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인권의 시차(時差)

지금 나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명절을 앞 둔 탓인지 비행기에 빈 좌석이 보이지 않고 시골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매일 긴장된 생활을 해오다가 이제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니 갑자기 피곤이 몸을 덥친다. 오랜만에 한국 신문을 펼쳐보며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한국에 돌아오면 나는 늘 며칠 동안 무기력증에 빠진다. 동료들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시차적응이 안돼서 그런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알다시피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한 시간의 시간차가 있다. 시차적응이고 뭐고 할 게 없다. 하지만 내가 ‘시차에 시달린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정말 나는 심각한 시차를 느낀다. 바로 ‘인권의 시차’다.

북한 인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 거기서 불과 몇 시간 밖에 안 되는 곳에서 사치스런 요구로 들끓는 남한. 기내에서 신문을 펼치니 “하루 밥 2공기… 1인당 쌀 소비량 13년간 36%줄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민의 쌀 소비가 갈수록 감소해 지난해엔 1인당 하루에 밥 2공기도 채 안 먹었고, 한 달에 두 번 꼴로 식사를 거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못 먹은’ 것이 아니라,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것이다. 지금 남북의 차이는 ‘못 먹은’과 ‘안 먹은’의 차이다. 그 차이가 얼마나 멀고도 먼 차이인지, 굶어 죽을 지경에 까지 이르러 보지 못한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차이를 가늠하느라 현기증이 난다.

또 다른 면을 펼치니 한국 정부가,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삼으려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정신문화연구원 부설로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만들 계획이라는 뉴스가 보인다. 1단계로 50명의 연구인력과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단다. 그것도 한 달 내로 설치하겠단다.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모르겠다”는 국가인권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다음에, 이에 대해 북한인권단체들이 항의하자 그때서야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과 관련한 팀을 꾸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나서. 게다가 그 ‘북한인권팀’이라는 것도 실질적으로는 실무자 한 명만이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망하지 천 년이 훨씬 넘은 나라의 역사를 찾아오는데 - 누가 훔쳐간 것도 아닌데 - 50명의 인력과 100억의 예산을 즉각 투자하면서, 내 동포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데는 참 많은 고민(?)의 시간이 걸렸다. 얼마의 예산이 투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구려사를 우리 역사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지, 지금 당장 굶주리고 학살당하고 있는 동포들의 인권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한지, 무식한 나는 그 차이를 몰라, 그 차이를 가늠하느라 다시 한번 시차적응의 현기증을 느낀다.

신문의 다른 면을 보니 국가인권위원회가 탈북자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중국 연변 등지에서 조사를 벌이겠다며 이와 관련해 1억 5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해두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너무 반가워 혼자서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런데 옹졸한 나는, 내가 이번 취재과정에 사용한 경비와 1억 5천만원을 비교해 본다. 1억 5천만원이면 내가 한달 동안의 재중 탈북자 취재를 50번 정도는 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 정도면 탈북자를 천 명 이상은 만나볼 수 있고 더욱 생생하게 북한 인민의 삶을 세상에 알려줄 수 있다. 아무튼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어떤 루트를 통해 탈북자를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사활동을 안전하게 마치기를 기도해 주고 싶다.

지금 비행기는 중국 대련(大連) 상공을 날아가고 있다. 연길(延吉)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북한 상공을 우회해 인천으로 들어온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바로 한반도를 가로질러 올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좀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하긴 그때가 되면 내가 중국에 갈 일도 없겠지. 신문을 보니 이번에는 “중국 작년 8.5% 경제성장율”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스(SARS) 등으로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더구나 그렇게 큰 나라가 매년 5% 이상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혹자는 중국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땐, 그리고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는 ‘독재라도 좋으니 배불리 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독재라면 한 몇 십 년 더해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김정일은 독재를 하는데다 인민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있으니 아무리 장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중국을 갔다 왔으면 좋은 것을 배워올 것이지 신의주에 카지노 도박장이나 만들 생각을 하다가, 사랑하는 동생 양빈이 구속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이번에 만났던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독자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를 고를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과장되었다거나 거짓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면, 다음 번에는 꼭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중국에 가야겠다. 보고, 듣고, 밤새 토론하면서 당신이 직접 철저히 검토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 자처한다. 온갖 배부른 진보의 담론을 이야기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유언비어는 바로 믿는 사람들이 왜 탈북자들의 증언은 믿지 못하겠다는 걸까? 아니, 그 증언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걸까? 그래서 나는 한국의 진보를 혐오한다. 한국의 진보여, 좌파여, 당신들은 가짜다.

이제 한 시간 뒤면 나는 인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잘 방문하고 이렇게 돌아왔다고 신고하게 될 것이다. 입국심사대의 직원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입국확인 도장을 찍어줄 것이다. 그래, 나 안 죽고 살아서 돌아왔다. 그 숱한 사람들 ? 오늘도 체포의 위협에 떨면서 한 줌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그 숱한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나 혼자 살겠다고 되돌아왔다. 배 터지게 기내식(機內食) 먹으며 되돌아왔다. 그래, 나 잘났다. 잘난 나라에 태어나 여권 한 장 들고 세계를 누빈다. 그래, 나 정말 잘났다. 그런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 하고 똑같이 사지가 붙고, 나하고 똑 같은 말을 쓰던 그들은…. 내가 뭐가 그리 잘나서 그들은 누리지 못하는 이 자유를, 이 행복을, 이 더러운 평화를 지긋지긋하게 누리고 있는 것인가. 아마 나는 며칠 동안 또 다시 이런 생각들을 하며, 인권의 시차를 적응하지 못해 갈 지(之)자로 휘청거리며 서울 시내를 배회할 것이다. 힘들다고 또 소주잔을 기울이며 흐느낄 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도 나의 배부르고 거만한 고민일지 모른다.

내겐 고민이지만, 북한 인민들에게는 현실이다. 그 현실을 목도하고도 양심의 떨림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 현실을 알고도 그들을 구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자처한다면, 이 세상에 지식은 죽었다. 양심은 죽었다. 지식인은 없다. 나 역시 약해지지 않으리라. 세상의 거짓 양심과 거짓 지식, 거짓 진보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한에서 내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임무가 되리라 다짐한다.

신문을 덮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재신임과 총선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단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여부를 국민들에게 확인해보는 것에 안달할 것이 아니라, 선거의 자유마저 없는 2천만 동포를 생각해야 한다. 김정일을 체포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는 날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가 하지 않으니 우리가 하는 것이다. 민과 관이 손을 잡고 북한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날을 기대하며 펜을 놓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세상 어디나 파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