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편지
대학 문에 선 조카 은진에게

‘북한’을 생각하며 실천하는 대학생이 되자.


1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 늘 어린애라고 생각했던 네가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니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구나. 하긴 너를 본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네. 그때만해도 소녀였는데, 이젠 숙녀가 되어 뽀얗게 화장하고 짧은 치마도 입어보면서 한껏 어른 흉내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후훗, 이렇게 말하니 내가 나이 지긋한 중년의 아저씨나 된 듯 하네. 삼촌 역시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여전히 사회초년병 ‘청년’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래도 너보다는 인생을 십 년 이상 더 살아본 선배로서, 졸업과 입학의 선물을 대신하여 짧은 편지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려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젠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생맥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야 보다 자연스럽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편지를 띄운다. 재미없고, 딱딱하고, 너에게는 관심 없는 이야기들일 수 있더라도 너그럽게 끝까지 읽어주렴.

은진아.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삼촌은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 삼촌은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이었고,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의 심려를 무척이나 끼쳐드렸지. 어머니 이마에 어린 주름살 가운데 서너 개는 아마 그 당시 삼촌이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삼촌이 “그 동안의 학생운동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였을 때 많은 분들이 기뻐하셨다. ‘이제야 이 녀석이 정신 차렸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테지. 그래, 삼촌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단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이젠 마음 접고 도서관에 자리 잡고 취직준비나 할 줄 알았던 삼촌이 “새로운 학생운동을 하겠다”고 뛰어다니자, 친지분들은 혀를 끌끌 차셨다. “하긴, 제 버릇(?) 남 주겠어?”하시면서 말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지금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친지들이 책망하시듯 ‘돈 못 벌고 명예도 없는’ 이 일을 줄기차게 하고 있단다.

직업이 ‘북한민주화운동’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제 대학 문에 발을 내딛는 은진이에게 삼촌이 하고 싶은 말은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대학생이 되라’는 것이다. 아니,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아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인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 마땅하다고 삼촌은 생각한다.

2.

은진아. 삼촌이 운동권 학생이던 시절에 많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가 있었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되지.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 가. 우리 민족 우리 내 땅 평양만 왜 못 가….”

경쾌한 리듬의 이 노래는 가사에서 잘 말해주고 있듯 택시요금 5만원만 내면 갈 수 있는 북녘 땅인데 왜 가지 못하느냐, 소련도 가고 달나라고 가는데 왜 우리 동포가 사는 북녘 땅만 못 가느냐는 내용을 담고 있지. 그 노래를 작사한 분은 노동운동가로, 당시는 재야운동권의 집회현장에서 불려지던 노래였는데 이제는 라디오 방송에서도 나오는 것을 보니 세상이 참 좋아진 것 같다. 또 이 노래가 처음 나오던 시절에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을 2만원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5만원으로 ‘인상’되어 있데…. 여하튼 삼촌은 아직도 이 노래를 좋아한단다. 그리고 이 노래의 의미를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맞는 말이다. 노래 가사처럼, 평양은 전라도 광주보다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이야. 그런데 말이다, 평양까지 택시요금을 5만원 주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말이다, 왜 사람들은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의 문제 ? 북한의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어느 공중파 TV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니 주인 없는 강아지가 질병에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보여주던데, 왜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는 눈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우리 동포가 굶주리고 학대 받는 문제에는 강아지만큼의 동정과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걸까? 어느 연예인이 누드 사진을 찍었다던지, 어느 운동선수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마음속에 품은 경멸의 표시를 했다던지 하는 일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인터넷에서 높은 조회 횟수를 기록하면서도, 정작 내 동포의 생존의 문제, 내 동포가 살아가는 체제의 문제에는 무관심한 걸까?

북한 문제는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서? 은진아 네게 묻고 싶구나. 북한 문제가 정말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아니, 그에 앞서 물어보자.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니? 이런 질문을 하면 대개 ‘통일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하더구나. 하지만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통일의 한 당사자인 북한의 문제에는 시큰둥할까? 도대체 누구와 어떻게 통일을 하려는 거지?

그래, 요새는 적잖은 청소년들이 통일을 반대한다고 하더구나. 그 이유를 살펴보니 “남북이 통일 되어봤자 손해 보는 것은 남한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하더라. 어떤 학자가 이에 대해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개인주의적 사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한 것을 보았다. 삼촌은 이러한 분석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이것을 가지고 청소년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사람의 습성을 나무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이익’이라는 것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외면한 채 등 돌리고 누리는 이익이라면, 그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그 고통이 스스로 자초한 고통이 아니라 누군가의 강압에 의한 고통이라면, 고통의 신음소리 앞에 침묵하고 방치하는 것은 가해자(加害者)에 동조하는 행위나 다름없지 않을까.

은진아. 삼촌 역시 통일이 되든 안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 민족이니까 무조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논리라고 생각해. 통일을 주장하려면 분단으로 인해 겪는 여러 가지 불안정성, 사회체제의 왜곡 등을 근거로 들어야겠지. 남북이 갈라져 있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통일로 인해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면, 영원히 분단된 상태로 남아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그럼 앞에서 한 말과 모순되지 않느냐고? 아니야. 삼촌이 하려고 하는 말은, 삼촌은 북한민주화운동을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가 통일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한 주민들의 현실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민주화운동은 절실히 필요하다는 거야.

3.

그럼 북한, 북한 주민들의 현실이 과연 어떠하기에 그러는 것이냐. 사실 삼촌이 오늘 은진이에게 가장 자세히 이야기해줘야 할 내용이 이런 것들인데, 나는 그것을 은진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구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마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라 생각해. 아니, 현재 북한 주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엔 그 어떤 문장으로도 부족함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쉽게 ‘굶어 죽는다’ 라고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하지만, 정말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러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문장에 담긴 끔찍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지. 그와 마찬가지로 수백 권의 책으로도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우리가 고스란히 알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찾아 읽으면서 일단은 ‘북한의 현실을 바로 아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인간적 의무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은진아.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적잖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루머는 여과 없이 잘 받아들이면서도 북한의 현실과 관련된 각종 증언은 잘 믿지 않으려 한다는 거야. 특히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은 많이 과장되었거나 심지어는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구나. 삼촌으로서는 참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다. 물론 ‘모든 책을 그대로 믿는다면, 모든 책을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지. 의심의 습관을 버리지 말고, 늘 지적 사유를 게을리 말라는 격언이겠지. 탈북자들의 증언도, 그들의 워낙 긴박한 상황에서 내어놓는 증언들이다 보니 과장된 측면도 더러 있다는 것을 삼촌도 알고 있다. 그러나 굳이 범위를 정해 말하자면 대략 80%이상은 믿을 수 있다고 삼촌이 담보한다. 그래서 은진아. 삼촌은 오히려 탈북자들의 증언을 꼼꼼히 분석해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읽지 않으면서 못 믿겠다고 말하는 경향성을 비판해주고 싶다. 그 증언의 80%만 사실이라고 하여도, 현재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놓고 인정해 주어야 할 지…, 그것 역시 은진이 너의 판단에 맡긴다.

4.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다.” (베드로 후서 2장 2절)
은진아. 삼촌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온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한다. 무식(無識)을 합리화하는 것 아니냐고 좀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말을 삼촌은 늘 가슴에 담아 살아 왔고, 앞으로도 이를 좌우명 삼아 살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독재 사회에서 지식인의 고통은 알고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실천은 하고 싶은데 그 힘이 너무 미미해 한숨 짓고, 때론 좌절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져 인생을 방황한 지식인의 모습도 우리는 영화와 소설을 통해 많이 보았다. 그런 모습이 예술세계에서는 멋지고 낭만적인 소재이겠지만 고통 받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그저 ‘배부른 쁘띠 브르죠아’겠지. 물론 모든 지식인들이 그랬던 건 아니란다. 투옥과 고문, 때로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면서도 웃으며 민중의 편에서 싸웠던 선각자들이 많았다. 먼저 알고 깨달았으니, 또한 남들보다 행복한 조건에서 자라왔으니, 그 혜택을 고통 받는 민중에게 되돌려주자는 것이 민주주의와 인간해방의 길을 먼저간 선배들의 숭고한 자세였다. 그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고, 이들이 오늘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삼촌도, 부끄럽지만, 그런 길을 가고 싶고, 은진이 너도 그런 길을 가라고 주저 없이 권해주고 싶다.

북한 동포들의 현실에 대해 알면 알수록 너는 몸부림칠지도 모른다. 그 현실을 똑똑히 전해 듣고도 양심의 떨림이 없다면, 지나친 말일 수도 있지만, 삼촌은 그를 ‘심장이 식어버린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현실을 보고, 해결방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촌은 분명히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현실을 보고도, 그 보다 중요한 다른 무엇이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이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은진아. 아직은 깊은 생각을 못해봤을 너에게 강박하듯 일방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 부었구나. 네가 보다 관심 있을 연애이야기, 공부이야기,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흥겨운 자리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리고 북한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주저 말고 삼촌에게 질문을 해주렴.

아무쪼록 너의 대학생활이 네 인생의 있어서 가장 큰 성장의 기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공부 땡’이 되어버리는 기형적인 한국의 풍토에서, 대학입학이 곧 ‘공부 시작’으로 생각하며 정진하라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 너의 ‘제2의 인생’에 더없는 축복의 인사를 전한다. 파이팅!!


추신 : 아참.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대학 새내기에게 삼촌이 권하고 싶은 책은 ‘김정일의 요리사’(월간조선), ‘북한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북한 이야기’(정토출판) ‘감춰진 수용소’(시대정신) ‘등나무집’(지식나라), ‘고난의 강행군’(정토출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