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설: 북한에 도착한 '국제지원식량'은 어떻게 분배되나?
해마다 남포, 원산, 청진항 등으로 수많은 지원식량이 들어온다. 그 종류는 다양하다. 우선 밀쌀(통밀)이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안남미(安南米) 또는 통강냉이, 심지어 절반이상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고 돌과 같은 이물질이 가득한 기장쌀까지 등장한다. 어찌되었든 풀뿌리도 없어서 못 먹는 인민들에게 이러한 식량은 귀중한 '생명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그 식량들이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주민들 사이에는 곡물 종류 별로 통용되는 용어가 있었다. 밀 쌀은 주로 유엔(UN)에서 온다고 믿어 '유엔 밀쌀'이라 부르고, 북한에는 안남미를 '알량미'라 하는데 이것은 주로 타이에서 온다고 소문이 나 '타이 알량미'라 부르며, 강냉이는 '미국 강냉이'로 통한다. 그리고 기장쌀은 중국에서 말먹이로 사용하는 낟알을 수입했다고 소문이 돌았다. 북한 위정자들은 이와 같은 식량지원을 구호단체들의 인도적인 지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도적인 대외활동에 의해 '쟁취해 온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지원에 대해 국제사회의 전문가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러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조건 없이 계속하여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 다른 하나는 "식량지원을 하긴 하되 상호주의 원칙에서 그에 따른 정치적인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 많지는 않지만 "절대 식량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들을 파헤쳐 보면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정세에 따라 특정한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김정일 정권은 탈북자들이 먹여 살린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김정일 정권을 연장시켜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은 미워도 굶주리는 주민들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뤄지는 인도주의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지원식량은 당연히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차분히 살펴보면 식량난 초기에 북한 주민들이 숱하게 굶어죽는 상황 속에서도 김정일은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이 두려워 주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러자 "언제까지 앉아서 죽을 날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한 일부 주민들이 제 3국(절대 다수가 중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탈북으로 인해 김정일 정권이 빚어낸 최악의 식량난과 처참한 인권실태가 국제사회에 생생히 전해지게 되었다. 수많은 NGO들이 제3국과 한국에서 탈북자들을 만났고,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동안 북한 내부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던 지원단체들이 앞다투어 온정의 손길을 뻗쳤다.

김정일은 탈북자들을 잡아들이지 못해 안달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벼랑 끝에 섰던 김정일 체제의 목숨을 건져준 것은 그 체제가 싫어서 떠난 탈북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일은 탈북자들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한다.

여하튼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더 이상 실태를 감출 수 없게된 김정일은 체제유지가 한계에 다가서자 본격적으로 구호요청을 했다. 제 나라 국민도 먹여 살리지 못한 '주체시대의 창시,개척자'의 국제 구걸이 시작된 것이다. 인정 많은 세계인들의 약점(?)을 건드려 북한 주민들을 볼모로 잡고 '이들을 다 죽일래?'하는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더욱 많은 식량이 북한의 주요 항구를 통해 속속 들어왔다(물론 식량난을 해결하기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긴 하다).

그러나 그 지원식량의 대부분은 체제유지의 제1선을 담당하는 당 간부들과 군대, 보위부(국가안전보위부), 안전부(인민보안성)와 같은 독재기관을 유지하는데 이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국제사회의 지원식량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분배되는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국제지원식량은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임자

북한의 배급소와 장마당 등에 돌고 도는 식량은 크게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얻어진다. 하나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한국 등 개별 국가를 통해 들어오는 '지원식량'이다. 이것은 서해안으로는 남포, 동해안으로는 원산, 청진항에 주로 쌓여진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기관이나 기업소 별로 중국과 무역거래를 하여 '사오는 식량'이다. 물론 보따리 장사를 통해 들어오는 식량도 많은 양을 차지한다. 이것은 당연히 신의주, 혜산, 회령, 온성, 무산 등 국경지역으로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북한 국내에서 '자체로 재배하여 수확한 식량'이다.

그 중 유동성이 가장 많은 식량은 국제지원식량이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식량은, 예를 들어 통나무를 팔아 쌀을 받아오는 식이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면 당연히 공짜가 아니다. 장사꾼이 가져오는 식량이라고 해봤자 그리 양이 많을 리 없고, 게다가 세관의 검열도 세다. 국내에서 생산된 식량은 수확되는 즉시 농장원들이 조금 나눠 갖고 전량 정부에 납부되거나 인근 군부대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여유가 없다. 결국 공짜로 들여온 국제지원식량('임자'없는 식량)이 비리에 비리를 빚으면서 북한 전역을 떠돈다.

선박으로 들어오는 수십 수만 톤의 식량은 일단 항구에 하역된다. 항구에 내려진 식량은 시급히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원식량은 들어오는 과정에 수분량이 많아져 수십 시간 내로 운반하지 않으면 곡식들이 자체 발열로 싹이 트거나 썩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강냉이는 발아하고 밀쌀이나 안남미 경우는 썩거나 곰팡이가 생긴다. 북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9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부두에 쌓여진 식량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여 썩거나 곰팡이가 핀 알곡을 주민들에게 한두 킬로그램씩 나누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지원식량의 분배 권한은 실무적으로는 행정위원회 양정과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 기관에 있다. 도착한 식량은 당의 지휘를 받아 주변의 도, 시, 군에 할당하여 운반하도록 한다. 여기서부터 기가 막힌 '분배 작전'이 시작된다.

북한에서 지원식량을 가장 빨리 실어 갈 수 있는 기관은 당, 군부대, 보위부, 안전부, 군수공장들이다. 이유는 단 하나 이 기관들은 운수설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을 실어 나를 자동차 말이다. 지역마다 할당량이 있긴 하지만 지원식량은 먼저 가서 가져오는 사람이 임자나 다름없다. 그런데 웬만한 공장이나 기업소에는 다들 자동차가 있을 텐데 왜 이 기관들이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그 비결은 첫째로 '연료'다. 북한에서 식량 다음으로 절실한 문제가 연료이다. 자동차를 운행하자면 기름(휘발유 또는 디젤유)이 있어야 할 텐데, 이것이 수입되면 제일 먼저 당 기관에 공급하고 다음 순위로 군부대, 군수공장, 보위부, 안전부들에 공급한다. 여유가 있으면 경제 건설의 선행기관인 탄광, 광산들에 공급한다. 두 번째 비결은 '타이어'나 자동차의 각종 '부속품'이다. 이것 역시 권력기관에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연료를 많이 갖고 있고 늘 차량이 정비되어 있는 기관은 지원식량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있으면 바람처럼 달려가 낚아채올 수 있는 것이다.

지원식량도 돈이 있어야 타 간다

일반 기업소들은 자동차가 있으면 기름이 없고 기름을 구하면 자동차 타이어나 부속품이 없어 운행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자재들을 합법적으로 판매하는 시장도 없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지원식량이 왔다니 어떻게든 차를 밀고서라도 가서 가져오는 수밖에.

일반 기업소가 식량을 실어오기 위해서는 자기 종업원들에게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식량을 실어오겠으니 그것을 준비하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기름 살 돈, 타이어나 부속품 살 돈을 모두 종업원들에게 떠넘긴다. 거기에는 "식량을 실어오면 돈을 낸 액수에 따라 식량을 나누어준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예컨대 지원식량을 실어오기 위한 준비금(?)으로, 얼마를 내면 장마당 가격의 절반가로 준다고 미리 가격을 책정한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국제사회가 보내온 식량인데, 그것을 받아오기 전부터 돈을 내야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렇게라도 받아먹는 수밖에. 사실 돈을 낸 종업원으로서는 그리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다. 가령 800원을 낸 사람은 나중에 강냉이 40kg을 받게 된다. 이것을 본인이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되판다. 장마당에서 강냉이 1kg이 80원이라면 자기가 배급받은 식량 중 10kg만 팔아도 본전을 뽑는 것이다. 나머지 30kg을 다 판다면 투자(?)금액보다 3배의 이윤을 남기고, 그것으로 장마당에서 입쌀이나 남새, 생필품 등을 살 수 있다.

이러한 계산아래 종업원들이 돈을 모으면 일단 자금 준비는 끝난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곧장 기름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름은 공식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을 갖고 있는 당 기관이나 군부대, 군수공장들에서 암암리에 빼내오는 방법밖에 없다. 예컨대 군수공장에서 빼내오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군수공장에는 '군수동원과'라는 부서가 있다. 2급 기업소 이상에는 다 이러한 군수동원과가 있다. 군수동원과는 전쟁이 나면 군수공장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후보지'(주로 동굴이나 깊은 산 속 등 은폐가 가능한 곳)를 확보해놓고 평시에 이를 관리한다. 전쟁에 필요한 예비물자를 관리하여 전시에 바로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군수동원과의 중요한 임무다. 그러니 군수동원과의 창고는 각종 예비물자들로 잔뜩 비축되어 있다.

사회에는 기름이 없어 아우성인데 군수관리과의 기름 탱크는 늘 규정대로 가득 차 있다. 곧장 전쟁이 터질 리도 없고 매일같이 검열을 하는 것이 아니니, 이 기름 탱크는 평시에는 '비리 탱크'가 된다. 탱크에서 20kg의 기름을 빼고 20kg의 물을 채워 넣는 식으로 기름을 팔아버리고 여유가 생길 때 다시 채워 넣는 형식으로 눈속임을 한다. 물은 기름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기름이 들어오면 물만 분리해서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1일 경제관리조치 이전에 북한에서 디젤유 가격은 1kg에 40～50원, 휘발유 1kg은 60～80원이었기 때문에 몇 kg 내다 팔면 나름대로 상당한 돈벌이가 된다. 자동차 타이어 역시 북한에서는 기름만큼이나 귀하다. 타이어 1개당 보통 일만～이만원(경제 조치 이전)의 값으로 밀매된다. 이것도 역시 당 기관이나 군부대에서 유출되어 시중에 판매된다.

물론 이것이 발각되면 법적 처벌을 면하기 어렵겠지만, 공공재산 도둑질이 일반화되어 있는 북한에서는 직위를 이용하여 요령 있게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따라서 간부들은 암암리에 서로 이러한 농간을 하고 눈을 감아준다.

비리의 사슬이 되고 있는 국제지원식량

자, 이제 기름과 타이어, 각종 부속이 다 마련됐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면 시당, 또는 군당의 비준 하에 "행정위원회 양정과에서 얼마의 식량을 실어다 종업원들에게 배급하라"는 전표(영수증)를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전표를 손에 쥔다고 해도, 자동차 가동 준비가 된다 해도 걸리는 문제가 또 있다. 사회안전부에서 발급하는 '자동차 운행증'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은 통행증이 없이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자동차도 운행증이 없으면 타도(他道)를 운행할 수 없다. 안전부가 이러한 운행증을 순순히 발행해줄 리 없다. 안전부는 운행증을 발급해주는 대가로 실어온 식량 중 일부를 안전부에 내놓도록 한다. 예컨대 남포항에 들어온 식량 20t을 실어다 10t은 관할 지역의 양정사업소에 바치고 10t만 종업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지시를 받았지만 운행증을 발급해 준 대가로 안전부에 2~3t을 바치고 7~8t이 돈을 낸 종업원의 몫으로 된다.

이렇게 해서 떠날 준비가 다 됐다해도 다음 준비가 또 이어진다. 종업원들이 모아 준 돈으로 또 통돼지 한 마리를 산다. 이것이 어디에 필요한지는 이제 대강 짐작이 될 것이다. 아무튼 종업원들에게 식량을 나눠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차는 흥겹게 항구로 향한다. 항구에 도착하면 북한 전역에서 모여든 각종 기관과 기업소의 차량이 몰려 서로 먼저 타가려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항구에서 지원식량을 취급하는 실무자들은 원래 각 지역에 배정된 대로 식량 배분을 안 해준다. 자기들 나름대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부터 선정하여 준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인데 실무자들과 안면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안면이 있다는 건 '평소에 얼마나 뇌물을 바쳤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구에 도착하면 지원식량 수송 임무를 맡은 사람은 먼저 실무자의 집부터 찾아간다. 통돼지 한 마리나 그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의 물건은 이때 필요하다. 이러한 뇌물을 쓰지 못하면 돈 들여 기름 사고 타이어 사고 운행증 받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낭패'가 생길 수도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돼지는 대체로 50～60kg에 1～2만원 정도이다.

심해져 가는 빈익빈 부익부

산전수전 다 겪으며 기업소에 도착한 식량은 앞서 말한 대로 미리 돈을 낸 양만큼 종업원들에게 나눠진다. 그리고 절반 가량은 양정사업소로 간다. 하급 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나온 돈으로 식량을 실어왔지만 양정사업소에 바쳐진 절반 가량의 식량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원래 이 식량은 일반 주민들에게 배급되어야 맞다. 하지만 이것도 대부분 당, 보위부, 안전부와 같은 독재기관의 간부들이 당연하다는 듯 나누어 가진다. 도대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일반 주민들에게 식량공급이 중단되었어도 당 간부들이나 보위부원, 안전원들의 식량공급이 중단된 적은 한번도 없다. 일부 가정에서는 국가에서 제정한 식량공급량을 1년 정도 초과해서 받기도 했다. 이들이 다 가져가도 남은 식량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에 가정마다 1～2kg 정도 공급해 주는 식량으로 대체된다. 이들의 가정에는 식량이 남아돌고 욕심이 많아져 더 좋은 먹거리를 요구한다. 종전에 강냉이밥을 먹고 살았다면 이때부터 흰 쌀밥을 먹기 시작했고, 낟알 값이 금값인 때라 이때를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 돈 없고 권력도 없어 몇 년째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는 주민들의 몫까지 가로채면서 말이다.

그 수법은 간단하다. 북한에는 '절지표'(식량공급표)라는 것이 있다. 일종의 '출근부'라고 볼 수 있는데, 일일 배급량이 700그램으로 책정된 노동자의 경우 700그램짜리 쿠폰 - 편의상 이렇게 표현하자 - 14장이 보름치다. 만약 하루를 결근하면 하나씩을 떼낸다. 보름에 한번씩 이 절지표를 갖고 배급소에 가서 쿠폰 합계만큼 식량을 배급받는다. 북한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번 달에는 눈깔 두 개를 파먹었다"는 식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이틀을 결근하여 절지표 쿠폰 두 개가 잘려나갔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직종에 따라 일반노동자는 700g, 고열노동, 탄광 등 채취공업부문 노동자는 800g등 배급량이 다르다. 노동자의 자녀나 가정 주부들은 가장(家長)의 직장에서 200g, 500g 등 나이 및 경력에 따라 절지표를 받는다.

식량배급규정에 따르면 미공급량을 다 배급받았을 때는 더 이상 배급을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간부들은 지원식량을 다 받고도 1년분 이상을 초과로 받아 쌓아놓기도 한다. 앞으로 식량이 배급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즉 국가에서 주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받는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배급소 직원들은 그들의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배급소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에 규정을 어기는 것인 줄 알면서도 초과배급을 한다.

나아가 간부들은 돈 없고 권력 없어 식량을 배급받지 못하는 일반 노동자들의 등까지 쳐 먹는다. 일반 노동자들은 절지표를 갖고 배급소에 가봤자 "식량이 없다"고 하면 그냥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간부들은 이들에게, 예컨대 4달간 식량을 배급받지 못한 사람에게 "4달치 식량을 배급받도록 해줄 테니 그 중 2달치를 내게 내놓아라"하고 요구한다.

절지표라는 것은 배급을 받지 못하면 그냥 종잇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울며 격자 먹기로 '아예 못 타느니 2달치라도 타 먹자'라는 생각에 이것을 간부들에게 내어놓는다. 이러한 절지표는 장마당에서도 암거래되어, 가난한 노동자들은 이것으로 한끼를 때운다. 보름분의 식량을 한끼로 때웠으니 그 후의 상황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암거래된 절지표는 다시 간부들이 손으로 흘러 들어가 식량으로 바뀌어진다. 돈 없고 권력 없는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 갈 때 공짜로 수십 톤의 지원식량을 가로챈 간부들은 가정에 쌓여진 식량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여 장마당 장사꾼들에게 팔아 목돈벌이를 한다.

이것이 국제지원식량으로 배를 불리는 북한 권력자들의 모습이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권력기관에 있는 간부들이나 규탄하자고 이러한 실상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체제 자체가 비리를 낳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간부들의 비리가 김정일의 책임을 감면해주는 요인이 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비리행위자를 엄벌하여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독재기관의 비리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것이 자신의 권력유지에 유리하다는 것쯤은 김정일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리를 조장하고 방치해두는 측면도 있다. 인민들의 마음은 이미 김정일에게서 돌아선 지 오래인데 중하층 간부들마저 완전히 김정일에게서 돌아서면 김정일은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2002년 7월 1일 경제조치 이후, 국제사회에서 지원 받은 공짜 식량으로 주민들의 고혈을 악착같이 짜내고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지원식량이 군대나 간부들에게 흘러들어 식량판매소로 넘어가고 다시 주민들에게 예전보다 수십 배 비싼 가격으로 팔려지는 악순환이 더욱 심해졌을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가 국가에서 예전에는 차마 공식화하여 걷어들이지 못하던(물론 온갖 명목으로 떼어가기는 했다) 각종 세금을 이제는 당당하게 걷어들이면서 주민들 생계의 뿌리까지 깡그리 뽑아가려 하고 있다. 앉아서 굶어죽기만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를 악물고 제 3국으로의 탈출을 계속 시도할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없는 사람사이에는 김정일 독재가 지겨우니 "전쟁이라도 꽉 나버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김정일 타도'가 대안이다

이 글을 통해 익히 설명이 됐지만 국제사회의 식량지원과 관련하여 몇 가지 대안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먼저 식량지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항구에 식량만 내려놓는다고 지원이 끝난 것이 아니다. 물론 비리와 비리의 사슬을 통해서든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주민들에게 식량이 가기만 한다면 다행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 보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식량이 가길 바란다면 항구에서부터 차량으로 운반, 주민들이 줄을 서 식량을 받아 가는 모습까지 다 확인을 하여야 한다(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렇게 배급된 식량도 다음날에 '군대 지원' 등의 명목으로 수거해 간다고 한다).

둘째, 식량배급을 북한의 권력기관에 맡겨서는 안 된다. 식량배급의 권한은 행정위원회에 있지만, 북한의 행정력이라고 해봤자 당(조선노동당)의 수족일 따름이다. 당의 비준을 받아 식량배급을 받게 되는 현재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게 되면 결국 독재기관만 살찌우게 된다. 국제지원단체들은 식량지원의 조건으로 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구체적으로 조사할 것을 북한 정부에 요구하고, 각 지역, 기업소별 부족분을 파악하여 '어느 지역에 얼마, 어느 공장에 얼마'하는 식으로 전달체계를 보다 상세하고 투명하게 강화하여야 한다. 각 지원단체들이 특정 기업 및 지역, 탁아소 등을 일대일로 연계하여 지원하는 일부의 방식도 이런 측면에서는 효과적이다.

셋째, 절대 '현금'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에게 지원되는 식량도 비리에 비리를 거듭하며 당과 독재기관을 살찌우는데, 현금을 지원하면 그것은 더더욱 독재를 연장시켜주는 꼴이 된다. 현금지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안되며 무조건 현물 및 식량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지원된 물자들이 본래의 용도에 사용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여야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지원은 아무리 퍼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바닥에 고여있는 한 방울의 물이라도 굶주리는 인민에게 공급되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독재자는 이러한 선의에 감동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온정을 독재유지의 방편으로 악용하는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서는 때로는 우리도 '독해질' 필요가 있다.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인도적인 마음을 '김정일 타도'로 승화시키자.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민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