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지금 북한에선』은 『지금 중국에선』이 될 것 같다. 지난 6월 30일자 조선일보(가판)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 반론을 제기하고자 함은 아니고, 독자들이 최근 중국 내 탈북자들의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조선일보] 탈북자 단속 완화 - 검문소 잇단 철거
중국 공안당국은 탈북자 단속을 위해 북·중 국경으로부터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를 잇는 도로
곳곳에 그물처럼 배치해 놓았던 검문초소를 6월 초부터 철거하기 시작하는 등 중국 정부가 최근 탈북자 단속을 크게 완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공안당국은 또 탈북자 검문검색도 6월 10일 이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중국 공안당국은 작년 3월 탈북자들의 주중 스페인대사관 진입사건 이후 북·중 국경지역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탈북자
단속을 강화해왔다.
옌지시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탈북자 단속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래와 같은 무차별적 단속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 “탈북자의 월경, 진입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증강했던 변방부대도 올 6월 들어 크게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중 국경지역에 사는 한 재중동포는 “마을마다 배치됐던 중국 변방부대 초소의 병력이 종래 15명에서 7~8명으로 줄었으며
탈북자 단속도 상당히 느슨해 졌다”고 전했다. 최근 국경을 넘은 한 탈북자는 “국경에서 연길까지 안내자와 함께 버스를
타고 들어갔으나 한 번도 검문검색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이 탈북자를 안내했던 재중동포도 “최근 상황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이 움직임이 탈북자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오랫동안 탈북자 문제를 연구해온
윤여상 박사 (영남대 강사) 는 “6월초부터 중국 동북삼성에서 탈북자 단속이 완화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지만 이것이
중국당국의 근본적 정책변화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루드 루버스 유엔난민담당관(UNHCR)도 일본을 방문중이던 17일 아사히(朝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탈북자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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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초부터 검문소를 점차로 철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데, 5월 한달 간 SARS(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인해 각 지역에 검문소가 많이 늘어났다가 최근 SARS가 주춤해지자 다시 줄어들었다. 이번에 검문소가 줄면서
작년 이후 고정적으로 검문을 해 오던 지역 몇 곳에서도 검문소가 덩달아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을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약해지면서 대부분의 검문소가 사라진 것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중국 공안당국이 6월 10일 이후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왕청, 돈화,
안도 지역은 작년 하반기부터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사실상 매우 약했기 때문에 최근 들어 특별히 약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최근에도 여전히 호구조사 등의 명목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진행되고 있으며 몇 몇 지역에서는
오히려 단속이 강화된 경우가 많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탈북자들을 잡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믿는 재중(在中) 탈북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탈북자에
의해 범죄가 발생한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심한 단속을 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해당 지역에서의 단속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일례로, 얼마전 탈북자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왕청현 배초구 지역에서는 80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잡혀서 끌려갔다.
유쾌한 소식은 아니지만 이 살인사건에 대해 잠깐 소개해야겠다. 어느 조선족 중국인이 탈북자 형제를 고용하고 있었다 한다.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일을 시켰는데 그동안 돈은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고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도 어딘데…”하면서 조금 아니꼽게 굴었다 하는데, 여기에 형제는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형은 게으르고 일을
잘 못한 반면 동생은 영특하고 부지런했나보다. 그래서 이 조선족이 “형을 다른 곳에 팔아버려야겠다.”는 말을 부인에게
했는데 동생이 우연히 이 말을 엿듣게 되었다. 여기에 앙심을 품은 동생이 조선족 가족을 죽인 사건이다.
그냥 흉기를 사용해 죽였으면 단순한 살인사건이었을 테지만, 주(州)공안국에서 직접 내려와 조사할 정도로 큰 사건이 되었다.
동생이 예전에 돌 깨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당시 폭파에 사용하는 화약을 몰래 빼돌려 갖고 다녔나 본데, 조선족
부부가 집을 비운사이 방 구들장을 뜯어내 여기에 화약을 묻어 두고 달아났다. 저녁에 조선족이 방에 불을 지피자 화약이
폭발하면서 집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조선족 남편과 부인, 그리고 부인의 동생까지 3명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범인은
이미 달아난 뒤였고, 이 사건으로 인해 인근의 탈북자 단속이 거세지면서 사건이 일어난 배초구에서만 80여명, 왕청현 전체적으로
200여명이 붙잡혀갔다고 한다.
2.
“탈북자의 월경, 진입을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증강했던 변방부대도 올 6월 들어 크게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조-중 국경(특히 두만강유역)을
수비하던 변방대대가 ‘중국인민해방군’으로 교체되어 앞으로는 군에서 직접 국경을 감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 동안 국경을 수비해오던 ‘변방대대’는 한국의 경우 군대에 입대했다가 차출된 ‘전투경찰’ 혹은‘무장경찰’에 가깝다.
한국은 영토분쟁지역인 독도에 행정자치부(경찰청) 소속의 전투경찰을 배치해놓고 있는데, 만약 이를 국방부 소속의 군인으로
대체한다고 하면 외교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변방대대 대신 인민해방군을 투입한다는 것은 단순한 병력교체가
아니다.
이것이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최근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이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작용한 것인지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변방대대의 인력 재편에 이 사실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변방 지역의 단속이 ‘변방대대’로부터 ‘인민해방군’으로 이월된다는 소문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교차로 확인이 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3.
알고있다시피 작년 3월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 이후로 연변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북지역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매우
강화되었다. 이전까지는 주로 특정한 시기에 시범케이스 비슷하게 탈북자 단속이 진행되었다면, 작년에는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단속이 진행되었으며 그 강도도 이전보다 훨씬 높았다.
그랬던 것이, 최근에 탈북자 단속보다 SARS예방이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어부지리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이 약해진
결과로 이어졌다. 또 SARS로 인해 북한 당국에서 탈북자들의 인수를 거부해서 중국 변방 구류소에 탈북자들이 꽉 차서
더 이상 잡더라도 가두어 둘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일들이 맞물리면서 부분적으로 탈북자 단속 활동이
약해진 측면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2003년 6월 한 달만 하더라도 왕청현 배초구진에서 약 80여명의
탈북자들이 잡혀간 것을 비롯하여 그 동안 비교적 단속활동이 약했던 라자구진과 중평, 흥안 지역에서 평상시보다 훨씬 강도
높은 탈북자 색출 작업이 진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또한 도문과 용정의 사이에 있는 시골 마을 역시 최근에 조선인민군이 무장한 채로 직접 넘어와 강도짓을 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여 긴장감이 팽팽하다. 북한의 군인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약탈행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지난 5월호 Keys『지금
북한에선』을 통해 전한 바 있는데, 한동안 잠잠하다가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도둑질을 하고 태연하게 동네
슈퍼에서 맥주를 사먹다가 잡혔다고 한다. 7월초 현재 중국 도문-용정 사이에는 변방부대 내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어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기자의 사명은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여 사람들에게 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전달 위주의 기사는
정보(情報)라기보다 첩보(諜報)에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조선일보의 이번 기사는 좋은 첩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첩보가 정보로서의 가치를 갖자면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보아야 하며, 그 내막까지 진단해보아야 한다. 최근에 보이는 한두
가지 징후를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기사 중간에 “최근 상황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재중동포의
말은 호들갑에 가깝다.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과 색출, 강제송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