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이 광
백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1. 북한민주화운동은 김정일 정권을 자극시켜 남북간 긴장이 높아질 우려가
있지 않은가?
남북한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탈북자가 남한에 오면 정착금을 받는 등 여전히 정치군사적인
대결관계에 있습니다. 즉 누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정수준 이상의 남북긴장은 구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남한에서 벌어지는 북한민주화운동이 특별히 더 남북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우려는 우선 남북한의 현실과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물론 한국정부는 북한내부에 反김정일 쿠데타나 민중봉기가 일어나는 등 아주 특수한 시기 외에는 공개적으로 김정일정권의
교체를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정권의 강한 반발을 불러 올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간차원에서 전개하는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이 시비할 명분은 없습니다. 한국 같은 자유민주사회에서 민간차원의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 한국정부는
책임도 없고 간섭할 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의 기준에서도 북한민주화운동은 완전히 합법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의 민간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지는 북한정권의 비판운동에 대해 종종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 대해서는 방북취재행위를 금지한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언론사 건물의 폭파위협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남한정부의 원칙적 입장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언론활동이 보장되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원칙을 강조하여 북한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을 포용한다는 정책 하에 북한의 특정 언론사의 방북 배제조치 등에 대해 적당히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남한정부가 북한의 이러한 부당한 요구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게 되면, 북한은 남한정부를
통해 남한내의 북한민주화 요구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데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지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둘러싼 파문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알려진대로 북한은 민간집회에서 인공기와 김정일 사진을
태웠다는 것을 문제삼아 대회 불참을 협박하였고, 이에 노대통령은 사과를 해서 북한을 달래가며 대회참가를 유도하였습니다.
인공기는 김정일체제와는 무관하게 북한전체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인공기를 태우는 행위는 反김정일을 넘어서서 북한주민을
포함한 전체를 반대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은 한국과
한국 국민과 한국 헌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정치인으로서나 학자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은 행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이후
U대회과정에서 북한선수단중 일부가 북한민주화를 촉구하는 민간인을 폭행하고, 이에 대해 한국경찰이 방관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한국법률을 수호하고 집행해야 할 한국경찰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후
인공기를 태우려는 집회에 대해 경찰의 저지가 계속되고 있는데, 법치국가에서 법률에 의거하지 않은 공권력의 행사가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민간의 자발적인 북한민주화운동 자체가 남북간 긴장을 유발할 필연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미국 내에는 중국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민간운동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미중관계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북한정부가 남한의 민주질서와 법체계를 무시하면서, 민간의 북한정권 비판과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한 관심에 압력을
가하려는 발상이나 시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북한당국의 부당한 개입에 대하여 원칙을 저버리고 인정해주고
있는 남한정부의 정책이야 말로 시정되어야 합니다.
2.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의 비둘기파를 어렵게 하고 매파를 강화시켜 민주화를
더 어렵게 하는 것 아닐까?
북한정권 내에 과연 강온파가 존재하는지부터 의심스럽습니다. 김정일이 철저히 전권을 장악하고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나누어주지 않는 조건에서 정권 내에 일정한 입장의 공유를 바탕으로 파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학계나 정부일각에서는 그동안 강경파인 북한군부와 온건파인 非군부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해왔으나 뚜렷한 근거가
제시된 적은 없습니다.
남북협상과정에서 북한당국이 간혹 군부강경파들의 의견이 있어서 남한주장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를 근거로 '군부강경파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납북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자기 내부의 갈등상황을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 진실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군부강경파의 의견이 있다기 보다는 남한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기 위해 군부강경파의 핑계를 대는 것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이런 수법은 이미 북한이 오래전부터 상투적으로 써왔습니다. 이미 김일성은 청와대 습격사건, 8.18판문점 도끼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때도 “군부내 일부 맹동주의자의 소행”이라는 표현을 쓴바 있습니다. 남한의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대규모 게릴라부대를 보내는 일이 김일성 몰래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김정일 또한 스파이 교육을
위해 일본인을 납치한 행위에 대해 시인하면서 아랫사람들이 멋대로 저지른 일이라고 변명을 했습니다. 일본인 납치행위가
김정일의 공작원을 현지인처럼 잘 위장해야 한다는 이른바 ‘특별한 교시’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북한공작원
출신자들로부터 여러차례 확인이 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후 공공연하게 선군(先軍)정치와 강성대국를 주장하고 있는데, 자기 입으로 군대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한식으로 표현하면 '군사독재'임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부의 우두머리가
바로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입니다. 그러면 결국 김정일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기존 맑스주의의 당 우위의
이론조차 폐기하고 수령이 당의 우위에 있다는 이론까지 만들어 낸바 있습니다. 그러니 북한에서 강온파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북한의 군과 당에는 오직 김정일파만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백보양보해서 강온파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남한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북한민주화의 압력이 거세지면 오히려 온건파의
입지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적으로 전제정권이나 독재정권은 내외를 막론하고 민주화의 압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일정한 양보를 하는 온건 내지 유화책을 쓰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백보양보해서 북한민주화운동이 북한의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거나, 김정일의 강경책을 유발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현재의 북한사회는 더 이상 나빠질래야 더 나빠질 것도 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입니다. 오죽하면 북한주민
90% 가까이가 차라리 전쟁이 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잃을 것이라곤 노예의 사슬밖에 없는 북한주민들에게 이런 우려는
한낱 한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3. 북한주민의 절박한 처지를 생각한다면 북한민주화운동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동포돕기 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북한주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향후 통일이
된 이후에도 남북간의 정서적 화합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자체는 권장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과 북한민주화에 대한 지원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즉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한민주화를 방해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촉진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대북 인도적 지원이 북한민주화 운동을 결코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대북 인도적 지원은 식량이나 의약품 등 1차적인 생존을 위한 지원입니다. 따라서 북한주민의 정치적 억압과 인권유린을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더구나 대북지원을 하는 민간단체들은 이 사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정하게 북한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대북지원단체가 김정일정권을 비판한다면 당장 북한과의 통로는
끊기고 맙니다. 인도적 지원을 계속 하려면 북한의 정치문제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두 번째로 지난 10여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기아사태는 철저히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북한은 식량난 초기에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그 원인으로 들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 북한의 식량사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세한
북한사정을 모르더라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북한의 식량난은 자연재해가 아닌 다른 특별한 원인이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비료와 농기계 부족 같은 원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농민들의 근로의욕의 상실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극심한 식량난이 닥치더라도 북한의 농민들은 자신들이 경작한 작물에 대한 처분권이 전혀 없습니다. 전량을 국가에서 가져가고
농민들도 도시인들과 똑 같이 배급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배급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열심히
농사를 지으려 하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북한뿐 아니라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예외 없이 나타났고, 결국 농민들에게
작물의 처분권을 주는 개혁을 통해서 해결하게 됩니다. 가까운 중국과 베트남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주민들 중에 300만이 굶어 죽어가는 사태를 보면서도 농민들이 일정한 자유를 갖게되면 정치적인 불안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농업개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국에서 곡물을 수입해서라도 주민들을 먹여야
할텐데, 핵무기 개발이나, 전투기 도입,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에는 돈을 펑펑 쓰면서 정작 굶주리는 주민들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이제는 아예 북에 필요한 식량은 아주 당연히 외부에서 주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도움을 받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해 하기는커녕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결국 대북 인도적 지원은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에는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에 지원되는 식량은 일단 군대로 보내지고, 일부는 김정일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이 착복하여 장마당에서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탈북자들에 의해 증언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미당국은 배분의 투명성과 검증을 식량지원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북한정권은 감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었다가 나중에 다시 뻬앗는 편법을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치적 자유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조차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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