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 자유의 날' 행사 취재기
워싱턴에 메아리 친 “ Free North Korea”


지난 4월 28일 미국 위싱턴에서는 ‘북한인권법안(North Korea Human Rights Acts of 2004)’ 입법을 지지하는 행사인 ‘북한 자유의 날(North Korea Freedom Day)’이 열렸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행사 취재 차원에서 곽대중 『KEYS』편집장을 파견하였다. 다음은 곽 편집장이 미국에서 보내온 취재 기사로, 인터넷 신문 『DailyNK』의 시범판에 실렸다. (『DailyNK』는 올해 창간 예정임.) ‘북한 자유의 날’ 행사 전후의 이모저모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편집자 註


<제1신 ; 4월 24일 새벽>

‘서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이웃을 잊지 맙시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발행하는 북한 인권·민주화운동 전문 월간지 『KEYS』편집장을 맡고 있는 곽대중(郭大中)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북한전문 인터넷 신문 『DailyNK』의 논설실장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직함이 하나 추가되는 책임감과 함께, 직함이 하나라도 더 늘기 전에 북한 인민이 해방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여기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입니다. 저는 지난 4월 22일, 오는 28일 이곳에서 열리는 ‘북한 자유의 날’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미국방문입니다. 나이 만 서른에 미국 땅을 처음 밟게 되었으니 노무현 대통령보다 한 20년은 빠른 셈인가요? 하여간 온 종일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시계바늘을 다시 ‘어제’로 돌리는 기분은 묘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해 7월 미국에서는 자유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각국의 인권, 종교 단체와 개인이 모여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을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美 의회에서는 상하원 공동으로 ‘2003 북한자유법안’이 상정되었습니다. ‘북한자유법안’은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2004 북한인권법안’으로 바뀌었는데, 지난 3월말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었고, 곧 상하원 본회의 통과 절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미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은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미국 내외의 여론을 형성하고자 ‘북한 자유의 날’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저는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공동대표 안혁, 강철환)’ 소속 회원 14명과 함께 미국에 왔습니다. 이중에는 10명의 탈북자가 있으며, 이미 미국에 체류 중인 3명의 탈북자와 함께 모두 13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美 의회에서 증언하고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할 예정입니다. 원래 20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여권과 비자 문제 등으로 규모가 다소 축소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10여명의 탈북자들이 단체로 미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현지 언론의 관심도 높습니다.

‘북한 자유의 날’ 행사는 4월 28일 하루지만 그 전에 미리 미국의 북한인권관련 단체들과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참가단은 4월 22일 한국을 떠났습니다. 오후 1시 35분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경유해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는데 시계를 보니 4월 23일 오전 6시 20분이더군요. 현지 시간으로는 4월 22일 오후 5시 20분이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워싱턴 외곽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자정이 가까웠습니다.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죠. 시차 적응이 안 돼 대부분 이야기를 나누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오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4월 23일 오전 저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참가단과 떨어져 미국의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브루킹스연구소(The Brookings Institution)’의 선임연구원인 리처드 부시(Richard C. Bush) 박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디펜스포럼(Defence Forum)’ 주최의 오찬을 겸한 환영행사가 美 의회 레이번(Ray Burn)회관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약 100여명의 미국측 인사들과 탈북자, 기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오찬은 ‘디펜스포럼’ 수잔 숄티 회장의 사회로 ‘북한 자유의 날’ 행사를 위해 미국에 온 탈북자들에 대한 소개, 북한 실상에 대한 질의 응답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대표는 “김정일의 방중(訪中)은 핵문제와 경제난으로 인한 위기의 정점에서 택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평가하면서 “국제사회가 한 마음으로 북한민주화를 위해 힘을 합쳐 싸우면 김정일 정권의 종식을 더욱 빨리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인권법안의 통과를 호소했습니다. 북한에서 건축설계사로 일했던 탈북자 김영성 씨는 “지금 북한에서는 세계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북한을 탈출한지 1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특히 한국 정부가 제 59, 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된 대북인권결의안에 연이어 불참 또는 기권한 사실에 대해 성토했습니다. 이어 북한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던 오영희 씨, 함경남도 요덕 15호 수용소에서 탈출한 김태진 씨 등이 자신이 겪은 북한 생활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기사가 제법 길어졌습니다. 많은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지만 첫술에 너무 욕심부리고 않고 한가지 이야기만 더 하면서 줄여야겠습니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참가단 일행은 평안북도 룡천에서 대형폭발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룡천이면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데 혹시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북한 자유의 날’이 ‘북한 해방 기념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 섞인 대화도 오고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인터넷을 연결하고 현장의 소식을 읽어보니 참으로 끔찍하더군요. 정말 죽어야할 대상은 죽지 않고 죄 없는 인민들만 무리로 죽는 안타까운 일이 다시 한번 벌어진 것에 대해 멀리서나마 애도의 묵념을 드렸습니다. ‘역사는 우연이 이끌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 사건이 북한을 변화로 잡아끄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만난 한 방송국 기자는 즐겨듣는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룡천 사건에 대해 들었다고 합니다. 정치관련 프로그램이 아니고 음악방송이며, 늘 들어왔지만 한번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않던 진행자가 룡천 폭발소식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그 기자도 꽤나 놀랐다고 합니다. 한인(韓人)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방송도 아니었다는 데 말입니다. 그만큼 이곳 미국에서도 룡천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지금 시각은 4월 24일 일요일 새벽 5시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요일 저녁 6시, 온 가족이 TV 앞에서 쇼 프로그램을 보며 주말의 여흥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군요. 저는 이곳에서 ‘신은 왜 인간들에게 서로 다른 시간을 주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너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는 암시의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 새벽을 맞지만 이 글을 읽는 주요한 독자인 한국의 여러분들은 저녁을 맞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의 내일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이 북녘에 있음을 잊지 맙시다. 아비규환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용천의 주민들 - 바로 우리 이웃들에게 조건을 따지지 않는 따뜻한 온정이 우선 전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아 워싱턴에서의 1신을 전합니다.


<2신 ; 4월 26일 오전>

인종, 국적, 종교, 이념의 차이를 넘어

저는 지금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처음 미국 출장을 지시 받고 일정을 살펴볼 때만 해도 이번 출장일정은 지극히 단순했습니다. 4월 27일과 28일의 행사뿐이었습니다. 4월 28일은 ‘북한 자유의 날’이고 그 전날에 NGO 지도자들과의 면담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행사 취재 이외에 부수익(?)을 올리려 미국 내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NGO 활동가들에 대한 취재 일정을 잡아놓았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집에서 푹 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특성상 약속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도 어쩔 도리 없이 놀아야겠군’하고 생각하며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북한 자유의 날’은 4월 28일의 메인 행사뿐 아니라 다양한 부대행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부대행사가 널리 홍보되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4월 28일의 행사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행사를 주최하는 ‘북한자유연합’이 배포한 홍보물에 따르면 “오후 12시 30분 점심 식사와 함께 2시부터 4시까지는 북한 주민 자유를 위한 법안(‘북한인권법안’을 지칭) 의회 통과를 위한 로비의 기회를 제공하며, 4시부터 6시까지는 탈북자들로 이루어진 연주단과 함께 야외 음악회를, 6시 30분부터는 북한을 위한 특별 철야기도를 개최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한 “이 외에도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한 여러 특별 행사들을 준비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제(4월 25일) 아침식사를 하고 저는 아메리카대학(America University)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세계적 인권NGO인 쥬빌리캠페인(JUBiLEE Campaign)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대학에서, 그것도 일요일에 만나자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찾아갔는데, 가서보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워싱턴 소재 대학에 재학중인 일본인 유학생들이 준비한 강연이 있었고, 오후에는 탈북자 김용씨를 비롯한 북한인권관련 단체 활동가들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행사는 그저 조그만 세미나가 아니라 북한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참석자들에게 제공하고,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리는 선전물도 정성스럽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꼼꼼하게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의 성의가 여기저기서 엿보였습니다.

오늘(4월 26일)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있습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와 한인(韓人)유학생회 등에서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북한에서의 인권위기 ;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The Human Rights Crisis In North Korea ; What Can Be Done?)라는 제목의 이 행사는 오전 10시 40분부터 시작해 오후 3시 30분까지 3부에 걸쳐 진행됩니다. 1부 행사는 북한인권실태를 탈북자, 전문가들의 발제로 점검해보고, 2부는 前 미국 핵담당 대사였던 로버트 갈루치 교수, 국내에는 ‘북한의 협상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유명한 책의 저자인 북한전문가 척 다운스, 前 미국 기아담당 대사였던 마크 팔머 등 쟁쟁한 인물들이 패널로 참석하는 토론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3부는 학생들이 향후 과제를 놓고 토론하게 됩니다.

제 행복한 고민은 어떤 행사를 찾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행사 일정을 모르고 저는 몇 개의 약속을 미리 잡아놓았습니다. 사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참가단의 계획에 의하면 오늘 일정은 “워싱턴 시내 행사장소 사전답사, 가능한 정부기관 면담”이라고 간단하게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취재 약속을 빽빽이 잡아 놓은 것인데, ‘앞에 소개한 대학생 행사 외에도 평소에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는 세미나 및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미리 약속된 인터뷰를 취소할 수는 없겠지만, 특히 오늘 행사 가운데 로버트 갈루치 등이 참석하는 토론회는 꼭 참석해보고 싶은 욕심이 꽉 차 있습니다. 이럴 땐 몸이 두 개로 늘어났으면 좋겠군요.

어제 참석했던 행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14호 수용소에 6년간 수감되어 있었던 탈북자 김용씨의 증언을 시작으로 ‘쥬빌리캠페인’ 미국지부장인 앤 부왈다(Ann Buwalda), 美 의회 국제관계위원회 간사인 데니스 할핀(Dennis P. Halpin),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구출 모임’ 대표인 요이치 시마다 교수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두 미국인 - 앤 부왈다와 데니스 할핀은 제게 따뜻한 감동을 줬습니다. 앤 부왈다 지부장은 순수한 외모만큼이나 깨끗한 열정을 갖고 북한의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데니스 할핀은 한국인들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한국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갖기 이전에 그들을 한번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수용소에 대해 수년간 조사활동을 벌여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라는 책을 펴낸 난민, 학살문제 전문가인 데이빗 호크(David Hawk)씨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현재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운동가들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매파가 아니라 상당수가 진보진영에 속해 있던 인사들입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북한문제와 관련한 인식이 냉혹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순수해, 혹시나 저러다 상처를 입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검은 눈에 황색 피부의 사람뿐 아니라 파란 눈에 하얀 피부,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 갈색 눈에 금빛 머리의 세계인들이 ‘북한 인권, 민주화’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코끝이 찡해지곤 합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이번 미국 방문중에 만난 그들에 대해 소개해 나가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독자여러분에게 한 약속이 많군요. 저는 이만 채비를 갖춰 취재를 위해 나가봐야겠습니다.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하는 설렘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하루도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4월 26일 조지타운대학에서 열린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주최의 행사에는 약 5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이날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Take Action to Improve Human Rights in North Korea”라는 제목의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의 유인물을 배포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대학생들이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가 그 나라의 인권개선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인권운동은 거창한 활동이 아닙니다. 멀리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제안을 눈여겨봅시다. 미국 대학생들이 미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3신 ; 4월 27일 밤>

Mr. Kim, stop right now!

사실은 대단히 피곤합니다. 워싱턴 중심가에 있는 콘도를 숙소로 잡았는데, 해외출장으로 잠자리가 바뀌어도 쉽게 적응을 하던 제가 이번 여행에서는 완전히 그것에 실패했습니다.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2-3시간 정도 옅은 잠을 자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뛰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은 오트밀(oatmeal)에 우유 한 조각으로 대충 때우고, 점심은 주로 오찬장에서 빵과 음료수, 그래서 저녁은 그럴듯한 식당을 찾아보지만 제 입에는 어색한 안남미(安南米)에 고추장을 대신해 칠리소스를 뿌려가며 먹자니 여간 허기진 게 아니군요.

하여간 불평은 이쯤하고, 그 피곤함도 하루 종일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의 환한 표정을 보면 씻은 듯 사라집니다. 오늘 하루는 미국 민주당 계열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라는 곳에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거 백악관에 들어가 주요 정책을 만들어내던 곳이지만 공화당이 집권한 이후로는 재야로 물러나 지금은 ‘재입성’을 꿈꾸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아시아문제를 담당하는 두 연구원을 만나 북한 문제와 관련된 그들의 시각을 짧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출장에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 여러 성향의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을 세웠는데,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의 대선(大選)결과에 따라 대북정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간에 간단히 답을 내리자면, 공화당이 되든 민주당이 되든 미국의 대북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변화에 달려있지요. 오히려 우려스러운 점은, 만약 민주당이 당선되었을 때 북한이 그것을 변화의 시그널로 오판하고 경거망동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알다시피 1994년 북핵(北核)위기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하고 폭격 실행 직전에 상황에 이르렀을 정도로,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오히려 강경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미국의 변화가 아니라 북한의 변화가 훨씬 중요합니다.

‘진보정책연구소’를 짧게 방문한 후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 주최의 오찬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참가단 일행과 NED 연구원, 미국 행정부 관리 등 50여명이 참석을 했더군요. 식사를 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참석자들이 질문을 하고 탈북자들이 답변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분위기는 자연스러웠지만 주제는 무거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지면에 다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다음 기회에 제 고민을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NED 오찬이 끝나기도 전에 저는 ‘북한자유법안’을 제출한 샘 브라운백(Sam Brownback) 상원의원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미리 약속을 해놓지 않았을뿐더러 자리에 있지도 않더군요. 어차피 내일(4월 28일) ‘북한 자유의 날’ 행사장에서 만날 수 있으려니 하고 의사당에서 열리고 있다는 작은 모임을 참관하기 위해 갔습니다. 의원들의 집무실과 의사당 사이를 오고가는 작은 지하철을 타고 의사당에 들어가 어느 회의실 문을 여니 50여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샘 브라운백의 보좌관과 함께 그곳을 찾아갈 때까지 저는 그 모임의 성격을 몰랐습니다. 그저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다”라고만 알고 갔습니다. 그런데 회의장에 들어가서 타원형 탁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니 뉴스에서만 보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더군요.

그 자리는 공화당의 정책 실무자들이 인권문제와 관련한 2004년 주요 국제정책을 토론,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들어설 때 일어서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은 샘 브라운백이었고, 그의 개회사에 이어 10개 항목 정도의 발제가 시작됐습니다. 그 항목은 미국 공화당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요한 국제 인권 현안들이겠지요. 첫 번째 발제는 북한이었고, 다음은 수단, 이어서 이란, 이런 식으로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각 발제는 10분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서 올해는 이런 식의 입법활동이나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담당자가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대개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고, 한두가지의 간단한 질의응답 - 대개는 열심히 하라는 응원에 가까운 - 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회의시간은 총 2시간이 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계획이 잡혀있었으며, 제가 40분 정도 참관하고 나올 때까지 그 시간표는 준수되었습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재미교포 2세인 애드리안 홍(Adrian Hong)이 발표를 했습니다. 한국명이 ‘홍으뜸’인 애드리안 홍은 오전에 만나 하루 종일 저와 일정을 함께 했습니다. 북한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참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로, 제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미국 내 한인 학생들의 전국적인 조직인 KASCON(Korean American Student Conference) 대표를 맡고 있는 애드리안 홍은 ‘LiNK(Liberation in North Korea)’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한의 인권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화당 정책 실무자들 앞에 선 20대 중반의 이 파릇한 청년은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올해 LiNK가 개최하려고 하는 미국 주요 대학 순회 북한인권 강연회 및 캠페인 일정을 설명한 후 이에 대한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A4 용지 반페이지 정도로 간결하게 작성한 계획서에는 코넬, 조지타운, 보스톤, 스탠포드 등 주요 대학의 이름과 함께 그곳에서 언제 어떠한 캠페인을 하겠다는 계획이 적혀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거창한 계획보다 구체적 실천을 중시하는, 간소하고도 가식적이지 않는 이들의 계획이 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의사당에서 나와 이번에는 ‘미국종교자유위원회(U.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USCIRF)’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잠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정부산하 기관이어서 그런지 이곳은 들어갈 때 보안검색을 철저히 하더군요. 9.11테러 이후 공공건물 출입자에 대한 이런 보안검색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미국에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제는 요령이 생겨 금속물질은 아예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1998년 미국 의회에서 제정한 ‘국제종교자유법’에 의하여 설립된 USCIRF는 전 세계의 종교자유실태를 조사하여 연례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으며 세계의 종교 자유를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USCIRF는 1999년 첫 보고서 이래 북한을 늘 ‘특별감시대상’으로 주목해 왔습니다. 이 기구에서 주최한 행사이니 당연히 북한의 종교자유에 대한 질의 응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참석한 탈북자들이 답변을 하고 그들과 마주 앉은 USCIRF 아시아 담당관 두 명이 질문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2:15의 인터뷰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군요. 참석자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스피커를 통해 USCIRF 건물의 각 방에서 청취하고 있는 듯 했고, 인터뷰 도중에 회의장의 스피커를 통해 얼굴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날아들어왔습니다.

저는 의사당 방문을 마친 후 USCIRF 인터뷰 중반에 들어와 전부를 청취할 수는 없었지만 질문은 참 다양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북한에 지하교회 혹은 종교단체가 있는가, 종교인이 발각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종교분야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다가 “북한의 룡천 폭발사고에 대해 국제 종교단체들이 헌신적인 지원을 해주면 북한 당국의 종교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가망성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제기되었다가, 북한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이 존재하는가, 왜 북한에서는 그러한 결사를 하지 못하는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고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가 등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을 오늘 다 풀겠다는 듯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질문과 대답 가운데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고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라는 답변에는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탈북자들이 서로 한마디씩 답변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북한의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건축가로 일하다 탈출한 김영성 선생은 이제 칠십에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답변을 잘 해 인상에 남았습니다. 김 선생은 “중국은 거주이전 자유가 있고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도 있지만 북한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북한을 중국과 같은 사회로 보고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한 가족이 TV를 보던 중 김일성이 농촌 들판에 나가 ‘올해는 만풍년’이라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이를 보던 아버지가 ‘풍년은 무슨 풍년이냐’고 혼잣말로 욕하는 것을 아들이 듣고는 교사에게 고발을 해 잡혀간 사건이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북한 사회는 김정일이 법(法)이고 체제이기 때문에 그를 제거하지 않고는 근본적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여간 오늘 할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USCIRF 인터뷰 이후 ‘KASM(Korean-American Sharing Movement)’ 주최의 만찬을 겸한 강연회가 있었고, 강연회를 마친 후 애드리안 홍과 조슈아 스탠톤(Joshua Stanton)이라는 주한미군 출신 변호사와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인터뷰를 가졌지만 다음 기회에 소개해 드려야겠습니다. 모처럼 졸음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졸리더라도 오늘 저녁에 있었던 데니스 할핀의 강연을 잠깐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데니스 할핀은 한국에서 5년 간 생활한 적 있고, 한국인 부인을 두고 있으며, 강연 도중에도 간간히 한국어를 섞어 말하고,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은 이른바 지한파(知韓派) 미국인입니다. 현재 美 의회 국제관계위원회 간사인 데니스 할핀은 ‘북한자유법안’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에도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내용은 차치하고, 데니스 할핀은 주로 교민들인 청중들 앞에서 몇 차례에 걸쳐 “내일은 정말 중요한 날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내일’이란 ‘북한 자유의 날’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북한인권문제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 내에서 어떤 민족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며 한국의 애국가에도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이 있지 않는냐, ‘만세’란 영원하라는 뜻 아니냐, 한국인들에게는 북한도 남한도 모두 ‘우리나라’ 아니냐, 지금 당신의 동포들이 처한 열악한 인권상황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우리나라 만세’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라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연설의 마지막에 그는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고, 굶어 죽고, 맞아 죽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러한 인권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북한의 독재자에게 ‘Stop right now!’라고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것도 반복어를 점층적으로 사용하며 목소리의 톤을 높였습니다. 대강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대를 이어 사람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잡아 가두고 있는 것에 대해 이제는 말해야 합니다.
‘Stop right now’라고!
사람들을 굶주리게 하고 그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 이제는 말해야 합니다.
‘Stop right now’라고!
종교인들을 탄압하고 처벌하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Stop right now’라고!
사람들을 납치하고 억류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해야 합니다.
‘Stop right now’라고!
내일은 정말 중요한 날입니다.


<제4신 ; 4월 28일 밤>

죽었던 이름들이 되살아나다

감동입니다. 놀랍습니다. 오늘 하루 제가 보았던 광경을 어설픈 문장력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 송구스러워, 그저 “그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표현으로 제 감동의 크기를 전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 취중(醉中)보고를 하는 중입니다. 오늘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감춰진 수용소’의 저자인 데이빗 호크 씨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인 후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 30분. 하필 오늘 같은 날 늦잠을 잔 자신을 질책하며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오늘 행사의 첫 출발지인 프레스센터로 향했습니다. 50석 규모의 기자회견장에는 100여명의 기자들이 꽉 들어차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전 세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으며 탈북 여성들의 삶에 대해 한 여성 탈북자가 눈물을 흘리며 증언을 할 때는 장내가 숙연해지면서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8시 30분에 시작된 기자회견은 예정보다 10분 길어져 9시 40분에 끝났고, 참가자들은 곧바로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U.S. Holocaust Memorial Museum)’으로 향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본 딴 워싱턴기념탑(Washington Monument)과 美 의사당 인근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중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량학살을 테마로 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들어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던 당시의 상황이 그래도 재연되어 있다고 합니다. ‘북한 자유의 날’ 행사 참가자들을 왜 그 앞에서 모이도록 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나치는 이민족(異民族)인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다지만, 같은 민족을 학살하고 굶겨 죽이는 김정일은 도대체 어떤 악마란 말입니까? 먼 훗날 우리는 ‘김정일의 홀로코스트’ 전시관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물관 입구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있었습니다. 그 앞으로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쇠사슬을 몸에 엮고 “북한에 자유와 인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멀리 LA, 시애틀,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에서까지 밤새 차를 몰고 달려온 교포들은 상반신에 두를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된 선전물을 가져와 대열에 합류했고, 150여명의 LiNK 소속 대학생들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등장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형형색색, 한글과 영어, 중국어로 쓰인 피켓이 하늘을 덮었고, 여러나라 말로 구호가 외쳐졌습니다. 한국어로 된 구호를 한국 아닌 나라 사람들이 따라 외쳤고, 한국 아닌 나라 말을 한국인들도 함께 외쳤습니다. 서로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북한 인민을 구출하자’는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본 행사장인 의사당 앞으로 향했습니다. 구호를 외치며, 북한의 실정을 알리는 유인물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서로가 준비해 온 선전물을 바꿔 걸어주며, 흥겹고 진지한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그러한 피켓 가운데 저를 왈칵 울게 만든 피켓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한 소년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었습니다. 사진만 보고는 그가 누군지 잘 몰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이름을 보니 Yoo Chul Min. ‘유철민’이 누구더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하고 사진 아래를 보니 “He died escaping from North Korea”라고 쓰여있고(피켓에 따라서는 “Yoo Chul Min dead because of Kim Jong Il”), 그 뒷 면에는 “CHINA ; Open your boders to N.Korean refugees!”라고 구호가 적혀있습니다. 유철민은 2001년 7월, 한국으로 가기 위해 중국-몽골 국경을 넘다가 사막에서 굶주림과 갈증에 지쳐 죽은 12살 북한 소년입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요? 아니, 그러한 사건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요? 제 자신이 우선 부끄러워 졌습니다.

그 피켓은 LiNK 소속 대학생들이 제작해 온 피켓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잊었는데, 우리는 그를 모르고 있는데, 이국의 청년들이 그를 잊지 않고 찾아내어 추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월 2일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만저우리(滿洲里) 국경지대에서 몽골로 탈출을 시도하다 중국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 숨진 19살 탈북자 정철훈의 이름을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요? 이렇게 조금이라도 알려진 이름들말고 자유를 찾아 사막과 밀림을 헤매다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행진을 마치고 도착한 행사장은 축제의 장이라 생각될 만큼 생기발랄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잔디 위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자유와 해방을 바라는 내용의 흑인영가가 울려퍼지고, 행사장 주변에는 북한인권·민주화의 내용을 담은 각종 물품이 판매되고, 곳곳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는 대략 300여명. 이후 행사는 일반적인 집회와 마찬가지로 개회사에 이어 연사들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샘 브라운백 의원은 “10년후 그들(북한 주민)이 ‘왜 당신들은 그때 움직이지 않았냐’고 물으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라고 하면서 “지금은 행동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안혁 대표는 “미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인권문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면서 “김정일을 제거하는 것이 북한문제 해결의 첩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숱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여기에 다 옮기기에 벅찹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어제 KASM 만찬장에서 만난 한 교포를 집회현장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KASM은 한국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을 지지하는 단체로서, 어제 만찬장은 교포사회에서도 날카롭게 대립해있다는 좌우 인사들이 크게 충돌하지 않을까 해서 행사 전에 걱정의 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집회장에서 만난 그 교포는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북한자유법안은 북한 정권을 자극해 한반도에 전쟁의 분위기를 고조시키지 했겠느냐”고 우려 섞인 질문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이에 데니스 할핀은 “일단 집회에 참석해서 당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라”는 요지의 답변을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집회장에서 그를 보게 되니 어느 누구를 만난 것보다 반가웠습니다. 함께 피켓을 들고 연설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기쁘던지…….

또한 어제 의사당 회의실에서 수단 문제와 관련된 발제를 한 발표자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단 문제만큼 북한의 인권상황도 심각하니 내일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 꼭 참석해달라, 그러면 나도 수단의 인권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보게 되어 다시 한번 기뻤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저도 약속대로 수단의 인권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실천할 것이 있으면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야겠군요.
행사 중반 무렵 LiNK 친구들은 집회 대열 뒤편에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뭘하는 걸까 하고 지켜보니 둥그렇게 철조망을 쳐 닭장처럼 만든 후 거기에 “North Korea GULAG”이라고 적어놓고는 몇몇 학생들이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있더군요. 자기들 나름대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섬세하게 이것저것 퍼포먼스를 준비한 학생들이 대견하기만 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참가들은 모두 인근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집회 끝나고 밥도 주나?’하고 따라갔는데 ‘공짜밥’은 아니었습니다. 식당은 로비를 위한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식비는 행사를 주최한 측에서 제공하는 대신 참가자들은 즉석에서 조(組)를 이루어 자신들이 로비할 국회의원들을 분담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조가 되는 것이 제겐 어색했지만 그들은 익숙하게 서로 어느 의원을 맡겠다고 나서고 자연스럽게 조장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뽑혔습니다. 미국 정치를 이끌어가는 이익단체들의 로비활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조금이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 조는 식사를 마치고 자신들이 맡은 의원 사무실을 찾아가 북한자유법안의 의회 통과를 설득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저는 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 북한문제와 관련한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청문회는 북한자유법안 표결을 앞두고 해당 분야의 국회의원들이 북한의 실정을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탈북자들이 증인으로 나섰고, 어제 USCIRF에서와 같이 미국 의원들이 북한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든 점들이 총망라되어 질문사항으로 제출됐습니다. 의원들은 본 회의 표결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나갔다 돌아와 다시 청문회를 이어갔습니다.

오늘도 이 말 저 말 하다보니 편지가 길어졌군요. 저녁에 한 일식당(日食堂)에서 데이빗 호크를 만났습니다. 12시에 영업이 종료하는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양해를 구하며 1시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그것도 부족해 도로변에 서서 또 30분가량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 통과를 위해 각 국의 인권단체들과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을 하고 돌아온 호크 씨는 아직도 여운이 남아 내내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다시피 호크 씨는 국제적인 학살(虐殺)문제 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를 우익활동가인양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것은 호크 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는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미국 지부장을 역임한 바 있고, 캄보디아와 르완다 대학살 사건을 조사하여 국제사회에 그 실상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감춰진 수용소’의 한글판이 발간되었을 때 데이빗 호크는 한국을 방문하여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그때의 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회견을 마치고 질의 응답시간에 어느 참석자가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는 한국의 좌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면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 사람 역시 호크 씨를 우익인사로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통역자가 그의 질문을 영어로 옮기는 것을 듣던 중 호크 씨가 중얼거린 말. “어, 나도 좌파인데?”

호크 씨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리버럴(liberal)하고 낙천주의자이며 털털한 성품을 갖고 있는 반면 사업에 임해서는 대단히 날카롭습니다. 좌우의 기준을 설정하기가 어렵지만 제가 볼 땐, 그리고 호크 씨가 자처하듯 정치적 입장에서는 분명 좌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크 씨는 한국의 좌파운동 단체들에 일정한 동지적 애정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국의 대표적 좌파단체 관계자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하여 참여연대 상근활동가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호크 씨는 한국의 자칭 좌파들이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워하고 있었으며 오늘 술자리의 주요한 화제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은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한국의 좌파단체 활동가들이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올해 ‘유엔인권위원회’ 회기 중에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한국의 좌파단체 활동가 10여명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습니다. 그들의 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결의안은 통과되어 버렸죠.

하여간 호크 씨는 이들과 서로 대립되는 활동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친분을 쌓았나 봅니다. 당시 파견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열성적인 활동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생각이 다르고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알고 있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헌신적인 자세는 놀라웠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호크 씨는 왜 그들이 북한의 인권현실에 대해 자세히 알려하지 않는지,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지, 또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사회에 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그 ‘이해 못할 헌신성’의 근원은 무엇인지 내내 궁금해 했습니다.

대화는 저와 통역자가 한국 좌파들의 대변인(代辯人) 격이 되어 호크 씨에게 그들의 생각을 알려주는, 좀 이상한 모양새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여간 결론이 나기 힘든 그런 대화를 몇 시간 동안 이어가면서 우리는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취기가 오른 호크 씨는 “나중에 시간이 허락되면 한국 좌파들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한번 쓰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워싱턴의 밤이 깊어갑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북한 인민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는 이 국제주의자들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오늘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저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전하면서 오늘의 편지를 이만 접습니다.

<제5신 ; 4월 30일 밤>

‘한미(韓美)동맹’을 생각하며

저는 지금 뉴욕에 있습니다. 4월 29일 밤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왔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랜트한 버스를 놓쳐 홀로 기차를 타고 뉴욕에 오게 되었는데 숙소의 주소를 미처 묻지 않고 출발한 바람에 큰 낭패를 보았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뉴욕에 도착해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관계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통화가 되지 않더군요.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은 달랑 100달러. 싸구려 여관이라도 찾아 들어가도 되련만 그나마 있는 돈마저 써버리면 완전히 국제미아가 되어버린다는 생각에 주택가 언저리에서 노숙을 한 후 아침에야 통화가 돼 일행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치고 꾀죄죄한 몰골로 그들 앞에 선 제 모습이 가히 상상이 되시죠? 그래서 오늘 저는 북한출신 동지들에게 별명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뉴욕 꽃제비’라고.

‘뉴욕 꽃제비’는 4월 29일, 워싱턴을 마지막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오전에 미국 언론관계자 몇 명을 만난 후 어느 싱크탱크를 찾아갔습니다. 그 연구소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연구원의 발언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 연구소의 이름을 밝히게 되면 연구소와 한국정부의 관계에 혹시나 불편한 영향을 미칠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연구원에게 “당신의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느냐, 공개를 해도 되겠느냐”고 몇 차례에 걸쳐 물었고 그는 “보도 전에 기사를 미리 보여주고 합의가 된다면 상관없다”고 말하더군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잘 만났다는 듯, 한국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예의를 모르는 사람처럼 그는 자신의 생각을 한 시간 내내 쏟아내더군요. 속사포와 같았습니다. 기가 질릴 정도였습니다. 그 연구소가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협력관계를 갖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중립으로 평가받는 곳이라 제 충격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물론 연구소와는 크게 상관없는 개인적 견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최근 몇 년간 한국언론에 오르내리는 ‘한미관계의 위기’라는 말을 단적으로 체감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4월 27일에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저는 NED 오찬장의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 자리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지면에 다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다음 기회에 제 고민을 전달하는 것으로 대신할까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이 그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 기간 내내 저는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탈북자와 교포,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실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탈북자들은 감정적 어조를 실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저는, 속된 말로 한국 정부를 자꾸 그렇게 ‘치는’ 것이 북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한국 정부를 북한민주화운동에 있어 완전히 적대적 존재로 삼았다면 모르겠으되, 현실이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어쨌든 남한은 북한민주화운동의 지원(支援)기지 역할을 맡아 하여야 하며, 거기에 한국 정부의 협조는 절실합니다. 한국 정부가 북한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있다면 모르겠으되, 물론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있고 나아가 껄끄러워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그렇더라도 어떻게든 함께 발을 맞춰나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자꾸 이렇게 외곽에서 한국 정부를 때리는 것이 북한을 민주화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대오각성하고 북한민주화운동에 나서거나 지원하게 될까요?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비판하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저 역시 줄곧 대북유화정책의 잘못을 규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북한민주화운동을 실질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원칙아래 전개되어야 합니다. 북한민주화운동의 진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연대이며, 여기에 기본은 한미동맹(韓美同盟)입니다. 대책 없이 ‘두들겨 패는 식’의 한국 정부 비판은 한미동맹에 균열을 초래하면서 오히려 북한문제의 해법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김정일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한 내에서 좌우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한국과 미국 정부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혼선을 빚고, 그러는 틈바구니에서 김정일은 체제유지의 시간을 벌고 이편저편 붙어가며 실익을 챙기겠지요. 황장엽 선생도 이것을 우려해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나친 비판을 자제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강조하건대 무턱대고 ‘새빨간 정부’를 운운하고,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것에도 고도의 정치적 표현법이 필요합니다. 가령 대북유화정책을 비판하더라도 그러한 정책의 입안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그 생각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말해주어야 합니다. 김정일에게 놀아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답답하기 이루 말할 데 없지만, 하여간 우리의 적은 김정일이지 한국 정부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탈북자들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것은 십분 이해를 합니다. 경험에 바탕한 사고가 중심을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분들이 북한문제의 해법을 종합적으로 논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책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오판을 할 우려가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실을 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실정마저도 과장하는 탈북자들을 볼 때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도 북한의 현실은 세계 최악입니다. 딱 그대로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진실의 탑에 상처를 입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밤이 깊어갑니다. 오늘 오전,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 앞에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줄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있었습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집회와 강연, 각종 행사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칠 줄 모르고 ‘강행군’하고 있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소속 탈북자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보였습니다. 그분들처럼 지금 현재 한국에 와있는 5천여 탈북자들이 전 세계에 북한의 진실을 알리고 다니면 김정일 정권도 입을 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진실을 말하면 됩니다.

오늘 뉴욕의 한인신문에는 미국의 친북(親北) - 엄밀히 말하자면 ‘김정일 추종’ - 단체들이 ‘북한인권법안’과 ‘북한 자유의 날’ 행사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습니다. 한심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사람들입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참가단도 주먹을 부르쥐고 격한 감정을 표하더군요.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는 취재 일정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뉴욕 거주 교포들을 대상으로 한 예배를 겸한 강연회가 있었고, 저녁에는 교민들이 거창하게 식사를 차려주셨습니다. 오랜만에 쌀밥에 김치를 먹으니 힘이 불끈불끈 솟더군요. 중국의 낯선 도시를 헤매면서 탈북자들을 만나던 때, 그래도 그때는 음식으로 인한 고생은 덜했는데 이번 출장은 먹는 문제로 애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출장과는 다른 차원의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소중한 계기였습니다. 해외에 나가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합니다. 매번 그렇지만 해외출장 때마다 저는 내가 태어난 자란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가르쳐주신 선생님, 다정하게 감싸준 이웃들, 친구들, 일가친척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들이 있기에 하찮은 제가 장성했고 지금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껏 계속해 은혜만 입고 살았으니 이제는 그 은혜를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내가 마땅히 사람된 도리를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동포이자 나와 같은 시간에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인 북한의 인민, 지구상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 내가 오늘 ‘사람된 도리’는 다하는 길입니다. 이런 굳은 결심을 갖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보고 싶어질 사람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참가단과 함께 뉴욕시 관광을 할 예정입니다. 꾀죄죄한 ‘뉴욕 꽃제비’에서 깔끔한 ‘뉴욕 관광객’이 되겠군요. 모두들 그동안 열심히 뛰었으니 하루동안 쉴 권리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뉴욕 시내를 걷다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안혁 대표가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돕니다.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모습과 높은 빌딩, 그와 어울린 고풍스런 건물들을 보면서 안 대표는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답했습니다.

“이런 좋은 세상을, 엄청난 세상을, 왜 전 세계에서 북조선의 인민들만 사진으로라도 볼 수 없단 말이냐!”
굶주림에 죽어간 3백만 동포, 정치범수용소에서 고통 받는 30만 수인들, 해외를 떠돌며 나라 없는 설움에 떨고 있는 수만의 탈북자들, 김정일의 학정에 신음하는 2천 3백만 동포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갑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