로 저녁마다 아이들 재롱잔치 보는 재미에 살고 있을 테고, 직장에서는 ‘신참’ 딱지는 뗀 지 오래인 입사 10년차 과장급 직원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혹 90년대 후반 벤처 창업 열풍 때 패기 있는 386세대답게 직장을 박차고 나온 사람 중에는 크게 성공하여 벌써 ‘사장님’ 소리를 듣는 분도 계실 테고, 불행히도 실패하여 밀려드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계신 분도 적잖을 것입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깃발로 휘젓던 더벅머리 총각은 지금쯤 앞머리가 절반쯤은 빠져 이제 중년에 접어든다는 생각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일 것이고, 동네 미장원에서 볶은 파마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보도블록을 깨뜨리던 왕년의 여전사는 이제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낸 후에 조용히 음악 틀어 놓고 커피 한잔 즐기는 30분의 여유에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살아가는 모습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아스라한 기억 한 편에 모두들 노래 한 곡조씩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한 노래 ‘반전반핵가’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2.

저는 인터넷 검색사이트로 네이버(NAVER)를 주로 사용합니다. 네이버 서비스 중에 ‘지식in’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참 재밌어 매일 들어가다시피 합니다.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을 질문으로 올리면 네티즌들이 이에 답을 해주고, 질문자가 그 중 ‘베스트 답변’을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온갖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다 올라오고,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되기도 합니다. 방금 들어가 보니 “‘귀신 잡는 해병대’의 유래는?” “석기시대에도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을까요?” “유리는 왜 투명할까요?” “컴퓨터 파일 확장자가 3글자인 이유는?” 등의 흥미로운 지식들이 올라와 있군요.

여기에 들어가 ‘핵’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핵과 관련한 네티즌들의 질문과 답변이 모두 검색됩니다. 최근에는 부쩍 핵과 관련한 질문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질문의 내용을 보자면 “핵무기의 위력은 어느 정도인가요?”부터 시작해 “우리나라에 핵이 있을까요?”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데 왜 핵을 만들면 안되죠?” “북한 핵은 남침용인가요?” “남한, 일본,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세워주고 있는 이유는?”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베스트 답변으로 선정된 답변을 보면 좀 심각해집니다. 예를 들어 ‘북한 핵은 남침용이냐’는 질문에 대한 베스트 답변은 “정치인들은 노인층을 겨냥해서 선거 때만 되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곤 합니다. 먹혀들지요. 6.25를 치렀잖아요.... 문제는 우리 젊은이들이 진실을 밝혀주어야 하는데 노인들은 대체로 완고하다는 겁니다.”입니다. 북한 핵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직접 눈으로 봐야 알지 그 인간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첩보장치로 확인했다해도 우리 눈으로 봐야 확인이 되죠”가 베스트 답변입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왜 미국은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핵도 핵이지만 미국이 지금 미친 짓 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아프간 석유도 뺏으려고 하고, 9.11 테러도 진짜 과장 심하더군요. 지들이 죽인 아프간인들이 몇 명인데 미국인 죽으니까 세계 각지에서 묵념을 하라고 강조하고, 차라리 빈 라덴의 편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북한이 생화학무기를 미국에 다 살포하고 핵을 날려서 소멸시키면 좋겠다 하는 바램입니다”가 꼽혔습니다.

물론 이런 답변은 대개 철부지 학생들의 가벼운 답변으로 보이며, 차분하게 현실을 설명해주는 답변, 핵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답변들도 많습니다. 학생들도 자라면서 더욱 많은 지식을 접하다보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들이 지금 그러한 인식을 하고 있는 데에는 누구의 영향이 컸는가 하는 점은 살펴볼 대목입니다.

3.

의정부 여학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진 사건에 대한 한 교사단체의 성명서를 보면서 저는 솔직히 그런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에 대해 먼저 걱정했습니다. 교사가 교단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거야 자신의 재량이지만, 한참 정서적으로 민감할 나이에 교사들이 전하는 주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학생들을 생각하니 그것 또한 반공교육의 또 다른 재판(再版)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80년대의 유산이 이토록 큰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80년대에 대학생들의 데모를 보면서 ‘철들면 달라지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혹은 ‘젊은 나이에 사회주의자 아니어본 사람은 없다’면서 낭만적으로 대했던 것이 오늘을 낳았습니다. ‘철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주류’가 된 것입니다. 물론 현실과 부딪히면서 많이 달라졌겠지만 젊은 나이에 자리잡았던 세계관의 잔재는 여간해서 바뀌기가 힘들 것입니다. ‘미국과 맞짱 뜨자’는 철부지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할 날도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반전 반핵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정말 전쟁을 반대한다면 ‘조선 없는 지구는 없다’는 김정일의 무모함도 반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반전 반핵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정말 핵을 반대한다면 송전시설도 없는 핵시설을 발전소라 우기는 김정일의 생고집도 반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양키 고 홈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정말 침략과 억압을 반대한다면 2000만 인민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김정일에 대해서도 응당 ‘고 홈’을 외쳐야 할 것입니다. 후세인 망명계획설이 나오고 있는 이 때, 김정일도 짐 싸서 자기 고향 러시아 하바로브스크로 돌아갈 준비나 할 것을 정중히 제안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