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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저는 날이 일찍 밝는 여름철에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 다른 무엇보다도 ‘산에 오르기 참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행운이 하나 있다면, 언제라도 산에 오르고 싶으면 등산화에 물통 하나만 달랑 들고 오를 수 있는 산이 어느 도시 인근에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 많은 산을 올라 보지는 않았지만 산은 언제나 오르는 자를 감싸는 것 같고 한 걸음씩 내딛다보면 그 순간만은 온갖 시름들도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한반도에 있는 산 가운데 가장 오르고 싶은 산은 금강산입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산이 없지만,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하구나”라는 동요를 부르며 자라서인지, 금강산은 그 어느 산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울 것만 같습니다. 한국인에게 금강산은 비단 아름다운 산일 뿐 아니라 ‘그리운’ 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또한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노래가 한 몫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2.

(1절) 누구의 주재(主宰)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2절)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 발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한상억 작시, 최영섭 작곡 ‘그리운 금강산’은 ‘목련화’ ‘보리밭’ ‘선구자’ 등과 함께 온 국민이 사랑하는, 이른바 ‘국민가곡’입니다. 한국의 성악가치고 이 노래를 애창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느 합동 공연 때는 이 노래를 독창하겠다고 서로 다투는 바람에 결국 합창을 하도록 결정했다는 에피소드마저 전해집니다. 외국 성악가나 합창단이 한국에서 공연을 하거나 음반을 내놓을 때도 필수곡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김일성·김정일에 의해 금강산이 수난을 당했듯, 노래 ‘그리운 금강산’도 수난(?)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1961년 6·25 11주년을 맞아 KBS(한국방송공사)에서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을 공연하였을 때 수록된 9곡의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에 옮긴 노랫말은 창작 당시의 가사입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은 이렇게 불리지 않습니다.

우선, ‘누가 주재(主宰)하여 만들었는가’라며 금강산을 만들어낸 조물주의 위대함을 표현한 ‘누구의 주재런가’는 악보가 출판될 때 ‘주제런가’로 잘못 인쇄되는 바람에 그렇게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수로 인한 의도되지 않은 개사(?)라 볼 수 있고,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리면서 중요한 몇 부분을 수정하게 됩니다. ‘더럽힌 지 몇 해’는 ‘못가본 지 몇 해’,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 인가’,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는 ‘맺힌 슬픔 풀릴 때까지’ 등 세 구절입니다.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었는지는 굳이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3.

글쟁이에게 가장 자존심 상하는 일은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고쳐달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지시를 받을 때입니다. 자신도 그 취지에 공감하여 흔쾌히 수정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고칠 것을 요구받는 경우에는, 지조 있는 글쟁이라면 차라리 펜을 꺾는 길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수정한 한상억 시인의 결단은 놀랍습니다. 수정이라기보다 ‘전향(轉向)’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를 뒤져보면 한상억 시인 스스로 고쳤다고도 하고, 작곡가의 요청에 의해 수정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튼 단 세 구절을 고쳐 씀으로써 노래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의 가사가 나은지, 수정된 가사가 나은지는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작곡되었으니 ‘더럽힌 지 몇 해’라는 가사는 아마도 반공, 반북적인 의미를 담은 표현일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시 금강산을 ‘더렵혀졌다’고 까지 말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금강산은 ‘더럽혀졌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금강산은 더렵혀졌습니다. 우선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정일에 의해 더럽혀졌습니다. 워낙 봉우리가 많아 도무지 셀 수 없다는 뜻으로 ‘일만 이천봉’이라고 하였듯 수많은 금강산 봉우리 곳곳에 김정일은 숱한 우상화 ‘낙서’를 자행했습니다. “금강산은 조선의 명산 세계의 명산입니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그 무슨 명언이라며 “김일성 1947년 9월 27일”이라는 꼬리말을 달아 향로봉 암벽에 글자 한 자 크기가 10미터가 넘게 새겨놓았고, 세존봉에는 “금강산은 천하절승, 김정일”, 만수봉에는 “주체의 향도성 김정일”, 국지봉에는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을 새겨놓았습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를 모두 새겨놓은 봉우리도 있고, 김정일의 환갑을 앞두고 바리봉에는 “천하명장 김정일 장군 주체91년 2월 16일”이라는 글씨를 글자 당 30미터, 깊이 1.5미터의 사상 최대의 크기로 긁어놓았습니다. 이밖에도 금강산에 새겨진 낙서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금강산이 너무 아파 신음하며 분노의 주먹을 움켜쥐고 있을 것입니다.

4.

얼마 전 어느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 공약집을 보니 “(내가 총학생회장이 되면) 금강산 관광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학과 학생회장 및 1학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겠다는 계획이었고, 그 이름도 거창하여 ‘통일모꼬지(소풍)’였습니다. 요즘 한총련 운동권 학생들이 이러한 공약을 내걸면서 당선되고 있으며 실제 몇 개 대학에서 금강산으로 신입생 환영회나 학생회 간부 수련회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 행사의 예산은 물론 학생회비가 아니라 ‘기성회비(期成會費)’입니다. 대학의 예산으로 학생과 교직원들은 참가비를 거의 지불하지 않고 금강산에 다녀옵니다.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하라’는 남한 정부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대학을 비롯한 정부기관과 단체들은 너도나도 공금을 털어 금강산 관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산은 다시 한번 더럽혀졌습니다. 김정일에게 달러를 갖다 바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든 마다 않는 한총련을 비롯한 친(親)김정일 세력에 의해, 그리고 오로지 ‘고인(故人)의 유지(遺志)’라는 이유만으로 거의 오기를 부리다시피 밀어붙이는 어느 대기업에 의해, ‘퍼주면 퍼줄수록 평화는 유지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남한의 일부 시민(?)단체들에 의해, 여전히 햇볕정책의 망상에 빠져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 남북관계가 끝장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남한 정부에 의해 금강산은 더렵혀졌습니다.

그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계속하는 사이 지난 몇 년간 김정일의 수중에는 금강산 관광을 통해서만 1조원에 이르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북한의 몇 년 치 예산에 이르는 이 돈이 ‘국방위원장’의 손에 들어가면서 플루토늄 핵무기는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로 업그레이드 됐고, 우리의 국방위원장은 그 핵무기를 “다 만들었다”고 선포하면서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잘도 지켜주고 계십니다. 금강산은 김정일의 주요한 돈벌이, 군사력 확장의 원천기지가 되었습니다. 타계한 한상억 시인이 하늘에서 금강산을 내려보고 계신다면, ‘더럽힌 지 몇 해’이라는 가사를 괜히 바꾸었다고 통곡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5.

‘그리운 금강산’이 정작 금강산에서는 부를 수 없는 노래라는 사실을 아는 분도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그룹과 북한이 계약을 체결할 때 관광버스 및 유람선 내부의 노래방에서 불러서는 안 될 노래까지 합의하였던 바, ‘그리운 금강산’은 그런 금지곡 가운데 하나입니다. 금지곡은 남한의 군가(軍歌)와 애국가, 국가경축일 노래, 그리고 대중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 ‘가거라 삼팔선’ 등 71곡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영섭 선생의 경우에도 지난 2000년 금강산을 방문하였지만 정작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나지막이 콧노래로 흥얼거려야만 했다고 합니다.

“북한 예술단이 남한에서 공연할 때도 부르지 못할 노래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한의 공연단이 북한에 갈 때도 김정일에게 돈을 주고, 북한의 공연단이 남한에 올 때도 김정일에게 돈을 주고, 급기야는 뒷거래로 얼마를 준다고 계약을 했던 바 그것을 전액 받지 못하자 평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비행기 탑승까지 미루며 남쪽 끝 제주도에서 떼를 쓰는 꼴불견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돈의 액수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런 뒷거래를 통해 김정일의 버릇을 계속 나쁘게 길들이는 것이 문제이며, 그렇게 돈을 쏟아 붓고도 김정일의 무례한 요구에는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북화해 분위기에 맞춰 개사까지 한 ‘그리운 금강산’을 단지 북한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는 이유로 못 부르게 하는 ‘비굴함의 악순환’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금강산을 생각다보면 그동안 가져왔던 정(情)과 그리움이 뚝 떨어집니다. 북한과 관련한 단체에 있다는 이유로 ‘금강산을 다녀오라’는 권유를 종종 받습니다. 비용도 저렴하게 해 주겠다고 손짓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오기를 부려봅니다.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라는 노랫말처럼 북한의 인민들이 ‘자유 만민’이 되었을 때 그들과 함께 정갈한 마음으로 옷깃 여미며 오르겠다고 말입니다.

마흔 번째 Keys를 독자 여러분에게 전하며 그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다집니다. 우리 그때, 김정일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2천만 동포의 손에 정중히 입산료(入山料)를 건네주며,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르-은-다”라고 시원하게 노래 부르면서 손에 손 맞잡고 오릅시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함께 오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