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북한이야기
북한주민의 '술풍'

이 주 일 · Keys 편집위원

필자는 종종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남한 주민들이 북한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매장을 바라보며 ‘과연 언제면 북한 주민들도 남한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을까’하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임진강 건너 북녘 땅으로 시선을 옮긴다. 특히 ‘백두산 들쭉술’이며 ‘뱀술’ 같은, 북한 일반주민들이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고급술을 남한의 일반주민들이 부담 없이 사들고 마시는 것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북한에서는 질 낮은 술 한 병 값조차 옥수수 1kg의 가격과 비슷하기 때문에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술 한 병을 사먹기도 어렵다. 돈줄이나 있고 권력이나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돈 없고 권력 없는 노동자, 농민들과 같은 최하층 주민들이 술 한 병을 사 먹고 나면 온 식구가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남한에 처음 입국하였을 때, 서울역이나 청량리역 주변에서 노숙자들까지 술을 마시며 취해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저 사람들은 술 먹을 돈이 도대체 어디서 생길까?’하고 의아해했다. 북한의 꽃제비(거지)들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에서 ‘술 먹는 사람들’은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치부된다. 이번 호에서는 북한의 술 문화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의 술 생산 형태

북한에서 술 생산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내각 또는 당기관에서 생산하는 술, 다음으로는 지방의 식료공장에서 생산하는 술, 마지막으로 개별 주민들이 만드는 술(밀주 ; 密酒)을 들 수 있다.

내각 및 당기관에서 생산하는 술
내각 또는 당기관 직속 산하기관에서 만드는 술은 대체로 간부들에게 공급되는 술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평양시의 룡성맥주공장, 평성시 봉학맥주공장. 양덕군의 뱀술, 양강도 들쭉술, 개성시의 인삼술과 같은 것은 전량 ‘해외 수출용’ 또는 ‘간부 소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모 잡지에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하여 백두산 들쭉술이나 개성인삼술을 선물로 주었다는 자료를 보았다. 내각이나 당기관 직속산하 술 공장에서 생산된 고급술들은 북한주민들에게는 공급되지 않고 외화벌이용이나 간부용, 그리고 이렇게 ‘해외 뇌물용’이나 ‘공작용’으로도 쓰이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북한에서 위와 같은 술은 도저히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지방의 식료공장에서 생산하는 술
지방의 식료공장에서 생산한 술은 대부분 주민들의 ‘명절 공급용’으로 생산한다. 주로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날이나 설날, 공화국 창건기념일(9월 9일) 등 기념일에 공급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술을 주민들은 ‘공장술’이라고 한다. 공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식료공장에서는 생산하는 술은 대개 도토리를 주원료로 사용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은 도토리를 쌀처럼 귀하게 생각한다. 도토리가 여물어 떨어질 철이 되면 남여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주민들이 한 알의 도토리라도 더 챙기기 위해 산판을 오르내린다. 도토리를 주워 식료공장에서 술과 바꾸면 그만큼 돈이 되고 식량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지방마다 나오는 술의 상표도 각이 하다. 남한에서도 얼마 전까지 소주(燒酒)를 각 지방마다 특정 회사에게 생산·판매권을 주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각 지방의 식료공장에서는 자기 지방의 이름을 붙여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평양의 식료공장에서 생산하였다면 ‘평양술’ 함흥에서 생산했다면 ‘함흥술’하는 형식의 상표가 붙는다.

북한은 남한처럼 상표를 정부에 등록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남한처럼 다른 공장의 상표를 도용하면 처벌을 받는 등 법적 제제가 없다. 결국 가짜 상품과 진짜 상품을 가르는 기준도 없고 그 의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함흥술이 평양술 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술
다른 나라들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남한에 와서 ‘가정집에서 술을 담근다’는 말을 들어보질 못했다. 기껏해야 포도, 사과 같은 과일이나 칡, 인삼 같은 약초에 소주를 부어 밀폐해 두었다 마시는 정도로 알고 있다. 북한에서 이런 것은 술을 담그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주민들의 밀주(몰래 담그는 술) 생산이 대단히 성행해 있다. 북한 여성치고 술을 담그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마당에 나오는 술은 대부분이 밀주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만든 술을 북한 주민들은 ‘민주’또는 ‘농태기’라고 한다.

북한의 가정집에 들어가면 따스한 아랫목에 이불 또는 헌옷으로 감싸놓은 크고 작은 독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십중팔구 술을 만들기 위해 발효시키는 독들이다. 밀주를 하면 가정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또 공장에서 생산하는 술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밀주가 성행할 수밖에 없다.

옥수수 1kg를 사서 밀주를 담그면 알콜 농도 25%짜리 술 1리터 정도가 나온다. 북한 장마당에서 술은 대개 500밀리리터 짜리 병에 담아 판다. 약간씩 변동이 있긴 하지만 500밀리리터 짜리 술 한 병은 옥수수 1kg의 가격과 비슷하다. 따라서 옥수수 1kg을 술로 만들며 2배의 이윤을 남기게 된다. 집에서 술을 담그면 이 밖에 ‘부수 이익’이 따른다. 술을 담그고 나면 모주(母酒)라고 하여 찌꺼기가 남는다. 이것은 식량대용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북한의 모주를 남한에서 말하는 부드러운 모주와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된다. 북한의 모주는 거칠고 단단한, 순 섬유성분의 덩어리이기 때문에 그대로 먹지 못한다. 이것을 대용식량으로 만들어 먹자면 어느 정도의 낟알을 섞어 떡처럼 빚어야 먹을 만하다. 그것도 목을 넘어갈 때는 깔깔함이 느껴지는데 만약 그대로 먹는다 치면 목에 걸려 도저히 넘어가질 않는다. 그런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모주를 그냥 먹곤 하는데 항문이 막혀 나중에 큰 소동을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술풍’을 없애라”는 김정일의 지시

‘죽어도 술을 못끊겠다’던 어느 적위대장
북한 주민들은 기분에 따라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명절이나 관혼상제를 위주로 술을 마신다. 명절날 술을 마시지 못하면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주민들은 ‘명절 = 술’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부터 명절날과 관계없이 술을 마셔대는 기풍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10대 청소년들까지 술을 마셔대는 등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에 김정일은 1980년대 중순경 ‘당적(黨的)으로 술풍(風)을 철저히 없앨 데 대하여’라는 지시를 내려 각 당 조직마다 이것을 안건으로 사상투쟁을 벌이도록 했다. 필자가 있던 함경북도 내의 한 초급당위원회에서도 ‘술풍’을 없앨 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내용을 가지고 사상투쟁을 벌였는데 그 지시 때문에 철직(직책에서 쫓겨남) 처분된 사람들이 많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지만 도가 지나치게 되면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이때 철직된 사람들은 술이 사람을 먹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술을 사람이 먹지 못하게 하면서 철직 당한 사람들 말이다.

당시 필자가 소속되어 있던 초급당에서 사상투쟁의 집중대상에 오른 사람은 초급당위원회 적위대(북한의 반민간군사조직)장과 몇몇 애주가(愛酒家)들이었다. 그런데 적위대장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판을 받으면 일단 거짓으로라도 ‘술을 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 적위대장은 “나는 죽어도 술을 끊지는 못하겠으니 앞으로는 절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정일에 대한 무의식적인 충성심에 마음이 들뜬 수많은 당원들이 “이것은 당에 대한 도전이고 김정일 장군님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집행하려는 정신이 없는 표현이다.”며 비판하여 나섰다. 그러나 그는 “하지 못할 것을 하겠다’고 거짓 다짐을 하는 것은 당을 속이는 행동이 아닌가?”라고 응수했다. 정말 그럴 듯한 대답이다. 사실 그는 술을 대단히 즐겨 마시는 사람으로, 그가 술을 끊는다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았기에 마음속의 말을 솔직히 한 것뿐이다. 그런데 ‘진실한 말’을 한 대가로 그는 적위대장 자리에서 철직되어 좌천되었다.

무장경찰이 대학에 진입한 사연
전당적으로 ‘술풍’을 없앨 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렇게 각 당, 근로단체 조직마다 사상투쟁의 선풍이 일어났다. 그래서 애주가들은 드러내놓고 술을 마시지 못하고 밤마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버릇이 생겨났다. 이렇게 몰래 마시는 술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그 가운데 하나의 사건이 북한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 필자가 보고 들은 바로는 처음 이었다 - 대학에 완전무장한 안전원(경찰) 수십 명이 쳐들어와 학생들을 연행해간 사건이다.

1993년 5월 1일 밤, AK자동보총으로 무장한 수십명의 안전원들이 평안남도 평성시에 소재하고 있는 평성수의축산대학에 진입했다. 사건은 이렇게 벌어졌다. 그 날은 5월 1일 노동계급의 명절, 대학생들도 휴식하는 날이다. 군대와 같은 강한 규율 속에 생활해오던 대학생들에게 있어 이런 날은 자유의 날이다. 저마다 시내로 달려 나가 그동안 굶주렸던 배를 채운다. 문제의 발단이 된 어느 대학생도 오랜만에 저녁 늦게 까지 포식을 했나 보다. 취하도록 술까지 마셔대며 말이다.
대학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가는 아리따운 처녀가 보인다. 술 취한 척 처녀에게 희롱을 걸었다.
“어- 처녀동무, 같이 갑시다.”

느닷없이 술에 취한 낯선 대학생이 말을 걸어오니 처녀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으니 금방 알아본다. 가던 길을 멈춰 길옆으로 등을 돌리고 술 취한 대학생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대학생은 한 손으로 처녀의 어깨를 철썩 치며 비칠비칠 지나쳤다. 그리고는 혼자서 무엇이 우스운지 “허허” 거리며 앞서 간다. 대학생의 뒤를 따라오던 사복 안전원이 그것을 목격했다.
‘저놈을 잡아야지!’

그렇지않아도 ‘술풍’을 단속하는 판에 여성을 희롱하려 했으니 공을 세우기에 좋은 기회다. 사복 안전원은 대학생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대학생은 봉화권총공장(평성 수의축산대학 옆에는 봉화권총공장이 있음)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대학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었다.

북한의 대학에서는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통제한다. 통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학생들이 술을 먹고 캠퍼스 안에 들어왔다가 교수들에게 들키는 날이면 출학(퇴학)처분이 되거나 사상투쟁의 무대에 올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학생은 반드시 김일성, 김정일 노작과목은 낙제를 면치 못하고 애를 먹는다. 학습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생들은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부터 30대사이의 젊은 대학생들이 술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이 학생처럼 대학캠퍼스를 벗어나 술을 마시고 몰래 정문을 통과하여 들어오거나 기숙사에서 출입문을 꽉 닫아걸고 교수들 몰래 조용조용 술판을 벌이곤 한다.

그 대학생도 술을 먹고 대학 정문을 통과하다가 총직일관(總直日官) 교수에게 걸리면 퇴학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뒷 울타리를 뛰어 넘었을 것이다. 사복 안전원도 그의 뒤를 따라 울타리를 넘어섰다. 그가 기숙사 출입구로 들어가는 것이 희미한 전등불빛에 멀리 보였다. 안전원은 그를 놓칠 새라 잽싸게 기숙사 출입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너무 뒤늦게 따라서면서 어느 호실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안전원은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국방색 상의를 입고 팔에는 ‘직일병(直日兵)’이라는 빨간 완장을 찬 여학생이 “어디서 온 사람인가?”하며 따지고 들었다.

여기서 잠깐, 왜 그 여학생은 군인들이나 찰 만한 ‘직일병’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었는지,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북한 대학의 규율은 남한 대학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대학에는 주야간을 막론하고 외부손님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있다. 외부손님이 대학가로 들어오자면 총직일관 교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소대(학급)별로 당번을 정하여 대학의 주요 건물들에 24시간 근무를 서야 한다. 야간에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연구실을 비롯한 강의실 등 주요 건물까지 근무를 서고, 강의를 하는 낮 시간에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연구실, 정문, 기숙사 출입구에만 순번제로 강의를 빠져가며 근무를 서게 되어 있다. 여기에 교수들까지 순번제로 돌아가며 학생들의 근무를 감시 통제하는 총직일관 역을 담당하게 된다. 북한의 대학은 이렇듯 어디까지나 병영(兵營)식 생활이다. 학부, 학과, 학급도 모두 군대식으로 연대부, 중대부, 소대로 부른다. 일단 남한과 전쟁을 한다면 대학생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총만 쥐어주어 전장으로 내몰면 되는 판이다.
그러니 직일병 임무를 받고 서있는 여대학생이 단속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복 안전원은 자기는 안전원이라며 오히려 근무를 방해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 큰 목소리에 연대장을 비롯한 연대부 구성원들이 우르르 밀려나와 사복 안전원을 에워쌌다.

“안전원이면 안전원이지 어떻게 대학 내로 들어왔습니까?”
“야 이 새끼들아! 거리에서 처녀를 희롱한 놈을 잡으려고 들어왔다.”
사복 안전원의 속된 말에 연대장이 격분하지 않을 수 없다. 연대장이 아무리 학생이라고 하지만 나이는 엇비슷하다. 북한의 남자 대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군대복무 10년을 마치고 입학했기 때문이다. 신경질적인 발언이 오가는 가운데 안전원이 연대장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빙 둘러 서 있던 연대부 성원들이 격분하여 안전원에게 뭇매를 안겼다. 와짝 떠드는 고함소리에 기숙사 창문이 하나, 둘 열리며 수많은 대학생들이 소리쳤다.
“저 놈을 때려죽여라!”

격노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복 안전원은 급히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수십 명의 무장 안전원들을 실은 트럭이 버젓이 대학정문을 통과하여 기숙사로 들이 닥쳤다. 그리고는 대학생들과 연대부 성원들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해 갔다. 무장경찰이 대학 내로 진입하는 것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 내에 널리 회자된 사건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술’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막을 수 없는 ‘술풍’

빨리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
김정일의 지시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술풍’을 없애기 위한 사상투쟁의 선풍이 일어났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했다.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한 ‘술풍’이 일어났다. 당에서는 도저히 ‘술풍’을 없앨 수 없다고 단정하였는지 관혼상제를 해도 술을 3병 정도만 가지고 진행하고, 마셔도 세 명 이상 모이지 말 것이며, 정 먹고 싶으면 혼자서 마시라는 암묵적인 지시를 내렸다. 여럿이 술자리에 모여 앉으면 먹고 살기 어려우니 자연히 북한 체제에 대한 불평의 말이 오갈 수 있기 마련이다. 실제 술자리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불평을 했다가 정치범으로 취급되어 관리소(수용소)로 끌려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하여튼 북한에서 술을 근절한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생활고와 우상화 교육에 정신적으로 시달려온 주민들은 술에 의존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한다. 술을 찾는 주민들이 많아질수록 생산과 소비의 비율이 맞을 수 없다. 자연히 술은 흔하면서도 먹기 힘든 귀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어느 사회나 다 그랬듯이 귀한 것은 권력자들, 돈 많은 자들의 것이 되기 마련이다. 북한 사회에서도 다를 바 없다. 자연히 주민들 사이에는 술을 마시는 것이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술을 먹는 자와 못 먹는 자들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술을 먹을 수 있는 권력자와 술을 먹기 어려운 노동자, 농민과 같은 평범한 주민들로 갈라져 보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반노동자들은 술 한 병을 마시자면 월급의 전부를 바쳐야하는 반면 돈 있는 자들과 권력자들은 술 먹는 것이 하나의 자랑거리로 되었다. 돈 없고 권력 없는 주민들은 술도 맛볼 수가 없어 자존심만 상했다. 특히 군인들과 같은 젊은층은 술을 먹지 않으면 자랑거리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군인들은 어디서 술을 구입할까. 더 말 할 것도 없이 부대의 식량을 훔쳐내던가 아니면 군수물자를 훔쳐내어 팔아서는 술과 바꿔먹는다. 아마 북한주민들이 입고 있는 의복의 60∼70%는 군품(軍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가 많은 북한에서 군품이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이와 같이 훔쳐내어 팔아먹은 것도 상당한 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군인들이 마적떼처럼 길목을 지키다가 주민들의 물건을 노략질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술을 마실 때 안주는 대체로 뭘로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두부, 콩나물, 마른명태, 고사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안주 여러 개를 쭉 펼쳐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이 가운데 한 가지 정도만 놓고 먹는다. 또 대개는 밥에 곁들여서 반주 삼아 먹는다. 그러나 음식물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어쩌다 술이 생기면 안주거리는 고사하고 ‘깡술’을 먹는 것이 고작이다. 안주를 먹으면서 천천히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빨리 취하고 싶어서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면 어김없이 길거리에 술주정뱅이들이 나타나 난동을 피운다. 한편 가정에 관혼상제가 있거나 명절날이 되면 술을 따라주고 노래하며 즐기는 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북한에서 술을 마시고 육류를 먹어본다는 것은 대단한 명절로 되는 날이다.

술병 들고 해결 못할 일 없다
흔한 것 같으면서도 귀한 것이 술이다 보니 당연히 술은 뇌물의 한 품목이 됐다. 술병을 들고 해결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 길을 떠나도 길가에 술병을 들고 서 있으면 지나가던 자동차도 세워주고, 농장의 옥수수 밭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술병을 들고 슬그머니 다가가면 옥수수를 도둑질해가라고 눈감아준다. 또 대학생이 술병을 교수에게 찔러주면 그 학생의 성적은 어김없이 ‘최우수’이다. 열차표와 통행증이 없어도 열차 안전원과 열차장에게 술병을 쥐어주면 무임승차에 통행증이 없이도 여행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조건과 환경에 따라 술의 양과 질이 평가 되지만 여하튼 술을 가지고 못할 일이 별로 없다.

비판무대에 설 사람은 김정일
필자는 이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김정일 자신이 측근 고위 간부들을 모아놓고 술파티를 즐기면서 인민들에게는 ‘술풍’을 없애라, 사상투쟁을 벌이라고 하니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정말 ‘술풍’을 없애고 사상투쟁을 벌여야 할 대상은 김정일 자신이 아니던가.

얼마전 모 일간지에 전 CIA소속 심리학자이자 현재 조지워싱턴 대학교의 정치심리학 프로그램을 관장하고 있는 제롤드 포스트(Jerrold M. Post)박사가 CNN과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그는 “김정일은 특정 헤네시 코냑을 즐겨 마시며 지난 10년 동안 헤네시 구입비용으로 72만 달러를 써서 헤네시 코냑의 최대 고객”이라고 밝혔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알려지지 않게 김정일이 술값으로 써버린 달러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김정일의 술값만으로도 3백만 명이 굶어죽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했는데, 김정일은 ‘권력은 술병에서 나온다’는 생각으로 젊은 날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 그의 나이도 예순을 넘었다. 젊은 날과 같이 흥청망청 술만 마시며 살고 있지는 않으리라.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이제 인민생활을 조금이라도 챙겼으면 좋으련만 지금은 권력은 ‘핵(核)에서 나온다’는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우면서도 분노가 치민다. 현명한 북한 인민들은 머지않아 김정일의 죄값을 분명히 계산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