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기
북한인민들에게 봄날은 꼭 온다!


안 경 희 · 국제팀장

NKnet 사무처 근무를 시작한 지 꼭 한달이 되어가던 작년 4월 16일, 언론을 통해 그 이름조차도 생소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채택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북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의 현장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인권 개선을 위한 공동의 방안을 마련하였다는 기쁨과 함께, 한편으로는 독재의 그늘아래 신음하는 북한 인민의 해방을 위해 일한다는 우리가 국제사회의 큰 흐름에 발맞춰 조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또한 깊었었다.

그러나 올해는 사뭇 그 분위기와 준비 정도가 달랐다.
일찍부터 유럽연합의 38개 국가들의 공동발의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오랜 시간 인권운동가로 일해왔던 『감춰진 수용소』의 저자 데이빗 호크씨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는 NGO들과 인권운동가들이 60차 인권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모여 들었다.

나는 우리 ‘북한인권팀’ - 유엔의 인권위원회 회의 기간동안에는 세계 국가들, NGO들, 그리고 개인 인권운동가들이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유린의 증언들과 활동경험들을 가지고 국제 사회가 이것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줄 것을 호소한다 - 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4월 5일보다 이틀이 늦은 7일부터 팀에 합류하였다.
한국의 3월 초와 같은 다소 쌀쌀한 날씨와 너무 정갈하고 반듯하여 그 안에 있기가 왠지 부담스러운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이 생전 처음 와보는 ‘유엔’이라는 높은 이름만큼이나 낯선이의 마음을 움츠려들게 하였다. 그러나 눈을 반짝이며 각국 대표부들을 만나 독재자의 폭압통치아래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의 인간이하의 삶을 고발하고, 결의안 채택을 호소하는 팀원들과 의기투합하면서 다소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날려 버렸다.

나는 주로 남미와 일부 아시아국가들, 결의안 채택일에 가까워서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던 국가들, 그리고 결의안에 추가로 코스폰서(C0-Sponsor)를 해 줄 수 있을 만한 국가들의 대표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들 대표부들과의 면담이라는 것이 회의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짧게는 수 십초, 길어야 2∼3분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 짧은 면담을 위해 대표부들의 자리를 파악하고 가끔은 회의에 불참하는 대표들을 하루종일 기다리기도 하는 지루함을 참아야 했다. 대표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바로 우리의 감시(?)하에 포착되어 있고, 우리들은 대표들의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비집고 들어가 북한인권결의안에 관심을 돌려 세웠다. 또한 그 와중에도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들과 따뜻한 눈길을 건네기도 하면서 묘한 동료의식을 나누기도 하였다.

4월 15일이 가까와 오면서 회의장에는 묘한 냉기가 돌기도 하였다. 자국의 인권상황이 세계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 국가 대표들이 끝까지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하여 의사표시 하기를 거부하고,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냈다.

한순간 우리는 낙담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올해는 북한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나름의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회의장에서는 북한이 정면으로 우리 NGO들의 활동에 딴지를 걸고 나왔다. 북한인권결의안과 관련하여 주빌리 캠페인, 우먼스 보이스 인터네셔널, 헬싱키 파운데이션이라는 세 단체의 이름하에 우리 북한인권팀은 활동하였다. 참고로, 유엔 인권위원회 회기중에 활동을 할 수 있는 민간단체는 전 세계적으로 복수 이상의 지부를 두고 있어야 하며, 그간의 활동보고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단체에 한해서 참가 자격을 부여 받을 수 있다. NKnet과 같은 작은 규모의 단체가 개인 자격으로 참가 자격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NGO들은 우리와 같은 조건하에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발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실지 이들 세 NGO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아무런 근거없이 북한을 모함하고 있다면서 유엔차원에서 이들의 활동을 제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북한 대표부의 발언은 다른 수많은 NGO들과 국가 대표부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비웃음 거리가 되고 말았다.

4월 15일 투표시작과 함께 그 결과가 눈앞의 전광판에 비쳐질때 우리는 “Yes!”, “Yes!”를 연발하였고, 주위의 다른 NGO들도 우리에게 따뜻한 웃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이번 결의안은 정치적 음모라며 애써 그 의의를 폄훼하려는 북한 당국의 발언이나,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으로 기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대한민국 대표부의 발언이 마음 한 구석을 몹시 씁쓸하게 하였다. 그러나 찬성 28, 반대 7 이라는 압도적인 결과는 10일 남짓한 우리 팀원들의 활동과 세계 곳곳에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세계의 응답이며, 그리고 언제 올지도 모를 ‘봄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북한민중들의 삶에 잠깐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기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인민의 행복보다는 권력과 힘을 존중하고, 그 힘의 유지를 위해 기꺼이 인민들은 희생해야 된다는 독재자의 폭압에 국제사회의 반격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김정일은 알고나 있는지…….

‘주체사상의 지도아래 부강한 조국 건설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던 북한대표부의 마지막 발언이 룡천역 폭발사건에 뒤엉킨 북한인민들의 신음소리에 묻혀 마음을 더욱 비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