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탈출과정과 송환 후의 운명

"탈북자들은 어떻게 북한을 탈출하며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되면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또다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가."

지난 5월 〈길수가족 구명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내외 기자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에 송환되면 어떻게 되는가?"이러한 질문은 탈북자 문제와 관련된 기자회견이나 기자들과의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듣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살아 남기 어렵다."

숨어살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 조사를 할 수는 없지만, 대개 중국 내에 현재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10만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이나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탈북자라는 말을 그저 '국경을 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국경을 넘는 과정은 '한편의 영화 같다'라고 할 만큼 파란만장하다. 이들은 국경을 넘기까지 죽음의 고비를 몇 번씩은 넘은 사람들이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덮쳐오는 체포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체포되면 본국(북한)으로 송환된다. 그런데 중국에서 흔히 만나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체포 송환되었던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송환되었던 사람들 중 40%정도가 살아서 재(再)탈북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송환된 나머지 60%는 죽었단 말인가? 재탈북이 가능하다는 건, 북한을 탈출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한번 잡히고 혹독한 처벌을 받았으면서 왜 또 다시 그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탈북자들의 탈출, 송환 과정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탈북자들의 탈출루트를 소상히 소개하는 것을 우려하는 편집진 내부 의견도 있었으나 이미 북한에서는 일반화된 경로이고, 탈북자들의 탈출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본지 이주일 편집위원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탈북자들의 경험담을 종합하였다.


1. 탈북 경로

북한주민들의 탈출 경로는 북한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크게 2개의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먼저 국경연선(북-중 국경선)과 멀리 위치한 고장인 함경남도·평안남도·황해도·강원도 등 '중간지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탈출경로이고 △ 다른 하나는 함경북도의 두만강 국경연선, 양강도·자강도·평안북도의 압록강의 국경연선에 살던 주민들의 탈출경로이다.

1) 중간지대에서의 탈북
중간지대의 탈북 경로는 중국 국경으로의 접근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접근 방식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1단계 - 통행증 승인번호 지정 지역까지의 도착 과정, △ 2단계 - 국경 도시로의 도착 과정, △ 3단계 - 국경 도시에서 국경을 넘기까지의 과정.

자기거주지 → 통행증 승인번호 지역 → 국경도시 → 국경 → 중국

먼저 '통행증 승인번호 지역'에 대해 알아보자. 알다시피 북한 주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도(道)를 벗어나 여행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통행증(출장 및 여행증명서)'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승인번호'까지 받아야 하는 지역이 있다. 이러한 지역으로는 평양시, 두만강·압록강 국경지역, 강원도, 황해 남북도의 분계선 지역으로, 북한 땅덩어리만 떼어놓고 그려보면 그 외곽지역은 몽땅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승인번호는 지역(인민보안부)에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인민보안성)에서 직접 받게 되는데, 승인번호가 쓰여진 증명서에 평양시는 붉은 색 사선(斜線), 국경지역은 푸른 색 사선이 그어져 있다. 이러한 증명을 아무에게나 발급해주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철도 노선으로 보면 함경북도는 청진역까지, 양강도 백암역, 자강도 강계역, 평안북도 구성역, 강원도 통천군(강원도는 타지역과의 연결 철로가 없으므로 역이 아님), 황해북도 금천역, 황해남도 해주역까지가 무승인번호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을 벗어나 국경으로 더 가까이 가려면 승인번호를 받아야 한다.

고로 1차 관건은 '승인번호 지역'까지 다가가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잡히더라도 탈북을 하려 한다는 의심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후 펼쳐질 국경지역에서의 탈출과정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거리가 길고 교통편 또한 언제 있을지 몰라 (사흘이 지나도록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장시간이 소요된다. 승인번호 지역까지 가면 다음은 완전히 숨막히는 과정이다. 승인번호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체포되면 다르게 변명할 여지가 없다. 국경지역에 다가갈수록 경비는 심해져 첩첩산중의 위협이 닥쳐온다. 국경지역을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로 나누어 각 방면의 탈출과정을 살펴보자.


■ 함경북도 방면으로의 탈출 과정

▶ 1단계는 청진 역까지 육로 또는 열차로 가는 것이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통행증이 있으면 별문제 없지만, 통행증이 없는 경우 열차 승무 안전원들의 단속을 피하여야 한다. 역구내는 통행증과 열차표가 구비된 경우에만 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담을 넘거나 단속이 미미한 후문을 통과하여 열차에 올라야한다. 중간지대에서 청진까지 가는 도중에는 3∼4차의 통행증 검열이 진행된다.열차를 많이 타본 사람은 대충 단속구간을 알고 있다. 주로 '집결소(단속에 걸린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모아두고 노동을 시키는 곳)'가 있는 역인 간리역, 신성천역, 고원역, 길주역을 비롯한 일부 구간들에서 집중 단속을 진행한다. 통행증 검열의 형태는 열차 앞 뒤 출입문에서 단속자들을 가운데로 몰아 넣으며 압박한다. 일단 단속에 걸리면 단속칸에 갇혀 손짐(가방, 배낭, 보따리 등) 검사와 몸수색을 당하고 역두(驛頭) 보안원들에게 넘겨져 집결소로 향한다. 집결소에서는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신분을 확인하고 단속자가 소속된 직장에서 데려가도록 통지한다. 통행증 검열 과정에 운수가 좋으면 의자 밑으로 들어가거나 열차가 멈췄을 때 창문으로 뛰어내려 단속을 면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열차의 지붕에 올라가 단속을 면하는 경우도 있지만 멈추는 역마다 역전 검열대가 거칠게 단속을 해대므로 매 역전마다 오르내려야 하는 고달픔이 있다. 열차는 주로 평양-두만강, 평양-청진, 평양-온성, 평양-무산를 이용하여 청진까지 간다. 육로로 갈 때에는 함흥, 길주지역의 '10호 초소'를 통과하여야 한다. 10호 초소는 인민무력부에서 관할하는 초소로 지나는 행인의 통행증 및 자동차 운행증을 검열하는 곳이며, 북한 전역의 주요 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국경지역에는 더욱 많다.) 북한은 80년대 초반부터 같은 도내에서의 육로를 이용한 이동은 통행증 없이 공민증으로 신분만 확인하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래서 철로에 비해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어려움이 다소 덜하다. 하지만 문제는 자동차를 타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신작로에서 2∼3일을 기다려도 자동차를 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2단계는 청진에서 무산이나 회령, 온성까지 가는 것이다.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직행으로 무산이나 온성까지 갈 수 있으나 청진부터는 단속이 더욱 심할뿐더러 탈북행이 아닌가 의심을 살수 있는 확률이 높다. 따라서 청진에 도착하면 고무산까지 거의 100리 길을 도보(塗步)하거나 차잡이(달리는 차를 잡아타거나 돈 또는 담배를 주고 차를 타는 것)를 한다. 그리고 고무산에서 무산방면, 회령방면, 온성방면 등 자신이 계획한 방면으로 방향을 정한다. 육로라 하더라도 쉽지는 않다. 2∼3개의 10호 초소를 통과하여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승인번호 지역이므로 철저하게 통행증 검열을 한다. 따라서 통과 방법은 산길을 따라 초소를 에도는 것이다. 다른 한 방법은 고무산역에서 화물열차를 타는 것인데 이 방법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화물열차의 도착 시간과 목적지를 미리 파악 해야하며 화물열차에 접근하여 오르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고무산역에는 다른 역전과는 달리 역전 보안원 외에도 역전 검열대, 역전 보위대, 인민군 검열군관들이 역구내를 순회하며 수상한 여행자들을 단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 3단계는 국경 도시에서 두만강변까지의 접근이다. 먼저 국경마을로 가는 주요 길목마다 지켜선 인민보안성의 '기동순찰대' 및 '규찰대'의 단속을 피해야한다. 다음은 역시 국경과 접한 길목마다 지켜선 국경 경비대의 단속이다. 이곳부터는 통행증에 목적지가 국경 도시로 지정되어 있어도 국경 접경 마을까지 지점이 밝혀져 있지 않으면 통과가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신의 통행증에 목적지에 무산군이 적혀 있어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무산군 칠성리를 가자면 그 정도의 통행증으로는 안 된다. 정확히 그 지명이 적혀 있어야 한다. 통행증이 없는 경우 월경할 수 있는 위험분자로 보위부에 억류되여 조사를 받을 수 있다. 통행증이 있으면 가능한 변명의 여지는 있어도 통행증이 없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운좋게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주변에 도착하면 50m마다 지켜선 최종 국경 경비대의 감시선을 감쪽같이 통과해야한다. 주로 야간을 이용하여 은밀히 통과한다. 경비대원에게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월경(越境)미수자로 곧장 보위부행이며 월경목적에 따라 강제노동 또는 3년 이상의 형을 밭게된다. 따라서 도강자(渡江者)들은 비장한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 경비대원들은 도강자를 잡으면 득이 오겠는지 해가 오겠는지 잔머리를 굴리는 경우도 많다. 눈감아 주는 대가로 굉장한 뇌물을 받을 수 있는데, 무턱대고 이것을 받았다가 보위부에 알려지면 오히려 자신이 곤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양강도 방면으로의 탈출 과정

양강도 방면은 목적지가 혜산이다. 평양-혜산행 등 열차를 타고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백암까지 가고, 그곳에서 도보 및 차잡이로 혜산까지 간다. 요행히 열차에서 단속을 모면(謀免)하였을 경우에는 혜산역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위연역이나 검산리역에서 내린다. 혜산역 구내는 너무도 단속이 심하여 십중팔구 단속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연역과 같은 일부 역에서 검열 단속이 해이한 것이 아니다. 역구내를 빠질 수 있는 후문이 어느 정도 열려 있고 관내의 통근열차가 다니는 등 여러 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혜산시에서 압록강 도강에 유리한 점은 시내가 압록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대낮에 지형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밤이면 국경 경비를 배로 강화한다. 따라서 경비병과의 연결 루트가 없이 도강은 거의 불가능하다. 보천군 방면으로 올라가도 경비 초소들이 너무 많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어느 해인가 김정일이 이 길을 따라 삼지연으로 가면서 단속 초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하여 그 수를 줄였다지만 단속 코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현지인들의 협조하에 경비병을 매수하여 도강하는 것이 안전하다. 따라서 돈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맨 주먹뿐인 사람들은 역시 야간을 이용하여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자강도 방면으로의 탈출 과정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작연∼만포행 등 열차를 타고 강계역까지 도착한다. 종착역인 만포까지 가면 좋지만 강계역부터 승인번호 지역으로 집중 단속구간이므로 강계역에서 내려 중강진으로 방향을 정한다. 중강진 쪽으로 가는 이유는 압록강의 폭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좁기 때문이다. 자강도 위원군에는 위원발전소가 있는데, 이 발전소로 인해 저수지가 형성되어 압록강 폭이 넓어지면서 위원∼만포에 이르는 지역은 도강에 불리하다. 물론 200여 리의 중강진 방면으로 가는 도중에는 경비대 초소를 여러 곳 거치게 되지만 식량 구입의 명목으로 변명의 여지는 있다. 그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압록강에 발도 담가 보지 못하고 보위부로 끌려 갈 수 있다. 이곳에서도 100m 마다 잠복해 있는 국경경비대원들의 틈새를 누비며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 평안북도 방면으로의 탈출 과정

신의주 방면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구성 또는 청수역까지 이동하여 육로로 도보 및 차잡이를 한다. 방향은 신의주 또는 청주로 향한다. 물론 이곳까지 가는데 보이는 10호초소는 수단껏 통과하여야 한다. 신의주 방면은 압록강 하류 지대이므로 강폭이 넓어 거의 탈북지점으로 택하지 않는다. 또 신의주 건너편의 중국 요녕성 지구는 한족(韓族)들이 대부분이므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조선족이 많은 길림성 지역으로 중국에서 다시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2) 두만강, 압록강 국경지역에서의 탈북
국경지대 주민들의 탈북은 중간지대의 주민들보다 훨씬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거주지가 국경이므로 두만강, 압록강변까지 어느 정도 의심 없이 접근 할 수 있고 지형 조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경경비대가 마을에 내려와 술이나 밥을 얻어먹고 하는 등 평소에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고 자연히 탈북을 눈감아 주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빈주먹으로 탈출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익숙한 지형에만 의존하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일부 돈푼 꽤나 있는 사람이나 밀수자들이 국경경비대원과 합의하여 도강을 쉽게 할 수 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국경 경비대원들도 돈을 받고 도강을 시킨다 하더라도 표면상으로는 다시 돌아온다는 담보 하에 도움을 준다. 타협만 잘 되면 거의 안전한 도강을 할 수 있다.


2. 중국에서의 탈북자 체포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탈북자가 체포되는 경우는 △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의 변방부대에 체포되는 경우와 △ 중국 경찰에 체포되는 경우로 갈라 볼 수 있다.

1) 변방부대에 체포되는 경우
변방부대에 체포되는 경우는 도강 후 국경마을에서 체포되는 경우와 시내 도심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체포되는 경우가 있다. 도강 후 은신처를 찾기 위하여 국경인근 마을을 방황하던 중 순찰하는 변방부대원과 우연히 마주쳐 체포되는 경우가 많다. 은신처에 은거해 있다가 마을 사람들의 밀고로 체포되기도 한다. 또한 변방대원들이 가구(家口)마다 진행하는 호구(戶口) 검사 시 적발되기도 한다. 다행히 북한 주민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좋은 주민을 만나면 의복을 갈아 입히고 창고나 김치움(땅을 깊이 파고 김치 및 겨울용 채소를 저장 하는 곳)에 잠자리를 정해주기도 한다.농사철에는 인력(人力) 확보를 위해 일부러 안식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연변의 작은 시골마을에 농사철이면 토박이 중국인들보다 북한에서 온 삯일군들이 더 많을 때도 있다. 농사철에는 별일이 없다가 농사가 끝나면 대대적인 체포가 진행된다. 노임(勞賃)을 주지 않기 위한 주민들의 밀고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시내로 이동하는 경우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도보를 하게 된다. 이때 변방부대 초소를 통과하게 되는데 선택 검열을 한다. 중국말로 문의하여 북한 사람으로 의심되면 신분을 확인한다. 만약 체포되면 변방부대 초소로 이관한다. 이 곳에서 간단한 조사가 끝나면 다시 변방부대 본부로 이송하여 감방에 갇아 둔다. 감방에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하여 일체 개인물품을 회수하고 허리띠, 신발끈을 빼도록 한다. 자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변방부대에서는 거의 일주일동안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 절차는 이름, 생년월일로부터 시작하여 중국으로 온 목적, 경력, 가정환경, 도강지점 등. 조사 과정에 중국 변방부대원들이 쓰는 회유 수법이 있다.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북한측에 강제송환하지 않고 석방하여 자유롭게 북한에 돌아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탈북자들을 수용하는 중국의 모지역에 보내 북한에 보내지 않겠다는 등 북한으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탈북자의 심리를 이용한다. 조사가 끝나면 언제 그랬던가 하면서 무지막지하게 수갑을 채워 교두(咬頭 ; 국경지역에 있는 북한-중국간 다리)로 향한다.

2) 경찰에 체포되는 경우
이 경우는 주로 시내 도심에서 이루어진다. 가구마다 호구검사에 의하여 적발되거나 조교(朝僑 ;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국적자, 중국판 조총련이라 보면 됨)나 일부주민들의 밀고에 의하여 체포된다. 물론 밀고의 뒷면에는 북한 보위부원들이 있겠지만 탈북자 본인 자체는 어떻게 밀고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110' 기동 경찰대가 북한의 꽃제비들이 은거해 있는 다리 밑에 급습하여 체포해 가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거리에서 돌아다니다가 체포되는 경우가 있는데 야간에 순찰대와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경찰에 체포되면 일단 해당구역 파출소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이곳에서도 역시 이름, 경력관계 등을 조사 받고 탈북자라고 확인되면 연길시 구치소로 이관한다. 구치소 감방들에는 중국 내의 온갖 잡범들이 수용되어 있다. 이 곳에서 일주일 정도 억류되어 있다가 변방부대의 호송 하에 북한으로 이관된다. 일주일 정도 억류되는 이유는 하루에 2∼3명씩 붙잡혀오는 탈북자들을 모아 한번에 이관하기 위해서이다.체포된 탈북자의 수가 30∼40명 정도일 때는 두 사람을 한 조로 태워 군용트럭의 적재함 가운데로 몰아 넣는다. 적재함 변두리에는 변방대원들이 빙 둘러서 뛰어내릴 수 없도록 한다. 이관장소는 가까운 지역의 세관으로 넘긴다. 현재 북­중 국경세관은 함경북도 회령, 양강도 혜산, 자강도 만포, 평안북도 신의주 등 10여 군데에 있다.1998년 이전에는 변방대원들이 체포된 탈북자들을 가능한 구타는 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는 탈북자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구타를 가하여 기를 죽이고 있다.


3. 북한에서의 탈북자 처리

1) 1995년 이전 처리 과정
식량난이 극명하게 드러난 1995년 이전에는 중국으로의 탈출은 이유를 불문하고 가차없이 정치범 수용소행이었다. 실례로 요덕수용소(일명 15호 관리소)에 수감된 바 있던 안혁 씨는 호기심에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 넘어갔다가 자진하여 돌아왔으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사람으로, 그가 쓴 수기 '대왕의 제전'에는 이러한 경험이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 2부에는 최정남이라는 이름도 볼 수 있다. 그는 1989년경 평성수의축산대학 재학중 농촌지원에 동원되지 않은 관계로 대학에서 출학(黜學) 처분되었다. 그 상태로 부모님을 대할 면목이 없게된 그는 탈북의 길을 택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평성시 안전부 지도원을 하는 학급의 여자 친구를 통하여 통행증을 만들고 목적지를 위조 변경하여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었다. 그 후 북경행 열차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이관되었다. 결국 요덕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가깝게는 전 김정일 친위부대원이었던 이백룡 씨의 사례가 있다. 그는 북한체제에 환명을 느껴 중국으로 탈출하였다 자신을 한국 대사관 공관원으로 소개한 보위원(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의 꾀임수에 걸려 체포·송환되어 요덕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은 너무도 끔찍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2) 1995년 ∼ 1998년경 처리 과정
탈북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처리과정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경우에 따라 달라지지만 1998년까지는 대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탈북자들이 처리된다. 먼저 세관에서 북한측 보위부에 이관되자마자 짐승취급이 시작된다. 북한의 수갑으로 바꿔 채우고 화물자동차에 처넣는다. 그리고 일체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통제하며 해당지역의 보위부로 호송한다.탈북자들은 보위부 반탐과(反探課)에서 취급한다. 먼저 몸수색, 손짐 검사를 한다. 이 검사에서 손목시계를 비롯한 돈, 귀중품을 모두 회수해 버린다. 거주지가 타지역인 경우 물품 명세품을 작성하도록 한다. 거주지역 보위원들에게 이관할 때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몸수색이 끝나면 조사에 들어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 몇 조 몇 항에 의하여 거짓진술을 하지 않겠다, 거짓 진술을 하는 경우 2∼3년 이하의 교화형에 처한다는 내용에 서명하고 진술서를 쓰도록 한다. 진술서에는 이름, 생년월일, 친척, 이력, 탈북목적, 탈북과정, 중국에서의 생활정형을 날짜별 시간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진술과정에 의문점이 발생하였을 때 구타와 기합으로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은 보위원들의 일상적인 심문방식이다. 진술이 마무리되면 수갑을 채워 사회안전부(지금의 '인민보안성') 구치소로 호송한다. 보위부 청사에도 감옥이 있지만 붙잡혀온 탈북자들이 너무도 많아 엄중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사회안전부 구치소에 감금한다.

이때부터 탈북자들은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구치소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계요원(간수)들은 구타를 하며 탈북자들의 옷을 벗긴다. 옷에서 단추, 지퍼, 팬티의 고무줄까지 다 떼어버리고 모든 물건을 회수한다. 심지어 여성들의 팬티나 브래지어까지 회수한다. 경험있는 일부 탈북자들은 돈을 뺏기지 않기 위하여 화폐를 돌돌 말아 비닐에 싸서 항문(肛門)에 밀어넣기도 한다. 감옥에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생의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수감번호를 알려주고 감방에 처넣는다. 감방은 지역별로 형태와 넓이가 각이 하지만 보통 원형과 4각형에, 넓이는 2∼8㎡ 정도이다. 감방의 바닥은 나무마루로 되어 있고 한쪽 모서리에 변소구를 설치하고 있다. 뒤쪽에는 겨우 기어서나 들어갈 수 있는 철판 출입문이 있다.

한 감방에 적게는 9명 많게는 15명씩 감금한다. 수감자는 바로 앉은 상태에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만약 꼼지락 움직이다가 계요원에게 발각되면 철창에 손 또는 발목을 내밀고 각목세례를 밭는다. 때로는 감방 안에 찬물을 들이부어 추위 속에 떨도록 고통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이, 벼룩, 빈대가 피부를 물어뜯어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쩌다 운동시간 30분을 주면 저마다 벌거벗고 이잡이에 여념이 없다. 보통 한사람이 하루에 100여 마리의 이를 잡아 죽여도 감방 안의 이, 벼룩, 빈대는 없어지질 않는다. 머리 서캐(이의 알)은 머리카락이 희어질 정도로 쓸어 놓아 젊은이도 늙은이로 보일 정도이다.위생상태는 둘째치고 감방에서 주는 식사로는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생체가 소화할 수 없는 옥수수 껍질이 절반이나 섞인 가루 또는 삶은 통강냉이 70∼80알, 계요원들이 먹다 남긴 멀건 국물 반그릇씩을 주는 것이 고작이다. 밖에 있다면 생풀이라도 뜯어먹으련만 여기서는 주는 음식 외엔 입에 넣을 것이 없다. 대소변도 계요원의 승인 하에서만 볼수 있다. 예를 들면 "선생님! 4호 감방 222번 소변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문의했을 때 "보지 말아" 하고 계요원이 기분에 따라 명령하면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한달 정도면 누구나 영양실조에 걸린다. 계요원들은 수감자들의 항문(肛門) 상태를 보고 영양실조를 확인한다. 항문이 심하게 열려 있으면 며칠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본다.

거주지 탈북자들은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한 달이면 노동단련대(북한주민들은 이를 '깡판'이라고 부른다)로 보낸다. 일주일 정도만에 구치소를 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 엄마와 어린애들을 집에 둔 여성, 어린이(꽃제비)들이다. 그 외 젊은 남성들은 보위부의 조사를 받으며 죽기 직전인 한 달 후에야 깡판으로 보낸다. 이곳에서 3∼4달 동안 강제노동을 시키는데 일부는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타지역 거주지 탈북자들은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본 거주지 보위원들이 호송한다. 본 거주지로의 호송이 늦어지는 것은 낙후한 열차운행 사정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호송도중 탈북자의 탈출을 막자는데 있다. 감방에 억류되어 한 달 후면 탈북자가 영양실조에 걸려 열차호송 도중 도망칠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호송하면 다시 인민보안성 구치소 감방에 감금한다. 이곳에서 일주일에 2∼3번씩 처음부터 진술서를 쓰며 조사를 받는다. 조사과정에 한국인, 기독교인을 비롯한 서방의 외국인과 접촉하였다는 것이 노출되면 교화소로, 순수 식량구입이었다면 '깡판'으로 보낸다. 석 달 정도 후면 대개 감방에서 죽거나 몇 달째 햇볕을 보지 못해 죽기 직전의 해골모양 영양실조자가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대로 석방한다. 석방되었다 하더라도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상태에서 탈북하였던 사람들이므로 몸을 추스릴 수 없다. 따라서 희망은 하나, 먹을 것이 있는 중국으로 다시 탈북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3) 1998년 이후 탈북자 처리과정
1998년 이후 북한 주민들의 탈북실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김정일은 이 문제를 보다 조직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탈북자가 이관되면 거주지 보위부에 호송하여 취조를 하던 것과는 달리 거주지에 관계없이 일단 보위부 감방에 3∼10일동안 수감하고 취조를 한다. (무산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안전부 구치소에 감금하고 취조만 보위부에서 한다)취조과정에 밀수와 같은 단순 월경자와 정치범 혐의자를 구분한다. 단순 월경자는 사회안전부에서 취급하도록 넘긴다. 사회안전부에서는 도(道) 집결소에서 4달 이상 강제 노동을 시킨다. 그 가운데서 2번 이상 잡혀온 사람, 집도 없고 친인척도 없어 거주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함경남도 함흥시의 '55호 수용소'에 수용하여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저절로 죽도록 통제한다.

한국인, 교회, 외국인과 관련이 있는 정치범들은 이른바 '보위부 대상(對象)'으로, 상급에 보고하여 지시를 받는 3∼6개월 기간 수감하였다가 관리소(정치범 수용소)로 넘기거나 2∼3년간 교화형에 처한다. 수감생활 6개월이면 시체나 다름이 없다. 이들이 정치범 수용소 또는 교화과정에 살아 남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국제 인권단체들이 탈북자들의 인권에 대하여 떠들어대자 김정일은 한번 체포되어온 탈북자의 경우에는 담당구역의 인민보안원이 책임지고 다시 탈북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것이 더 큰 고통으로 되었다. 탈북 자체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그들에게는 볕을 가릴 집도 없거니와 거적 같은 집이 있다한들 먹을 것이 없다. 또 먹을 것을 구입할 자금(資金)도 식량마련을 위해 떠날 자유도 없다. 탈북을 반역의 죄로 보는 사회이기에 본인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대대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더더욱 희망을 잃게 한다. 결국 담당 안전원이 그를 부양해야 하는 식인데, 현실적으로 담당 보안원도 먹고살아야 하는 판에 전망도 없는 탈북자를 끼고 부양할만한 보안원은 없다. 따라서 강제노동 기간이 만기가 되어도 출소시키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여 영양실조로 죽도록 대책 없이 내버려둔다.

더 좋은 방법은 55호 수용소에 보내 사전에 회피(回避)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체포된 탈북자가 중국에서 입고 나온 의복이나 물건들을 빼앗지 말라고 지시하였으나 이것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안전원들이 빼앗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결소의 강제노동기간에 영양실조에 걸려 죽지 않으려고 빵 한 두 짝과 바꿔 먹는 것이 일수다. 또 고역을 면해보려고 감시원에게 뇌물로 바친다. 따라서 출소 만기(滿期)때가 대면 누더기 옷에 빈주먹뿐이다. 이것 때문에 이 순간도 출소한 사람들은 또 다시 생명의 연장길인 험난한 탈북의 길에 오르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보위원들도 불만이다

보위원들이 체포 송환된 탈북자들을 취조하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반역자'라는 말과 함께 "체포되지나 말 것이지 왜 체포되었는가"하는 말이다. '반역자'라는 말은 김정일의 지시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체포되지나 말 것이지'라는 말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탈출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탈북자의 가련한 신세를 위로하는 말이다. 또 송환되어 온 탈북자들을 맞이하면 "'중국 비공식 방문단'이 왔다"고 비아냥거린다. 이는 탈북이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나타나는 권태증(倦怠症)의 표현이다. "강택민이 너희들을 살려주겠대?" 라는 말은 비인도적인 중국 당국자들에 대한 질타의 의미도 담겨있다. 그렇더라고 결국 감옥에 갇힌 탈북자들에게 "네놈들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가차없이 폭행을 한다.

한편 음(蔭)적으로는 탈북자가 보위부 대상이라 하더라도 초기에 보위원과 관계형성을 잘하면 6∼7천원의 현금을 뇌물로 석방될 수도 있다. 보위원 역시 국가에서 주는 배급만으로는 당연히 먹고살기 어렵고 삶의 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술서 내용을 바꾸도록 유도한다. 자기는 그 뇌물로 보다 나은 생활을 꿈꾸고 탈북자는 그런대로 목숨만은 건질 수 있게 하였으니 김정일의 비인간적인 지령을 다소나마 회피하였다고 위안을 찾는 것인지.... 그러나 송환된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친인척들에게 돈이 없기 때문에 풀려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뇌물을 주고 빠져 나오는 경우는 본 거주지역 탈북자에게나 가능한 것이고 타지역이 거주지역인 탈북자에게는 기대하기 어렵다. 본 거주지역 탈북자들의 경우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뇌물을 바칠 수 있지만 타지역 탈북자들의 경우 가족에게 체포사실을 알릴 수도 없고 뇌물을 바칠 통로를 만들기도 어려우며, 가족들이 체포사실을 알고 감방에 찾아올 즈음엔 이미 죽어있을 수도 있다.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은 북한의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송환되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심지어 이관 도중 자살을 택하는 것이다. 보위원들도 송환되어 오는 탈북자들을 받을 현실적인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조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불만이 축척된 채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탈북자들에 대한 폭행을 서슴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결국 정치(政治)만 바꾸면 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