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周逸의 북한이야기
북한의 공휴일

얼마 전, 노동신문은 『휴식 일에 어린 고마운 은정』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는 김정일이 지난해 12월 말 일꾼들과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던 중, ‘국가적으로 명절날에 휴식하였다고 하여 다른 날을 노동 일로 하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올해 신정에도 1월 1일이 목요일 이어서 하루건너 또 휴식을 하는 만큼 일요일은 쉬어서는 곤란하다’는 보고를 받고 ‘명절날에는 사람들이 즐겁게 휴식하게 하여야 한다. 일요일에 다양한 문화정서 생활을 하게 하니 인민들이 아주 좋아하고 있다’며 그 같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마, 부유층인 김정일 측근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 기사를 보며 “일요일에 문화정서 생활? 꿈 같은 말을 다 하네” 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객관적 견지에서 봐도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른 김정일의 두 얼굴을 생각하며 머리를 저었을 것이다.

올해, 북한 주민들은 갈수록 더욱 극심해지는 기아와 질병, 생존권을 악날하게 위협하는 우상화 정치로 말미암아 “이제, 더는 이 땅에서(북한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원성을 높이고 있다. 게다가 김정일의 핵개발 책동으로 국제 사회에서는 그 동안 지원해 오던 식량마저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2∼3월 중 유엔의 북한 식량배급이 대부분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원인은 김정일이 핵 포기를 거부하고 있는 데다, 지원식량이 군대나 권력자들이 아닌 주민들에게 제대로 배급되는지, 국제기구들이 확인하겠다는 요청을 북한측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구호물자에 의지하던 많은 노약자들과 아동들이 아사하게 된다. 국제사회의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지금까지 비축한 자금과 식량부터 굶고 있는 주민들에게 도와주라고 말한다. 이는 핵개발을 통한 체제유지의 꿈을 버리고, 굶어 죽는 주민들을 살려 낼 실질적인 대책부터 세우라는 목소리다. 이렇게 북한의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아우성치고, 국제 사회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속에서 김정일이 ‘일요일 문화정서 생활을 하게 하니 인민들이 좋아하고 있다’며 기가 막힌 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생뚱한 일인가 싶다. 또, 김정일의 그 말을 인민들에 대한 고마운 은정 인양 기사화한 노동신문 편집진의 광대놀이도 어이없을 뿐이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듯이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이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터인데도 말이다. 하기는 그들도 광란적인 김정일의 폭압정치 하에서 살아 남자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리라 본다. 어찌 됐든, 이세상 사람들은 생각 할 것이다. 김정일은 너무도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북한 주민들과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는 불량국가 독재자의 모습 그대로 라고 말이다.

김정일의 안일한 상황인식도 문제이지만, 정작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의 말과는 정 반대로 공휴일을 문화정서 생활로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과연 북한 주민들이 공휴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북한에서 공휴일의 의미

남한 주민들은 일요일을 포함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 법정공휴일과 당사자들의 약정에 따라 정한 휴무일을 통틀어 공휴일이라고 한다. 북한도 형식상 법정 공휴일과 해당부문들에서 제정한 날을 휴무일로 정하고 있다. 북한헌법에는 ‘공민은 휴식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휴가와 공휴일, 정휴양제(비교적 큰 기업소에 한하여 일정기간 휴가를 줘 쉬게 하는 것) 등에는 휴식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 속에서는 남한처럼 공휴일이란 언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형식은 공휴일이라 할지라도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는 일요일을 포함하여 명절과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실제 쉬는 날로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 주민들은 명절날만 공휴일로 생각한다. 일요일은 공식적으로는 공휴일로 되어 있지만 거의 사회노동이나 근무를 시키기 때문에 공휴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요일에도 대부분 일을 하기 때문에 ‘일요일’과 ‘쉬는 날’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 주민들은 명절날만 쉬는 날로 생각하고 일요일은 실제 쉬는 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일반적으로 공휴일이란 말을 쓰지 않고 휴식 날이란 표현을 쓴다). 당이나 사업소에서 ‘이번 일요일은 모두 쉬게 하라’는 지침이 내려오거나 평일을 휴일로 지정한다면 그 날 쉬는 것이다.

북한의 휴식 날은 생산단위인가, 비 생산단위인가에 따라 휴식 날이 각이 하게 정해져 있다.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 병원, 당 기관, 행정기관(정권기관) 등 비 생산단위들에서는 일요일을 휴식 날로 정하고 있고 공장, 기업소 등 생산 기관들에서는 주간 휴식 날이 순환 식으로 정해져 있다. 이 쪽 공장에서 화요일 휴식하면 저 쪽 공장에서 수요일 휴식하는 식이다. 공장, 기업소마다 휴식 날을 따로 정한 것은 에너지 사정이 어려워 ‘교차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교차생산이란 같은 전력계통에 망라되어 있는 각이 한 공장들 사이에 서로 시간을 엇바꾸어 가며 진행하는 생산조직을 말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북한의 휴식 날을 엄밀히 따져보면 공장, 기업소 관리 일꾼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의 의미와 개별적 근로자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의 의미가 다르다. 관리 일꾼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의 의미는 공장, 기업소의 생산계획에 따른 기본 생산활동을 안 한다는 것이고, 개별적 근로자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을 말한다. 공장이 휴식날이어도 관리들이 근로자들을 동원하게 되면 근로자는 출근을 하게 되므로 휴식날이 아닌 것이다. 근로자들은 기본 생산 활동을 중지하지만 농촌에 지원하기 위한 부식토, 퇴비 모으기, 농장에서 기업소에 할당한 채소밭 가꾸기, 도로정리 등 각종 사회작업에 집단적으로 동원된다.

공업 단위인가, 농업 단위인가에 따라 휴식 날도 다르게 정해진다. 협동농장과 같은 농업부문에서는 10일에 하루씩 휴식 날을 정하고 있다. 1일, 11일, 21일이 휴식 날이다. 물론 이 날도 각종 사업에 동원되는 날이 많다. 만약 쉬게 된다면 농장원들은 습관적으로 장마당으로 향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북한에서 초기 장마당 운영은 6일에 한번씩 진행해왔다. 그러다 70년 말경, 농장원들이 10일에 한번 휴식하면서 6일장의 의미가 희박해지고 10일장(1,11,21일)이 제일 큰 장날로 각인됐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1일, 11일, 21일에 장마당이 흥성거린다. 당연히 농민들이 장보러 많이 나와야 장마당이 흥성거리기 때문이다.

80년 중순경에 들어서면서 장마당 운영은 또다시 변화 됐다. “일일(매일) 장마당”이 생겨난 것이다. 일일 장마당이 생겨난 후, 대부분의 주민들이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 구입을 위해, 또 습관적으로 장마당에 모여들었다. 당연히 장마당은 매일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은 10일장의 의미도 희박해졌다. 그래도 농장원들이 휴식하는 날이면 장마당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대부분의 농장원들이 휴식 날 장마당에 나온다는 증거다.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의 공휴일과 같은 의미를 가진 휴일은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제정한 명절이다. 설날(양 1.1), 음력설(음 1.1), 김정일 생일(2.16), 김일성 생일(4.15), 인민군 창건일(4.25), 국제 노동자절(5.1), 단오(음 5.5),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7.27), 조국해방기념일(8.15), 추석(음 8.15), 정권창건일(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절(12.27)등 총 13회다. 이 중 설날(양 1.1)과 김정일 생일(2.16), 김일성 생일(4.15)은 2일간 휴무하므로 총 공휴일 수는 16일이다. 이외에도 농업 근로자절(3.5), 어부절(3.22), 철도절(5.11), 탄부절(7.7)등 기념일에는 해당부문 근로자들이 1일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념일은 어디까지나 해당 실정에 따른다. 해당 관련기관에서 휴식 날로 정할 수도 있고 아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는 북한에서 학생들과 근로자들의 휴식 날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문화정서생활을 할 수 있는 대상이 학생들과 일부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학생 및 대학생들의 휴일

남한의 교육부문과 같이 북한의 교육부문의 휴일은 일요일이다. 때에 따라서는 토요일 오후부터 휴식하는 경우가 있다. 중학교 학생시절 주말(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마다 휴식을 하는 외국인들을 부러워하던 일이 기억난다. 북한의 지방도시에서는 외국인을 볼 수 없지만, 필자가 중학시절을 보낸 평안남도 덕천시에는 외국인 기술자들이 몇 명 와 있었다. 금성 언제(북한에서는 땜을 ‘언제’ 라고 한다)의 발전 설비를 조립해주기 위해 호주에서 온 기술자들이다. 그들은 주말이면 반드시 가족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평양으로 올라 가곤 했다. 주말을 평양에서 보내기 위해서다. 지방도시에서는 별 놀 꺼리도 없기 때문일 것이고, 그보다는 안내원이 당 조직의 지령대로 화려한 평양만을 보여주기 위해 유도 안내를 했을 것이다.

북한의 학생들은 주말이면, 협동농장의 강냉이 밭 물주기와 같은 농촌지원을 비롯한 온갖 사회작업에 동원된다. 당시, 우리 학생들은 학교 건설용 블로크(block) 30∼40 장을 찍는 노동으로 주말을 보내야 했다. 당연히 눈앞에서 승용차를 타고 평양으로 향하는 외국인들, 간부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에 금강산 관광 현장을 방영하는 TV를 볼 때마다 버스를 타고 가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이 방영될 때면, 필자는 주말을 즐기러 평양에 올라가는 외국인들과 안내원들, 간부들을 부러워하던 학생 시절을 생각한다. 아마, 그 학생들도 ‘저 사람들은 남조선에서 어떻게 선출된 사람들이기에 북조선 주민들도 가보지 못하는 금강산 관광까지 왔는가’라고 학생 시절의 필자처럼 한 없이 부러워했을 것이다. 북한의 학생들이 외국 관광객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풍습화됐다. 어떤 원인일까? 그것은 각 학교별로 일요일 휴식 날을 기회로 학생들에게 온갖 개별부담과 잡역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무상교육을 시켜주는 대신, 응당 노동으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의무처럼 강요된다. 따라서 학교마다 외화벌이용 토끼 가죽 생산 및 토끼 고기 생산을 해서 바쳐야 하고, 유휴 자재(고철, 파동, 파지, 파유리 등 사장된 자재들) 를 모아 바쳐야 하고, 농촌지원, 도로 정리와 같은 사회노동까지 학생들이 동원된다. 심지어 도토리를 줍는 철이면 산판 을 헤매며 도토리를 주어다 학교에 바쳐야 한다. 또 겨울철이면 교실난방에 쓸 화목을 해야 한다. 어쩌다 휴식을 하는 날이 와도 남한의 학생들처럼 놀이 공원을 가고, 영화관람을 하는 등 문화정서 생활을 하기도 곤란하다. 평양을 제외한 지방 도시들에는 놀이 공원도 없고, 영화관, 극장 운영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이기에 축구공이 생기면 운동장에 모여 축구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축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유야 간단하다. 축구공이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축구공뿐 아니라 그만큼 놀이기재가 없다는 말이다. 한편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본능처럼 자리 잡은 행동거지가 있다. 억압적인 통제를 싫어하고 집단 생활에서 회피해 보려는 습성이다. 북한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집단동원에 넌더리가 나서 집단적인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 혼자 자유스럽게 지내는 것을 오히려 자신만의 권위이자 자랑으로 생각한다. 이런 습성이 한결 같아 휴식 날 운동장에 모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여행이라도 자유로워야 혼자 볼거리를 찾아 나설 것이 아닌가. 그러나 통행증 없이는 여행도 할 수 없다. 따라서 학생들은 끼리 끼리 집구석에 틀어 박혀 연탄을 빗고, 땔나무를 하는 등 어른들의 가사 일을 돕는 것이 휴식 날의 전부다.

지방마다, 학생들마다 노는 모양새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필자가 살던 지역에서는 ‘빽티기’를 제일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했다. 빽티기란 애들이 부모들 몰래 얼마 정도의 쌀을 훔쳐 다가 부모들이 없는 집에 모여들어 밥을 지어먹는 놀이다.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쨍쨍한 권력 없이, 입쌀밥을 먹어보기가 어렵다. 매일 목구멍이 깔깔하게 넘어가는 강냉이밥을 먹어야 하는 애들일수록 하얀 이밥이 더욱더 먹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 몰래 입쌀을 조금씩 훔쳐내어 밥을 지어서는 포식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부모들에게 들통 나면 야단을 맞기도 하면서 말이다. 부모들이라고 왜 자식들에게 이 밥을 배불리 먹이고 싶지 않겠는가. 국가에서 배급해주는 규정식량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기 어려워 일일이 식량을 조절해 가며 살아가는 판에 자식들이 쌀을 훔쳐내어 밥을 해먹어 버렸으니 야단을 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현상이 도시에 사는 학생들의 놀이라면 농촌의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협동농장의 오이, 토마토 밭이나 과수원을 습격(서리)할 것인지, 이런 생각들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놀이도 옛날이다. 지금은 장마당이 유일한 놀이터다. 국가에서는 응당 줘야 할 배급도 주지 않아 집에서 훔칠 쌀도 없다. 또 인민군대가 총을 들고 협동농장 밭들을 지키고 있어 서리도 어렵다. 위와 같은 놀이는 둘째치고 굶주림에 학교도 못 가는 형편이니 갈 곳 없고, 할 것 없는 학생들은 장마당주변만 빙빙 돌며 먹거리에 군침만 흘릴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들이 위와 같은 형태로 휴일을 보낸다면 대학생들의 휴일은 병영에 갇힌 군인신세다. 북한 대학생들의 휴일도 중학생들의 휴일처럼 농촌지원과 각종 사회동원, 대학 주변정리, 대학 내의 부업 밭(북한에는 대학마다 채소를 생산하는 부업 밭을 가지고 있다) 등 온갖 사회작업에 동원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끔 진짜 휴식 날이 있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갈 곳 없고, 할 것 없어 기숙사에서 보내게 된다. 북한의 대학생들은 80∼90%가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남한에서는 대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든, 자취생활을 하든 개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반드시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한다. 간혹 대학 주변에 친척 또는 지인 이 있어 자택생활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기숙사 생활이다. 북한의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은 군대의 병영식 생활이다. 모든 생활언어가 다 군사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아침 기상부터 시작하여 저녁 점검(점호) 취침에 이르기까지 군대식으로 생활한다. 군 생활을 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압에 가까운 규율 생활이 얼마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지 짐작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대학생들은 “아마, 뇌하수체의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의 분비가 제일 왕성한 시기는 대학생 시절”이라고 말한다. 그 만큼, 공부도 하고 억압적인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이다.

갈 곳이 거의 없어도 “휴식 날에는 뭘 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남한의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다르다면, “어떻게 하면 대학 울타리를 벗어날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휴식 날이라고 해도 언제 불러내어 작업을 시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김일성 동상이나 김정일의 사적 건물이 대학주변에 있으면 더욱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김일성 동상, 김정일 사적물 관리작업에 동원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휴식 날, 조금이라도 눈이 내리면 기숙사에 있는 대학생들은 모두 집합하여 동상주변 눈치기에 동원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휴식을 취하자면 나 몰라라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손바닥만한 지방도시에서 가 볼만한데도 없다. 그래서 어디론가 빠져나가려고 한다. 대부분은 부모님들이 계시는 집에 가보는 것이 희망이다. 어떻게 보면“휴식 날 자기 집에 가보는데, 무슨 희망이라고까지 표현하는가”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학생들인 경우 휴식 날 집에 갔다 오는 것이 “희망”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다시피 북한의 기본 여행수단은 열차밖에 없다. 열차로 한 시간이면 집에 가볼 수 있는 기숙사생들은 휴식날이면 안달해 하지 않을 수 없다. 통행증 발급이 어려워 여행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통행증이 없이 열차에 올랐다가 단속이 되는 경우 수습이 어렵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이유 없이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기도 멋쩍다. 열차에 올랐다가 일이 잘못되어 승무 안전원에게 단속이라도 되면 “과학의 최고전당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이란 사람이 사회질서를 위반하고 열차를 탔다”고 전체 학생들 앞에서 비판을 받게 된다. 비판까지는 두렵지 않더라도 학기말 시험에서 낙제시키는 경우가 많다. 김일성, 김정일 노작 과목을 비롯한 사회학 과목들이 그 대상이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여행 질서를 위반하여 대학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다. “나는 시험을 잘 치렀는데?”하고 성적을 따지다가는 또 다시 낙제를 면할 수 없다. 낙제가 3번 이상 반복되면 자동 퇴학 처분을 받는다. 어쩔 수 없이 학과 시험은 자아비판 시험으로 변해버린다.

낙제생의 수치, 남한의 대학생들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시험을 잘 치렀든, 못 치렀든 상관없이 “사회의 여행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에 낙제를 했다”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대학들에서는 휴식 날 학생들의 자유여행 때문에 통제를 보다 강화하는 대학들도 있다. 휴식 날, 갑자기 총 점검(전체 기숙사 생들이 집합하는 점호)을 실시하여 소대별(학급별)인원 수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대학 당위원회가 학생간부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생들이 학생간부들과 짜고들어 자유여행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대학 당 위원회가 휴식 날 자유여행을 엄중하게 취급할수록 대학생들의 담도 커진다. 사람사는데 인 만큼 요령을 숙지해 자유를 찾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적용하여 자유여행을 단행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여행도중 단속되지 않고 집에 다녀온 대학생들의 경험담은 흥밋거리가 아니 될 수 없다. 누구는 증명서 검열이 시작되자 달리는 열차에서 낙법(落法)하여(안전하게 뛰어내려)단속을 피했다는 이야기, 누구는 통행증을 위조해서 승무 안전원을 감쪽같이 속여넘겼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필자도 대학시절 여러 가지 방법을 써가며 승무안전원들의 단속을 넘겼다. 그 가운데서 한가지를 소개하면 대학생 교도대 군복을 입고 단속을 넘기는 것이 제일 쉬웠다. 군인들은 경무원(헌병)들이 여행증명서 검열을 하고 사민(민간인)들은 승무 안전원들이 검열하는 틈새를 노린 것이다. 현역군인과 대학생 교도대의 복장은 연장(계급장) 색이 다를 뿐이다. 또 3군단이 위치한 평안남도 지역에는 대학생들이 현역 구분대(대대 이하 부대의 총칭)에 배치되어 군사훈련을 받는 지역이 많다. (대학생들은 6개월 동안 대학별로 현역 구분대에 배치되어 군사훈련을 받고 예비역 군관으로 등록된다)

승무 안전원이 여행증명서 검열을 할 때는 사민(민간인)이 아닌 척 연장(계급장)을 가리고, 경무원(헌병)들이 검열할 때는 사민처럼 위장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법도 대학 2∼3학년 때의 수법이고 고학년에 올라가서는 하급반 학생들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적용하기가 곤란하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대학구내를 벗어나기 위한 구실도 없는 대학생들은 어떻게 휴일을 보낼까? 다행히 사회작업 동원이 없는 경우에는 호실에서 “통제 없는 잠”을 자고, 강당에 모여 TV를 시청하거나 혹시, 식당에 가서 배불리 포식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포식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돈을 어느 정도 보내 주는가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장원들의 휴일

노동자, 농장원들에게도 고대하던 휴식 날이 주어지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자, 농장원들의 휴식 일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각종 사회작업에 동원되는 경우와 노동자, 농장원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의 의미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노동자, 농장원들이 생각하는 휴식 날의 의미다.

노동자, 농장원들의 휴식 날은 젊은 대학생들의 휴일보다 어려운 생활의 여파로 보다 생산에 관련한 활동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노동자, 농장원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가정 주부이다. 따라서 대학생들처럼 집단적으로 숙식을 하지 않는 조건에서 가정 생활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 생활이란 가정을 위한 문화 정서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데 유익한 가사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주민들의 가정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식량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땔감과 물 문제다. 특히 땔감 문제는 더욱 그렇다. 북한주민들의 땔감은 주로 석탄, 나무, 볏짚과 마른 솔잎이다. 황해도를 비롯해서 벼농사를 하는 곳들에서는 볏단이나 마른 솔잎을 이용하고, 평양, 원산, 함흥, 신의주와 같은 공업지구들에서는 석탄, 양강도와 자강도, 함경북도 등 산골지역에서는 나무를 사용한다. 그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땔감은 석탄이다. 주민들이 밀집된 도시지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석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에 살면서 석탄을 때는 고장과 나무를 땔감으로 마련하는 고장, 평양시의 만경대 구역 주민들과 같이 마른 솔잎과 가랑잎을 모아 땔감을 마련해야 하는 지역들에서 두루 생활해 보았다. 이 세 지역 다, 땔감 해결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평안남도 지역에 거주 할 때는 주로 연탄을 빚어 땠다. 석탄을 비싼 값에 구입해서 일일이 채로 치고, 물을 두고 이겨서는 연탄을 찍어낸다. 찍어낸 연탄을 마당가에 널어 놓고 햇빛에 건조시키는데 소낙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하루 동안 공들인 모든 일이 허사다. 더욱 어려운 것은 연탄이나 석탄을 그대로 방치해 놓았다가는 도둑을 맞고 만다. 그 어느 가정이나 땔감이 귀하여 신경을 도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탄을 집안의 안전한 곳으로 옮길 때까지 그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석탄자체를 구입하지 못했을 때는 석탄을 실어 나르는 철길 주변에서 흙에 석인 석탄을 골라내야 한다. 철길주변에는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화차(貨車)에 실어 나르는 과정에 흘린 석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골라낸 저질 석탄으로 연탄을 빚으면 불을 피우나 마나 하겠지만 그래도 가만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낮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연탄을 때는 평남도 지역 주민들은, 연탄을 빚는 어려움 같은 것 없이 갈탄을 때는 함경북도 지역 주민들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탄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갈탄을 구입했다고 해서 그대로 불이 달리는 것은 아니다. 갈탄을 때자면, 불쏘시개로 쓸 땔나무를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불쏘시개로 쓸만한 나무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알다시피, 북한의 산들은 거의 다 민둥산이다. 그러니 몇 십리, 깊은 산 속에 들어가야 땔나무를 할 수 있다. 땔나무를 해온다고 해도 톱으로 썰고, 도끼로 패서 건조시켜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엄청난 품이 들어가니 휴식 날이 몽땅 여기에 든다.

대부분의 지방들에서 물 문제 해결 역시 어려운 문제다
북한은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급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남한에서는 돌발적인 사고로 한, 두 시간만 전기공급이 중단도 언론에서 떠들고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고 아우성이지만, 북한에서는 가정에서의 조명은 고사하고 먹는 물이 보장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문제제기를 해봤자, 해결할 기관도 없고 오히려 “고난의 강행군 속에서 너, 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난관을 극복하고 있는 때에 웬 불평, 불만이냐?”하는 식으로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수돗물 공급이 안 되는 경우, 멀지 않은 집 주변에 샘물이 나오고, 냇물이 흐른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땔나무 해결만큼이나 힘들다. 원산 항 앞 바다에서 멋들어지게 바라보이는 24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마, 만경봉호를 타고 원산항에 입항해 본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관계자들은 “저, 고층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정말 황홀경에서 사는 기분일 것이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는 형편을 보면 정말 “미칠 것 같은 환경”에서 산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있으나 마나 이고, 빈 몸으로 24층까지 걸어올라 가자 해도 숨찬 일인데 밑에서 연탄을 올려가고 물을 길어 나르자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화장실까지 막히는 날이면 큰 일이다. 대변을 종이에 싸서 창문으로 던져서 처리하는 방법 밖에 없다. 지금도 그 아파트 밑에 가면 그런 종이 뭉치들이 구석에 싸여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도 할 수 없으니 위와 같은 처리 방법이 습관화 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빛 좋은 개살구”라 말할 것이다.

사람이 문화 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가자면 먹는 물뿐만 아니라 위생 청결에 사용할 수 있는 물도 필수적이다. 먹는 물을 어느 정도 해결한다 해도 세탁을 비롯한 집안을 씻고 닦을 수 있는 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기가 없는 북한에서 가정들에 위와 같은 물이 충분히 보장 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의 가정집들은 연탄이나 나무 불을 때기 때문에 하루라도 닦지 않고 게을리 하면 집안에 재 가루가 수북히 싸인다. 따라서 표준적인 문화위생환경을 원한다면 열심히, 그리고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위와 같은 일들을 북한의 노동자, 농장원들은 휴식 날에 모두 해 제껴야 한다. 북한에서 노동자 계급이나 농민계급이나 땔감 해결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농민들은 더욱 그렇다. 북한에서 거의 모든 농장원들은 석탄을 때지 못하고 구석기 시대의 유인원들처럼 나무나 마른 솔잎만으로 땔감을 해결해야 한다. 농촌들에는 석탄을 주지 않으면 나무나 마른 솔잎으로 땔감을 장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야기 할 대상거리도 아니지만 노동자들에게 석탄을 공급해주던 80년대 초에도 그랬다. 그나마 농장원들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휴식 날로 제정한 날도 적다. 10일에 한번도 어렵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사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면 왜 농민들은 노동자들의 생활보다 더 고생스러울까? 원래 북한에서는 계급상 농민계층을 천시하는 정서적 문화가 자리 잡혀있다.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농포”라는 언어가 대표적인 예다. 농포라는 말은 농장원들을 무식하고, 몽매하고, 이기심이 많다고 천시하는 속된말이다. 이 말은 영도계급인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입장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소위“노동당의 혁명적 계급노선”에서 비롯된 말이다. 위와 같은 계급 천시 정책에 의해서인지 농장원들은 10일 동안 뙤약볕 아래서 힘들게 일하고 그나마 차례진 휴식 날마저 가사 일에 치우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언제 휴식 날을 한가하게 문화정서 생활 같은 것으로 보낼 틈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한끼식량을 해결하지 못하면 굶는 판이다. 주민들은 식량구입에 너무도 지쳐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자아 질문을 하며 비관하고 있는 판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김정일이 “일요일에 다양한 문화정서 생활을 하게 하니 인민들이 아주 좋아하고 있다”고 한 말이 북한 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남조선 인민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남조선 인민들이라면 일요일에 얼마든지 다양한 문화 정서 생활을 하며 아주 좋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2천만 북한 주민 가운데 김정일의 말대로 일요일 문화 정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불과 몇 명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글을 마감하면서 이런 생각도 그려본다.

‘김정일 수령독재 정권이 붕괴되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북한 주민들의 문화 정서 생활 수준은 얼마나 높이 발전할까?’ 하고 말이다. 아마, 지금의 한국주민들의 문화정서 생활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리라 생각된다. 북한민주화는 통일이고, 그 통일은 보다 높은 문명세계를 바라는 민주시민들이 살아가는 보다 새로운 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