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정일리포트』 손광주 | 바다출판사

김정일을 알면 북한이 보인다

누가 이 책을 추천했나

전 조선노동당 비서 황장엽(현 탈북자동지회 명예회장) 씨가 1997년 한국으로 와 가장 먼저 한 일 중에 하나는 남한에서 출판된 북한관련 서적을 읽어보는 일이었다. 그는 남한에 북한 관련 연구서적이 참 많은 것도 놀랐지만, 그들이 대개 ‘엉터리’라는 데 더 놀랐다고 한다. 물론 정보가 제한된 북한을 대상으로 쓴 책들이다 보니 북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 체제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황 회장의 눈엔 결점이 많이 보였을 것이다.

특히 ‘김정일’에 대한 책에는 편차가 심했다. 어떤 책은 김정일의 사생활 같은 것에만 집중하면서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역으로 북한이 선전용으로 만들어낸 자료만을 집대성하여 그들의 우상화 선전에 이용되는 듯한 책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황 회장의 눈에 띈 한 책이 있었으니 ‘다큐멘터리 김정일’(김현식·손광주 공저, 천지미디어)이다. 그는 이 책을 “딱 세 군데 틀렸다”고 하면서 저자 손광주 씨를 불러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고, “남한에 앉아서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책을 쓸 수 있었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이후 손광주 씨는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황회장의 지근(至近)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김정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황 회장의 생생한 증언 등을 청취할 수 있었다.

그 다년간의 연구결과가 집약된 책이 바로 이번에 출판된 『김정일 리포트』로, 황 회장이 극찬한 ‘다큐멘터리 김정일’의 개정 증보판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절판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구판(舊版)인 ‘다큐멘터리 김정일’과 함께 읽어본다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김정일’은 김정일을 육성으로 말해 줄 수 있는 증언자가 거의 없는 한계 속에서도 현장에서 발로 뛰며 취재한 내용을 집약하여 김정일을 전반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새 책 『김정일 리포트』는 ‘다큐멘터리 김정일’ 이후 5년여의 시간동안 저자가 얼마나 ‘집요하게’ 김정일에 매달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단순히 몇 글자 고치고, 흘러온 시간만큼 드러난 사실을 첨가한 정도가 아니라 숱한 증언자를 만나고 자료를 분석하면서 김정일을 통해 북한 전체를 통찰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히 엿보인다. ‘김정일 연구의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어떻게 이 책이 쓰여졌나


김정일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출판된 책은 여럿 있다. 김정일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의 책도 있고, 가까이에서 접해본 사람이 일화를 바탕으로 증언한 책도 있고, 북한에서 발행된 공식문서를 철저히 분석하여 김정일을 논한 책도 있다.

각기 나름의 한계가 존재한다. 일단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고,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 북한 내에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이다. 물론 정치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성격이 그의 정치적 판단과정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정치인은 그의 정치적 행보와 결과로써 평가받아야 한다. 전자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의 예술적 취향이나 음주 습관, 급한 성격, 밤에 주요업무를 처리하는 특이한 활동방식, 기쁨조, 비밀파티 같은 것을 크게 다루다 보면 황색잡지 수준이 되고 만다.

북한의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김정일을 조명하려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연구자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을 연구한다면서 박 대통령이 공식행사에서 행한 경축사나 국무회의 회의록 같은 것만 잔뜩 뒤져서 ‘박정희의 모든 것’이라고 내놓는 경우와 다름없다. 특히 북한처럼 같은 신문을 내외부용으로 따로 만들고, 우상화 선전활동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부서를 만들어놓고 하루종일 그런 것만 써내는 작가가 존재하는 사회를 대상으로 할 때는, 그러한 연구방식은 작가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수준밖에 안 된다.

김정일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사람의 증언을 정리한 책들도 있다. 자신이 직접 쓴 경우가 있고, 그를 집중적으로 인터뷰한 사람이 따로 정리한 경우도 있다. 김정일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한 형편에서 이러한 1인 증언은 대단한 가치를 갖는다. 1인 증언이라고 해서 신뢰성을 낮게 봐서는 안 된다. 아무리 꾸미려해도 책 한 권을 통째로 거짓말만 해대는 위대한 작가는 드물다. 대개는 진실에 골격을 두고 있으며, 이에 약간씩 주관적인 편견이나 오해, 과장이 있다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분명히 ‘1인’ 증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김정일의 모든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되며, 독자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간혹 김정일을 곁에서 보았던 1인 증언을 김정일의 모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심지어 다른 이들의 주장이나 학계의 공인된 사실까지 폄훼하는 경우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 동아일보 기자라는 저자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 『김정일 리포트』는 김정일을 만나보았던, 혹은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띈 머리말에서 증언자의 수를 “줄잡아 50명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살펴보면 50명이 훨씬 넘는, 탈북자들의 북한 현실에 대한 증언까지 다양하게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책상머리에서 수북한 자료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작성한 ‘잉크냄새’가 아니라 증언자들을 만나러 뛰어다닌 ‘땀냄새’와 그들과 격정적으로 토론하며 함께 고민한 ‘담배냄새’가 느껴진다. 이것이 우선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다.

무엇을 이 책은 담고 있나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은 ‘김정일 다큐멘터리’로, 김정일의 출생부터 6자회담 테이블에 앉은 현재까지를 다루고 있다. 2장은 ‘김정일의 군대와 핵전략’으로, 김정일의 정치적 성장과정 중 ‘어떻게 해서 군부를 장악할 수 있었나’ 하는 측면을 중점적으로 해부하고 있으며, 3장은 ‘김정일의 통치술’을 선전능력, 조직장악력, 용인술, 대인관계 등에서 살펴본다. 이렇게 공인(公人) 김정일을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 마지막 4장에서 김정일의 여자, 취미, 건강 등 사적인 부분을 ‘김정일의 프라이버시’라는 제목으로 담고 있다.

1장 ‘김정일 다큐멘터리’는 김정일의 일생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실제 북한 현대사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김정일은 1941년 생으로, 그의 살아온 길은 북한 역사와 거의 잇닿는다. 『김정일 리포트』는 그의 일생을 좇아가면서 북한정권 수립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굳이 따분하고 두꺼운 북한 현대사 책을 읽지 않더라도 알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있다. 김정일 개인사뿐 아니라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주요한 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의 증언이 간간이 끼어 있어 마치 ‘북한 50년사’를 슬라이드형 다큐멘터리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1장은 김정일의 일생을 △출생과 성장(1941∼1964년) △정치입문과 초고속 성장(1964∼1973년)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1974∼1985년) △김정일 ‘통치’, 김일성 ‘군림’(1985∼1994년) △김일성 사후 생존 전략(1994∼현재) 등 5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이 중 ‘김일성·김정일 공동정권’, ‘김정일 통치, 김일성 군림’이라는 표현은 눈 여겨 볼만하다. 흔히 김정일의 공식 등장을 1980년대 초반으로 보고, 일부에서는 김일성 사후에야 김정일의 권력이 전면화 되었다고 하면서 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난에 대해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듯한 논리를 펴기도 하는데, 이 책은 이미 1974년부터 수령의 분신이 되어 ‘당중앙’으로 불리며 전권을 휘두르는 김정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의 북한 통치는 30년이 넘었다는 말이다. 1985년 이후 김정일을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통치자’라고 한 대목은 북한 사회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2장은 주로 ‘김정일과 군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선군(先軍)정치를 공식적인 국가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완전한 병영국가를 구축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것을 따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적절한 배치라 여겨진다. 여기서는 군대에 발도 디뎌보지 못한 김정일이 어떻게 군대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군부를 장악해나갈 생각을 했는지 다양한 증언을 통해 잘 조명하고 있으며, 특히 오진우와 김정일 사이에 벌어지는 파워게임과 김정일이 오진우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과정들이 드라마틱하게 잘 서술되고 있다. 나아가 ‘김정일 군(軍)의 현주소’를 통해 복잡한 도표와 통계를 들이밀지 않고도 북한군의 현 실태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3장부터는 차근차근 ‘개인’ 김정일로 초점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 장에서 특히 증언자들의 이야기가 다른 장에 비해 많이 인용되고 있는데, 성혜랑, 최은희, 신상옥, 이한영, 황장엽, 그리고 외교관 출신 탈북자와 김정일을 접견했던 국내외 인사들의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카메라의 초점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조각상의 이모저모를 입체적으로 비춰주듯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여러 사람의 견해를 교차하여 비교함으로써 1인 증언의 편견을 막으려는 저자의 객관적인 태도가 엿보인다. 4장에서도 자칫 흥밋거리로 치닫기 쉬운 김정일의 여자관계와 사생활을 차분한 어조로 소개하면서 각 증언의 신빙성 여부를 그때그때 살펴보는 신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는 매 장과 장 사이에 끼어있는 ‘해설’ 형태의 글들이다. 저자는 책의 꺾어지는 부분마다 ‘중·소 이데올로기 논쟁’, ‘김일성의 대숙청’, ‘주체사상의 형성과 변질’, ‘북한의 초헌법 10대 원칙’, ‘남북정상회담의 명암’ 등의 제목으로 북한 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깊이 있게 알아두어야 할 내용을 따로 심층적으로 해설해 주고 있다. 또 책의 맨 뒷장에는 ‘김정일 핵심측근 프로필’을 부록으로 싣고 있는데, 저자가 만났던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직책뿐 아니라 남한의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없었던 북한 고위관료들의 개인적인 성격까지 적어두고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볼 것이 많은 책이다.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북한에 대한 책은 많다. 인터넷 서점에서 ‘북한학개론’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수십 권의 책이 펼쳐진다. 대개 북한의 역사로부터 출발하여 북한권력기구의 체계, 특징, 통일방안 등을 논하는 천편일률적인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북한의 몇 차 당대회는 몇 년에 열려서 어떤 것을 결정했다거나, 내각 각 부서의 역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 및 회기(會期) 등을 다루고 있다. 미로(迷路) 같은 체계표와 연표도 빠지지 않는다.

약 한국을 알고자 하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헌법개정이 이루어진 연도와 그 변동사항, 행정 각 부의 역할, 국회의 회기 등을 외우면서 ‘한국을 배운다’고 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은 한국인도 잘 모른다.
‘다른 나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반론을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르긴 하다. 북한처럼 모든 사회체제가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자주성을 갖는 존재는 오직 김정일뿐이고, 결정권을 갖는 조직도 통틀어 김정일 개인뿐이다. 따라서 김정일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북한체제를 이해하는 관문이고, 어쩌면 유일한 길이다. 당대회 결정사항 같은 것을 아무리 외워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 리포트』는 북한을 알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 ‘북한학개론’ 열 권보다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대학 강의에서 부교재로 활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라 판단된다.

북한에 대한 책은 많다.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많다. 대학교재로부터 연구논문, 탈북자수기, 증언과 회상록 등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있다. 이 중에는 ‘북한 연구의 결정판’이라고 자랑하는 책도 있다. 책을 평함에 있어 너무 지나친 칭찬은 피해야 할 터이지만 『김정일 리포트』는 칭찬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앞서 ‘김정일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고 말한 바 있듯, 국내외에 김정일에 대해 이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책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북한 연구의 결정판’이라는 극존칭까지 붙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