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들은 말한다 - 전쟁만 일어나 봐라. 내가 저 놈들을 제일 먼저 쏴 버리겠다!!
전쟁만 일어나 봐라, 내가 저 놈들을 제일 먼저 쏴 죽이겠다!!

얼마 전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지에 타블로이드판 지면의 3분의 2를 할애, 17개의 문항의 북한 관련 퀴즈가 실렸다.

(문)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는? (답) 엘리자베스 테일러
(문)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답) 13일의 금요일
(문) 김일성의 동상이 북한에 얼마나 되는가? (답) 3만 5000개
(문)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은 2002년 위조 여권을 가지 일본에 가려다 공항에서 적발되었다. 그는 왜 일본에 가려 했는가? (답) 동경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보려고.
(문) 북한의 연호(달력)는 1912년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는? (답) 김일성이 태어난 해이므로
(문) 김일성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 (답) 21만1688개

이런 질문이 실린 북한 퀴즈를 재미로 보던 중 필자의 시선이 멈춘 곳은 다음의 문항과 답변에서다.

(문) 김일성이 태어난 날에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답)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내친 김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4일 밤 빙산에 부딪혀 침몰을 시작, 4월 15일 새벽 2시 20분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사망자는 1500여 명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2년 4월 15일은 김일성이 태어난 날이다.

이 한 줄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북한 상황이 필자에게는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와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점점 강화되고 있고, 국제사회가 ‘금지선’으로 간주하던 북한의 핵 재처리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휴전선 부근의 대기에서 핵 재처리의 결정적인 증거인 ‘크립톤 85’가 채취되었음을 한·미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였다) 얼마 전에는 비무장 지대에서 남·북한 사병들간의 총격전이 발생하였다.

한 마디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시기에, 필자는 중국연변지역에서 함경북도 △△군 출신의 한 탈북자를 만났다.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 필자가 느낀 사실은 ‘김일성·김정일호’라는 거대한 봉건독재의 배 역시 침몰중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철성 (가명, 남, 40세) 씨는 2003년 6월 15일 2번째로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고향은 함경북도 △△군이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이 곳에 옮긴다. 인터뷰 대상자의 안전을 위해 개인 신상과 관련된 지명 및 연도를 모두 바꾸거나 기호로 대체하였다. 지역적, 시기적 특성과 일치하는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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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처형 당한 시체를 향해 돌을 던지도록 명령

언제 처음으로 중국에 왔는가?
“2002년 10월에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연락을 취해볼 목적으로 처음 왔는데 잘 되지 않아서 1달만에 돌아갔다가 얼마 전(2003년 6월 15일)에 다시 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아버님은 6.25 때 월북하신 한국 출신이다. 고향은 경기도 수원이라고 들었다. 아버님이 2001년 중국으로 탈출을 했다가 작년 7월에 한국으로 갔다. 중국에 자주 다니던 사람으로부터 조선 사람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 대사관을 거쳐서 한국으로 많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설마 했었는데 아마 아버님도 그런 기회를 봐서 한국으로 간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보위부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서는 3일 동안 계속 얻어맞았다. 그 후에 아버님이 한국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불려가서 1달이 넘게 심하게 고생을 했다. 막내 아이는 그 후로 귀가 먹었는지 잘 듣지를 못한다. 아마도 심하게 맞아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로는 다니던 직장에서도 해고되었다. 아버님과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볼 생각으로 작년에 나왔다가 실패해서 올 해 다시 나온 것이다.”

고향에 가족은 몇 명이 있는가?
“부인이 있고 자식이 4명 있다. 식구들이 많아서 생활하기가 더 힘들다.”

아버님이 한국 출신이면 어떤 불이익을 받나?
“아버님은 6. 25때 월북을 하신 후에 황해북도 ***부근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셨다. 이 때 어머니를 만나서 결혼을 하셨고 자식은 나 혼자 뿐이다. 그 후 1960 몇 년도인가에 직장에서 사상검열이 있었는데 이 때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함경북도 ‘△△’땅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나는 △△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다. 학교에 다닐 때는 ‘사로청’ 생활도 했었지만, 아버님이 한국 출신이었기 때문에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을 수가 없어서 1982년도에 군대에 입대를 했다. 그 후 1991년까지 딱 11년 동안 군 복무를 하다가 제대했다. 강원도 &&라는 지역에서 ‘분계선 보초‘를 했다. 제대한 후에는 □□에 있는 제철소로 ‘무리배치’- 집단배치. 개인의 적성이나 희망, 과거 거주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당의 지시에 따라 공장·탄광 및 각종 건설공사장과 같이 인원이 부족한 직장과 작업장에 집단적으로 배치하는 것. ‘집단진출’이라고도 함 - 를 받았는데 □□에는 친척도 없고, 부모님이 모두 △△에 있다고 졸라서 1년만에 허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에서는 무엇을 하며 지냈나?
“△△에서는 사회안전부 소속의 ‘답사관리소‘에서 근무를 했다. 답사관리소는 주요 혁명유적지를 관리하고 혁명 유적지를 답사하는 인원들을 인솔하고 안내하는 부서이다. 1992년부터 계속 이곳에서 근무를 했다. 우리가 관리하던 곳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XXX혁명전적지’였다. 사회안전부 소속의 부서여서 대우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 동안의 식량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 달라.
“군대 시절에는 모든 공급을 정상적으로 받았으며, 1993년까지는 ‘미공급’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내 기억으로는 1994년부터 공급체계에 약간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규정량을 주기는 했지만 입쌀대신 강냉이쌀이 나온다던가, 한 달을 건너뛰었다가 다음달에 나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약간씩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5년도에 본격적인 미공급이 시작되어 한 달에 15일-20일 정도의 식량밖에 공급받지 못하였는데 그 만큼도 나오지 않는 달이 많았다. 이 때에 처음으로 먹을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을 보았다. 1996-97년도에 이르러 줄줄이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아마도 이 때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어나간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 고향 △△에서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 그런데 그렇게 굶어죽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으므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식량난이 심했던 시절 ‘인육(人肉)’ 에 대한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다. 199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40대의 한 남성이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죽여서 돼지고기나 개고기로 둔갑시켜 장마당에서 팔았다. 그걸 의심하던 사람들이 신고를 했고, 잡혀서 취조를 받다가 털어놓았다고 한다. 온 가족이 총살을 당했다. 마을 공터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죄목을 열거한 후에 공개처형으로 총살을 시켰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구경을 했는데, 머리에만 자동보총으로 9발을 쏘아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나무에 묶인 사람을 향해 한 사람 당 3개씩 돌을 던지게 했다. 이미 죽어있는 사람의 시체에 그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져서 온 몸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너무 끔찍한 일이다.”

쉽게 믿기 어려운데, 정말 사실인가?
“이것은 내 고향 △△에서 있었던 일이어서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로는 이런 큰 사건은 없었지만 사람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조선 사람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에 있으면서 사람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다른 지방에서도 모두 그런 일들이 있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도 우리 고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1996년에 일어난 그 사건에 대해서 물어보라. 보통 큰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모른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루 먹고 하루 산다

최근에는 어떤 형편인가? 예전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1998년 이후로도 미공급이 계속 되어서 살기 어려웠다. 정상적으로 배급이 되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산을 개간해서 몰래 뙈기밭을 만들거나,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강도질을 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이 시절에는 배급은 없었어도 굶어서 죽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2002년에 중앙당에서 사람이 내려와서 대대적으로 경제제도를 개선할 것에 대해서 선전을 했다(주 : 2002년 7.1경제관리조치를 이야기하는 것임).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제도를 개선하기 때문에 곧 외국처럼 잘 살게 되고, 내년쯤 되면 ‘개도 입에 찰떡을 물고 다닐 정도’로 잘살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적지 않게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하필 그 때에 아버님 사건이 터졌고, 보위부에 갔다 온 뒤로는 직장에서 바로 해고되었기 때문에 나는 인상된 월급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2-3달 정도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장마당에서 물가가 어찌나 빨리 오르는지……. 본래 △△에서 입쌀 가격이 40원-45원 이었는데, 작년 가을부터 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올 초에 가장 비쌀 때는 280원까지 한 적이 있다. 내가 이번에 넘어오기 직전에는 180원이었다. 지금 조선의 백성들은 더 큰 혼란에 빠져있다. 월급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물가는 엄청나게 올라서 예전보다 더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직장에서 해고된 후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했는가?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아서 먹고 살았다. 중국 약초 회사가 매번 정기적으로 와서 약초를 사 간다. 약초를 캐서 잘 말린 다음에 3-4 Kg씩 팔아 넘기면 보름치 식량을 살 수 있다.”

요즘도 굶어서 죽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막 죽어나가지는 않는다. 장마당에 나가면 사 먹을 수 있는 쌀과 음식들이 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 이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지 방법을 다 찾았다.
가끔 집도 없고 부모도 없이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떨고 있다가 얼어죽는 아이들이 있다. 애들이 제일 불쌍하다.”

최근의 장마당 사정에 대해서 들려달라. 얼마 전에 장마당을 늘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실제로 얼마 전에 장마당을 늘린다고 공사 같은 것을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장마당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테두리에 담장을 쌓아두었던 것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어쨌건 넓어지기는 넓어졌다.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하게 해준다는 건……, 이건 사실 나라에서 뭐라고 할 수 없는 이야기다. 1998년 정도부터는 누구나 원하면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스럽게 사람들에게 허용해주고 그런 것은 아니다.

△△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나?
“음……, 대충 한 1,000명쯤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가?
“그런데 그 장사라는 것이 중국처럼 가게를 차려놓고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릇 몇 개, 옥수수 몇 개, 담배 몇 갑, 옷 1-2벌……, 이렇게 앞에다 내려놓고 앉아있으면 그게 장사하는 거다. 이렇게 해서 하루 먹고 하루 살고, 또 하루 먹고 하루 살고 하는 것이다. 중국에 나와서 교회 같은데 찾아가면 교회 사람들이 쌀도 주고 옷도 준다고 한다. 그걸 얻어와서 조금씩 앞에 내놓고 팔아서 먹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렇게 앉아 있다가 물건이 안 팔리면 그 물건을 들고 국수 파는 곳에 가서 흥정을 해서 국수를 사먹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도 장마당에 ‘꽃제비’들이 많은가?
“한동안 장마당에서 꽃제비가 사라졌었는데 작년 겨울부터 다시 많아졌다. 장마당 한 쪽 켠에 ‘꽃제비 구제소’가 있기는 하지만 요즘은 관리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냥 빈 건물에 간판만 붙여 놓았을 뿐이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부모들이 죽은 경우도 많고, 부모들이 중국으로 도움을 받으러가서는 안 돌아온 가정들도 있고. 하여간 부모도 없이 고생하며 빌어먹는 아이들은 여전히 많다.”

다른 지역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장사를 하는 ‘되거리 장사꾼’도 여전히 많은가? 요즘은 좀 어떤가?
“되거리 장사꾼들도 여전히 많다. 가령 무산에서는 주로 청진이나 회령 쪽으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그래도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도 못 한다. 무산에서 청진 쪽으로 갈 때는 곡식이나 중국에서 들여온 약, 옷 등을 가지고 가고, 청진에서 무산으로 올 때는 수산물이나 금속제품 그런 것들이 많다.

SARS(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주민 이동을 통제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나?
“SARS 때문에 중국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무조건 20일간 강제로 격리시켜 놓고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그 때 풀어준다. 중국에서 잡혀온 사람들도 어느 산 속인가로 데려가서 20일간 있다가 보위부로 옮긴다고 했는데 소문으로만 들어서 잘은 모르겠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에 심한 통제가 있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옛말

병원 상황은 어떤가?
“무상의료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서 진찰을 받는 것은 무료이지만, 진찰을 통해 무슨 병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 다음부터는 돈이 들어간다. 약을 사먹으려고 해도 돈, 입원을 하려고 해도 돈, 게다가 의사에게 뇌물이라도 바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의사에게 바치는 돈……, 돈이 없는 사람은 병원에도 못 간다.

병원에서 사람들을 치료하자고 해도 약도 부족하고, 전기도 없어서 치료를 할래야 할 수도 없다. 적어도 병원에는 전기가 있어야 할 텐데…….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밤이면 어두운 곳에서 그냥 있어야 하니, 밤에 급한 병이 생기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병원에 약은 많이 있는 편인가?
“돈만 있으면 중국에서 들어온 약을 장마당에서 살 수 있고, 무역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중국약을 사다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병원에는 근본(전혀) 약이 없다. 또 모르겠다, 간부들에게나 조금씩 돌아가겠는지. 병에 걸렸어도 돈이 없으니 치료를 못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전기 형편은 어떤가?
“전기는 여전히 하루에 2시간씩만 들어온다. 딱 정해져 있다. 8시부터 10시까지. 이 시간에 중앙방송 보도하고, 연속극 같은 것을 할 때도 있다. 모르겠다, 요즘은 TV도 다 팔아먹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 중에 얼마나 TV를 보겠는지…….”

요즘 학교상황은 어떤가?
“아이들 학교에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월사금은 없지만 그 외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나 많다. 토끼가죽 가져와라, 책상을 수리해야 하니까 수리비를 가져와라, 게다가 선생 생일이면 생일비, 조직 활동비, 학교 문짝 수리비 등등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학교에 나가면 공부는 잠깐밖에 하지 않고 주로 작업을 시킨다. 어쩔 때는 선생님 집에서 뙈기밭 작업을 하고 왔다고 하기도 한다. 내 심정을 그대로 말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가 않다.

나부터도 이러니 학교에 자식들을 보낼 수 있는 집안이 별로 없다. 작년 여름쯤에는 학교가 거의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는데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올 봄부터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조금씩 많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7-8월쯤 되면 더 줄어들 것 같은데,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나?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 공부는 시켜야하지 않는가? 또 최근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선생들이 집으로 찾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불러서 학교로 데리고 간다. 학생들의 출석을 100% 보장하지 못하면 선생들이 받는 월급에서 학생수 만큼씩 공제한다. 학생들 10명에 천 원을 받는다면, 1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900원만 받는 식으로 한다. 그 전에는 이런 일은 없었는데, 작년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에 생긴 일이다. 그래서 선생들이 아이들의 출석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한편으로는 이런 소문도 돈다. UN(국제연합)이나 미국에서 학교에 있는 아이들에게 쌀을 많이 주는데, 학교에 아이들이 없으면 안되니까 선생들을 다그쳐서 출석을 100% 보장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아이도 한 번인가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쌀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

그게 언제인가? UN에서 준 쌀인가?
“작년 초에 우리 아이가 수령님이 쌀을 줬다면서 2kg인가 가지고 왔다. 하지만 누가 그걸 믿겠는가? 틀림없이 UN에서 준 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걸 옥수수로 바꾸려고 장마당에 나갔더니 온통 쌀 파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팔지도 못하고, 그냥 풀죽을 쑤어서 먹었다.”

외국에서 오는 쌀은 어떻게 처리되나?
“그거야 군대와 간부들이 다 빼먹겠지……. 일단 최우선적으로 군대에 차려지고, 그 다음에 간부들에게 차려지고, 마지막에 극히 일부가 백성들에게 차려질 텐데, 그것도 제대로 받아보기 힘들다. 쌀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백성들에게 차려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거의 봉급을 못 받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선생들은 그래도 봉급이 잘 나오는 편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봉급을 받아봤자 어차피 그 돈으로는 생활을 꾸려갈 수가 없다. 그래서 선생들이 뒷돈을 많이 챙긴다. 예를 들면 책상 수리비로 30원씩 가져오게 하고 20원은 학교에 내고 10원은 자기가 챙기고,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선생들한테는 월급을 제대로 줘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텐데……. 선생들한테 바치는 돈은 그래도 불만이 없다.”

마음은 벌써 고향을 떠났다

요즘 주민들 사이에서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가?
“계속해서 공급이 안되니 ‘죄인’들이 많아졌다. 중국으로 나갔다 잡혀서 온 사람들이 우리 고향에는 엄청나게 많다. 10명중 8명은 이런 ‘죄인’ 들이다. 중국에 갔다가 잡혀와서 보위부 감옥소, 노동단련대 등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를 갈면서 말한다.
‘전쟁만 일어나봐라. 내가 저 놈들을 제일 먼저 쏴 죽이겠다.’

그들이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경찰이나 법관, 보위부 사람들, 감옥소나 노동단련대 간수들……, 그런 사람들이다. 김정일의 정치가 근본 틀렸다, 이제 영원히 잘 살기는 틀렸다,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는 수밖에 없다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최근에는 ‘이렇게 살 바에야 전쟁이나 확 일어나 버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전쟁을 하면 북조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나?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이 나면 통일이 되든 망해버리든 어떻게든 해결이 되지 않겠나.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서 빨리 해 버리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 상태로는 그냥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인데,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전쟁이 나면 일반 주민들은 혼란을 틈타서 중국으로 다 도망칠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니,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중국으로 도망가도 중국에서 우리들을 조선으로 돌려보내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 (주 : 아마도 누군가에게서 전쟁으로 인한 ‘전쟁난민’ 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그 말대로만 된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선에 남아있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한국으로 가셨다는데, 본인도 한국으로 가고 싶나?
“일단 아버님하고 연락이 된 다음에 생각해보아야겠지만, 갈 수만 있다면 가고싶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주어서가 아니다. 조선에서는 더 살 것 같지를 못하다.

그래도 예전에는 내 나라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중국과 한국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연락이 되더라도 나 혼자만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일단 고향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 처자식을 어떻게든 데리고 함께 가려고 한다.”

그렇게 전부다 고향을 버리면 조국은 어떻게 되나?
“나도 30년 넘게 조국에 모든 걸 바쳐왔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중국에 한 번도 오지 않고 고향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우리들에게 차려진 것이 없다. 오늘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일에도 나아질 것이 없다. 마음은 벌써 고향을 떠났다.”

한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 전부터 해서 한국에 있는 아버님과 연락을 해 볼 작정으로 한국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 분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은…… 일단 잘살고, 민주주의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IMF를 맞은 이후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더라. 그러나 조선하고는 비교하지를 못한다.

중국에 와서 저녁마다 한국 TV를 볼 수 있다. ‘첫사랑’ 이라고 하는 연속극을 매일 보고 있는데, 참 재미있다. (주 : 요즘 연변TV에서 한국 드라마 ‘첫사랑’을 방영하고 있다) 이전에 중국에 다니던 사람들에게 한국이 잘 산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TV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엄청나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로도 잘 설명이 안될 것 같다. TV 속에 나오는 집들이나 가구, 전자제품 들을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보통 사람들도 조선의 중앙당 간부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인상깊은 것은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조선에서는 여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남자들이 단 한 명도 없다. 역시 문명한 나라의 사람들이라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중국에서 한국TV를 보니, 요새 한국에서 바다를 막아 무슨 댐을 만든다고 하던데 사람들이 반대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건 왜 그러는 건가? (주 : ‘새만금 간척사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농토를 넓혀서 식량생산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닌가? 바닷가 개펄이 없어진다고 반대한다고 하는데, 나중에 통일되면 조선에 그런 개펄은 얼마든지 있다.”

통일은 언제쯤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김정일은 절대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거다. 그렇게 되면 통일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이제 곧 남한하고 경제협력도 하고 하니까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하기에는 나 죽기 전에는 통일이 될 것 같지 않다. 혹시 모르겠다, 전쟁이라도 일어나서 통일이 되면 되겠는지. 옛날에는 사람들하고 정치 이야기도 자주 하고, 통일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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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 이번 인터뷰를 정리하는 도중에도, 북핵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고조되고 있다. 제 2의 플루토늄 처리 공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오고, 북한이 이미 소형 핵무기 3-4기를 보유했을 것이라는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으며, ‘민심이반’ 이라는 말을 넘어서 오히려 전쟁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분에게서 “최근에 북한 주민들의 탈출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들도 더 이상 굶어 죽지는 않는다. 북한도 가장 어려운 때는 벗어난 것으로 생각되며, 이제 슬슬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분은 마지막에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감정의 쏠림 없는 객관적 분석이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 내부의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바깥에서 신문이나 방송으로만 듣는 소식을 듣는 사람에게는 현재 북한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대체 그 ‘제자리’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비참한 인권상황과 식량사정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북한 사회와 주민들에 대해 ‘감정의 쏠림 없는 객관적 분석’이란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승객들을 모두 갑판 밑에 가두어놓은 채, 침몰이 뻔히 보이는 항로로 배를 몰아가는 선장. 이런 상황에서는 배의 견고함을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배와 선장으로부터 승객들을 ‘구조’하는 일이 우선이다. 궁극적으로 선장의 지휘명령권을 박탈하여야 한다. 이제야 이러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국제사회의 최근 움직임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김일성이 태어난 날이 타이타닉이 침몰한 날과 같다는 사실을 김정일은 가벼이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곧, 자기 정권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