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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수용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대동소이하지만 각 수용소별로 조금씩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강도 높은 노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수용소들은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겨울뿐만 아니라 봄과 가을에도 무척 춥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옷은 거의 없다.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사람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그 중에는 수십 년을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자.

죽음으로서만 끝날 수 있는 노동

수용소에서는 어린아이이건 노인이건 몸이 불구가 되건 정신병자이건 예외없이 피할 수 없는 것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는 강제노동이다. 수용소에서의 상황에 충격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진 정신병자의 경우에도 일을 시키는데 이들을 통제하는 것 역시 먹을 것이다. 이들은 정신은 나갔어도 생명체로서의 본능은 남아 있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쉬운 노동이라도 무엇이든지 해야만 한다. 강제노동에는 석탄채취, 각종 공사, 벌목, 나물채취, 돌 채석, 토끼사육, 자연산 송이 채취, 사금 캐기, 양조 등 다양하다.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 수용소의 경우는 탄광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 가족들이 함께 있는 수용소의 경우에는 그 규모도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갖출 것은 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위원들은 말을 잘 듣는 수인들이나 자신의 정보원들에게는 조금 편한 일에 배치를 해주는 방식으로 수인들을 통제하는데 그러한 일들은 주로 토끼 사육, 양조장에 배치 해주는 등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조차 자기가 기르던 토끼가 죽는다든지 하면 몰매를 맞고 쫓겨나거나 재산가치가 큰 소라도 죽이는 날에는 구류장으로 끌려가거나 맞아 죽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워낙 노동강도가 강하고 항상 허기져 있기 때문에 김용씨는 “돼지 사료 훔쳐먹을 수 있는 자리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들켜서 죽는 경우가 많지만...

더욱이 북한의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특히 수용소의 보위원들은 자신들의 표현으로 '자유주의'란 것을 통해 이중삼중으로 수인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자유주의'란 우리말로 하면 개인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수인들이 힘들게 수확한 것을 자신들이 몰래 빼돌리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에는 보위원이 생활을 위해 갈취하는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1개 수용소 내에서 조직적으로 물건을 빼돌려 사회에 내다 판다. 그래서 보위부 내의 상급단위에서 수시로 검열을 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걸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정치범수용소나 교화소의 생산물은 북한의 공식 행정기구인 정무원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개인경제에 편입되기 때문에 큰 도둑놈이 작은 도둑놈을 잡는다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다.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북한 내에서 최고의 품질에 속하고 또 북한의 생산품 중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억울한 죄를 만들어 수용소를 유지하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수십 번을 기워서 입는 옷

수용소에서는 옷을 구할 수가 없다. 깊은 산중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보면 옷이 쉽게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따로 옷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수십 번이라도 기워 입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누가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 옷을 벗기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곳은 한겨울이 아닌 봄가을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깊은 산골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심지어 한여름에도 허약해진 몸으로 인해 으슬으슬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입을 수 있는 만큼 두툼하게 입는다고 한다.

신발은 요덕수용소의 경우 노동화가 1년 6개월에 한 켤레, 겨울철에 신는 솜동화가 5년에 한번 지급이 되지만 고된 노동으로 인해 금방 헤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보통 토끼 가죽이나 돼지가죽에 새끼줄로 맨다던가 아니면 고무벨트나 자동차 폐타이어 옆면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추위를 피할 수가 없어서 대부분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발가락 숫자로 수용소에 수용된 햇수를 가르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속옷은커녕 여성이 생리를 해도 닦아낼 천조각이 없어 바지에 피를 묻히고 다녀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동물처럼 변해간다.

수용소의 어린아이들

정치범수용소에도 학교는 있다. 수용소에서의 인민학교는 4학년제, 고등중학교는 5학년제이다. 그렇지만 말이 학교이지 주요 일과는 토끼풀 주워오기, 사금 캐기, 돌 나르기, 나무하기, 보위원들의 남새밭(야채밭)에서 일하기 등이다. 아이들은 아침 6시에 등교를 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교원(보위원)들이 지시한 작업량을 채우면서 보내는 데,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작업량과 그 강도가 엄청나다. 역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폭행과 배급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밤이 으슥해 질 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고등중학교에 진학한다고 하여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고 다만 작업량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민학교 아이들과 달리 꾀가 많이 는다는 점이다. 한창 자라나는 나이에 먹지를 못하니 아이들의 사고의 대부분은 항상 먹을 것에 대한 생각뿐이다. 그렇지만 먹을 것이 없다보니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를 나오는 17세가 되면 어른 취급을 받아 작업량은 늘어나지만 대부분 키가 150cm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어렸을 때 수용소에 수용된 아이들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기가 대단히 힘들다.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지, 인간세상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고 오로지 동물적인 생존본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관계

수용소에서의 가족관계는 수용소별로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15호 요덕수용소에는 독신자 세대만이 아니라 가족세대가 있다. 이렇게 일가족이 수용소에 수용된 경우에는 독신자보다는 서로 위로도 하며 조금 낫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죄를 지은 아버지 때문에 처와 자식들이 아버지를 굶겨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장본인들은 자기 자신 때문에 가족까지 비참한 수용소에서 지내는 것에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일부는 자살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가족이 있는 경우 서로 위해주며 생존해 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용소 내에서 결론은 할 수 없다.

수용소 내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물론 부부간이 아니면 성관계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성관계를 갖고 아이를 낳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부질없는 짓으로 끝나고 아이와 아이 엄마의 생명만 잃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용소 내의 처녀들은 어릴 때부터 보위원들의 노리갯감이 되는 경우가 많아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윤리 같은 것은 잘 모르기 때문에 남자를 보면 옷 벗는 일밖에 할 줄 모른다고 한다.

또 오누이간에 성관계를 갖거나 모자간에 성관계를 갖다 적발되어 처벌을 받기도 하는데 안명철씨는 이를 두고 “먹지도 못하여 뼈가 앙상하게 남았고 일년 내내 목욕 한번 제대로 못하고 이빨 한 번 닦아보지 못해 때가 찌들찌들하고 이가 우글거리는 그들도 인간의 본능만은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개탄한다.

정치범수용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글들과 자료를 읽으면서 많은 고민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이곳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소설을 쓴다면 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인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이것은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상황이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아무리 수기를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잘 상상이 안 된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과도 많이 틀릴 뿐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나 다른 나라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극단의 상황과도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있는 동유럽과 구소련의 정치범수용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연재를 하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먹고 사는 것을 가장 단순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린다는 이 글이 정치범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생존하고 계실 분들의 상황을 단순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방법은 독자들께서 직접 그들의 수기를 읽어보는 것이 가장 나을 듯 하지만 현재 그들의 수기가 절판된 경우가 많은 관계로 그마저도 어려움이 많이 있다. 앞으로 NKnet에서 정치범수용소의 삶을 체험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을 약속드리며 다음 호에는 정치범수용소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다. 부족하나마 정치범수용소의 이야기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의 홈페이지(www.nkhumanrights.or.kr)와 「월간조선」 2000년 5월호를 비롯한 각 월간지들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