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日 동시 기자회견 성명서 |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해 투쟁하는 한국의 『북한민주화네트워크(NKnet)』와 일본의 『구출하자 북조선 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는 지난 1998년 8월과 2000년 9월, 2001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북한 내부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영상은 북한 청년 안철(安哲) 씨가 목숨을 걸고 비밀 촬영한 것으로, 안철씨는 이로 인해 용기 있는 프리랜서 기자에게 수여하는 세계 최고의 명예로운 상인 <로리펙상>을 본인은 참석치 못한 채 수상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안철 씨는 또 하나의 영상을 우리에게 보내왔다. 지난 세 번의 영상은 북한의 장마당과 꽃제비, 반정부 낙서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번에 안철 씨는 ‘대북지원식량’이 전용(轉用)되어 장마당에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는 실태를 카메라에 담아 고발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북한의 예상 수확량이 384만 톤인 반면 예상 수요량은 492만 톤으로 부족량이 108만 톤에 이를 것이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북한 핵문제로 인해 북한정권에 대한 인식이 곱지 않은 흐름 속에서도 오직 북한인민의 생명을 생각하며 식량지원을 계속해 왔다. WFP는 올해 51만 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할 예정이며, 한국정부 역시 지난 5월 개최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통해 쌀 40만 톤(278만석)을 북한에 지원키로 약속하고 지금까지 20만 톤을 전달해 주었다. (11월말까지 전달 완료 예정)

그러나 이번 영상에서 보듯 한국과 국제사회가 굶주린 인민들을 먹여 살리라고 보낸 쌀은 포대째로 장마당에 보내져 고액에 판매되고 있다. 이번 영상은 양강도((兩江道)의 도청소재지인 혜산(惠山)시에서 촬영된 것으로, 화면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선명하게 박힌 쌀포대가 열려있고 그 위에 ‘호남쌀 190원’의 가격표가 꽂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Kg에 190원이라는 말이다. 양강도 혜산시는 북-중 국경에 인접한 관계로 내륙지방에 비해 물가가 싼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지역에서는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탈출한 북한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내륙 산간지역의 쌀값은 250원을 넘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대략 2,000원 정도라는 사실에 미루어볼 때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지원식량’은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물론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적힌 물건이 나도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하면, 한국 정부의 대북 지원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마당에 나도는 쌀은 당, 군, 보위부 등 독재기관을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힘있는 자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는 식량이 되고 있어 대북식량지원 본래의 취지와 크게 어긋난다. 더욱이 북한 장마당에서 갑작스레 대한민국 쌀이 대대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의 자발성에 의한 개혁조치라기보다, 핵문제 등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정권이 이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에게서 돈을 끌어 모아 독재정권을 유지해 보려는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정부와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식량의 분배투명성 문제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남는 쌀이니 주자’는 식으로 북한의 항구에 내려놓기만 하는 쌀은 ‘사랑의 쌀’이 아니다. 독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일 뿐이다.

지난해 북한은 한국에서 지원한 식량을 투명하게 분배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거짓말이 잔뜩 적힌 종잇장이었다. 올해에는 10만 톤 당 한 차례씩 분배절차를 확인하기로 하고 현재 남포, 흥남, 청진 등 3개 도시에서 5∼6명의 확인요원이 조사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이번 영상을 보면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항구도시에서 현지 주민 몇 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은 고통 받는 다수 인민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한 채 ‘눈감고 아웅 하는’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하다.

보다 구체적이고 정밀한 확인절차를 마련하여야 한다. 북한 현실에 정통한 민간단체와 언론이 조사활동에 함께 참여하여야 하며, 조사지역도 북한 전역을 대상으로 하여 수시로 진행하여야 한다. 이것은 굶주리는 생명을 도우려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취해야 할 ‘의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김정일이 군사적 위협과 독재체제로 정권을 연명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인민을 살릴 것을 근본적으로 촉구한다.

2003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