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홍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김정일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회담에 나왔다. 이번 핵문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그의 요구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보장’이었다. 사실은 ‘북한의 체제’가 아니라 ‘김정일의 체제’겠지. 그런데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과 한국 정부, 아니 협상에 나서는 미국의 일부 인사들도 이런 주장에 깊은 생각이 없는 듯하다. ‘북한이 핵만 포기한다면, 그래, 체제를 보장해 줄 수도 있지…’하고 생각하나 보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무슨 체제를 보장하라는 말인가! 사회주의 체제라고? 천만에!

북한이 무슨 사회주의 체제인가? 과거 소련을 비롯한 구 사회주의 체제도 역시 인민들을 탄압하는 등 수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일정한 법적 원리에 의거해서 돌아갔다. 그에 비해 북한은 봉건주의라고 말해도 사치스러운 체제가 아닌가. 어쩌면 인류역사에 거의 유일무이한 체제인지도 모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 정도라고나 할까. 파라오의 한마디에 파라오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이런 체제를 보장하란 말인가?

350만에 달하는 사람이 굶어죽은 체제를 보장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350만’이란 숫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잘 안 떠오르는 모양인데, 작년 6월 한국과 독일의 4강전 때 광화문과 시청에 모인 사람들이 170만 정도란다. 그럼 그 때 그 군중의 두 배 넘는 수가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다. 늙어 죽은 김일성 시신을 보관하는데 쓴 돈으로 옥수수라도 사다 먹였다면 이 사람들이 절대로 죽었을 리가 없는데, 그냥 맥없이 ‘죽여’버렸다. 이런 체제를 계속 유지시켜 주자고?
남들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안돼.

나나 당신의 아이들만 한 아이들이, 나나 당신의 부모 같은 노인들이, 20만 명의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수수용소에서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사치스런 이야기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 보다 정확하고…. 이 사람들, 그래,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동물이 아니란 말이다. 이들의 이른바 죄목은 무엇인가? 친구한테 당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했다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재일교포 지주 출신이라고, 수령님 사진을 잘못 보관해서 등등…. 어쩌다 쥐나 뱀이라도 잡은 날은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라고 한다. 소금에 옥수수 죽을 먹으면서도 목숨이란 게 얼마나 질긴지…. 그래 이렇게 사람들을 계속 잡아 두는 체제를 보장하자고? 남들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안돼.

중국 땅에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자신의 고향과 정든 가족, 친구를 뒤로 하고 도망쳐온 사람들이 산 속을 헤매고 있다. 심지어 자식을 팔고,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팔거나 인신매매 당하고 있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더 큰 고통과 탄압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이런 체제를 보장하라고?
남들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안돼.

하루하루의 안락 속에서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이기주의자로 전락해버렸나 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의 삶을 외면한 채. 그러나 세상 역사란 냉엄한 것이어서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고, 거짓과 위선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마련이다. 우리들의 이 비양심과 비겁함 역시 그러한 시간에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Keys는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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