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평
『김정일로열패밀리』


몇 일전, 필자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중에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퍼레이드’라는 미국 잡지가 22일자 특집기사를 통해, 북한 김정일 정권이 자국민에 대한 극심한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며 2년 연속 ‘세계 최악의 독재자’로 선정하였던 것이다. 이 조그만 땅에서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이 나올 줄 누가 알았으랴? 한편, 세계 최악의 독재자가 제일 미워하고 두려워하는 황장엽 선생을 규탄하기 위해, 한총련 학생들이 탈북자동지회 사무실 근처로 몰려들었다는 국내 기사도 볼 수 있었다. 60년 전 일제 시대 벌어졌던 친일행위도 대지로 끌어 내어 부관참시하는 정의의 사도들이 어쩌다 현재 세계 최악의 독재자라 불리는 김정일의 친위대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일까? 한편의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 한복판에, 이 독재자의 숨겨진 비밀을 폭로했던 숨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7년만에 복원되어 세상으로 나왔다. 故 이한영(본명 이일남). 1996년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동아일보사)을 출간하면서 김정일 정권의 ‘숨겨진 가족이야기’를 세상에 알려낸 죄(?)로 두 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비운의 생을 마감했던 그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한 동안 그를 잊고 지냈던 필자는 오늘 한 일간지를 통해 이씨의 미망인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보며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미망인은 이미 남편은 고인이 되었지만, 지금 중학생인 딸아이에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꼭 말 해주고 싶었다’고 출간의 변을 대신했다. 그러나 故 이한영 씨의 딸보다 이 책을 더 소중히 읽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한총련 학생들이 아닐듯 싶다. 필자는 고 이한영 씨의 미망인과 딸아이의 눈물을 보면서 김정일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왜 이 세상에서 하루빨리 사려져야 하는 인간인지 다시 한번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간 김정일에 대한 소중한 정보 담아

그 동안 김정일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봤지만 그 가족의 ‘깊은 내면’까지 증언한 책은 『김정일 로열패밀리 (구판-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를 제외하고는 만나보지 못했다. 혹여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 또는 정철, 정운 중의 한 명이라도 망명을 하여 남으로 내려 온다면, 이 책보다 더 ‘깊은 곳’까지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대는 쉽게 현실화 되기 힘들 것 같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김정일을 둘러싼 로열패밀리의 비화(秘話)와 김정일의 사람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서 보거나 함께 생활 해야만 알 수 있는 김정일에 대한 정보가 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김정일의 후계자로 세간에 거론되기도 했던 장남 김정남의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 유학 시절까지 구체적인 사실들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추천사에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이 책은 북한의 체제적 특성과 인간 김정일이 어떠한지에 대해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하였으며,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故 이한영 씨가 이 책을 통해 제공하는 귀중한 정보를 방치하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며 일독을 권하고 있다. 필자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사실들을 정확히 알아가길 바란다.

성혜림의 조카가 된다는 것

저자는 1960년 평양 중구역 대동문동에서 아버지 이태순과 어머니 성혜랑의 첫 아들로 태어났다. 저자의 본명은 리일남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양 근교에 있는 과학원 수학연구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로동신문」국제부장, 외할아버지는 선교피복 공장 지배인이었다.

그의 외가 집안은 6·25때 월북한 집안으로 비교적 출신 성분(토대)과 가정 형편이 좋은 편이었다. 또한, 그의 이모가 바로 김정일의 본처인 성혜림이다. 저자는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성혜림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김정일의 친인척이 되어 부와 명예를 한 순간에 얻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때부터 저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시작하게 된다.

1976년 자신의 사촌동생인 김정남(당시 6세)과의 만남이 시작되면서 평양의 웅장한 관저를 처음 보게 된다. 당시 이모 성혜림과 사촌 동생 정남이는 동 평양에 있는 85호 관저와 중성동에 있는 15호 관저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김정일과 그 일가의 관저는 호위사령부 밑에 있는 2 호위부가 담당하고 있다. 관저 울타리 높이가 4m 가까이 되고 그 위에 전기철조망이 쳐 있으며 철조망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 관저 근무자는 사상, 능력, 외모 등을 참조해서 뽑고 바깥 출입이 매우 어려우며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렇듯 김정일의 관저는 철통보안을 유지하고 있으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밖으로 새 나갈 수도 없다. 최고 통수권자의 경호는 어느 국가에서나 최고 수준에서 이루어지지만 북한 김정일의 관저와 숙소는 요새를 방불케 한다. 항상 불안한 것이 독재자의 내면인 듯 싶다. 저자는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두 차례 정도 더 관저를 방문한적이 있다. 저자와 김정일과의 만남은 정남이의 생일에 이루어졌는데 그 자리에 초대될 수 있는 사람들은 김정일의 최 측근 중에서도 최 측근들 이었다고 한다.

정남이의 3백평 오락실을 선물로 꾸며

정남이의 생일은 5월 10일인데 선물 준비는 매년 4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그 비용만도 1백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또한 선물은 모두 해외에서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제 날짜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선물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금 도금한 장난감 권총, 각종 놀이기구와 장난감인데 3백 평쯤 되는 정남이의 오락실을 새롭게 바꾸는데 사용되었다.(p.36)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믿기 어렵지만, 사치와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는 김정일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닐 것이다. 1972년 김정일이 본격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부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김정일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김정일의 권위에 도전 한다든지 김정일이 하는 행동 또한 따라 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과 같은 행위였다.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1주일에 한 번 정도 김정일이 하는 파티를 따라 하다가 발각된 적이 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김정일이 장성택에게 “네가 뭔데 내 흉내 내가며 연회를 하느냐. 이 땅에서 세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p.97).

모스크바 유학

1976년 성혜림이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떠나자 저자도 그 동안 다녔던 만경대 혁명 학원을 그만 두고 이모의 간병을 위해 동행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서울 행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은 평양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평양에서의 생활은 비록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누리는 생활이었지만 ‘화려한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은 부와 더불어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저자 이한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모스크바 주재 외교관 자녀들을 위한 클럽들에 마음대로 출입하였다. 심지어는 절대 가서는 안될, 미 해병대가 지키고 있는 아메리칸 클럽에 북한 대사관 넘버를 붙은 승용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절대 권력을 배경으로 금지된 자유를 누려본 것이다. 또한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유고슬라비아 등 동유럽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이러한 나라도 있었구나’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돈만 있으면 백화점에서 자기가 사고 싶은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자신이 배웠던 자본주의 나라와 직접 가서 체험해 본 자본주의의 괴리를 알게되면서 저자는 사고의 대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껏 자신은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저자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알게 되었고, 시민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낭만적이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공화국이 얼마나 한심한 지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관저 생활과 인민들의 생활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알게 되면서 인민들의 삶을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이 북한당국의 입장에서는 ‘반동적 생각’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본주의의 맛을 본 마음을 돌리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저자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김정일은 정책적으로 외교관들이 외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공화국의 충실한 전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의 목적도 있지만 아이들을 인질로 잡아두는 것이었다.(p.256) ‘자본주의 병’에 걸린 저자는 1982년 9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에 가는 법을 알아보기 위해 남한 대사관에 전화를 걸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남한 망명을 하게 된다.

예견치 않은 서울행

저자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남한행 비행기에 자신의 몸을 싣게 된다. 비록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은 미국이었지만 먼저 남한에 가고 나면 미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이었다. 당시의 느낌을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가 생각났다. 제네바를 떠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어머니와 이모를 잊은 적이 없지만, 그때는 더욱 그랬다. 내가 남조선으로 간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잘했다고 할까, 미쳤다고 할까? 김정일이 알게 되면 큰일 날 텐데……. 걱정이 많이 됐다. 수용소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온갖 걱정이 머리를 눌렀다. 과연 내가?잘하고 있는 짓인지 후회도 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여기서는 나를 데려가기 위해 좋은 말을 하지만, 막상 서울에 가면 지금처럼 잘 대해 줄 것인가?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자유스럽게 살면서 미국도 가보는 희망적 미래도 상상해봤다.”(p.280)

1982년 10월 1일 드디어 비행기는 서울에 도착했다. 이제는 후회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한국에 와서도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모나 정남이 얘기는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민족 전체로 보면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정일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에서 엄청난 호강을 했다. 모스크바 유학을 할 수 있었고, 자본주의 국가를 여행할 수도 있었다. 강변한다면, 내가 남한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김정일이 유학을 보내준 덕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 덕분에 우리 가족도 호사스럽게 살았다.”(p.281)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새로운 삶

남한에서의 적응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랬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자신의 몸에 배어있던 사회주의 문화와 더불어 ‘로열패밀리’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체질화된 특권의식을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남한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저자는 ‘리일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한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은 그대로 전주 이씨로 하고 이름은 ‘한영(韓永)’. 한국과 더불어 영원하라는 의미로 지어졌다.(p.303) 이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순조로워 보였지만 대학 때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돈을 많이 써야 했고, 그로 인해 항상 돈에 허덕였다. 모든 행동은 계속 감시를 받아야 했다. 저자는 그때까지 북에서 가졌던 특권의식이나 로열패밀리의 생활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이후 저자는 대학 졸업 후 KBS에 취직하고 연애를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러시아 통역을 맡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발휘하면서 남한생활에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그에게도 드디어 행복한 가정이 꾸려졌다. 하지만 저자는 어머니에게 며느리를 보여 드릴 수도 없었다. 결혼을 하는데 가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니 말하지 못할 쓸쓸함을 느끼며 몰래 눈물도 흘렸다. 눈물도 잠시. 그에게 딸이 태어났다. 얼마나 기뻤는지 당시 저자는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 딸을 낳았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도 그랬을 것이 북에서 보장되었던 자신의 생활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이곳 남한에 와서 방황도 하고 후회도 했던 그가, 잃었던 자신의 핏줄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뻐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저자의 행복도 잠깐, 그에게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자본주의에서의 로열패밀리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돈을 모으려 했던 것이 너무나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돈과 관련된 남한 사람들의 반응을 몰랐던 것일까? ‘공금횡령’이 아닌 ‘공금횡령죄’로 저자는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실감하게 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된다.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 … 그리고

생활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주위의 도움도 없고 빚은 늘어만 가고 현실은 더욱 막막하고 자신은 혼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수기를 집필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모 일간지 기자의 도움으로 모스크바에서 망명을 준비하고 있던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된다. 어머니는 북한체제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닫혀 있는 북한보다는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고 자유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우월성을 알게 되면서 망명을 결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망명계획을 알게 되면서 저자는 수기를 집필하기로 결심하지만 그 내면에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들어 냄으로써 그 동안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 있던 김정일과 극소수 최고 권력자 주변의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것은 김정일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는 것이며, 김정일이 분노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였다. 결국 공화국을 배반한 죄로 저자는 두명의 괴한에 의해(추후에 김정일 보낸 공작원으로 밝혀짐)자신의 수기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이 발간 된지 6개월만에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재 출간된 『김정일 로열패밀리』는 김정일의 내면이나, 속성을 파악하는데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정보가 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이 겪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누구 때문인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저자가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김정일의 밀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떠도는 소문과 상상력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김정일과 북한의 체제의 내면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나 여전히 김정일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면서, 북한을 주체사상과 더불어 사는 자주적인 나라로 생각하는 김정일 추종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잘못 생각했었고 북한의 인민들에게 크나큰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김정일의 실상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타락한 북한 권력의 실체에 눈뜨길 기대한다. 이 책을 읽고 나자 북한인민들이 떠올랐다. 김정일이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북한 인민들이 한 사람만을 위한 강요된 삶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위해 인간답게 사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