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북조선입구에서』


“북한에도 돈이 있다. 그러나….”

“북한에 돈이 있다.” 책을 펼치자마자 다소 도발적인 머리말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오직 사업적 계산에 도움이 될만한 사실과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건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였다.”는 편집부의 말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머리말 제목만으로 북한 비즈니스를 위한 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2000년 12월에 발간되었다. 지난 2000년 6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들의 회담이 열렸다. 94년 11월 경협 활성화 조치 이후 남북간 교역이 일정하게 이루어지긴 했지만 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남북경제실무접촉회의>와 <남북경협추진위>를 개최하는 등 경제협력 증진을 위한 협의가 추진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책은 이러한 남북경협의 흐름에 맞춰 나온 북한 비즈니스를 위한 안내서이다.

책 출판을 담당한 ‘편집부'는 추천의 글에서 북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북한의 법과 제도, 북한의 사회구조, 북한 사람들의 생활, 의식, 문화 등에 대해서 현지인의 수준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사업과 관련된 북한 정보만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장차 통일을 준비하는 상호이해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책을 발간했다고 말한다. “북한에서 45년 이상 다각도로 체험한 사람이 쓰는 입체적 현장보고서”라고 밝힌 것처럼 북한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인 최주활 상좌가 북한에 대한 “생생한 실화와 풍부한 사례”를 담아 현실을 정확히 전달해 주는 것과는 달리 ‘책 편집부’의 생각은 북한의 현실에 비해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당시의 국내외 정세와 정서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종종 현실에 기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책 편집부의 예견처럼 “북한이 테러지원국 모자를 벗게만 되면” 북한의 경제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인가? 북한이 테러 지원국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변화와 노력이 있는가? 2000년 8월부터 11월까지의 상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지금도 국제자본의 물꼬가 북한으로 트이고 있는가? 프랑스의 대북투자 설명회에서 장 자크 그로아르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의 “역사는 우리를 놀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 책 편집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기회와 가능성”을 말하며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이 바탕에는 “북한은 변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북한의 변화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의 기준은 북한 인민의 삶이 될 것이다. 2000년에 바라본 북한 주민들의 삶과 지금 북한 주민들의 삶의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어가도록 하자.

북조선입구로 들어서며

북조선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가능하다면 책 뒤에 있는 지도를 찢어 책 옆에 놓아두기를 권하고 싶다. 지도는 북한 철도망, 북한 전도, 평양 전도 이상 세 가지다. 북한철도망은 두 번째 주제인 “여행과 교통”편에서 참고하고, 북한 전도는 모르는 지명이 나올 때마다 손으로 짚어가며 찾다 보면 북한 전체를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양 전도는 이야기 배경으로 평양이 많은 만큼 평양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참고하시라.

이 책은 크게 4가지 주제를 잡아 북한 인민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장 사람들, 가정 생활, 여행과 교통, 북한의 사업문화”이다. 4번째 주제인 “북한의 사업문화”는 조선로동당 이야기와 제의서 이야기를 빼면 사업과 관련된 내용이라 필자는 부록 정도로 취급했다. 사업을 준비하려는 입장보다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인 최주활 상좌가 1995년 10월에 서울에 입국한 관계로 주로 95년 상황을 다뤘고 2000년까지 남한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일부 첨부하기도 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필자는 이 책 ‘북조선 입구’를 통해 인무무력부 최주활 상좌(이하 최상좌)의 책임 안내에 따라 북조선으로 들어가 보았다.

북조선입구 1. 시장 사람들

“가을볕이 눈처럼 쏟아지는 어느 날, 황해남도 해주시 해청동에 있는 경기장 너른 공터에 들어선 장마당에는 아침부터 수백 명의 인파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해주시와 이웃한 벽성, 신원, 옹진, 청단, 강령은 물론이고 멀리 자강도와 량강도에서 열차를 타고 온 사람까지 있었다. 날마다 열리는 농민시장의 풍경은 해방 전 남북 어디서나 흔히 보았던 5일 장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물건이 넘치고 사람이 넘치고 인정이 넘친다.”(29쪽)

벌써 독자들의 손은 책 옆에 놓은 지도를 찾아 움직일 것이라 생각한다. 보통 장마당이라고 하는 농민시장은 오래 전부터 농촌에서 열어왔다. 하지만 농가에서 나오는 남새(채소)나 계란 정도를 팔 수 있을 뿐 공산품이나 음식물은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가에서 공급하는 양이 부족하다 보니 이 규정이 점차 실효성이 떨어졌고 엄격하게 반입이 금지된 쌀도 1993년 3월 최악의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판매를 눈감아주고 있다. 도시에서는 사회주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장마당을 열지 못하게 하다가 1980년대 중엽부터 배급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허용하였다. 199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장마당은 북한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주민들의 식량과 생필품의 상당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오던 장마당이 배급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북한 당국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오죽 했으면 2002년 7·1 경제조치 후에 장마당을 통제하였다가 얼마 되지도 않아 장마당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규제하였던 물품까지 판매하도록 허용하였겠는가. 물론 이러한 변화는 북한 정권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이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있다”는 장마당도 돈 없는 주민들에게는 비참한 처지를 확인시켜 주는 장소일 뿐이다.

 최 상좌의 필자를 평양시 외곽에 있는 간리역의 한 역전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 식당 책임자(북한에서는 주인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는 사리원행 붉은기호를 타고 온 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그 손님은 중국 단둥(丹東)에서 중국산 내의와 스웨터를 한 보따리 떼다가 사리원을 가는 길이라 했다. “식당 책임자는 아까부터 그 손님의 옷 보따리에 있는 꽃무늬 레이스가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눈이 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결핵을 앓아온 열 두 살짜리 딸이 하나 있는 식당 책임자는 얼마 전 평양시 적십자 병원의 젊은 의사로부터 해 넘기기 어려울 것이란 말을 들었다. 영민하고 착했던 딸아이에게 좋은 옷 한 번 못 해준 것이 늘 마음에 걸렸지만 꽃무늬 드레스는 200원(95년 당시 일반노동자 월급은 80원 정도)이라는 말에 엄두를 못냈다. 의약품이 부족한 북한에서 결핵은 거의 불치병에 속한다.” (44쪽)

 장마당을 벗어나 평양에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돈은 있지만 예비표(과다한 구매를 막기 위해 세대별로 할당해 주는 종이 쪽지. 평양 중심 구역을 제외한 지역에는 예비표라는 것이 없다)가 없으면 구입할 수 없다. 남한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쇼핑도 할 수 없다. 매대 밖에서 살 물건을 골라 지적하면 판매원이 전표에 품목과 값을 기입해 준다. 그 전표를 가지고 출납에 가서 돈을 내고 물건을 받는 것이다. “북한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에 최고급 상품들을 갖추고 있는 평양 제1백화점과 그 다음으로 쳐주는 제2백화점은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장이다. 남한 사람들과 해외 교포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백화점을 참관할 때는 예비표를 많이 발급해 방문객들이 올 때까지 왔다갔다하게 한다.”(P57) 백화점을 이용하기 힘든 일반주민들은 국영상점에 가서 질이 낮은 제품들을 사야 한다. 이 제품들도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 구매카드를 가지고, 한 사람이 1년에 살 수 있는 소비기준에 따라 구입할 수 있다. 혹 신발이 떨어져도 구매카드가 없거나 소비기준에 맞지 않으면 신발을 취급하는 국영상점에 가서 살 수 없다. 사람들이 장마당으로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화점을 나와 길을 걷는데 최 상좌가 불쑥 책을 읽고 있는 필자에게 묻는다. “북한 사람들이 1전짜리부터 500원권 지폐(95년 기준) 중에 잘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일까.” 나는 1전이라고 말했다. 최상좌는 고개를 저으며 100원권 지폐라고 말한다. 100원권 지폐는 김일성의 초상이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폐가 접히는 부분에 초상이 걸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구김이 가면 다림질해서 잘 펴야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100원짜리 지폐는 잘 갖고 다니지 않으려 한다. 지난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에서 보여준 북한 응원단들의 초상화 사건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몇 년 전만 해도 500원이 최고액이었는데 2002년 7월 1일 이후에 1000원권 지폐를 발행했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5000원권을 발행했다.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물가와 임금이 대폭 인상된 데다 인플레까지 겹쳐 통화가치가 급락한 때문이다.

북조선입구 2. 가정 생활

최 상좌가 이제 북한 주민들의 가정생활을 보러 가자고 이끈다. 중앙당의 고위간부나 무력부의 소장급 이상 장령(장성)이 살고 있는 평양의 신형 고층아파트를 둘러보았다. 평수는 28평 정도, 방이 2개 이상이고, 목욕탕, 수세식 화장실, 베란다와 냉·온수 시설을 갖추었지만 남한의 중산층보다 생활 수준이 낮았다. 평양시에는 전후에 지어진 구형 아파트가 매우 많다. 주로 하급직 공무원,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데 평수는 13평 정도이다. 보통 부엌과 방 한 칸으로 되어 있으며 화장실, 샤워실도 없다. 아파트 복도 끝에 공동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하게 되어 있었다. 주택배당은 철저하게 간부의 직급에 따라 진행되고 높은 간부일수록 층이 좋고 평수가 넓은 집이 배당된다.

 북한의 전기사정은 식량난과 함께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전기가 부족하여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이 거의 없고 열차 또한 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기 절약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전개되는데 “모든 세대마다 전기용 가전제품을 신고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한 달 전기 소비량을 정해준다. 그리고 전기소모가 큰 물품에 대해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다.” 평양시의 경우는 그래도 가정의 전기 사용량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지방은 정말 절박하다. 오죽하면 전기도 명절에만 공급한다고 ‘명절공급’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심지어 고위간부들과 외국인들을 위한 초대소에도 전기 보장이 제대로 안되는 실정이니 그 실태를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양초 아니면 등잔불이 준비되어 있고 고위간부들과 외국인들을 위한 초대소에도 계단 옆에 촛대가 상시 놓여 있다. 이렇게 전기 보장이 제대로 안 되는 관계로 일반 주민들의 경우 저녁은 암흑세계다.

 이런 생활문제도 어렵지만 가정생활에서도 일상적인 감시를 받는 곳이 북한이다. 인민반장(남한의 통·반장에 해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인민반 관내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가, 어느 집에 어떤 손님들이 자주 드나드는가, 어느 세대가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는가 등을 늘 감시하여 구역(군) 보안부(경찰) 소속의 보안원에게 보고하는 일”이다. (152쪽) 또 평양시 같은 경우 승강기가 있는 곳에 승강기 운정공이 있다. 이른바 엘리베이터 걸이다. 이들의 임무는 승강기 단추를 눌러주고 질서를 잡는 일이지만 이외의 중요한 일은 어느 집에서 특이한 물건(천연색텔레비전(컬러TV), 랭장고, 재봉기 등 고가품과 많은 양의 고기나 계란 따위)을 집으로 가져오는가를 감시하여 보위원 또는 보안원에게 보고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정공과 인간적으로 친숙하게 지내고 색다른 음식이나 물건이 있으면 인사차로 자주 만난다고 한다. 그리고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모든 가정집에 대해 숙박검열을 하는 제도가 있다. 김정일을 모시는 행사가 예견될 때나, 큰 규모의 국제행사가 열릴 때, 이 외에도 1년에 두세 번 정도 정기적으로 불시에 실시한다. 몰래 숙박을 시킨 가정의 세대주(가장)나 걸린 당사자는 엄중히 문책을 받고 경중에 따라 무보수 강제노동까지 시킨다. 특히 평양시는 숙박 질서가 엄격하여 평양시를 제외한 다른 지방에서 자식이 부모의 집, 부모가 자식의 집, 친척 또는 친구들이 찾아와 잘 때에는 그 집주인은 인민반에 있는 숙박대장에 숙박이유와 여행증 번호를 기입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인민반장은 밤 11시경에 분주소(파출소)에 찾아가 인민반 동정과 함께 숙박상태를 보고해야 한다.

최 상좌도 숙박검열에 걸린 적이 있다고 했는데 평양에서 불과 25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진 평성(평안남도 도청 소재지)에서 올라오신 어머님 때문이라고 했다. 목 디스크 때문에 고생하는 최 상좌를 보려고 여행증 없이 평양에 들어와 주무시다가 숙박검열에 걸려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했다. 차를 타면 30-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에 계시는 어머니가 여행증이 없어 자식의 집에서 잤다고 문책을 받는 사회가 바로 북한 사회이다.

북조선 입구 3. 여행과 교통

최 상좌는 필자에게 마지막으로 북한의 “여행과 교통”에 대해 살펴보자고 했다. 북한 주민에게는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내에는 궤도전차나 무궤도전차 등이 있기는 하지만 먼 거리를 운행하지는 못한다. 목탄차가 있긴 하지만 성능이 떨어져 장거리 운행이 힘들뿐 아니라 최근에는 참나무 숯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그나마 운행이 힘들다고 한다. 휘발유 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또 자가용차가 있지만 소유하는 사람이 극소수(등록된 도 관내를 벗어날 수 없다)이고 도로사정도 좋지 않아 장거리를 운행하는 차가 많지 않다. 그리고 도로에 대한 1호전용 도로(김정일 전용 도로)와 통행제한 규정이 있어 도로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중의 하나이다.

하여튼 이런 저런 이유로 기차를 많이 이용하는데 기차표 구하는 것이 또 어렵다. 돈만 있으면 쉽게, 빠르게 구할 수 있지만 일반 주민들이 기차표를 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우선 열차표를 살 수 있는 예비표를 먼저 구입해야 한다. 예비표를 구입하려면 2-3일 전에 기차역 매표소를 다녀가야 한다. 이 표를 구하겠다고 1-2일 역에서 묵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도 침대와 상급차는 해당이 안 되고 일반석뿐이다. 좀더 좋은 차석을 차지하는 것은 당의 간부들과 최소한 줄이 있어야 일반 침대차라도 얻어 탈 수 있다.” (176쪽) 이렇게 힘들게 열차를 타도 어려움이 있다. 우선 차는 부족하고 탈 사람은 넘치다 보니 한번 타면 다음 역에 내릴 때까지 꼼짝할 수 없다. 또 전력사정 때문에 연착을 각오해야 한다. 전력 난이 극심할 때에는 “3-4일을 선로에서 헤맬 때도 있다. 여름철에 연착이 될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강냉이나 배추, 무라도 뽑아 먹지만 눈밖에 없는 겨울에는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난다.”

기차를 타고 다른 지방으로 갈 때는 통행증이 있어야 한다. 평양이나 국경지역에 가는 경우에는 승인번호를 중앙의 인민보안성에서 받아야 한다. 통행증도 신청한다고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직계 가족의 결혼이나 환갑이 있을 경우, 그것도 미리 신청해야지 어물어물하다가는 식이 다 치러진 다음에야 갈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통행증 없이는 군과 군 사이, 도와 도 사이의 경계를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뇌물만 잘 고이면 통행증 발급뿐만 아니라 기차표 사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움직이기가 힘든 북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말은 생각하기 힘들다. 남한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지만 갈 수 없는 묘향산, 금강산, 백두산을 북한 주민들도 가지 못한다. 뜨거운 여름에도 해수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바다를 끼고 있는 주민들 아니면 간부들뿐이다. 일단 통행증 발급이 어렵고 교통이 열악하고 막상 갔다고 해도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북한을 방문해 동해안에서 해수욕을 하던 외국인이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함께 따라간 최 상좌에게 물었다고 한다. “조선 사람들은 아마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왜 저토록 아름다운 백사장과 바다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가?”라고.

북조선입구에서 나오며

최상좌와 함께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렇게 몇 가지만을 정리해 본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은 여러분들이 직접 최상좌의 안내를 받아 둘러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 나온 내용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처지를 되새기며 읽다 보면 그들의 고단한 삶에 가슴이 저려올 것이다. 경제라는 것이 국민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남북경협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 현재의 남북경협이 얼마만큼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기여했는지를 냉정하게 평가해보고 경협의 방향과 확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경협의 목적이 단순히 경제적 실리나, 정책 선전을 위한 것이 아닌 만큼 진정한 민족의 화합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에서 경협을 추진하고 확대해 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