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가상인터뷰

김정일과의 대화

김정일과의 만남은 이른바 ‘72호’라고 불리는, 함흥시에 위치한 김정일의 개인별장에서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북북서쪽에 있는 함흥시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이곳에 세워진 김정일의 별장은 기자가 그동안 방문해 본 세계 각국 지도자의 별장 가운데 가장 화려했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에 맞춰 응접실로 나온 김정일은 과연 땅딸만한 체구에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복장은 그가 늘 벗어본 적이 없는 인민복 차림에 검은 색이 약간 들어간 안경을 끼었다. 전날 밤 비밀파티의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탓인지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당신의 직함에 대해 묻겠습니다. 북조선은 특이하게도 ‘국방위원장’이 최고지도자이고 당신이 그 직책을 맡고 있는데, 굳이 국방위원장이라는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소, 나는 국방위원장이요. 원래 국가주석이 최고지도자여야 하는데, 8년 전에 죽은 내 아버지가 ‘영원한 주석’으로 남아 있소. 그럼 내각 총리나 의회 의장이 대표자가 되어야 할 텐데 알다시피 내가 최고권력자요.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아직도 모르겠소? 우리나라는 다른 무엇보다 ‘무력’을 앞세운다는 뜻이요.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결심했소. 우리나라가 살 길은 아무도 얕볼 수 없을 만큼 무력을 키워, 그 힘으로 먹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우리나라가 살 길’이 아니라 당신의 정권이 살 길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지 않습니까?

“허허허, 기자 양반, 초반부터 날카롭게 잘 지적하는구만. 맞소. 나는 북조선 인민들의 살림, 이런 것에는 관심 없소. 인민들이야 내버려두면 좌우지간 자기들이 알아서 살 것이오. 내 관심사항은 오로지 내가 그동안 유지해왔던 권력을 놓치지 않는 것이오. 그것만 보장받는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용의가 있소.”

그래서 ‘체제보장’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바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요. 우선 미국이 체제를 보장해준다고 내가 마음을 놓고,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더 불안하고 그럴 것은 없소. 미국이 체제를 보장해주든 말든 나는 상관없소.”

그런데 그것을 왜 줄기차게 계속 요구하는 거죠?

“그야 당연하지 않소? 일단 그렇게 해서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을 버는 거고, 우리가 미국의 압박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는 명분도 되고…. 그래서 주장하는 거요. 또 한편으론 미국이 체제보장은 못해줘도 ‘무력침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줘도 나는 크게 승리한 것이라 생각하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너네(미국) 무력침공 안하겠다고 했으니까 주한미군 철수 시켜라, 그리고 또 한미상호방위조약 그거 집어치워라, 합동군사훈련도 하지마라… 뭐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요구를 할 수 있을 것이요. 협상에서 기본은 계속 요구조건을 내놓아 상대의 혼을 빼놓는 것 아니겠소?”

그렇군요. 그런데 체제보장이나 무력불사용의 조건으로 당신은 핵을 포기해야 될 텐데요?

“핵을 포기하다니, 내가 미쳤소? 내게 핵은 목숨이나 다름없소. 핵개발은 무슨일이 있어도 계속 할 것이요. 숨어서 핵개발 하는 것이야 별로 어렵지도 않소. 지금까지 시간 끌면서 잘 만들어왔는데 막판에, 이제 성공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그걸 포기할 바보가 어딨단 말이요. 끌끌끌… 거기에 속아주는 사람이야말로 바보 아니요?”

정말 핵개발을 성공하긴 한 건가요?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있는 척 하는 것이 핵이라고 알고 있소.”

북조선에 아직 핵이 없는데 있는 척 하는 거라면 당신은 큰 오판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핵개발을 시인함으로써 지금까지 당신에게 돌아온 이익이 없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서 김정일은 약간 당황하는 듯 했다.) 물론… 그렇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내게는 방법이 없소.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요. 계속 협박하다보면 남조선이 겁을 먹을 테고, 남조선이 미국더러 ‘북조선 좀 가만 놔주시오’라고 애걸하면 미국놈들도 우리한테 고개 숙이고 들어오겠지 뭐.”

내가 볼 땐 당신이 자꾸 오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미국이 핵문제에 있어 당신에게 양보를 할까요?

“어허, 기자양반…,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것이요?”

기자가 자꾸 김정일식(式) 사고 판단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그는 약간 화가 난 듯했다. 주먹을 쥐고 탁자를 탁 치며 일어섰다 배석한 관리들이 난처해하자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그는 요즘 이성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그냥 ‘막가자’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다시 이어지는 김정일의 말이다.

“내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있소. 설마 그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겠소? 아니, 내 아버지와의 과거 인연이 있는데 나 몰라라 하겠소?”

그러나 그는 냉정한 국제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듯했다. 흔히 이야기하듯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현재의 중국 지도부는 항일빨치산의 인연으로 이어지던 그 지도부가 아니며, 러시아 역시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결정이든 불사하고 있다. 물론 통일한반도가 친미(親美)국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중국정부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붕괴가 꺼림직 하겠지만, 계속 김정일을 두둔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충격파가 더 크겠다고 판단되거나 통일국가의 성격에 대해 미국과 모종의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기자의 소견이다.

그럼 핵무기가 완성되면 그것을 한국이나 일본을 향해 쏠 의향이 있습니까?

“하하하… 그것 또한 바보 같은 질문이요. 내가 미쳤소? 이렇게 멋진 별장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내가 뭣 하러 화를 자초한단 밀이요. 핵은 그냥 협박용, 장식용, 돈벌이용 일 뿐이요. 그런데 그게 잘 먹혀들어가고 있소. 지금 남조선을 보시오. 자꾸 협박하니까 ‘돈으로라도 평화를 사야한다’며 계속 달러를 갖다 바치고 있지 않소? 내가 그것들 때문에 가장 기쁘다오. 참으로 기특한 것들….”

핵이 ‘장식용’이라는 표현은 또 뭡니까?

“아, 우리 인민들에게, 그동안 우리가 고생을 해왔던 것은 이렇게 핵을 갖기 위해서였다, 이제 핵을 가졌으니 우리는 무서울 것이 없다고 선포하면 ‘역시 우리 장군님의 지략은 대단해’하고 인민들이 감동할 것 아니오. 그럼 그동안 쌓았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을 거요. 나는 그것 또한 계산에 넣어두고 있소. 거기다 핵 몇 알을 선박에 실어서 무역선으로 위장하고 저 멀리 중동의 동지들(테러집단을 지칭하는 듯함)에게 전달하면 큰 돈을 벌수도 있을 것이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태워 불 피우고… 역시 핵이란 대단하지 않소?”

기자가 볼 때 김정일은 핵의 광신자인 듯했다. 포커판에서 올인을 하듯, 그는 이제 핵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볼 수 있었다. 과연 그의 도박이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마디 질문을 통해 그의 진심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딱딱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화제를 돌렸다.

요새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뭘 그런 당연한 걸 다 물어보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야 ‘미스터 부시’지. 아휴… 꿈속에서도 그 놈이 자꾸 나타나 나를 괴롭힌단 말이요. 제발 좀 없어졌으면 좋겠소.”

갑자기 기자 쪽으로 몸을 밀착시킨 김정일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귀속말을 하듯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부시가 재선될 가능성이 있나?”라고. 재선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는 모르겠지만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다고 미국의 현재 대테러전쟁·세계민주화전략의 기조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는 9·11 이후 완전히 바뀐 패러다임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김정일은 특유의 빠른 목소리로, 그러나 약간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말이야…. 후세인이 더 열심히 싸워줬으면 좋겠어.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과 싸우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 나는 정말 신이 나. 그런데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빨리 해결해 버리면…, 그땐 세계 뉴스가 온통 나에게로 관심이 쏠릴 거란 말이야. 나는 핵무기 몇 알을 더 만들어내야 안심을 하겠는데, 그 시간을 전 세계 반전(反戰)운동인가 하는 애들이 좀 벌어줬으면 좋겠어. 좀 더 열심히 투쟁할 순 없나? 내 주머니 돈을 털어서라도 도와주고 싶어.”

사람들은 당신의 건강과 후계자 문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건강? 얼마 전에 용순이(조선노동당 대남담당비서 ‘김용순’을 이르는 말로 그는 지난 11월 병사하였음)가 죽고, 조명록(조선노동당 총정치국장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도 아파서 중국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고, 아무튼 이렇게 왼팔 오른팔들이 떨어져 나가니 요샌 나도 힘이 빠져. 그래서 공식활동도 자제하고 있지. 거기다 마누라(고영희를 지칭하는 말. 고영희는 지끔껏 유방암을 앓아왔으며 요새 병세가 악화돼 외국에서 의사를 초빙했다는 정보도 있음)도 아프니, 이젠 나는 누굴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후계자는 어차피 아들인 정남이나 정운, 정철이 가운데 골라야겠는데 어느 놈 하나 맘에 쏙 들진 않아. 그러니 더 답답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대단히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스스로 사임을 하고 새로운 세력에게 정권을 평화적으로 넘겨줄 계획은 없으십니까?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조선에서 나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 그런 내가 조용히 물러난대도 그들이 나를 가만히 놔둘 것 같나? 외국으로 망명을 간대도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수 있는데 세상 어느 곳인들 내가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겠나? (손사래를 치며) 절대 말도 안돼. 자살을 하는 한이 있어도 내 스스로 정권을 내놓는 일은 없을 거야. 헛소리 말라우!”

어차피 인터뷰가 끝나기도 했고, 기자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대단히 화가 난 김정일은 의례적인 악수조차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독재자의 가련한 최후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인터뷰 내내 그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지 30여년. 김정일 최후의 시간을 향해 초침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은 김정일과의 인터뷰를 가상으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물론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만한 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속셈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뜻에서, 인터뷰 형태로 소개하였습니다.

북한 핵문제가 점점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시간은 북한 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비장의 카드라고 생각했던 ‘핵협박’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김정일은 요즘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일 것이라 추측됩니다. 핵이 있다고 하는데도 ‘못 믿겠다’고 나오는 미국을 상대하자니 복장이 터질 노릇일 것입니다. 주요 외화 원천이었던 미사일과 마약 판매의 출로도 막혀버렸고 비자금 계좌마저 정보기관에서 뒤지고 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모든 저금통이 밑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제 국제사회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김정일과의 전쟁에서 사상적으로 승리하는 결정타를 날려야 할 때입니다. 압박정책은 이미 실효를 거두고 있고, 남은 것은 사상전(思想戰)입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김정일의 반인륜적 독재통치의 실상을 널리 알려 연대전선을 확대합시다. 민주주의 세력이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승리는 확정적입니다. 2천만 북한 인민이 희망과 믿음을 얻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