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어느 잡지에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Nobert Vollertsen)이 쓴 『미친 곳에서 쓴 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제3세계 의료지원단체인 「캅아나무어(Cap Anamur)」소속으로 북한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펼친 폴러첸이 북한 곳곳에서 직접 보고 겪은 참상을 외부세계에 보고한 소중한 책이었다. 그 책을 소개하면서 나는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북한방문기 『또 하나의 조국』을 비교한 적이 있다. 얼마 전 타계한 루이제 린저는 『생의 한 가운데』『파문』등의 작품을 쓴 독일의 대표적 여류 문학가로, 1980년대에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과 각별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유명하다.

두 독일 이방인이 본 북한은 너무나 달랐다. 지독한 통제와 폭력에 짓밟혀 신음하고, 굶주림과 질병의 고통을 호소하는 북한 인민들의 처참한 심정을 대변했던 사람이 폴러첸이라면, 북한의 지배구조와 문화를 ‘그들만의 독창적인 사회운영’으로 묘사했던 사람이 루이제 린저다.

이러한 시각차이는 필자들의 특정한 목표와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볼 수 있었는지, 인민의 입장에서 보았는지 지배권력의 입장에서 보았는지 하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단지’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큰 조건의 차이가 존재한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북한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 인민들을 치료하며 구석구석을 비교적 자유롭게 경험했던 사람과 거대한 세트장인 북한 사회에서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인민들을 만난 사람의 차이는 자명하다.

결국 두 사람은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에서 확연한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한 사람은 지금 대표적인 북한인권운동가가 되어 일각에서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라는 걱정을 불러올 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부음(訃音)을 통해 ‘열렬한 북한 예찬자’라고 소개될 만큼 끝까지 북한 정권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서구 지식인으로 숨을 거뒀다. 당시 필자는 “우리시대에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한 길잡이는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면서 글을 마쳤다.
이번에는 두 한국인이 북한을 소개하기 위해 나섰다. 『남한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의 저자 차재성 씨와 『횃불과 촛불』의 저자인 이현주 씨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로 북한을 체험했지만 그들이 전하는 북한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길을 떠나 함께 여행을 한 동반자가 여행을 마친 후에 서로 다른 무용담을 털어놓는 것처럼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두 독일인은 방문시기가 20년 정도 차이가 나고 방문목적과 북한 내에서의 행보도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두 책의 저자인 차재성 씨와 이현주 씨는 시기와 장소, 방문목적이 동일하였다. 같은 것을 보고 들었던 두 사람이 왜 그토록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걸까? 앞서 소개한 두 독일인처럼 저자들도 특별한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가지고 북한에서의 경험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들 역시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어떤 중요한 차이’ 때문에 북한 방문기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북한의 공기가 맑다, 북한 인민은 순박하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북한은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인민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등의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북한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1990년대 초반에 출간된 『더디가도 사람생각하지요』(조광동 著)에서 소개된 북한은 ‘사람중심의 사회’였다. 국가보다, 돈보다,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방의 눈으로 보면 독재지만 그 독재가 인민을 위한 독재이지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독재는 아니다”라는 말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있다. 1980∼90년대 대학가에서 - 그리고 지금까지도 - 상당수의 학생들은 소위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방식으로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다. ‘북한 사회는 그들 내부의 시각으로 보아야지 외부의 판단 기준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북한 사회는 사람중심의 가치가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한 문제의 책 『더디가도 사람생각하지요』를 북한을 이해하는 입문서처럼 여겨왔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엄중한 역편향을 낳았다. 죽음과 공포로 얼어붙은 회색의 땅을 애써 푸르게 보려는 것은, 진정으로 북한 인민을 위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북한의 진실을 감추는 연막 놀음에 장단을 맞춰준 것에 불과했으며, 북한 인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더욱 연장시키는 행위가 되었다.

『남한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이하 ‘북한에 가다’)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각으로 북한의 일상을 말하고 있다. 남북 최초의 건설사업 현장에서 북한의 건설일꾼들과 함께 일하면서 강상리, 용전리, 광천리 등 발전소 부지 인근 마을 주민들과 겪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매일같이 기름때를 묻혀 오자 아내가 같이 있기를 싫어해 “인차 헤어질 판”이라고 농담을 던졌던 유조차 운전원, 키 크고 곱게 생긴 평양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던 옥류관 봉사원,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아이들 운동회에서 단체응원을 하던 ‘치어리더’ 아주머니들……. 이들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사람은 대부분 KEDO 경수로 건설부지 현장이나 관련 시설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 내용도 북한의 현실을 폭넓고 깊이 있게 경험하기보다는 그들과 나눈 몇 마디 대화와 에피소드가 전부이다.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남한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북한 사람을 만나서 몇 마디 나눈 것이 북한 인민의 현실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저자 차재성 씨는 책의 후기에 “북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이고 KEDO 경수로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은 삼가 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 정권을 자극할만한 내용은 애초에 쓰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는 『더디가도……』보다 솔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여하튼 북한 사회와 인민들이 저자에게 보여준 인상 중 긍정적인 부분만 뽑아내 남한사람들에게 전하려는 것은 『더디가도……』의 오류를 다시 한번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반면에,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이 좋은 추억만을 이야기하고 대부분 지식인들이 북한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는 지금, 북한의 진실에 접근해 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 『횃불과 촛불』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현주 씨는 자신이 접한 북한 사람이 어떤 체제,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왜 자신에게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면서 좋은 추억만을 사진첩으로 담아서 보여주는 것은 북한을 이해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의 모습을 짐짓 외면한 채 하는 사랑은 언제 또 증오나 혐오나 멸시감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차재성 씨와 이주현 씨는 모두 KEDO와 북한간에 경수로 제공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1,000메가와트급 경수로 발전소 2기를 북한 신포의 금호지구에 건설하기 위해 파견된 남한 사람들이다. 차재성 씨는 1997년 7월부터 1998년 7월까지 1년 동안 북한 경수로건설 공사의 토목부 공무담당으로 일했다. 이현주 씨는 1997년 7월부터 1999년 9월까지 2년 동안 KEDO 북한 금호사무소 대표로 현장에서 근무했다. 두 저자는 같은 곳에서 정확히 1년 동안 같이 근무하였고, 다만 이주현 씨가 1년 간 더 근무하였다.

금호지구는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시에 있는 동해안 바닷가의 변두리 지역이다. 평양이라는 거대한 세트장을 떠나 지방에서 1-2년 정도 체류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다행히 과거와 같이 틀에 박힌 북한 견학기(見學記)는 아니다. 그러나 안내원 제도와 같은 각종 통제와 감시, 주민접촉제한, 북한 주민 스스로의 감시와 통제에 때문에 북한 사회에 대한 밀도 있는 접근이 어려웠다는 것은 여전한 한계이다.

감출 것인가, 드러낼 것인가

먼저 『북한에 가다』에서 차재성 씨가 말하는 북한의 모습을 몇 가지 요약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북한에 대한 사전 지식과 정보가 없는 나에게 북한과 북한 사람은 호기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신변보장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아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북으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북한에 도착해 보니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며 우리말을 하는 같은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흥에서 신포로 가는 버스에서 내다 본 북한의 들판은 굉장히 넓었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안에서 손을 흔드니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손을 흔들어주는 풍경이 남한의 여느 시골처럼 낯익고 정겨웠다.”

“더운 여름이라 피서지에 가서 모랫바닥을 긁으니 자연산 조개가 긁는 대로 퍼 올려졌다. 개울가에서 많은 여인네들이 등짐을 지면서 고둥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날로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남한의 하천들이 떠올라 북한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오염 한치 없는 북한의 공기와 수려한 산과 들의 풍경은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인민학교 학생들이 목에 붉은 스카프를 매고 행진가를 부르면서 줄지어 가고 있었다. 등교하는 모양이었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절도 있게 팔다리를 흔드는 모양이 고만한 또래의 남한 학생들에게서는 상상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질서정연했다.”

“(북한에서는) 운전면허를 따려면 2년 동안 ‘운전사 양성학교’에서 이론과 실기는 물론, 자동차 정비과정까지 마쳐야 한다. ‘이런 교육과정을 남한에 적용하면 교통체증 문제는 해결될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평양의 옥류관이 현장에 세워졌는데 여성 봉사원들이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옥류관의 봉사원 들은 남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한마디씩 건네줬고 그 속에서 오가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남한에서 온 빨간 김치를 먹고 살맛이 났다. 북한에서는 제 철이 아니면 배추김치를 먹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제철에 나는 채소가 아니면 굳이 먹으려 하지 않는 북한 사람들의 식습관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이후에도 계속 북한 사람들의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열거한다. 북한 사람들과 함께 한 운동회를 통해 북한 인민들은 정말 흥겹고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노래를 가르쳐 주는 친절한 여성 봉사원의 모습, 추석에 새 옷을 입고 친척집 나들이를 가는 어린이의 즐거운 모습, 현장 돌격대원들이 콘크리트 강도를 맞추지 않아 교각을 철거하고 다시 시멘트 작업을 할 때도 “후대들아 아느냐! 오늘 이렇게 선열들이 땀흘리는 것은 미래를 위한 것임을……” 이라는 감동적인 노랫말을 부르는 젊은 청년. 눈이 무릎까지 쌓인 추운 아침에 두텁지 않은 옷을 입고 등짐을 메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저자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도 한다. 나아가 “북한 상품 판매소에 상품이 없는 것은 북한 사회주의 경제방식 때문이며 필요한 것은 모두 국가에서 주기 때문에 상품판매소에서 전시할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으로 돌아와 쓴 이 책의 첫장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말을 건네면 금방이라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고, 목을 축이라며 물이라도 떠줄 것 같았던 북녘의 사람들. 고생도 많았지만 지울 수 없는 얼굴들과 흥미롭던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 비해 “벼랑 끝에 선 ‘그들만의 천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횃불과 촛불』의 저자 이현주 씨는 사뭇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북한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그것을 분석해서 원인과 결과를 내어놓고 있다. 우선 차재성 씨가 쓴 『북한에 가다』에서 등장하는 북한 인민들의 행동을 비슷하게 소개한다. 그들의 밝은 모습, 슬픈 모습, 거기에 이중적인 모습, 노예화되어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회고한다. 그리고 마치 『북한에 가다』에 나오는 북한 인민들이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고 그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해설하고 오류를 수정해주려는 것처럼 글을 이어간다. 이를테면 공기가 맑고 산수가 아름다운 북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소개하면서도 이것이 자연보호를 잘해서가 아니라 열악한 주거환경, 의료환경, 공장 및 도로의 현실, 뒤떨어진 운송수단에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즉, 아름다운 자연은 인민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뒤떨어진 사회체제가 만들어낸 의도되지 않은 결과이며, 배부른 사람들에게나 보기 좋고 감상적인 풍경이라는 말이다.

두 저자 모두 북한 인민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각을 시종일관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렇게 순박하고 정이 많은 북한 인민을 이중인격자이자 배우로 만들고 권력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지배구조와 권력의 핵심층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혹은 드러내고 있느냐 애써 감추고 있느냐 하는 차이는 확인하게 드러난다. 이현주 씨는 책의 맨 앞장에서 출간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같으면 도저히 숨 한 번 제대로 못 쉴 것 같은 체제 속에서도 내 것을 먼저 챙기고, 가족들 간의 사랑도 두텁고, 죽음의 두려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역설적인 믿음이 안도감을 준다.

그러한 발견을 하게 될수록 북한 내부의 모습을 본 그대로, 겪은 그대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판단한 결과 그대로를 여러 사람과 같이 나누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남쪽의 사람들이 언젠가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경험하게 될 때 실망하고 멸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1930년대 유럽의 지식인들이 스탈린 지배하의 소련의 실상을 알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거나 미화하는 우를 범했던 사실도 생각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한 작은 지식인의 의무라는 생각이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말을 하다

두 권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두 저자가 같은 경험을 다르게 그려 놓은 장면을 읽을 수 있는 데 이런 부분은 교차 읽기를 시도하는 독자들에게 상당한 흥밋거리를 던져준다.
골재채취를 위해 두 사람은 용전리 이준(李儁) 열사 생가를 같이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이 사실을 각각의 책에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내용에서 비슷한 맥락이면서 많은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바로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고 애써 감추거나 그냥 지나치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내용을 요약해 인용해 보도록 하자.

“서른이 넘었을 것 같은 아낙네가 젖먹이 사내아이를 업고 나왔다. 어서 오시라며 반기는 표정이 한눈에 방문객들을 많이 맞아본 것 같았다. 집은 방 두 칸에 부엌이 딸려 있는 일자형 집이었다. 좁은 앞마당엔 우물이 있고 그 너머엔 강냉이 텃밭이 있었다. 웬만한 유품은 후대들의 교육을 위해 모두 평양 전시관으로 보내졌고, 남은 것은 사진 몇 장과 열사가 사용한 가재도구 몇 점, 바둑판이 전부였다.

우리 앞에 있는 아낙은 이준 열사의 증손부이고 아기는 고손자였다. 무더위 탓인지 아기의 머리에 부스럼이 나 있었다. 뜨락으로 내려서서 부엌을 보니 간소하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국가에서 특별히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나누어 마신 뒤, 아낙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나왔다. 등에 업힌 이준 열사의 고손자가 후일 훌륭한 인물이 되길 바라면서…….”(차재성, 『북한을 가다』에서)
“이준 열사 생가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아직은 느슨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때 이후 이준 열사의 생가를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안내원은 나중에 그 일로 매우 혼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준 열사의 유품이 있는 방에는 김일성 부자의 사진 두 개와 그 밑에 걸려 있는 이준 열사와 그 가족들의 사진을 한꺼번에 끼워놓은 조그만 액자 하나뿐이다. 벽에 붙어 있는 테이블 위에는 열사의 손자가 1952년에 받았다는 김일성 훈장과 훈장증, 그리고 노력영웅 휘장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게 유물의 전부였다.

부엌은 정돈도 잘되어 있었고 깨끗했는데 눈에 띄는 먹을거리는 삶은 감자 한 종지가 전부였다. 그래서 부엌이 깨끗했던 것이었다. 우물의 깊이는 2m도 안되었는데 아무도 마셔볼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이준 열사의 고손자는 영양부족으로 머리에 부스럼이 나고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발육상태가 아니었다. 안아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가며 안아봐도 보통 어린아이들처럼 울거나 버둥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미동도 하지 않고 안겨있었다.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무거워져오는 것일까?

아이 엄마도 정상적인 영양상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아기를 봐주고 있는 줄 알고 애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애엄마라는 것이다. 이 여자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일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분유라도 갖다주고, 그 집에 쌀이라도 좀 줄 수 있을까 궁리를 해보았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몽상이었다” (이현주, 『횃불과 촛불』에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잘 대우하지 않고 있는 북한 당국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일을 겪고도 북한 인민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사례에서뿐만 아니라 이현주 씨는 시종일관 북한 당국과 인민들의 삶의 모습, 북한 노동자들의 작업과정을 깊이 있게 파고들고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식의 ‘준비된 일상’에 대한 목격담, 자기가 겪은 몇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그것으로 자신이 금단의 땅을 풀어헤치고 남과 북의 가교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횃불과 촛불』은 책장을 넘기면서 북한의 현실을 하나하나 들추어낸다. 왜 그들이 입만 열면 수령님을 외쳐야하는지, 정치적으로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자신과 타인을 기만할 수밖에 없는지, 여성들이 과연 평등의 상징인지, 신체적 퇴화 현상이 얼마나 극심한지, 북한의 기차가 왜 계급차별과 불평등의 상징을 싣고 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또 설명해 준다. 단순히 감상적으로 ‘남북은 하나’라는 것만을 들이밀지 않는다.

일례로, 우리 근로자들과 북한 근로자들은 실제로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우리 근로자들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순수한 동포애를 발휘해 뭘 주려고 해도 북한 근로자들은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령님이 다해주시는데 우리가 너희들한테 받을게 무엇이 있겠느냐”거나 “자존심 강한 북한 노동자들은 절대 공짜로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냥 주면 받지 않는데 어디다 살짝 놓고 가면 슬며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런 일들이 북한측 내부에 들통이 나서 북한 근로자 몇 명이 보이지 않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우리 근로자들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되었다. 그럴수록 북한 근로자와 가깝게 지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현주 씨는 북한의 안내원 제도 또한 ‘관광가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며 함께 지내고서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건 북한의 현실에 그냥 순응해버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내원을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외부세계와의 격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북한은 다른 국가와 달리 대중교통수단도 이용하기 매우 어려울 뿐더러 이동의 자유도 없기 때문에 외부인은 일단 안내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안내원은 그러한 가이드 역할의 시기가 지나도 계속해서 동행하는데 그것은 외부인을 감시하고 주민과 접촉을 차단하며 북한의 해괴한 사상을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북한에 가다』와 『횃불과 촛불』을 통해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보고 온 사람의 기록이라도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한 사람은 북한 사람의 삶의 풍경이 너무 정겹고 낯익어 누구한테라도 그 모습을 이야기 해주고 싶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유를 박탈하고 폭력과 공포로 일관하는 독재의 전시장인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의 북한 읽기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설령 통일의 뜻을 꺾는 사람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책의 저자들이 북한을 방문한 1997년은 북한의 식량난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1993년의 냉해와 1995∼1996년의 대홍수, 그리고 1997년의 고온과 해일, 가뭄 등 자연재해와 경제난으로 인한 농자재 및 원료의 공급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식량난이 더욱 심화되었던 시기였다. 식량난의 결과로 1995년 8월과 1998년 1월 사이에 사망한 북한 주민은 300만 명까지 추산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직접적인 아사자 외에도 영양부족으로 면역 체계가 망가져 결핵 등 전염병이 유행하였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거리나 장마당을 배회하는 어린이(꽃제비)가 20만 명에 이르고,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유동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것(통일연구원 연례정세보고서,『통일환경과 남북한 관계 : 1999∼2000』)으로 추산됐다.

그중에서도 식량난이 가장 심각했던 지역인 함경남도 지방에서 살펴본 주민들의 모습이 과연 “밝고 씩씩한 모습, 환한 얼굴”이 대부분 이었을까? 저자에게 보이건 보이지 않던 간에 곳곳에서 배고픔에 몸부림치며 죽어가고,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행렬이 끊이질 않았을 것이다. 『북한을 가다』는 왜 굶주림과 경제붕괴의 상징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까? “북한의 일상을 솔직하고 따스하게 그려냈다”는 차재성 씨 책에 대한 평가에 다시 한번 의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이 서평을 통해 차재성 씨의 책을 깎아내리고 이현주 씨의 책을 일방적으로 추켜세우고 싶지는 않다. 다시 말하건대, 차재성 씨가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러한 책을 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북한이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노동자들로부터 그러한 모습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거나 아니면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를 인정해 버리고 그러한 북한에도 웃음이 있다는 것을 애써 말하려 한다면 과연 차재성 씨의 책이 저자의 말처럼 통일의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새삼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는 북한 사회와 북한 인민의 삶에 대한 진실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같은 동포이자 북한과 뗄 수 없는 운명에 서 있는 우리가 지녀야할 자세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와 북한 인민의 진실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이 통제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만을 그대로 믿으려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 인민의 고통과 독재치하의 암울한 현실은 외면하고 좋은 추억의 사진첩만을 꺼내 보려해서도 안 된다.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 걱정되어 ‘알아서 기는’ 식으로 써내는 글은 지식인의 본분과도 어긋난다.

북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순박하고 높은 교육수준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북한 인민의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깊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고 북한 인민들의 불행이 해소될까? 외부 사람들이 그것을 널리 알지 못해 북한 인민들이 지금 고통의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의 순진성이란 굳게 닫힌 폐쇄독재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백치가 되어 숱한 사람들이 죽어갔지 않은가. 그 독재가 없어져야 인민들의 얼굴에 진정으로 밝은 웃음이 피어날 것 아닌가.

설령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일부 사람들의(특히 남한 사람들)의 가슴에 통일의 의지를 꺾게 만든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북한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북한 인민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