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황장엽의 방미를 왜 그토록 두려워하나

탈북자동지회 황장엽 명예회장의 미국 방문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황 명예회장의 방미(訪美)는 미 의회 및 기관, 단체에서 수년 전부터 있어왔던 초청에 의한 것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이를 막아 왔습니다. 황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처음에는 ‘국민의 권리로서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여 ‘때가 되면 가겠다’고 유연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번 황 명예회장의 방미는 국가정보원의 특별보호를 받아오다 일반보호대상으로 변화하여 이제는 미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며, 현재 미국의 정치인들이 북한의 핵문제에만 집중하여 ‘빠른 선택’을 하게 될 것을 우려, 북한의 인권상황과 김정일의 본질에 대해 명확히 알 것을 충고하는 의미에서 이루어진 결정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소속되어 있는 범청학련(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의 학생들이 황장엽 명예회장의 미국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이른바 ‘결사대’를 꾸렸다고 합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황 명예회장이 “망명이후 한 일이라는 것은 북한 지도자와 북한 사회에 대한 모략책동과 거짓말투성이 뿐”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면서 “미국의 대북핵전쟁책동에 날개를 달아주고 남북대결을 격화시키리라는” 어리석은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유치한 장난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으나, 그동안 김정일 독재체제의 유지에혁혁한 공신의 역할을 해오면서 폭력시위만을 일삼아오던 학생들이 아직도 상상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회원의 주장 글을 싣습니다. / 편집자

6 15 청년학생연대에 보내는 글

양심을 가진 청년이라면 <황장엽 방미 저지를 위한 결사대>가 아니라
김정일 독재체제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 인민 구출을 위한 결사대>를 꾸려라!

조혜민 (대학생)

최근 범청학련 남측본부 게시판에는 <민족분열, 반북모략, 전쟁불쏘시개 황장엽 방미 저지를 위한 결사대>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극심한 실망을 넘어 분노의 감정마저 느꼈다.

6 15청년학생연대 반통일척결운동본부(가) 집행위가 발신인으로 된 “황장엽 방미 저지 실현을 위한 1차 교양자료”에는 “미국의 대북전쟁책동에 불을 붙여 한반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황장엽의 방미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북핵 위기로 불거진 한반도의 불안은 북한의 일방적인 제네바 협정 파기에 그 원인이 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유독 북한 정권과 그 추종자들만이 그렇지 않다고 우기고 있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명백한 사실을 호도하기 위해, 자신들의 핵개발이 그 무슨 자위적인 조치라도 되는 것처럼 “미국의 전쟁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핵 억제력이 있다”는 철면피한 주장을 계속하며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남한의 친북좌파들이 북한 정권의 이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다. 당신들의 주장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인가.

현재 북한의 실태는 대부분 밝혀졌다. 북한인권 NGO 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체계화된 탈북자 조사자료들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고,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만도 3천 명이 넘어 북한 실태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외에 여러 통로를 통해 확인된 자료를 근거로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고, 얼마 전 한국의 국회에서도 ‘대북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리고 이미 황장엽씨는 한국으로 넘어온 1997년 이후 북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저서나 공개석상을 통해 모두 밝힌 상태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는 조건에서 황장엽 씨의 방미가 “민족분열, 반북모략, 전쟁불쏘시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당신들은 “황장엽 씨가 남한에 와서 한 일이라는 것은 북한 지도자와 북한 사회에 대한 모략책동과 거짓말투성이 뿐”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수긍할 수가 없다. 북한의 식량난과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것이 거짓인가? 1995년 수십만의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는 것이 거짓인가? 김정일 독재체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했고 수십만의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거짓인가? 황장엽 씨의 이런 말들이 거짓이라면 그 근거를 한번 제시해 보라.

김정일 독재하에서 수백만의 북한 인민들이 굶어죽었다. 수십만의 탈북자들이 중국 땅을 떠돌고 있다. 20만의 북한 인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인민들은 여전히 극심한 통제와 공포정치, 생활난에 시달리며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당신들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폄훼하거나 ‘남북 간 불신과 대결을 부추기는 반통일 세력’이라고 매도한다. 심지어는 ‘미국의 전쟁책동에 불을 붙이는 민족의 배신자’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나는 당신들의 주장을 보면서 당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수구세력의 논리와 무섭게 일치하는 것을 느낀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그것을 덮기 위해 정치논리를 앞세워 탄압했던 과거 수구세력의 논리와 지금 당신들의 논리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당신들은 큰 착각에 빠져 있다. 당신들의 행동이 민족을 위한다는 착각이 실제로는 북한 인민, 나아가서는 민족의 등 뒤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 인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면 함부로 북한의 현실을 이야기하지 말라. 함부로 ‘민족’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도 말라. 당신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 북한 인민들은 굶어 죽었고, 공개처형장에서 총탄을 맞아 처참하게 쓰러져 갔다. 체제에 비판적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모든 가족들이 죽음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식량이 없어 두만강을 건너다 물에 휩쓸려 죽어갔고 우리 누이들은 몇 푼의 돈에 팔려 다니며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차라리 침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