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진 이
1959년 평양 출생, 김형직사범대학 작가반 졸업,
조선작가동맹 소속 시인, 99년 11월 입국.
대표작 ‘로병들이 돌아온다’

윤화실은 내가 중앙당 신소과(申訴課)1) 접수실에서 사귄 첫 여인이었다.
1997년 8월 말, 남편의 직장에서는 우리 집에 ‘지방 자원 진출장’2) 을 내밀었다. 남편이 일하던 원자력연구소 초급당비서와 원자력총국 당비서를 만나 “1호신소편지3) 를 올릴 테니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로 그 잔인하고 끔찍한 지방추방을 견제시키고, 나는 김정일 앞으로 운명적인 편지를 올렸다. 그리고 20일 후면 무조건 현지에 요해(了解)를 하러 내려온다는 신소과 실태조사 지도원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에서 쓴 신소편지에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나는 실태조사차 내려 올 지도원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그를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소소한 가족사(家族事)이다 보니 이 자리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아무튼 나는 남편과의 이혼을 국가에서 승인해주어 헛간 같은 데라도 좋으니 얼마 전 낳은 아들과 조용히 살며 글을 쓸 수 있도록 집이나 하나 해결해 달라고 신소를 했다.

20일에 20일을 더해 40일을 기다린 끝에도 아무 소식이 없어, 중앙당 신소과에 찾아가 편지 처리 결과를 알아보니 나의 신소편지는 이미 사회안전부 신소과로 넘어가 있었다. 나는 평양시 서성구역 연못동에 있는 사회안전부 신소과를 찾아갔다. 내가 목숨을 걸고 올린 편지를 그곳 사람들은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어떤 내용의 것이라 해도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그들은 느끼지 않고 있었다. 지방 추방자들이 보낸 신소편지는 묵살해버리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내가 작가동맹 소속 작가의 신분을 내보이며 따지고 들자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 “담당자는 적위대 훈련 중이어서 그가 돌아와야 문제처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껏 나를 지탱해왔던, 그것만은 틀림없다고 믿었던 ‘1호 신소’ 신화가 깡그리 깨져버리는 듯한 느낌 속에, 그래도 세 번 이상을 더 찾아간 끝에 “지도원을 실태조사 보내겠다”는 확답을 받아 냈다.

신소과 지도원은 해를 넘겨 새해, 그것도 정월 말경에야 시(詩) 분과 창작실에 나타났다. 대좌 견장을 어깨에 붙인, 살이 피둥피둥한 안전부 신소과 지도원은 문제 제기의 당사자인 나와는 어떠한 상의도 없이 분과간부들부터 모이게 하더니 “중앙당에서 본인을 이해시키라는 지시입니다”라고, 사실상 죽음과 같은 결정을 눈 깜짝할 동안에 단 한마디로 선언해버렸다. 원래 실태조사 자리에 타인을 참석시키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게다가 그는 내 앞에서 “일이 잘 안된 것 같은 데 어떻게 좀 되도록 해 주라”고 사회안전부 신소과 지도원을 전화로 불러 부탁을 했다. 자기가 귀찮은 문제로만 생각하면서, ‘자꾸 시끄럽게 굴지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말이다.

나는 사람의 감정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없어 보이는, 번들번들한 얼굴에 비계층이 유난히 두꺼워 보이는 그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나갔다. 어떤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라, 내 작가적 자존심을 이 자가 알게 해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내가 지금껏 해 두었던 생각들을 숨김없이 꺼내놓았다. 놀라운 일은 이 사람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양 눈굽을 벌겋게 달구더니 나중에 솔직(?)해 보이는 고백을 했다. 자기 부서에서도 권한이 없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나는 그 날 이후부터 어떤 일도 진척시켜 나갈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냥 우기고 평양에 머물러 있으면 그런 대로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얼은 잃고 허울만 남은 나를 요구할 뿐이었다. 쓰던 달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여 정부의 ‘지방추방령’을 달게 받아들여야 했음에도 나는 아직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지 무료감에 못 이겨 평양 창광거리에 위치한 중앙당 신소과에 때때로 들려보곤 하였다. 따라서 신소과에 문제제기를 하러 온 많은 사람들과 나의 얼굴빛은 그렇게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초조와 격분은 이미 나와 인연이 없는 것으로 되어버린 뒤였다. 마치 길을 가다 다리 쉼 할 겸, 여기가 무슨 일 하는 데인가 하여 얼핏 들린 사람처럼 내 얼굴은 그렇게 평온하였다. 게다가 아기 엄마 역시 대기실 손님들 중 나 하나였다. 이런 내가 사람들의 말없는 주목을 자아내고 있음을 나 자신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방금 걷기 시작하는 아기는 나의 등에 붙어있으려 하지 않았다. 아기포대기에 달린 주머니에서 나의 신분증을 꺼내 쥔 아기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두드려보고 비벼댔다. 그러다 어느 여인이 앉은 의자 밑에 신분증을 떨궈버렸다. 아기는 곧 다른 데 정신이 팔렸다.

“아기야, 오라”
개별의자에 앉았던 그 여인은 바닥에서 밤색표지의 신분증을 집어들었다. 그는 무심결인 듯, 아니면 어떤 호기심에서인 듯 내 신분증을 펼쳐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경이의 빛이 가득 어렸다.
“아니? 작가? 아주머니 작가이세요?”
나는 어줍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 와 앉으세요.”
그는 외기러기마냥 맞은편 긴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나를 자기 옆 빈자리로 불렀다. 중앙당 신소과 대기실은 다양한 상처를 안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특이한 분위기의 장소인지라, 나는 낯선 상대에게 먼저 말을 걸 엄두를 못 내고 늘 그냥 앉아있기만 했었다. 내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옆에 가 앉자 그가 말했다.
“야, 난 지금까지 작가를 안타깝게 찾았는데…. 그래,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나는 담담한 어조로 묻는 말에 대답했다.
“남편의 전처(前妻) 아들 때문에 지방진출 걸렸어요. 신소는 했었는데 될 것 같지 않아요. 미심결에 한번 와 봤어요.”
“그래요?! 난 아까부터 참 인품 있는 여자가 앉아 있다 했댔어요. 이제 보니 작가선생이구만요. 난 어릴 때부터 작가를 얼마나 숭배했는지 몰라요.”

나는 때아닌 장소에서 예견치 못했던 떠받들림을 당하자 금방 점직해졌다.4) 여기 와 앉은 사람들 중 옷도 제일 품위 있게 입고 몸가짐도 바른 그녀를 필경 어느 상류계층에서 온 간부라고만 생각했었다. 그의 일이 궁금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난 신소과에 다닌 지 8년째예요, 이게 내 신소 내용이예요,”
나는 그가 넘겨주는 신소편지를 받아 읽어보았다.

그의 직무는 선교구역 급양 편의관리소 전 초급당비서, 6. 25전쟁 때 아버지가 피살된 피살자가족임, 국가자금 6천 원 탕진 죄로 예심 1년 2개월 받고 감옥 7년형 언도, 대사령 받고 2년 반만에 출옥, 가장집물 일체 압수 당한 채 그의 집은 평양에서 추방됨….

내가 그의 글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은 것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문장이 약했다. 사건 사건이 정확히 서술되지 않았고 감정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속에서 강렬하게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예심 할 때 검사가 그를 심문하는 장면이었다. 검사는 윤화실에게 국가 돈 먹은 것을 대라고 했다. 그는 없다(실제로 그는 결백했다)고 땅땅 맞섰다. 검사가 윤화실을 손목을 묶은 채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리고는 하의를 쭉 벗겼다. 그의 백옥 같은(그는 살결이 참 깨끗했다) 하반신은 알몸이 되어버렸다. 검사는 벽에 세워두었던 청소밀대를 거꾸로 쥐고 그의 양 가랑이를 양 구둣발로 벌려 제꼈다. 그리고는 몽둥이 끝을 그의 음부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악에 받쳐 미친 듯이 휘둘러댔다.

“대라, 이년아”
윤화실은 졸도했다. 그가 정신차렸을 때 그의 머리와 상반신은 물에 홈뻑 젖어있었다. 물이 가득 담겨있던 청소 바께쯔5) 는 텅 비어있었다. 검사는 그를 질질 끌어다 그의 방에 다시금 처넣었다. 잠시 후, 밥을 넣어주려 왔던 간수가 여느 날과는 분명히 다른 상태의 그를 조금은 미심쩍은 눈길로 지켜보고 나갔다.
나는 이 대목을 다시 읽어보고 그 상황을 상상해 본 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 읽은 원고를 돌려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악착하게 굴어요?”
균형이 잘 잡힌 지적인 윤화실의 얼굴에 별안간 울기가 꽉 차 올랐다. 그는 나의 얼음장(속이 안 좋은 관계로 나의 손발은 항상 싸늘했다) 같은 두 손을 꽉 그러잡았다.

“선생! 말도 말아… 난 당 일꾼이야… 온 종업원들의… 존경이란 존경은 다 받으며… 살던 여자야!”
그녀의 준수하던 얼굴에서 눈물 콧물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두 손으로 급히 얼굴을 감싸쥐었다. 한참을 흐느낀 후, 가방에서 손수건을 황급히 꺼내 눈굽과 코밑을 훔쳐낸 후 그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무슨 죄예요?”

내가 읽은 그의 글에는 바로 그 점이 명확치 않았다.
“이전에 선교 개장국 집 한창 소문났었지요?”
“예, 그런 일 있었어요.”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제2자연과학출판사에서 필사공6)으로 일할 때, 선교 개장국 집이 우리 출판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 집은 개장국을 잘 한다고 온 평양시에 소문났었다. 우리 출판사 기자들이 한번씩 가보고 와서는 혀를 찼다.

“아, 정말 잘해! 고기를 한 대접씩 줘! 진짜 가 볼만 해!”
입과 입을 통해 전달되는 소문에 너도나도 나는 듯이 달려들 가는 데(지금에 와서 잘 믿기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평양시 국영식당들에도 제법 질로써 고객을 끄는 문화가 존재했었다) 그때 나는 시간도 없지, 돈 5원이 아름차지7)하여 끝내 걸음을 못했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그 개장국 집에 대한 스산한 소문이 돌았다. 선교개장국 집이 부정부패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식당 성원들은 간부들이 오면 뒷골 방에 들이고 잘 요리된 개의 거시기만 먹였다고 했다. 그것은 남자의 성욕을 돋구는 데 특기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간부들과 부화8)하고, 개장국 집 책임자가 잡혀갔는데 너무 급하니까 나중에 간부들 이름을 전부 불었다고 하였다. 개장국 집 사건 때문에 선교구역 급양편의관리소 초급당비서까지 감옥에 들어갔다고 했다.

바로 그 문제의 주인공 중 하나가 바로 이 윤화실이였다. 소문은 소문이고 나에겐 본인의 말이 중요하였다. 그는 곧 사건 전말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선교구역 급양편의관리소 산하 식당인 선교 개장국 집 책임자가 일을 아주 잘했다. 그는 개 수매 해오는 일을 전적으로 맡아했다. 북조선 각지에 다니며 개를 수매해 들였다. 그의 식당 창고에는 1년 분 봉사 량이 늘 저장되어 있었다. 그러자니 개장국 집 책임자는 한해에 한 달도 집에 있으나 마나하였다. 남편이 좋아 안 했다. 남편은 대남(對南) 영웅이었다. 불구자였다. 그가 윤화실을 몇 차례 찾아와 신소했다. 아내의 직업을 바꿔주던가, 지방출장 다니지 않도록 해 달라고. 초급당비서인 윤화실은 오히려 그를 영웅으로 내신9) 하려 안을 세우고 있는 중이였다. 윤화실은 그를 설득시켰다. 마침 평양에서 ‘숨은영웅대회’가 열렸다. 윤화실은 개장국 집 책임자를 구역대표로 참가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대회에 참석한 그녀가 어떻게 되어 정춘실10) 과 같은 호실에 들었다. 개장국 집 책임자는 북한의 상업영웅 정춘실을 끝없는 숭배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춘실이 이런 그에게 물었다.

“야, 너 구류장에 몇 번 들어 갔댔나?”
“구류장이라니?”
개장국 집 책임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넌 아직 애기구나. 상업영웅 되려면 검찰소 구류장에 적어도 두어 번은 드나들어야 해.”
정춘실의 이 한마디 말은 개장국 집 책임자의 정춘실 숭배열을 한껏 더 부추겼다.
‘아, 영웅 되는 길은 그렇게도 힘든가. 내 죽어도 그 길을 가보리라!’
그가 회의에서 돌아온 지 반년도 못되어 검찰소 구류장에 잡혀 들어갔다. 그러나 이 길은 상업영웅이 되기 위한 성공용 구류장 행이 아니었다.

개장국 집 책임자에게 약점이 있었다. 숫자에 어두운 점이었다. 300그램 폰트(일해주고 노임만 받는 직무)로 들어와 있던 여자가 이런 그를 대신해 개장국 집 장부정리를 해주었다. 그 여자는 협잡기가 몸에 밴 인간이었다. 그 여자가 개 수매를 받으러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수매 값을 엄청 올렸다. 그가 다녀온 단위들에서 끊임없는 물의가 일어났다. 개 수매 받는 일을 그 여자에게 더 맡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식당 일에 돌려졌다. 동시에 장부처리를 맡아 하게 했다. 장부는 장난하기가 좋았다. 숫자만 바꿔 써놓으면 그만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돈을 얼마든지 떼먹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식당운전기사가 눈치챘다. 그는 개장국 집 책임자에게 수차례 경고했다. 부기 보는 여자 그냥 두면 큰 화 당한다고, 빨리 초급당에 제기하여 내보내라고 했다. 그 운전기사는 평소에 양심적이고 책임성이 높았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자료를 개장국 집 책임자에게 내 놓았다.

윤화실은 개장국 집 책임자로부터 위의 사실을 보고 받고 부기 보는 여자를 사직시켰다. 그녀는 정리할 것이 있다며 맡아보던 장부를 안고 들어갔다. 검찰소가 이 사건을 어떻게 알고 그녀를 호출했다. 그녀는 일주일만에 병 보석으로 풀려 나왔다. 그녀는 구역 당 간부들이 자기를 씹었다고 앙심을 품었다. 그들을 모조리 잡아야 했다. 그러자면 뇌물 먹은 죄를 그들에게 들씌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남편과 짜고서 부기 문건을 위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보증인이 필요하게 되자 평소에 언짢게 생각했던 급양편의관리소 초급당비서, 개장국 집 책임자, 운전기사를 끌어들였다. 이들을 구역 당 간부들이 먹은 뇌물을 보증할 수 있는 증언자들로 둔갑시킨 것이었다. 그 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구역 당 책임비서, 조직비서를 다 잡아넣는다”고 큰소리 치며 다녔다. 게다가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며 윤화실 일당이 자기 수에 넘어가도록 굿을 하게 했다. 그녀는 다시 검찰에 잡혀 들어갔다. 검찰소에 거액의 돈을 먹였다. 게다가 담당검사와 간통한 사이가 되었다.

며칠 뒤, 개장국 집 책임자, 운전기사, 초급당비서 윤화실이 검찰에 불려 들어갔다. 예심이 시작되었다. 검사는 윤화실에게 구역 당비서, 조직선전비서에게 무엇을 얼마 섬겼는가를 대라고 했다. 윤화실은 없다고 잡아뗐다. 검사와 시종일관 땅땅 맞섰다. 1심, 2심… 윤화실의 도고한11) 자세는 여전했다. 그들이 협잡논거를 들이댈 때마다 윤화실은 부정할 수 없는 과거의 사실과 자료로 자신의 청백성을 여지없이 증명해나갔다. 그가 구역 간부들을 ‘섬긴’ 일이란 구역당 책임비서, 조직 선전비서에게 명절날 고기 2∼3킬로그램씩, 그것도 돈 받고 공급해준 일 뿐이었다. 구역에서 회의가 열리면 회의성원들에게 돈을 받고 자기 관할 내 식당에서 식사시켰다. 구역 급양편의관리소 초급당비서는 구역의 주부였다. 따라서 그가 한 일은 그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들추다 들추다 더 들출 것이 없게 되자 식당에서 쓰다가 거둬두었던 비닐장판지를 종업원들이 윤화실의 집에 가져다 한 방 깔아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것을 문제삼는다 해도 국정가격으로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검찰소에서는 그 장판지를 야매가격12) 으로 환산하여 6천 원으로 만들어버렸다. 김정일에게는 당일꾼 윤화실이 국가자금을 탕진하였는데 처리하려고 한다며 제의서를 올렸다. 김정일은 ‘당일꾼의 국가자금 탕진 죄는 용서치 말라’고 지시를 떨구었다. 윤화실은 날조된 그 6천 원 때문에 징역 7년, 선거, 출당, 철직, 가산압수, 평양에서 추방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재판에 참가했던 그의 어머니가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전쟁 때, 미국 놈조차 다치지 못한 우리 딸을 제 사람들이 죽이누나!”
전쟁시기 치안대는 대 바르고 원칙적이던 윤화실의 아버지(당시 理 인민위원회 서기장)를 붙잡아 팔 다리를 잘라버렸다. 그런 후, 바윗돌을 그의 목에 매달아 강물에 빠뜨려 죽였다. 윤화실의 모친은 자식들을 이끌고 야반도주하여 마을을 빠져 나왔다. 수백 리 길을 죽을 듯이 걸어 먼 친척의 집에 가 숨은 덕에 자식들을 살려냈었다.

윤화실의 최종 예심 때, 검사는 개장국 집 책임자와 윤화실을 맞대면 시켰다. 개장국 집 책임자의 까맣던 머리가 그새 하얀 백발로 되어 있었다. 의식도 똑똑치 않았다.
“야, 영순이! 정신 똑똑히 차리라!”

윤화실이 그를 보자 와락 소리쳤다. 그는 간신히 의식을 차렸다가는 또 헛소리 쳤다. 재판에서 그녀는 총살! 운전수는 추방! 그들을 물고 든 그 악운의 여인도 추방! 이 화근의 장본인은 천벌을 받았는지 촌으로 쫓겨 내려가자 맏아들이 죽고 신신하던13) 남편은 두 눈이 멀었다고 했다.

윤화실은 감옥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더는 살고싶지 않았다. 단식 18일째 되자 온 몸에 부종이 왔다. 오줌도 못 누는 형편에 이르렀다. 교의(감옥 의사)가 들어오더니 이런 그에게 물어뜯을 듯이 욕을 퍼부어 댔다. 그냥 욕이 아니었다. 죽지말고 싸워 이기라는 암시였다. 윤화실은 다시 살기로 결심을 하였다. 윤화실은 죽음보다 더 힘들었던 당시의 심정을 머리 속에 시로 적어 출옥 후 종이에 옮겨놓았다. 그리고 중앙당에 올리는 신소문마다 그 시를 적어 넣는 일을 잊지 않았다. 절망이란 말이 사치스럽던, 그 막막하고 비참하기만 했던 시절 그의 그 심정을, 나는 그가 육필로 쓴 변변치 못한 문체에서일지라도 충분히 감지하고 남음이 있었다.

대사령이 떨어져 2년 반만에 감옥을 나온 그를 기다리는 현실은 더욱 기가 막혔다. 급양관리소 종업원들이 그의 새 옷을 해 가지고 감옥으로 그를 마중 나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윤화실의 집에 가 윤화실이 입을 옷을 챙겨 가자고 하니 검찰에서 어찌나 악착하게 몰수해 갔는지 들고 갈 옷이 없더라고 했다. 출옥하는 동생을 마중 온 언니는 윤화실을 동생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남편이 출장 갔다고만 했다. 정신도 육체도 탈진한 상태에 이른 윤화실은 모든 것을 언니에게 맡겨버렸다.

다음날부터 구역 내 간부, 급양편의봉사망 종업원들이 윤화실이 있는 집으로 꼬리를 물듯 들이닥쳤다. 재삼 언급하지만 윤화실은 평시 종업원들 속에서 신망이 높았다. 그가 지녀온 신망은 초급당비서의 권한으로만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단적 실례로, 윤화실은 명절날이면 새벽부터 밤늦도록 명절봉사하는 이발소, 미용소 성원들에게 고급 빵과 맥주를 꼭 내주도록 해당과에 지시하곤 했다. 퇴근할 때 가지고 가 명절날 홀로 집에 있는 남편들에게 대접하게 하라고. 이발사, 미용사들은 이런 당 비서를 제일로 여겼다. 그가 멀리서 보여도 기어코 달려와 끌어들여서는 머리를 다듬어 보내곤 했다.

윤화실은 항상 원칙이 강했다. 종업원들 속에서 어떤 사건이든 일어나면 제때에 올바른 선에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한 번은 자기 관할 내 어느 식당 평종업원과 주방장이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일으켰다. 주방장이 주방에서 머리감는 현상을 목격하자 종업원이 영업 위생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충고를 주었다. 이 일로 주방장은 그 종업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압력을 가해왔다. 제대군인인지라 원칙이 강한 종업원은 지지 않고 주방장과 맞서 싸웠다. 결국은 이 문제가 초급 당에까지 상정되었다. 윤화실은 별치 않은 자기 권력을 믿고 오만하게 구는 주방책임자를 초급당 총회에서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그를 주방 책임자직에서 철직 시키고 원칙이 강한 종업원을 등극시켰다. 결국 크게 번져가던 주방장과 종업원사이의 싸움은 종업원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그 종업원은 자기 당 비서를 그렇게 고마워했다. 윤화실이 검찰소에 불려 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녀가 초급당비서를 찾아왔다. 어디에나 같이 가자며, 아니 꼭 가야 한다며 윤화실을 무작정 끌어냈다. 그녀는 어정쩡해 따라 서는 윤화실을 어디론가 말도 없이 끌고 갔다. 도중에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가느냐 물어보아도 답을 안 했다. 어느 허줄한 단층집 문 앞에 다다라서야 사연을 말해주었다. 점(占)보는 집이라고, 이미 말해놨으니 들어가자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추방감이었다. 당일군은 특히 더했다. 하물며 윤화실이 검찰소에 드나드는 그 무렵임에야…. 그 종업원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그야말로 운명을 내댄 것이었다. 이것으로 비서에게 다가온 화를 막아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 듯 했다. 굿하는 여자는 윤화실에게 살이 끼쳤다고 하였다. 흰 천에 붉은 글씨를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하였다. 윤화실은 그 말을 소홀히 여겼다. 아니 소홀히 여겼다기보다 당비서로서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 양심 때문에 감옥살이까지 하고 자기 인생의 절정기를 물 건너 보낸 것이었다.

윤화실이 출옥한 지 일주일만에 구역당 책임비서가 공민증을 보내라고 사람을 보내왔고, 윤화실은 별 생각 없이 내주었다. 다음날 안전부에서 들이닥쳤다. 윤화실의 집은 추방(그래서 언니는 그의 남편이 출장 갔다며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었다)되었으니 빨리 평양시에서 사라지라는 것이었다. 윤화실은 분통이 터졌다. 책임비서에게 일 점의 누도 미치지 않게 하려고 감옥에서 홀로 죽을 고생 다 하고 나왔는데 수고했다고 인사는 못할 망정 이 비열한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민심이 윤화실에게 쏠리자 구역당 책임비서가 겁을 먹은 것이었다.

윤화실은 언니에게 의지하여 간신히 구역당까지 갔다. 저녁모임이 끝나고 책임비서가 밤에 홀로 있는 시간이 되었다. 윤화실이 들어갔다. 그는 책임비서와 책상을 꽝꽝 두드리며 싸웠다.
“이 개 짐승만도 못한 놈의 새끼, 한번 찾아와 고생했다는 말은 못할 망정 나를 쫓아내려구? 네가 당일꾼이야? 네가 구역 당 책임비서야? 네가 인간이야?”

정의는 윤화실의 편에 있었다. 책임비서는 옴짝 못하고 몰리기만 했다. 윤화실은 그에게 안전부에 넘긴 자기 공민증을 되찾아 놓게 했다. 그제야 비로소 안 일이지만 검찰은 윤화실이 출옥을 할 무렵 그의 집을 자강도 심심 산골로 추방시켰다. 윤화실의 남편이 서평양역에 나가 이삿짐을 기차에 싣는 순간 시형이 달려와 짐을 내리게 했다. 안전부와 사업하여 평양시 바로 옆인 평안남도 대동군 원천리에 윤화실의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부서 사람들의 힘을 빌어 그의 집까지 지어주었다. 국가보위부에 있던, 마음만 그저 어질 뿐인 윤화실의 남편은 아내의 일로 해임되었었다. 그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었고, 윤화실은 강반석정치대학 출신이었다.

며칠 지나 윤화실은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에 접하게 되었다. 그의 엄마가 딸의 재판에 참가하고 온 다음날 뇌혈압이 높아져 죽은 것이었다. 이 모든 사실 하나 하나를 알게 되자 윤화실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때부터 1호 신소편지를 써서 올리고 또 올렸다. 5년만인가 중앙당 신소과에서 강력한 지도 그루빠14) 가 형성되어 내려왔다. 그런데 문제를 거의 진척시켜가던 중 상부의 지시를 받고 갑자기 철수하였다. 내막인즉 검찰소에서 중앙당 조직부 부부장에게 뇌물 6만 달러를 먹였다고 했다. 그 사건이 제대로 해명되면 평양시 검찰소, 선교구역 검찰소 일꾼들은 목을 내놔야 했다. 두 검찰소가 합동하여 뇌물작전을 들이댄 것이었다. 윤화실은 더 하소할 데가 없게 되었다. 어느 쪽으로 신소 해도 통하지 않았다. 이것을 바로 잡아보자고 무슨 고생인들 안 했으랴! 그는 홀로 속을 썩였다. 남모르는 눈물을 무수히 흘리고 또 흘렸다. 비 내리는 어느날은 음침한 집에는 들어가기 싫고 하여 강뚝 길을 안타깝게 홀로 오르내렸다. 옷이 다 젖어버렸다. 선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지고만 싶었다. 지나가던 마을농부는 이런 그가 측은하여 한 마디 했다.
“그러다 앓겠수다. 집에 들어가슈.”

윤화실이 나에게 당부했다. 이러한 내용(물론 많은 구체적인 사연들은 후에 그와 사귀면서 들은 것들이었다)들을 글로 잘 써달라고, 다시 1호 편지를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작가를 안타깝게 찾았다고 했다. 그는 나의 집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집이 멀어서 지금쯤은 떠나야 늦지 않게 들어설 수 있다”며 해가 아직 중천인데도 신소과를 나섰다. 그가 내 곁을 비우고 나자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었던 듯한 젊은 여자 둘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들이 썼던 신소편지가 부결(否決) 맞았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것을 다시 써달라고 했다. 나는 그 두 여자의 신소편지 때문에 꼬박 일주일을 허비해야 했다. 후에 알아본즉 내가 써준 두 신소편지는 무사히 통과되었고 둘 다 웬만한 정도로 신소 처리를 받았다고 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윤화실이었다. 나는 며칠을 생각해 보았다. 윤화실을 돕긴 도와야 겠는데, 그의 문제는 중앙당 신소과를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선을 타야 할까. 그렇지, 그가 강반석정치대학 졸업생이니 그쪽에서 직보(直報)하게 하자.

다음날 창작실에 출근한 나는 우선 강반석정치대학 정치부학장을 전화로 만났다. 정치대학의 1보고체계를 알아보았다. 중앙당 신소과를 거치지 않게 되어 있었다. 나는 용건을 말했다. 강반석정치대학 졸업생이 이러이러한 곤경에 처해있다, 함께 도와주자, 나도 강반석학원 졸업생을 조카로 둔 사람이고, 또 그와 같은 여성으로서 그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 없어 그런다……. 그는 나에게 본인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윤화실이 약속한 날짜를 이틀 정도 늦추어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그에게 말해주었다. 윤화실은 당장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막 울먹울먹 했다.
다음날, 우리 둘은 광복거리에 있는 강반석정치대학에 찾아갔다. 그 날은 강반석정치대학 간부들의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늦게까지 기다리다 성공을 못한 채 그 옆에 산다는 그의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찾아갔다. 정치부장이 간부과장과 함께 면회실로 나왔다. 방금 임명받았다는 정치부장은 70객의 다 꺼져 가는 노인이었다. 내가 윤화실의 신소 내용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다 읽고 난 정치부장이 모기목소리로 말했다.

“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만,”
옆에 앉았던 젊은 간부과장이 곁들었다.
“이런 문제는 정치대학에서 관할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가 금방 다 풀리는 줄 알고 기쁨에 젖어 있던 윤화실은 당황해 했다. 그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작가 선생, 이런 땐 어쩌면 좋아요?”

나는 냉정해졌다. 전화할 땐 분명 이렇지 않았었다. 젊은 간부과장이 사촉질14) 한 게 분명하였다. 나는 그들이 알아듣도록 또박또박 말하였다.
“우린 정치부학장 동지의 인도주의적 감정을 믿고 찾아왔던 겁니다. 여기서 못하겠다고 하시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윤화실 쪽에 대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돌아갑시다!”
간부과장이 다급하여 변명을 했다.
“사실 어떤 계기라도 생기면 제기 올리겠는데 지금 처지에선 가망이 없어 그럽니다.”
어떤 계기란 사람이 만들어내기 나름이다. 나는 구차스런 그의 변명을 듣는 데 시간을 더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윤화실과 함께 대학 접수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옆에서 시름에 잠겨 걷고 있는 윤화실에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이젠 더 신소하느라 애쓰지 말아요. 그러다 사람 녹겠어요. 집에서 염소 키우고 부업이나 해가며 조용히 살아요. 나도 촌에 내려가기로 결심했어요. 지금은 신소 할 때가 아니에요.”
윤화실이 침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최 선생, 진짜 내려갈래?”
“가겠어요. 더 미련이 안 가요. 반가워하는 사람도 없는 데 있어 뭘 하겠어요.”
“아, 가슴 터지누나!”
우리 둘은 쌀쌀한 초봄바람이 부는 수도의 거리를 쓸쓸하게 걸어갔다. 짙은 안개에 쌓인 수도의 희미한 풍경은 이날 따라 나에게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