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周逸의 북한이야기 - 북한의 주민 동원 외화벌이 실태

프롤로그

북한에서 외화벌이는 정권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관심이 높다. 경제가 어렵고 생활이 궁핍한 북한에서 외화벌이는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외화를 버는 일이고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생활에 보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당(조선노동당)이 할당해 준 외화벌이 과제를 안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일간지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은 아편 생산량에 있어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다음인 세계 3위, 헤로인의 경우 6위이며, 암페타민과 같은 합성 약물도 생산하고 있다”면서 “이것들이 일본, 러시아, 중국, 대만, 남미 등지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미국 정부는 확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마약 판매는 이제 공공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도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외화벌이’다. 금전적 가치로 따져 보자면 외화벌이 사업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안겨다 주는 사업이 마약 판매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런 ‘굵직한’ 외화벌이 원천 뿐 아니라 주민들을 동원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귀물(貴物)까지 다 긁어모아 달러(dollar)로 바꾸고 있다.

김정일은 주민들을 닦달해 악착같이 달러를 모으고는 있지만 그런 푼돈으로는 피폐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국내의 외화 원천도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독재 체제 유지가 위태롭다. 그래서 ‘목돈’을 만들어보려고 부단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무기 판매가 그런 것이고, 또한 한국, 일본, 미국 등을 협박해서 돈을 갈취해내는 전술도 구사하고 있다.

우선 한국. 한국의 지난 정부와 현대그룹이 국민들 몰래 북한에 뭉칫돈을 건네준 것은 이미 스스로 시인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밀거래가 드러나면서 이제 한국으로부터 달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메리트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다음은 일본. 그동안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을 통해 적지 않은 외화를 끌어들였는데 조총련계 은행의 파산과 재일 교포들의 외면으로 이젠 그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다른 방편으로 추진하는 것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이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북-일 수교를 통해 남한이 일본에게서 얻어낸 것과 같이 전쟁 배상금을 받고자 노력해왔다. 이 꿈이 실현되려던 시점이 지난해 9월 북일 정상회담이었다. 그런데 김정일은 거사(擧事)를 앞두고 대과(大過)를 저질러 버렸다.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일부 좌경 맹동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이야기하고 털어 버리면 자신을 ‘통 큰 지도자’로 부르면서 잊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국. 부시 행정부에게 적당한 눈속임과 지연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김정일은 ‘정면돌파’로 방향을 바꿨다. 즉 핵을 통한 협박 전략이다.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냉각기를 통해 지금 시간을 버는 중이며 일정한 시점이 되면 드러내 놓고 협박을 시작할 참이다. 그것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모든 것이 물 건너간 시점에 아쉬운 대로 김정일은 주민들을 상대로 외화벌이 운동을 더욱 다그치고 있을 것이다. 올 겨울 엄동설한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산과 들을 헤맸을 북한 민중을 생각하며, 북한의 주민 동원 외화벌이 실태에 대해 알아보자.

외화벌이 운동의 시작과 변천과정

초기의 자발적인 외화벌이

운동 김일성 환갑을 맞으면서 시작
충성경쟁에 의해 집에 있는 모든 금붙이를 끄집어 내


북한에서 외화벌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 부터다. 당시 김일성의 환갑 생일(4월 15일)을 맞으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전(全)당적으로 ‘충성의 외화벌이 운동을 벌일 데 대하여’를 호소했다. ‘충성의 외화벌이’로 명명된 이 운동은 외형상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이라고 선전되었지만 실제로는 당과 국가의 구상으로 시작된 운동이다.

공장, 기업소에 나가 당과 국가에서 지정한 생산목표만을 달성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외화벌이’라는 말은 생소하기도 하거니와, 도대체 무엇을 팔아야 외화가 되는지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다. 과거사회에 좀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옛날옛적부터 황금(黃金)이 국제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정도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의 발현으로 금, 은과 같이 쉽게 외화로 환전 가능한 귀금속을 당에 ‘자발적’으로 바쳤다. 초기에는 그랬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 주민들이 장롱 속에 잠들어있던 돌반지, 결혼반지 등 금붙이를 가지고 나와 위기 극복에 동참하던 풍경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본질이 다르다면 북한판 금모으기 운동은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의 일환”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고, 남한판 금모으기 운동은 “위기에서 국가를 건져내기 위한 애국심의 일환”으로 칭찬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에는 ‘유선 3방송’이라는 것이 있다. 대외에 전파를 타지 않고 주민들만 들을 수 있는 방송이다. 이 방송을 통해 중요한 당의 방침이나 지시가 전달된다. 당시 북한의 유선 3방송은 “△△시 ☆☆공장의 아무개는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금 세공품을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에 대한 변함 없는 충성을 다짐하며 당 앞에 서슴없이 내놓았다”는 식으로 쉴 새 없이 선전하며 주민들의 금모으기를 선동했다. 금을 얼마나 바치느냐가 충성심의 척도가 될 판이니 너도나도 집 안에 있는 모든 금붙이를 끄집어냈다.

강제, 반(半)강제로 변질된 외화벌이 운동

외화벌이 조직이 확장되면서 강제, 반강제 병행
처음에는 부업이었던 외화벌이가 주업으로 전환


이러한 금모으기는 한계가 분명하다. 있는대로 다 나오고 나니 북한 전역에 실존하는 금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외화벌이의 원천을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외화벌이 운동은 초기에는 <중앙당 재정경리부>에서 총괄했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외화벌이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면서 외화벌이 부서도 여러 개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39호실>은 ‘대성무역상사’ 같은 여러 형태의 기구를 거느리고 전문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는 당내 상급 기관이다. 그 하부 직속 기관인 <5호관리부>는 실질적인 외화벌이 기관으로서 각 시, 군의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의 당 조직을 동원해 다양한 제품의 외화벌이를 하는 ‘충성의 당 자금’ 조달기관이라 할 수 있다. 또 해당 지역에 원천기지(源泉基地)를 조성하여 연간 100만 달러의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지방 특산물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부서는 초기에는 <5호관리소>라는 명칭으로 도, 시, 군 당 위원회 조직부의 통제를 받아오다가 1989년경부터 외화벌이가 활성화되면서 <5호관리부>로 개칭하였다.
상급 기관들이 체계적으로 생겨나면서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충성의 외화벌이운동은 점차 강제적, 반강제적 운동으로 전환됐다. <5호관리부>는 △노동당 <39호실>로부터 하달되는 각종 외화벌이 과제를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의 초급 당 위원회에 할당하고 그 수행 과정을 감독 통제하는 강제적 방법과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참여하여 채취하는 금, 송이버섯, 두릅 등 특산품을 수집하는(사들이는) 반(半)강제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당의 주도로 민간에서 진행하는 외화벌이와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군대의 외화벌이다. 군대가 외화벌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84년경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인민군대의 강화와 생활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로 생산, 확보하는 원칙을 세울 데 대한 방침’이 떨어지면서부터다.

오늘날 인민무력부 산하에는 크게 3가지 부류의 독자적인 외화벌이 기관이 있다. <인민무력부 제25총국>, <인민무력부 매봉무역상사>, 그리고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각 국별로 운영되는 무역회사>가 그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북한의 경제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북한 전역 공장, 기업소의 생산이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처음에는 일종의 부업(副業)으로 여겨졌던 외화벌이가 이제는 주업(主業)으로 전환됐다. 현재 북한의 모든 당조직, 사회단체,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이 외화벌이에 선차적인 힘을 쏟고있다.

외화벌이 실태와 내용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은 크게 ① 주민들을 동원하여 진행하는 개별 과제 할당식 군중 외화벌이(반 강제식), ②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단위로 진행하는 집체 할당식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외화벌이(강제식), ③ 상설기관을 만들어 전문적으로 외화벌이만 하는 전문외화벌이(전문 직업식)로 구분된다.
외화벌이 품목도 초기에는 금, 은 같은 귀금속에 불과하던 것이 송이버섯, 참나무 버섯, 두릅, 고사리, 찔광이(산사山査 ; 산사나무 열매로 한방 약재로 쓰임), 부채마(麻의 일종, 약재로 쓰임), 세신(細辛 ; 족두리풀의 뿌리, 한방 약재로 쓰임), 송화(松花)가루, 누에고치, 개가죽, 해리(海狸 ; 비버) 가죽, 실뱀장어, 조개류, 오징어 등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포함된다. 심지어 아편 등 마약류까지 취급하고 있다.
군중외화벌이 (반강제식)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사금 채취
금을 바치면 상품을 살 수 있는 ‘자격’을 준다


‘군중외화벌이’란 군중을 동원하여 외화벌이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외화벌이는 초기의 ‘자발적 참여’관계에서 ‘반자발적’인 형식을 넘어 지금은 의무적인 과제가 되었다. 군중외화벌이의 실태를 좀더 세분화하자면 △개인별로 할당돼 진행되는 외화벌이와 △개인이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형식이 있다. 일반적인 품목은 금, 은, 개가죽, 토끼가죽, 누에고치 생산 등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것은 사금(砂金)채취다.

모래밭에서 사금을 채취해내는 과정은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사금을 채취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아주 흔한 일상적 풍경이다. 사금을 채취는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나 크게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강기슭마다 사금판을 펼쳐 놓고 사토(沙土)를 인다. 판자로 만든 1∼1.5m의 길쭉한 채취판에 40㎠ 크기의 모직천 4장을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담고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모직천은 대개 인민군 장교들의 겨울 외투를 이용한다. 여기에 미세한 알갱이들이 달라붙으면 이 모직천을 대야에 담고 씻어낸다. 이렇게 수 차례 반복하면 대야에 담긴 물에 앙금이 생긴다. 이것을 쌀을 이는 듯이 일어낸다. 금은 다른 금속에 비해 무거우므로 맨 나중에 걸러진다. 이 앙금 속에 있는 사금을 수은으로 굳힌 다음 가스불로 태워 순금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 간단치 않은 방법으로 대강 3∼5인이 한 개 조를 형성해 하루종일 1∼2t의 모래를 처리하면 0.1∼0.2g의 사금을 채취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사금 채취량이 다르다. 평안남도 회창, 평안북도 운산, 함경남도 요덕 등 금광(金鑛) 주변에는 순도 높은 금이 나오지만 대동강변에서 사금을 채취하면 7∼8t을 처리해야 이 정도나마 얻을 수 있을까 말까 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은 일제시기부터 금광으로 유명한 평안남도 회창 광산이다. 이곳에는 지금까지도 철도가 없어 광산에서 광물을 시약 처리해서 평안남도 신양군 인평 역까지 화물자동차와 삭도(가공삭도 架空索道 ; 공중에 건너질러 놓은 강삭(鋼索)에 차량을 매달아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설비. 가공 케이블)로 수송한다. 이러한 수송 과정에서 광물(정광)이 도로 주변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다른 지역보다 사금이 많이 나는 것이다. 신양군 인평 노동자구 주변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사금 채취로 남녀노소가 강기슭을 가득 메운다.

사금의 가치가 높다보니 밀매도 성행하고 있다. 채취 과정까지는 통제가 느슨하지만 일단 생산한 금은 개인이 사고 팔지 못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당 및 근로단체 조직으로부터 할당된 외화벌이 과제를 완수하거나 개인 돈벌이를 위해 사금 1g당 1200∼1500원(2002년 7.1 경제관리경제조치 이전 가격) 정도로 중국 교포들과 밀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아무튼 이렇게 채취한 사금은 당 조직이나 직맹(조선직업총동맹), 청년동맹(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여맹(조선민주여성동맹) 조직을 통해 ‘개별 외화벌이 과제’ 또는 ‘조직, 기관 외화벌이 과제’ 명목으로 수집돼 5호관리부로 모아진다.

5호관리부는 국영상점과는 다른 ‘외화상점’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이 상점에서는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들의 외화벌이 과제 수행 정도에 따라 상품을 배정 판매한다. 또한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사금과 금, 은 세공품도 수집하여 그 가치에 따르는 상품만을 팔아준다. 예컨대 금 10g에 컬러TV 1대, 금 5g에 재봉틀 1대, 금 0.1g에 나일론 양말 1켤레 하는 식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이것은 일종의 ‘이중 착취’다. 즉 일정량의 금을 채취하여 가져가면 그에 해당하는 상품을 바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갈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다. 앞서 금 10g에 컬러TV 1대라고 했는데, 금 10g을 바치면 컬러TV를 바로 내어준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따라서 컬러TV 값은 따로 더 주어야 한다.

한편 주민들은 의무적인 외화벌이 과제로 개가죽이나 토끼가죽을 바쳐야 하는데, 주민 한 세대 당 1년에 1매씩 할당된다. 개가죽은 주로 인민반(북한에서는 주로 ‘가두 인민반’이라 부름)을 통해 주부들에게 할당되는데 북한의 모든 주부들은 여맹(민주여성동맹)에 속해있어 여맹 조직이 외화벌이 과제 수행을 집행한다. 토끼가죽은 인민학교(초등학교), 고등중학교(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할당되는데 소년단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조직을 통해 집행된다.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의 외화벌이 (강제식)

공장에는 이름만 올려져 있고 실지로는 외화벌이에만 전념하는 작업조 탄생
초과된 목표량은 자신들이 챙겨


군중외화벌이와 함께 북한 주민들에게 이중적으로 부과되는 과제가 바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을 통한 외화벌이 생산과제다. 우선 시, 군 당 위원회에서는 당 전원회의를 통해 해당지역 5호관리부에서 제출한 외화벌이 계획과제를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초급 당 위원회에 할당한다. 초급 당 위원회는 생산단위의 행정단체에서 일정한 수의 인원을 선발하여 전문 사금채취를 위한 작업조를 조직, 운영한다.

1980년대 초에는 5호관리부에서 받은 외화벌이 생산과제를 종업원 개개인에게 일일이 재 분담시키고 의무적으로 받아내는 ‘군중적 운동’ 형식으로 전개했다. 이 같은 군중적 운동은 자연히 반강제적 형식을 띄게 되었고 외화벌이 과제 완수율도 떨어졌다. 아무리 충성심을 운운해도 종업원들은 본래의 작업 이외에 외화벌이운동을 또 해야 한다는데 부담을 느꼈고 점점 불만이 커져 사회적 여론도 좋지 않았다.

이럴수록 시, 군 당 책임비서들은 전원회의 때마다 초급 당 비서들을 닦달질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초급 당 비서들은 상급당의 압력을 모면하고 종업원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골몰했다.

필요는 방법을 창출하는 법. 그렇게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종업원 개개인 모두가 외화벌이를 할 게 아니라 자신은 직장 일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몫까지 외화벌이를 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양산해냈다. 이들은 소속은 그 공장에 있되 전문적으로 사금 채취만 하면서 기업소에 할당된 외화벌이 계획과제를 달성한다. 이 방법은 1989년부터 전국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초급 당 위원회들에 자연히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정착했다.

이러한 ‘외화벌이 작업조’는 기업소에 할당된 외화벌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무단 결근으로 기록되어 식량배급과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응하여 외화벌이 작업조도 요령이 생겨났다.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개인들에게서 사금을 사들여 초급 당 위원회에 바치고, 반대로 생산과제를 초과 수행했을 경우에는 초급 당 위원회에 허위 보고하여 초과 몫을 횡령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협동농장에서는 금 채취 외에 누에치기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누에고치 생산은 5호관리부에서 할당하는 외화벌이 과제이기도 하지만, 농장원들이 생활상 이익을 위해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된 누에고치의 판매권은 5호관리부에서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농장원들의 근로의욕이 높을 수가 없다.

지방의 전문 외화벌이 기관 (전문 직업식)

알짜배기 외화벌이 원천은 5호관리부에서 독차지
5호관리부 산하 외화벌이 전문기관은 ‘원천기지’

금, 송이버섯, 누에고치, 두릅, 고사리, 실뱀장어, 약초… 이런 것들이 북한에서는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원천’이다. 외화가 될만한 모든 것은 채취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원천은 각 지방마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송이가 많은 지방은 송이가 주요 원천이고, 강을 끼고 있으면 실뱀장어가 원천이 되는 식이다.

각 지방에는 크게 두 곳에서 외화벌이를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시, 군 당 위원회 조직부 산하의 ‘5호관리부’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위원회 산하의 ‘외화벌이사업소’이다. 앞서 설명했듯 북한에서 외화벌이를 총괄 주도하는 곳은 5호관리부이다. 그러나 지방 행정조직들도 재정 확충을 위해 자체로 사업소를 만들어 외화를 벌어들이려 한다. 그런데 한 지역 내에서 외화원천은 한정되어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로 알짜배기 사업은 5호관리부에서 가져가고 외화벌이사업소는 콩고물을 주워 먹는 식이다. 또한 만약 지방의 외화벌이사업소에서 일정 양의 금을 채취했다하더라도 자체로 그 물건을 처분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중앙당 39호실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외화벌이 사업소의 외화소득액은 대단히 미미하다.)

5호관리부는 외화벌이 전문기관으로 하부기관인 ‘원천기지’라는 자체 생산 시설을 갖고 있다. 대체로 협동농장 형태로서 아편재배, 또는 외화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각종 농토산물, 수달, 토끼, 해리 등 고급 가죽 생산을 위한 동물 사육 등을 하고 있다.

금(金) 이외의 외화벌이 원천

송이버섯, 실뱀장어, 조개류, 약초, 오징어, 명태

5호관리부의 외화벌이 품목은 금과 송이버섯, 수산협동조합이나 협동농장 등에서 생산하는 수산물과 농특산물이다. 금 생산과 같이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산품목은 분기마다 나누어 연간 과제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초급 당 위원회에 계획을 주고 집행을 통제한다. 송이버섯, 누에고치, 두릅, 고사리, 송화가루, 약초, 조개류, 실뱀장어, 오징어, 동태와 같은 농수산물은 계절에 따라 집행된다.

송이버섯은 지역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황해남북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채취 가능하다. 채취 기간은 매년 8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다. 이 시기를 북한에서는 ‘송이전투’라고 하는데 이때 5호관리부는 가장 바쁘게 돌아간다.

황해도 예성강 일대에서는 외화벌이를 위해 4∼6월 실뱀장어를 잡는다. 평안남도 문덕군, 숙천군, 평원군, 증산군, 온천군 일대는 봄과 가을에 조개류를 채취하고, 평안북도, 자강도 지구에서는 부채마, 세신, 황백나무껍질과 같은 약초류, 함경남북도, 강원도의 동해안지역에서는 명태, 오징어 등이 군중외화벌이의 대상이 된다. 수집된 송이버섯, 실뱀장어, 조개류는 일본으로, 약초, 오징어, 명태는 중국으로 수출된다.

아편 - ‘백도라지’ 외화벌이

5호관리부가 가장 중요하고 비밀스런 외화벌이는 일명 ‘백도라지’ 사업이다. 백도라지는 양귀비를 이르는 공식화된 은어(隱語)이며, 아편(opium)의 원료가 된다. 아편을 백도라지라고 하는 이유는, 마약을 생산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따돌리기 위한 수법인 동시에 양귀비와 백도라지는 서로 모양새가 비슷해 멀리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는 점에서 외국인들의 눈을 속이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양귀비의 은어로 백도라지를 선택한 것은 안성맞춤인 듯하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이를 폭로하지 않았다면 외국인들은 양귀비 재배 밭을 지나치면서도 안내원의 통역대로 백도라지로 속았을 것이다.

각 지역의 단위마다 양귀비 재배면적은 서로 다르지만 평안남도 양덕군 일대에서는 7∼8정보(1정보는 약 100m×100m) 이상이다. 1992년 인민무력부에서는 함경남도 부전군 일대 1개리(1개농장)를 군(軍)에 넘겨 전체 농업용 토지(보통 100∼150정보)에 양귀비를 재배하기도 했다.

아편진(津;점액)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편의 유출방지다. 따라서 아편진을 채집할 때는 통제하기가 쉬운 고등중학교 졸업단계의 어린 학생들과 대부분 처녀들로 구성된 피복공장 노동자들을 동원시킨다. 아편진을 채집하는 노력 동원은 주로 6월에 이루어진다. 동원된 사람들은 집단으로 숙식하며 엄격한 규율에 의해 생활이 통제된다. 그래도 동원된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편을 숨겨서 집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아편을 숨겨 오려는 이유는 우선 기초 약품이 부족한 북한에서 아편은 가정 의약품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에 욕심 있는 사람들은 중국과 같은 외부인들에게 아편을 밀매 하면 목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달토끼와 달팽이

일부 지방의 5호관리부에서는 외화벌이 원천으로 수달토끼와 달팽이를 사육한다. 북한에서 달팽이가 외화벌이 품목으로 지정된 것은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부터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나라들에서 달팽이 요리를 많이 먹는데 체르노빌 사건 이후 러시아에서 생산된 달팽이에서 방사성 동이원소가 검출돼 수출이 중지되자 달팽이 가격이 톤당 2000달러까지 뛰어 올랐다고 한다.

북한에서 사육하고 있는 달팽이는 두 종류다. 하나는 아프리카 달팽이, 다른 하나는 프랑스 달팽이다. 아프리카 달팽이는 성숙하면 체중이 150g에 달한다. 현재 평양시의 식물학 연구소에서 시험 사육 중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 달팽이는 성숙되면 체중이 24g으로 식용으로는 작은 편이다. 프랑스산 달팽이는 평안남도 증산군의 일본 귀국동포에 의하여 사육되기 시작했다. 현재 평안남도 증산군 5호관리부에서 종자를 생산하여 각 시, 군의 5호관리부에 공급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육을 장려하는 것이 수달토끼다. 수달토끼는 렉스, 즉 짧은털 토끼종인데 북한에서 수달토끼로 명명했다. 수달토끼는 1982년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토끼품종이다. 10여 년 간 환경적응 시험을 해오다가 1992년경부터 강원도 통천군 5호관리부에 600여 마리 규모의 종축 기지를 꾸리고 산골 지방의 5호관리부에 새끼공급을 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 보통 토끼가죽은 0.2달러인데 비해 수달토끼는 10달러이다. 10달러면 주민들에게서 걷어들이는 개가죽 1장과 맞먹는다. 개인 사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 사육의 단점을 수달토끼 가죽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타산하여 사육을 확대하고 있다.

외화벌이 운동의 현황과 전망

외화벌이 운동의 현황 - 물질적 자극이 우선, 되거래, 밀매 성행

북한에서는 “정치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을 배합하는 원칙에서 군중운동을 진행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조직, 사상적인 교양과 물질적 인센티브를 배합하여 노동 의욕을 고취한다는 말이다. 외화벌이도 이러한 원칙에서 군중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형편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물질적 자극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변화됐다.

초기의 외화벌이는 충성심 발휘 차원에서 이뤄졌으나 지금 외화벌이는 북한주민들에게도 생활유지의 한 방편이다. 외화벌이를 잘 하면 외화벌이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외화벌이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된 상품으로써 국내 상품에 비해서는 질적으로 훨씬 뛰어나다. 따라서 그 가치는 국산보다 수십 배나 된다. 주민들은 외화상점에서 외국 상품을 구입하면 이것을 장마당에 가지고 나서 암시장에서 되거래(되파는 거래) 하는 형식으로 큰 이익을 남긴다.

외화벌이 기관들도 이제는 정치적 선동보다는 이러한 외화벌이 성과에 따른 교환상품을 당근으로 제시하여 주민들을 동원한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외화벌이 기관에 취직하면 대단히 좋은 직업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 일반 직장에 비해 보너스와 같은 인센티브도 많고 취급하는 상품의 질도 월등히 앞서기 때문에, 외화벌이 기관에 취직하는 것은 어려운 생활을 타개하기 위한 자금 원천이 된다.

외화벌이 성과로 물품을 구입해 되거래 한다든지 외화벌이 기관에 취직하는 것이 비교적 합법적인 형태의 부(富) 축적이라면, 이러한 능력이 없는 일반 주민들은 외화를 벌기 위해 밀수꾼를 통해 직접 거래를 한다. 바다 건너 외국과의 거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밀매는 거의 전적으로 강 건너 중국과 이루어진다.

귀금속, 송이버섯, 부채마, 세신, 해삼, 은방울향, 기름개구리(하마개구리)등 그 품목도 다양하다. 밀거래가 급중하는 것은 5호관리부나 외화벌이 기관에 반납하는 것보다 수십 배의 이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짓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망 1 - 외화벌이가 전문 직업으로 전환

앞으로 북한의 외화벌이는 종전의 군중운동 차원보다는 직업적이고 전문적인 사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초기의 자발적 운동이 현재 강압적으로 전환된 상태에서 이를 계속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주민들의 반발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강압적인 수법을 취하여 왔지만 외화벌이를 통한 노동당의 착취 수법을 이제 북한주민들도 알대로 알고 있다.

따라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에서는 초급 당 위원회 직속 외화벌이 작업반을 두고 중앙당 39호실이 부과하는 계획 과제를 전문 담당 수행하도록 직업화 할 것이다. 또한 인민반의 외화벌이 역시 세대별로 과제를 주던 형식이 아닌 여맹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가내반(전업 주부들이 공장, 기업소의 생필품을 만드는 작업반)형식으로 전문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등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토끼가죽 수집도 개별 할당을 지양하고 학교마다 ‘토기사’(토끼 사육장)를 건설, 공동 사육하여 외화벌이 과제를 대치하는 집단적 형식을 취할 것이다.(현재 이 방법대로 진행하고 있음)

전망 2 - 외화벌이 원천의 고갈로 마약 생산 등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

이처럼 북한정권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전문 직업화하는 등 외화벌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외화벌이의 원천이 되는 품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외화벌이 품목은 금과 송이버섯, 아편과 누에고치 등으로 거의 고착화되어 있다. 기타 농토산물이 있긴 하지만 품목이 다양해 질 수는 있어도 집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품목은 거의 없다.

또 다른 문제점은 외화벌이 원천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 및 마인드가 부족하다. 많은 주민들이 외화벌이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외국에 드나들 수 있는 무역일꾼이나 세계적 수준의 생산기술을 소유한 전문가는 몇 명에 불과하다. 결국 세계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좁은 땅덩어리를 쥐어짜는 식밖에 되지 않고 있다. 지난 시기 수달토끼와 달팽이를 외화벌이 품목으로 지정하고 연구, 사육했으나, 대량 생산을 할 때 즈음엔 국제 가격이 폭락하여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갈수록 북한은 마약 생산 등 손쉬운 외화벌이 원천에 더욱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국제사회에 ‘북한 마약’문제는 크게 대두될 것이고, 그렇잖아도 고립되어 있는 처지에 더욱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2002년 북한을 탈출한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함경남도 함흥지구의 어느 양귀비 밭을 모두 갈아 엎고 새로운 작물로 바꿔 심었다 한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북한 정권이 양귀비 재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한다는 하나의 증거이겠으나 북한 정권이 마약 생산의 유혹을 쉽게 떨치지는 못할 것이다.
結語 - 개혁 개방만 하면 외화는 자연히 몰려든다.

이상에서 우리는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에 대해 살펴보았다. 익히 느꼈겠지만 참으로 눈물겨운 ‘외화벌이’다. 사금 몇 그램을 얻겠다고 숱한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채 중노동에 시달리고, 송이버섯을 캐기 위해 아이들이 가시덤불에 온 몸이 긁히면서 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외화벌이만 없어도 살겠다”고 말한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직장에서 학교에서 들볶이고 있다. 이렇게 눈물겹게 외화를 벌어들여 그것으로 인민들이 먹을 것을 사온다면 부족하게 살더라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맛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화의 대부분은 우상화 기념물을 세우고, 무기를 수입하고, 독재기구를 유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북한에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많다. 그들을 해외에 내보낸다면 앞서가는 외국의 학문과 기술을 익혀올 것이며 자연히 경제도 부흥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0.1밀리미터도 문을 열지 않고 이들을 가둬놓으면서 원시사회에서 있을 법한 채집경제로 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북한 사회는 내부 경제는 채집, 교환의 원시시대이고, 정치 체제는 극단적인 폭압, 공포의 중세사회이며, 대외적으로는 협박, 갈취의 군국주의 사회이다.

이러한 고통과 퇴보의 사슬이 끊겨야 한다. 김정일을 타도하고 굳게 닫혔던 북한의 문을 활짝 열게되면, 개와 토끼의 가죽을 벗겨내는 눈물나는 외화벌이가 아니더라도 우수한 인재들의 땀과 재능으로 북한은 빠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자연히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인민을 위한’ 외화가 밀려들 것이다.

 

▲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 구분

외화벌이 주체
할당단위
유형
주민
개인
반강제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집단
강제
상설기관
전문직업
직업


▲ 북한의 외화상점

외부 사람들은 북한의 상품판매 규정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북한에는 어느 상점이든 물건의 가치에 따르는 상품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국영상점과 같은 일반 상점에는 북한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품이 없기도 하거니와, 진열품이기 때문에 팔지도 않는다. 그러한 필수품들이 외화상점에는 어느 정도 있다.

외화상점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남한의 일반인들도 익히 들어본바 있을 『평양 및 각 도청 소재지에 있는 대형 외화상점』으로, 중앙당에서 직접 관리한다. 이곳은 주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여 달러, 엔화 등 외국환을 받고 상품을 판매한다. 둘째는 북한의 『각 시, 군 단위 도시마다 있는 외화상점』으로, 5호관리부에서 운영한다. 이곳은 외화벌이 과제로 할당된 물건들이 수집되는 곳으로, 목표 수행량에 따라 각 조직, 개인에 물건을 배정해준다. 셋째는 둘째와 마찬가지로 각 시, 군 단위 도시마다 있기는 하지만 『외화벌이상점』(따로 상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영상점 안에 별도의 판매대를 두고 있음)으로 불리며, 당 기관이 아니라 각 시, 군 행정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이곳은 외화벌이 과제를 초과 달성한 개인들이 금붙이 등을 갖고 가 그에 해당하는 상품을 배정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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