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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在獨) 사회학자 송두율 씨가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30년만의 일입니다. 그동안 그는 한국 방문을 간절히 원했으나 역대 정권에서 번번이 거절됐습니다. 그런 그가 참여정부 들어 ‘해외민주인사 고국방문’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입국장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그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송 씨는 한국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결과 그는 이미 1973년에 노동당에 입당했던 - 그의 주장으로는 ‘북한 입국을 위한 통과의례’ -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상당액의 공작금 - 그의 주장으로는 ‘연구지원비’ - 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권력서열 23위라는 - 그의 주장으로는 ‘후보위원 쯤의 대우를 받았을 뿐’ - 증언도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론은 급변했습니다. 그를 ‘구속 시켜야한다’ ‘추방하여야한다’는 의견이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어야한다’는 목소리를 완전히 잠재웠습니다. 이 글이 독자여러분에게 전달된 즈음에는 한국의 사법당국에 의해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겠지만, 하여간 송두율 씨는 참으로 난감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하긴, 입국하면서 그 정도 각오쯤이야 하고 왔겠지요.

여러 가지 문제를 떠나, 황장엽 씨가 그를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지목한 것에 대해 법적 소송을 건 것을 생각하면, 송두율 씨의 인간됨됨이를 가늠해보게 됩니다. 물론 그는 아직도 이리저리 오리발을 내밀려 하지만, 노동당에 입당하였고 자신이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본인도 이미 인지하였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구 ”나는 아니다”라고 하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으니, 뻔한 거짓말을 입에 발린 듯 해대는 정치인에게 느끼는 혐오의 감정을 나는 그에게서도 맛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전향서를 요구합니다. 반성문을 쓰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전향하고 반성하여야 할 대상은 남한 국민이 아닙니다. 그가 북한정권에 경도되어 있던 동안 수령독재 치하에서 처절하게 고생한,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 북한 인민들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전향이란 대한민국의 국법을 잘 지키겠다는 빈말이 아니라, 북한 인민에게 눈물과 고통을 안겨준 지난날에 대한 뼈버린 참회와 반성이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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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송두율 씨의 죄과(罪過)로 “북한 연구의 방법론으로 ‘내재적 접근법’을 주창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친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북한학 개론’이라고 하는 책들의 맨 앞부분은 대개 북한을 어떠한 잣대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방법론이 바로 ‘외재적 접근법’과 ‘내재적 접근법’ 입니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2003년 3월 발행한 『북한이해』라는 책에는 이 두 가지 방법론에 대해 이렇게 성명하고 있습니다.

< 외재적 접근법이라 함은 북한이라는 대상을 외부인의 시각을 기준으로 분석하는 인식의 방법을 말한다. 이 방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북한체제의 전반적 현상을 분석하려 한다. 한편 내재적 접근법은 외재적 접근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대안으로 제시된 인식의 틀로서 북한이라는 대상을 분석할 때에는 북한 내부인의 시각을 기준으로 북한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한다. 외재적 접근법과 달리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사회의 각종 현상을 이해하려는 접근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체제가 설정해 놓은 이념과 논리를 기준으로 각종 사회현상을 분석해야 한다고 보는 방법론이다. > (북한이해 1절, ‘북한 이해의 관점’中)

내재적 접근법이 무엇인지 딱히 규정된 개념이 없지만, 대개 내재적 접근법이란 “한 사회가 내적으로 지향하는 목표와 이념을 잣대로 그 사회와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접근법”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북한 연구에 적용해보면 “북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이념을 잣대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럼 ‘북한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이념’이란 무엇인가. 한 국가가 지향 하는 목표와 이념은 대개 헌법(憲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한에도 물론 헌법이 있습니다.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 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국가의 지도사상을 정확히 명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재적 접근법이란 ‘주체사상’에 대해서 잘 따져보고, 철저히 이에 입각해 ‘북한이 주체사상의 원리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내부의 목표와 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다면 칭찬 받아야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내재적’ 시각으로 따끔한 비판을 해주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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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 말하자면, 나는 이러한 ‘내재적 접근법’을 적극 지지합니다. 내재적 접근법의 입장에 굳게 서 북한의 현재를 이야기해 봅시다. ‘주체사상’의 입장에 굳게 서 북한 체제를 평가해 봅시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논문은 1982년 3월 김정일이 발표했다고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대하여>입니다. 물론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펴낸 『주체사상 총서』가 있긴 하지만, 김일성 김정일이 직접 쓴 이른바 ‘노작(勞作)'을 중요시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주체사상의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한 논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논문은 황장엽 씨가 건네준 철학관련 논문을 김정일 휘하의 작가들이 ‘사회역사적 원리’니 ‘지도적 원칙’이니 하는 것들을 추가하여 변질시켰다고 하는데, 하여간 김정일 본인이 스스로 쓴 글이라 믿고 그 원문에 충실해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체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원리는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철학적 사유의 근간을 ‘사람’에 두어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였으며,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주요원리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대단히 복잡한 철학적인 배경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 일단 주체사상이란 ‘사람의 가치와 능력을 최고로 여기는 사상’이라고 이해해두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사회에서 과연 사람(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사람(인민대중)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굳이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김정일 정권은 헌법에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헌법이나 주체사상보다 더 우위에 있는 원칙을 설정해 두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입니다. Keys를 꾸준히 읽어 오신 독자들은 익히 알고 계실 터, 그 주요골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입장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수령 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니, 이런 모순이 어딨습니까? 더 나아가 ‘10대 원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그것을 자로 하여 모든 것을 재어 보며 수령님의 사상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민대중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서, ‘수령의 사상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니, 이것은 또 무슨 엉뚱한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10대원칙’에는 수령의 초상화나 석고상, 동상을 고이 간수해야 한다, 매일 2시간 이상씩 수령의 노작을 학습해야 한다, 모든 비판이나 보고는 수령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이에 내용을 전개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헌법이나 당규약 같은 것은 몰라도 이 ‘10대 원칙’은 대개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삶의 잣대가 오직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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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재적 접근법에 서서 북한 사회를 이해해보아도, 김정일이 구축한 수령절대주의는 주체사상의 기본 원리와 전혀 인연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일 스스로 심각하게 헌법과 국가의 기본이념을 무시하면서 수십 년 동안 통치해오고 있는 셈입니다. 주체사상의 원리 그 무엇도 ‘수령의 명령을 절대화하라’는 말을 합리화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것도 “이해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내재적 접근법이 아니라 ‘김정일식 접근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재적으로 비판해 줍시다. 주체사상대로 나라를 통치하라고 말입니다. 형식적인 선거를 인민들의 자유로운 출마와 투표가 가능하도록 바꾸고, 인민의 거주와 이동의 권리를 보장하며, 직업선택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주요 국가정책 사항은 인민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할 것이며, 법질서에 따라 범법자를 처벌하라고 말입니다. 북한을 민주화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에 그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 본연의 고향으로’ 북한이 되돌아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현재 김정일 정권은 외재적으로 보든, 내재적으로 보든, 절충적으로 보든, 그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용납할 수 없는 정권입니다. 3백만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순간에도 제 아비의 무덤에 금칠을 해대고, 자신의 별장에 일본인 요리사를 불러 “다랑어 뱃살, 원 모어(One More)!”를 외치는 지도자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아달라는 것은 “우리도 함께 미치자”는 말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나는 주체주의자입니다. 주체사상의 미래를 확신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니, 북한의 인민들이 주인으로 일어서 김정일 정권을 타도할 날이 곧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 북한의 인민들이 자주적 결정권을 갖는 민주정부를 머잖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거짓’ 내재적 접근론자들의 허위와 기만을 폭로하고, 진정한 내재적 입장으로 북한의 인민의 편에 굳게 서 싸웁시다. 송두율 씨도 지난날의 과오를 씻고 그 길에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