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네 번째 Keys를 내놓습니다. 2000년 2월 15일 창간호로 시작했던 Keys는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기관지로, 북한 민중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자임해왔습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1999년 12월 10일,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지 51주년이 되는 날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그 첫 마음으로 ‘현 시기 한국 - 나아가 세계 - 진보운동의 가장 절박한 과제는 역사상 유례 없는 살인독재정권 치하에서 반세기동안 신음해 온 2천만 북한 민중을 구출하는 일’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난 3년여 동안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북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고 △관련 단체와 연대망을 구축하였으며 △북한민주화운동에 함께 할 운동가들을 육성하는 일 등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칼날에 목이 난자된 실험용 쥐 여러 마리가 담긴 협박 소포와 협박 편지도 받았으나, 그 어떤 외부의 불순한 도전도 우리에겐 오히려 “북한민주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가라”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Keys는 매월 1회 발행되고 있으며, 연중 1회를 휴간하여 일 년에 11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3개월에 한번씩 영문판을 발행하여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는 일문판도 만들어 이웃나라 일본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우리가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월간지를 창간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 주시면서도 “과연 꾸준히 발행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의 말을 넌지시 건네주셨습니다. 특히 영문판과 일문판까지 발행하겠다니 “의욕은 좋지만 가능하겠는가”하는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비록 60여 페이지의 작은 책이지만 전문적인 언론사가 아닌 마당에 꾸준히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인력도 부족했습니다. 편집장 혼자 기획에서부터 원고청탁, 집필, 편집, 교정, 발송을 다 맡아보며 ‘슈퍼맨’이 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밤을 새워 자료를 수집하고 원고를 쓰는 날이 많았습니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솔직히 힘들어 울었던 날도 많았습니다.

비단 저 뿐만 아니라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 모두가 개인적인 생활고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힘들 때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웠던 건 ‘승리의 날이 온다’는 확신이었고,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신상 고통과는 비할 바 없는 억압과 착취에 신음하고 있을 북한 민중이 있다는 책임과 의무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서른 권 이상의 Keys를 쌓게 했습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와 상근 활동가, 회원 동지들을 대신하여 그 동안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후원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언젠가 ‘편집자의 편지’를 통해 저는 “Keys 종간호를 내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독자 여러분에게 편지를 띄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내 소원은 Keys를 계속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종간호를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에는 매월 표지를 달리한 형형색색의 지난 호 Keys가 알록달록 모여있습니다. 몇 밀리미터 되지 않는 두께의 책들이 쌓이다보니 어느새 백과사전 몇 권의 두께는 될 만큼 쌓였습니다. 한편으론 어려운 순간들을 헤쳐온 ‘내 젊은 날의 추억과 보람’으로 살갑게 다가오지만, 다른 한편으론 ‘저것을 발행하지 않을 날이 어서 와야 할텐데’하고 애물단지 바라보듯 긴 한숨을 내쉽니다.

늘 말해왔던 것이지만 Keys가 종간호를 내는 날은 ‘김정일 독재정권이 종말을 고하는 날’입니다. 북한 민중이 자유와 해방의 날을 기뻐하며 만수대의사당 앞에 있는 김일성 동상에 밧줄을 걸어 영차영차 넘어뜨리는 날, 우렁찬 만세 소리가 울리고 있는 가득한 인파의 한 켠에 앉아 기쁨의 눈물 흘리며 저는 Keys 종간사(終刊辭)를 쓰겠습니다. 도대체 감정에 복받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대강 이런 식의 종간사가 될 것 같습니다.

독재 치하에서 운명을 달리한 분들을 애도하며 승리를 쟁취한 북한 인민들에게 축하의 인사 전합니다. 그 동안 북한 민주화운동의 길잡이가 되고자 했던 Keys는 오늘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이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라’는 숙제를 여러분에게 남겨주고 떠납니다. 목숨을 걸고 독재에 항거했던 날들의 용기와 패기로 살아간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발전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솔직히 매달 Keys를 발간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스치듯 몇 번 해보았지만, 어느덧 서른 권 이상 Keys를 쌓아가며 욕심 하나 생겼습니다. Keys 종간사, 제 손으로 꼭 써보고 싶다는 욕심입니다. 우스운 상상이지만 혹시 제가 다른 분에게 편집장의 직책을 넘겨주고 자리를 비웠을 때 북한이 해방된다면, 그래서 Keys 종간사를 쓸 수 있는 그 ‘역사적인 권한’을 양보하게 된다면, 참으로 억울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선수를 치듯 저는 오늘 종간사의 골격을 잡아보았습니다. 누가 쓰든 내용은 위에 제가 쓴 것과 비슷할 것이고 벅찬 감정 역시 한마음이겠지만 ‘역사에 남을 문장 하나에 내 이름 새긴다’는 야심 하나는 아직도 제 가슴에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혹 잠시라도 멈추고 있는 날에 해방의 나팔 소리가 울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오늘 우리를 멈출 수 없게 합니다. 서른 네 번째 Keys를 내놓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시중 대형서점에서도 Keys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세계 방방곡곡 안 가는 곳이 없는 Keys가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종착역은 ‘평양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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