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표·시대정신 편집위원

송두율 교수의 검찰조사가 마무리되면서 송 교수는 노동당 탈당과 독일국적 포기 입장을 밝혔다. 이 입장발표는 그 시점상 검찰의 전향요구에 대한 최종 답변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전향으로 간주할지 여부는 법률이나 기존 사례의 형평성을 따져서 검찰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다만 강금실 법무장관이 이 사건에 대해 지휘권행사를 결심했다고 알려진 만큼, 현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검찰의 법적 접근이나 판단과 관계없이 학자 송두율의 처신과 입장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제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그는 오랜 기간 학문활동을 통해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지금은 한국에서 학문활동을 하겠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귀국과 수사를 둘러싸고 여러 단체나 인사들이 공적으로 관여되어 버렸다. 결국 이로 인해 귀국직후부터 송 교수는 국민을 상대로 발언을 해야만 하는 공인 비슷하게 되어버렸고, 송 교수 자신도 이를 인정하는 행동을 해오고 있다. 따라서 피의자라는 차원을 떠나 공인이라는 기준 하에 의문점들을 제기해본다.

진정한 참회 없는 거짓 반성

우선, 송 교수는 노동당을 탈당하겠다고 했는데 그 분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노동당 가입은 단순한 학술적 행위가 아니고 중대한 정치적 행동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왜 노동당을 선택했으며, 이제는 왜 이 선택을 포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송 교수는 노동당 탈당이라는 결과만을 보아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모호하게 남겨놓은 동기에 대해서는 각자 유추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둘째로 송 교수는 그동안 자신의 학문활동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추구되었다고 주장해왔으며, 국내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송 교수는 73년부터 노동당에 가입하였고, 90년대에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의 학문활동이 과연 이런 정치적 소속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동당 당원으로 소속되면서 북한과 관련을 맺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의 학문적 활동은 명백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가이드라인은 북한정권과 체제에 대해서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명백하게 밝혀진 그의 거짓말들에 대해 어떠한 해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국내입국 후 당국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거짓말을 했다. 노동당 당원가입에 대해서도 입국신고서 작성과 같은 의례적 행동이었다고 변명을 하였고,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에 대해서는 가능한 부인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원 가입 전에 교육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증거가 밝혀지고 본인도 결국 이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이번 기자회견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을 특별히 부인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발뺌이 어렵다고 판단한 듯 하다.

송 교수가 통상적 의미의 북한의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다. 북한당국이 학자이자 해외교포 운동가인 그를 조직사업, 정보수집 등의 활동을 하는 보통의 공작원으로 쓰려고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송 교수의 학문활동이나 해외교포들 내에서의 공개적 영향력을 통해 북한에 이롭게 활용하는 데 더 큰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도 일종의 예우차원의 명예직 부여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송 교수는 통상의 공작원과의 이런 차별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어떤 이해를 구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송 교수는 북한당국에 대해 나름의 자율성이나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고 강변하고 싶은 것 같다. 실제로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김용순이 송 교수를 심하게 욕하면서 특별교육을 부탁했다고 한다. 철저한 지시와 복종관계를 관철시키려는 김용순과 이를 거북해하는 송 교수와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송 교수의 이런 처신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의 북한과 관련된 제반 활동이 포용되거나 그냥 넘겨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일종의 거래관계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신념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북한이 무언가 득을 주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무엇을 제공했다는 ‘장사논리’나 남한으로부터 기피인물이 된 만큼 북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논리’만 남게된다.

모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송 교수의 뻔뻔함

그 동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송 교수가 북한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것은 인정이 된다. 그러나 그는 그 대가를 남한에서 구하려고 하는 것 같다. 즉 송 교수는 남한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대가를 얻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자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송교수의 지지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보여진다.

한 부류는 친북주사파들이다. 한총련 학생들을 포함하여 주사파 학생운동 경험을 가진 젊은층에서 송 교수의 저서들은 큰 인기를 얻어왔다. 아마도 이들 중 상당수는 송 교수가 노동당원이었으며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반기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좌파적 성향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송 교수가 강조해온 이른바 ‘경계인’이나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과 같은 객관적(?) 학문 태도나 입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이들은 송 교수의 북한과의 특별한 관계를 믿고 싶어하지 않으며, 심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그 중에는 송 교수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송 교수 지지자들은 대체로 송 교수가 이른바 명백한 전향을 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특히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친북주사파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좌파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북한비판에 거부감을 갖고 있고, 북한체제에 대해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가까이 친북주사파 활동을 하다가 뒤늦게 북한체제의 허상을 알게 된 필자의 경험으로는 무려 2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많은 것을 직접 겪어본 송 교수가 북한의 진면목을 모를 리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송 교수는 흔히 신좌파로 분류되는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의 학문적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스탈린주의에 대해 필연적으로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그의 학문적 입장에서 일인전제통치의 북한체제가 정상으로 보였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 교수가 이제 남한을 선택했다고 하면서도 북한체제에 대해 여전히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주로 남한에서 그의 지지기반이 되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추측이 되는 것이다. 그는 귀국직후 끊임없는 줄타기를 시도했다. 한편으로 당국의 선처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지자들의 기대도 저버리지 않으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곡예를 펼쳐왔다. 이런 위험한 곡예의 동력은 어떤 것도 잃고 싶지 않다는 그의 탐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