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미지급, 물가 인상, 배급 중단, 장마당 단속, 식량 고갈 …
고난의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

지금 북한 인민들은 일관되게 “(현재 북한 상황이) 고난의 행군 직전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북한 당국은 이 시기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미화하고 있다)가 있던 시기의 ‘직전’과 사회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현재 북한은 엄청난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쌀 1kg이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60∼80원 하던 것이 지금은 150∼200원 정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300원을 넘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장사꾼들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좀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북한 물가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쌀 가격으로만 보면 채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물가가 3배 이상 올랐다.

지난해 7월 1일 북한은 ‘7.1 경제관리조치’를 발표하면서 국영상점의 물가를 대폭 올리면서 월급을 그에 맞게 인상시키고 장마당 장사를 전면 금지시켰다. 당시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은 “김정일의 즉흥적인 정책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인민들을 괴롭힌다”면서 “7.1 경제관리조치는 분명히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북한 인민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단 월급이 대폭 오른다니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고, ‘우리도(북한도) 중국 식으로 간다(개혁 개방한다)’는 소문도 널리 퍼져있었다. 반면 그동안 장사를 해왔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고 “도대체 국가가 돈을 어디서 나서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미심쩍어 했다.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예상이 적중하고 있다. 처음 한 두 달간은 월급이 그런 대로 나오더니, 지금은 월급을 지급 못하는 공장이 급속히 늘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은 안 나오지, 배급도 끊겼지, 장마당을 강하게 단속하다보니 암시장 가격은 더욱 오르고, 사먹고 싶어도 물건을 풀지 않으니 물가는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중이다. 보안원들의 장사 단속이나 통행증 단속도 대단히 심해져 사회적 분위기도 경직되어 있다. 정말 이런 악순환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이나 콱 나버려라

“굶어 죽을 사람은 이제 다 굶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어떤 경제난이 온다 해도 죽지 않을 억척스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이상 90년대 중반과 같은 대량 아사 사태는 없겠지만 지금 국가 재정이 완전히 바닥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평양에서 살고 있는 한 대학교수의 말이다.

이 대학교수는 중국에 있는 친척을 만나려고 여권을 갖고 합법적으로 중국에 나온 사람이다. 그는 최근 평양 분위기에 대해 “전쟁 전야”라고 대답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즈음 평양을 떠나온 그는 “외국인들은 모르겠지만 내국인(북한 사람)들은 이제 출입증이 있어도 평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평양은 완전히 봉쇄된 상태이고, 사람들도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쑥덕거린다고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전쟁이나 나버려라”고 모두들 이야기한다.

국경경비대가 중국에 넘어가 약탈을 일삼고 있다

올해 2월부터는 국경경비대가 국경을 넘어 중국 민가에 들어가 약탈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인민군들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채 두만강을 건너와 중국인 농부를 방에 묶어 놓고 소와 돼지 등을 끌고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빈번해지자 중국 변방부대도 경계를 강화하고 결국에는 약탈하는 인민군을 향해 공포탄을 쏘기도 했다고 한다. 변방부대 군인들이 민가를 두 어 채 빌려 주둔하면서 중국인 마을을 지켜주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한 번도 없었던 살벌한 분위기”라고 여러 사람이 증언하고 있다.

국경 경비하는 인민군들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아직 분명하게 확인은 되지 않지만 그나마 좋은 근무환경에 있던 국경경비대에게도 식량 배급이 끊겼다는 소문이 있다. 지난해 11월 말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인민군 장교 출신의 한 탈북자는 국경을 넘는 도중에 경비대를 만났는데 옥수수 두 개를 들고 산에 올라가더란다. 뭐냐고 물으니 “이것이 하루 분 식량”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민군까지 굶게 되는 것은 고난의 행군이 한참 심했을 때나 있던 일”이라고 그는 혀를 찼다.

국경경비대가 갑자기 이상해진(?) 이유에 대해 이런 증언도 있다. 지난해 말 조명록이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국경지역 경비초소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 감사를 했다고 한다. 국경을 그렇게 단속해도 탈북 사태가 끊이지 않자 탈북하는 과정에 경비대가 개입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사실 경비대에 뇌물을 바치고 국경을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

조명록이 특별 감사를 하고 나서, 뇌물을 많이 받은 경비부대장 몇 명을 공개처형하고 국경경비대 군인들을 전원 교체했다고 한다. 어떤 탈북자는 “탈출을 많이 하는 주요 거점에는 100미터 당 군인 한 명과 세퍼트 군견 한 마리씩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국경경비가 삼엄해 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아무튼 국경경비대가 다 물갈이 되다보니 새로 배치된 군인들이 물정을 모르고 중국으로 건너가 약탈을 일삼았던 건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휴전선 최전방에 있는 민경부대를 국경으로 데리고 왔다”는 소문도 있다. 굶어본 경험이 없고 철저한 규율과 긴장 속에 살던 민경부대가 갑자기 생활형편이 어렵고 긴장감이 느슨한 국경으로 오게되니, 국경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가고 약탈을 일삼고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이다. 민경이 국경경비를 왔다는 소문은 신뢰성이 좀 떨어지지만 이러한 해석을 놓고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살기 어려워지니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많이 들려오고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자살이란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북한 땅을 ‘지상낙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 싫어서 자살을 했으니, 그야말로 반역 아니겠는가. 따라서 자살을 하게되면 그 식구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

요새 자살하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국을 지키다 죽는다’는 글을 가슴에 쓰고 죽는다고 한다. 또 가족이 집단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면 정상참작(?)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김정일의 실패한 정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고 있다.

핵문제로 모든 것이 물거품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북한 사람들은 “지난해 7.1 경제관리조치를 취하면서 9, 10월까지는 그런 대로 사회분위기가 좋았는데 10월 이후로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이 지적했던 대로 7.1 경제관리조치는 대외 개방 조치라기 보다는 ‘내부 단속 조치’의 성격이 강했다.

물론 김정일도 제한적인 개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7.1 경제관리조치로 내부를 단속하고 몇 개 지역 및 사안에 대한 개방을 통해 ‘돈줄’을 확보하려는 나름대로의 드라이브를 설정해 두었던 것 같다. 신의주 특구, 개성 특구, 금강산 육로관광, 일본과의 수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핵문제’ 하나로 물거품 되었다. 일본과 수교하여 배상금을 타려고 고이즈미 총리까지 불러들였는데 납치 사실을 시인하는 바람에 이것 또한 춘몽으로 끝났다. KEDO의 중유공급 중단으로 그나마 있던 에너지 원천도 끊기고, 핵문제로 국제사회의 지원도 급감하고, 남한에서 대북 송금문제가 이슈로 되면서 더 이상 현금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내부 경제 사정도 완전히 엉망이다. 김정일에게 지금 상황은 완전한 사면초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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