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김정일의 핵카드는 성공할 것인가
김정일의 핵카드는 성공할 것인가

지난해 10월,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여 농축우라늄 확보 추진의 증거를 제시하며 핵 개발 의혹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자 북한의 강석주가 이를 시인하면서 북핵문제는 다시 이슈로 등장하였다. 나중에 다시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부인하면서 실제로 북한이 우라늄농축방식의 핵개발을 시도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남한의 모 학자는 북한이 에너지난을 타개하고자 원자력관련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한이 공공연하게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고, 추가 핵개발을 시사하는 바람에 북한의 핵개발시도를 미국의 모략으로 규정하고 북한을 옹호하려고 했던 주장들은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북한의 핵개발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 미국을 비판하고 북한을 옹호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예 “북한의 핵개발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비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설마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겠냐”며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편승해 친북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적극적인 옹호 논리를 만들어 낸다. 우선 미국에 대한 불가피한 자위수단이라는 논리가 있다. 다음으로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논리도 있다. 여하튼 북한의 핵개발이 북미관계, 나아가 국제관계에서 북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면서 김정일의 핵카드가 과연 성공할지 관측해보자.

1. 북핵이 남한에는 별 위험이 안 된다는 입장

북한이 설마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동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이 한미 양국으로부터 전면적인 보복공격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한, 단 1%라도 사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 경우에 핵무기는 어느 곳에 사용될까? 한국, 일본, 미국 세나라가 될 텐데, 미국에 대해서는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이 개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만큼 한국과 일본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자국민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이 동족이라는 이유로 남한 국민을 동정하여 핵무기를 절대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뿐이다.

나아가 김정일이 남한을 향해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북핵의 위험성이 감소되지는 않는다. 핵무기는 그 가공할 위력 때문에 보유자체가 갖는 힘이 존재한다. 핵무기의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핵을 가지려고 하고 그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의 핵보유는 ‘핵위협’을 통한 대남 압박과 공갈이 먹히게 만들 수 있다. 남한국민이 북한 핵의 인질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전쟁 위협에 겁을 먹는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편, 남북은 1992년 ‘비핵화공동선언’을 통해 상호 핵개발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구체적으로 핵재처리시설이나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북한의 우라늄농축시설 보유 추진은 남북비핵화선언의 정면 위반에 해당되는 만큼 미국의 북핵에 대한 입장과 상관없이 남한은 북한의 약속위반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해야만 한다.


2. 북한 핵개발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불가피한 자위조치라는 주장


북한은 자신의 핵개발 추진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불가피한 자위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논리는 주한미군이 핵을 보유하고 있던 냉전시대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북한의 핵보유는 오히려 미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고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왜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추진하는 이유는 핵을 갖고 있으면 남한과 일본을 인질로 삼아 미국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나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면 미국본토에 대한 공격능력을 내세워 미국 국민들까지도 인질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소량의 핵무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량의 핵보유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정일정권이 선호하는 정권유지방식을 엿볼 수 있다. 국제사회의 질서에 순응해서 생존하는 방식보다는 핵위협을 통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미국 등이 핵위협에 굴복하여 대북타협정책을 쓰지 않으면 역으로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드는 자해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만다. 즉 북핵개발이 유용한 대미 자위수단이라는 주장은 북핵에 대해 반드시 미국 등 국제사회가 굴복해야한다거나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이상한 전제를 갖고 있다.

한편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고위급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1996년에 파키스탄과 우라늄 농축설비 수입 등에 관한 비밀협정을 맺었다고 한다. 나아가 1998년부터는 한미당국으로부터 북한의 농축우라늄 확보추진 동향이 파악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이미 1996년부터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며, 동시에 대북강경책을 쓸 것으로 예상했다는 웃지못할 결론을 내려야 한다.

3. 북핵개발이 안전보장을 위한미국과의 유용한 협상수단이라는 입장

북한이 애초부터 미국과의 협상을 위한 수단으로 핵개발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비밀주의에 입각하여 핵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다만 핵개발 사실을 들키게 되면 적극적인 협상카드로 쓴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핵개발이 성공하여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이를 상대방이 알고 있어야만 ‘핵위협’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핵보유 사실을 적당히 노출시키기 마련이다.

북한은 94년 핵카드로 크게 한번 재미를 보았다. 당시에 미국은 NPT(핵비확산금지조약)체제의 연장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약점을 파고든 북한에 대해 타협을 선택했다. 아울러 김정일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추측하여 ‘4-5년 안에 합의는 저절로 무효화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핵카드를 미국과의 유용한 협상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김정일이 정세를 오판하고 있다.

김정일은 핵카드를 가지고 벼랑끝 전술을 쓰게되면 지난 94년 제네바협상과 같이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미국이 북한의 비밀핵개발에 대해 추궁할 때 미국 측이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는데도 즉각 이를 시인해버렸다. 분명한 증거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던 과거의 행태와 다르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켜갔다. 핵을 협상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여하튼 김정일이 핵카드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이를 동의하거나 긍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김정일과의 일체감을 갖고 그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핵카드가 점점 무력화되는 상황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상황을 악화시켜나가도 미국의 태도는 태연하다. 개발하려면 하라는 식이고 우리는 그에 맞는 준비(군사적 개입을 비롯한 모든 옵션에 대한 준비)를 다 갖춰놓았다고 일갈해버리고 있다. 속된말로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4. 친북주의자는 김정일의 핵정책을 옹호하는 것이 당연한가?

친북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조금도 자기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김정일이 하는 거라면 덮어놓고 옹호하고 따르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핵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전형적이다. 지금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다시 핵카드를 쓰고 있는데, 이는 심지어 김정일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되는 일로 점차 판명이 나고 있다. 가만히 있었으면 노무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 시기의 포용정책을 충실히 따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또한 비록 ‘악의 축’으로 규정은 했지만 한국정부나 중국 등의 견제로 인해 북에 대해 압박카드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핵카드를 쓰는 바람에 거의 자해에 가까운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김정일체제에 운명을 걸고 있는 친북파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김정일의 리더쉽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북한에 있는 당료, 군 간부, 관료들은 설혹 회의(懷疑)가 든다해도 당장 목숨이 걸려서 딴소리를 못하지만 남한의 친북파들은 이 대목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친북파들은 수세적인 논리라도 개의치 않고 김정일 옹호에 연연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태어나 일정한 민주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비록 친북주의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김정일의 핵도박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토론을 해봄직 하다. 대외적으로 김정일의 핵정책에 대해 비판은 않더라도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당연히 토론이 벌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총련, 범민련, 전국연합 등 대표적인 친북단체들내에서 이런 토론이 벌어진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주의주장을 떠나 토론이 불가능한 그 무언가의 ‘성역’이 존재하는 집단은 결국 무지와 反지성이 지배하게 된다.


5. 각 국의 입장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의 핵 위협에 대해서 타협하거나 보상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며 핵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고수하고 있으며,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와 함께 이 입장에 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지난 제네바 핵협상에서 핵동결을 약속한 북한이 이를 어기고 비밀 핵개발을 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명분상 우위를 갖고 있으며, 역으로 북한은 고립되어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핵포기의 대가로 대미 불가침협정과 경제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논리가 설자리가 없게 되었다. 약속을 깨고 협박을 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오히려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으며,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이중잣대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인식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핵정책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3자회담 직전 공개된 럼스펠드 비방록에서 보여지듯이 ‘김정일정권의 교체’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단순히 핵폐기나 핵개발 중단이 아니라 악의 축인 김정일을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를 위해 중국과의 공조를 중심에 두고 있다. 북핵 개발이 중국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중시하여 중국이 스스로 김정일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거나 적극적으로 정권교체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견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정책은 점차 관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이후의 북한체제에 미국이 개입을 최소화하고 중국의 주도성을 보장한다면, 중국은 골치아픈 김정일의 교체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북한 핵에 대해서 무시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이 3자회담에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하고, 영변의 핵재처리를 끝내가고 있다고 하는데도 최근 방한한 월포위츠 미 국방차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않는지 확증이 없다”며 의도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은 “우리가 정말 재처리를 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발표했는데 왜 가만 있느냐”고 나오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을 상대로 투정을 해도 받아주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의 핵공갈에 일일이 반응을 하게되면, 미국 내의 대북 협상여론이 높아질 수도 있고, 이를 무시하면 김정일이 당황하고 초조해한다는 것을 노린 전술로 보여진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북핵대책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김정일을 포위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대화는 하되 군사적 카드도 준비하고, 마약밀매, 미사일수출 등을 대상으로 비군사적인 압박도 조용하게 진행시키는 ‘전방위적인 대응’으로 임한다는 것이며, 이점에서는 미행정부내의 이른바 강온파간에도 별다른 이견은 없어 보인다. 즉 북핵에 대한 대응전략이 마련되었고 이미 실행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어떠한 대북제제도 반대한다는 경직된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으나, 김정일정권의 유지가 필요하며, 가급적 북한의 요구를 일정하게 들어주면서 문제를 해결하자(사실상 적당히 넘어가자)는 애초의 입장에 머물러 있는 편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는 차원에서 일정하게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자는 실용적 태도를 취하자는 분위기이다. 향후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 예측하긴 어려우나 한국정부의 입장이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버렸다. 핵무기 보유 선언이나 핵재처리 강행과 같은 기존의 협박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실험 재개와 같은 보다 강도 높은 추가적 협박이 검토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은 상황에 따라 무시해버리거나, 아니면 강경대응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사리 모험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반면 핵포기를 택하기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와 같이 핵포기의 대가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고받는 식이 아니라 선(先)핵포기만이 가능한데, 이렇게 되면 검증에 대한 부담과 내부적인 리더쉽의 손상 등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따라서 최근 김정일의 행보를 보면 매우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다. 3자회담에서의 핵무기 보유선언과 같이 빨리 ‘게임’을 끝내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라크전 이후 북한이 소나기를 피한다는 차원에서 시간벌기로 나서리라는 일부의 예상이 무색하게 된 셈이다. 협박을 시작한 쪽이 오히려 빨리 끝내고 싶어서 서두른다는 것은 이미 승부의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