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주화운동 Q&A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나요?


문> 북한에도 교회나 사찰이 엄연히 있고 종교인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북한의 종교정책이나 일반인들의 종교생활이 궁금합니다.

“북한에도 교회가 있나요? 물론 있다. 2개 교회와 5백20여 개소의 가정예배 처소가 그것이다. 2개의 교회는 모두 평양에 있으며 가정예배소는 북한 전역에 산재해있다. 북한에서는 가정예배소가 신앙생활의 중추역할을 한다. 우리로 따지면 교회로서의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가정예배소는 10여 명 내외로 구성되어 예배뿐만 아니라 친교 공동체 역할도 한다.”

이상은 <북한에도 교회가 있나요?>(백중현 저, 국민일보)라는 책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틀리지 않다. ‘겉만 보면’ 위에서 말한 대로 봉수교회, 칠골교회 등이 있고, 5백20여 개소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각 지방에도 예배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교회가 있다’는 것과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른 말이다. 집에 주방기구가 있다는 것과 마음대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말 아닌가.

<북한에도 교회가 있나요?>의 저자는 서문에서 여러 차례 ‘사실적인 요소(fact)’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의 책에 등장하는 북한 교회의 실상이란 북한 정부의 당국자 - 특히 주체사상 연구소장인 박승덕 씨 같은 사람 -나 교회 담당자들의 말 정도를 인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 말이 과연 사실이고, 북한 인민 전반의 실태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다 중요한 팩트는 완전히 무시되어 있다. 북한 내부에서 확인이 어렵다면 남한에 온 탈북자들에게 팩트를 확인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러한 노력을 한 흔적도 전혀 없다.

만약 북한에서 살다온 일반 주민 - 탈북자들에게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웃을 것이다. “북한에도 교회가 있나요”라고 물어도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이야기하면 평양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도 대부분 “그건 남한에 와서야 알았다”거나 “평양에 교회가 있다고?”라고 놀라며 답한다. “북한 전역에 5백20여 개소의 공인된 가정예배 처소가 있다”고 말하면 “농담하지 말고”고 잘라 말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선교활동(북한에 대한 선교활동은 북한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진출하여 노력하는 그룹과 탈북자들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지하교회를 구축해나가려는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해보려는 저자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있는 기대로 알려야지 자신의 주관적인 기대감을 섞어서 보고자 하는 팩트만 보아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에 종교의 자유란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근원은 ‘김정일 1인 절대주의’로서, 이것이 무너지면 체제가 뿌리채 흔들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종교의 침습을 막는 것은 북한 정권의 제1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럼 북한에 존재하는 교회와 사찰은 무엇인지, 우선 그에 대한 답부터 들어보자. 다음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한 탈북자의 증언이다.

<북한의 큰 절에 가면 스님처럼 머리 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나이가 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한때 노동당 간부나 공작원출신 등인데 나이 들어 병이 들거나 요양을 할 필요가 있으면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치료차 보냅니다. 공급(식량 및 물자 공급)도 엄청 좋아요.

물론 외국인들이 참관 오면 스님으로 가장하지요. 작은 절은, 이를테면 외국인이 안오는 곳은, 역사보존의 명목으로 관리원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혹 외국인이 온다면 스님으로 가장합니다(찾아올 일도 거의 없지만). 그리스도연맹도 마찬가지인데 해외사업용으로 있는 곳입니다. 김일성대학교 역사학부에 1989년 종교학과가 신설되었는데 학생 수는 10∼12명 사이(한개 학급)로 전부 제대군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여학생은 10년 간 한 명도 없었음). 이런 사람들이 졸업하면 그곳에 갑니다.

이들을 배워주는 교수들도 그리스도연맹 회원증이 있는데 물론 김일성대학 교수이니 조선노동당원 중에서도 핵심당원이죠. 저도 이들이 일하는 교무실에서 1994년에 처음으로 성경이라는 걸 보았는데 그때 좀 읽어보고 이런 황당한 걸 믿는 사람이 세계에 12억이라는 게 납득이 안가더라고요.

그 외 가장 규모가 큰 종교조직으로 ‘천도교청우당’이라는 것이 있는데 청사는 4층인가 되어 웅장합니다만 총 인원이 50여명입니다. 다 늙은 사람이고 1998년경 젊은 사람은 두 명뿐이었어요. 이것도 해외사업용인데 이런 곳에 들어가면 해외출장을 많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배치 받으려는 경쟁이 엄청 치열해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중앙간부 명패는 전부 다 가지고 있지요.

저와 한 학급에서 공부한 아가씨가 여기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좀 아는데, 자격은 통역으로 들어갔지만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해외사업부 지도원인가 이런 식으로 첫 배치가 내려지더군요. 저희 동창들 중에서는 배치가 잘 되었다고 보진 않는데 본인은 외국에 자주 나간다고 좋아하더군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탈북인과의 대화’ 게시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68조에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는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될 수 없다.”며 형식상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북한은 1948년 이후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헌법개정을 해왔지만 한번도 종교의 자유를 부정해 본 적이 없다. 앞서 말했듯 그러한 ‘형식’이 존재한다면 그 ‘내용’이 있는지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 헌법 “제67조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고 되어있지만 실제 주민생활에서는 전혀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의 종교탄압은 주로 기독교에 집중되고 있다.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인들이 더 악착같이 - 북한식 표현대로라면 - 주민들 사이에 명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58년부터 60년까지 중앙당 집중지도라는 명목으로 종교인들과 가족을 반혁명 계층으로 분류하고 70년까지 주민재등록사업을 펴서 기독교인들을 특별 감시 대상으로 삼았다. 기독교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는 1958년 평북 용천 이관화목사 사건, 1959년 박천에서의 인민학교 찬송가 사건, 1966년 잔여 교인들의 색출사건, 1968년 평남 온천군 운하리의 박목사 사건, 1974년 10월 함흥에서 적발된 김대용목사와 교인들 소탕사건, 1970년대 이후 적발된 기독교인들을 외딴 섬에 수천 명을 유배시킨 일, 이만희 목사의 지하교회 조직을 적발하여 10여명을 공개처형 한 것 등이다. 최근 알려진 사례로 보면 1999년 10월 10일 10시 청진 운동장에서 기독교인 세 명이 공개 처형된바 있고, 2000년 2월 10일 12시 함북 무산시 장마당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리영희(37세,여)가 총살당하였다. 이 여자는 중국으로 탈북하여 예수를 믿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처형됐다.

현재 북한에는 조선종교인협회(1989년 창립)라는 단체가 있다. 여기에는 조선불교도연맹,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카톨릭교협회, 조선천도교회중앙지도위원회 등 각종 종교단체들이 망라되어 있다. 각 단체들이 밝히는 교인 수도 △불교는 60여개 사찰에 승려 3백여 명, 신도 1만여 명, △기독교는 목사 20여 명, 전도사 130여 명, 신도 1만 2천여 명, △카톨릭은 신부, 수녀는 없는 성당(장충성당)에 신도 3천여 명, △천도교는 신도 1만 2천여 등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3만 5천명에 이르는 종교인들이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런 종교단체와 건물들이 198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생겨났다는 점이다. 이는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면서 북한에 찾아올 외부인들의 시선을 의식해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 임수경 씨등 종교인들의 잇단 방북으로 북한의 종교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진데다, 종교인들을 통일전선의 대상으로 포섭하기 용이하다는 판단아래 정책을 일정부분 전환한 것이다. 김일성저작선집’에도 줄곧 “종교는 일종의 미신입니다.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상 다 미신을 믿는 것입니다”(제1권)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 됩니다.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제5권)라고 말하다가 이 시기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생활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인민적인 정치이며 인민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저들의 지배에 순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악용하는 반동통치배들입니다. 진보적인 종교인들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남조선종교인들은 외래침략자들이 우리 민족을 인공적으로 분열시켜놓고 통일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총칼로 탄압하는데 대하여 반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종교인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야 하며 그들과 단결하여야 합니다.”(제43권)으로 변화한다.

결론적으로 북한에서 종교 시설물은 외부에 드러내기 위한 선전용이며, 종교의 자유란 헌법에만 보장된 단어일 뿐, 실제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시설물이 있는지, 심지어 ‘종교’라는 말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엄연한 북한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