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긴장된 마음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 후보의 지지자들이나 선거운동원들은 그 긴장감이 더 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개표가 시작됐고 일진일퇴를 거듭할 때마다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승패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자 기쁨과 슬픔의 기운도 뚜렷해졌습니다. 그 기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앞서 가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뒤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일들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를 일구어낸 노무현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대선 때 우리의 관심사는 후보들의 ‘대북정책’이었습니다. 북한의 독재체제를 뼈저리게 체험한 우리는 북에 있는 부모형제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북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대북정책에 주의를 기울인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실망감’ 때문입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간의 대결을 막고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 통일의 길로 나가자”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남북관계에서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5년간의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개혁·개방의 길로 나갔습니까. 전쟁의 야욕을 버렸습니까.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까. 인민들이 굶주림의 질곡에서 벗어났습니까.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쩌지 못해 조금씩 취한 변화를 가지고 마치 햇볕정책의 성과인 양 선전을 하였지만 여전히 북한의 독재정권은 살아있고 인민들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식량난조차 해결할 수 없으면서 핵무기 위협을 통해 그 지원조차 막고 있습니다. 선군정치의 기치아래 “올해엔 대담한 공격전을 벌여 나가자”고 하면서 “전체 인민에게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 배우기 위한 사업을 전사회적으로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변할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남한 정부의 지원만을 노리는 북한정권의 술책에 햇볕정책은 철저히 기만당했습니다.

서울 시내를 걷다보니 대통령 당선인사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국민이 이겼습니다”라는 문구아래 노무현 당선자의 이름이 보였습니다. 국민의 힘을 알고 국민을 존중하려는 노무현 당선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당선자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주인은 북한정권이 아니라 북한인민입니다. 새정부에서는 북한인민의 입장에서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보다 발전되고 올바른 정책을 마련하시길 바랍니다.

현재 북한인민의 상황은 절박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독재정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존을 주장하면서 현 북한체제를 유지하자고 합니다. 북한인민을 고통 속에 방치한 채 평화상태를 유지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바랍니다. 새정부에서는 북한인민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평화공존이 아니라 독재체제가 사라지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공존의 정책을 취하십시오. 진정한 평화공존의 상태에서 남북간 상호협력을 통해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가 동북아시대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으십시오. 북한인민의 고통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