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텔레비전

북한이야기는 북한출신인 이주일 편집위원이 연재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시면 이메일 등으로 문의바랍니다.
북한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 있다. 바로 '국민의 알 권리'라는 말이다. 남한에 와서 이 말을 되새기며 그 내용이 무엇이고 주민들은 어떤 경로를 통하여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 그 단순한 이치를 어렵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폐쇄된 북한의 독재체제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남한생활에 정착하면서 충격적으로 느끼는 한 면은 신문, 방송, TV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의 독자적인 활동이다. 때로 민주주의 사회는 소란하고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생생한 현장보도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바로 '알권리'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사람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과정에 새로운 착상을 고안하고 구현할 수 있는 창조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동물과 구별되는 단면이기도 하다.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믿으면서 다양한 정보를 활짝 열어놓는 곳이 인간의 본성에 맞는 사회이고, 다양한 정보가 주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담장을 쌓는 사회가 인간의 본성에 거스르는 사회이다.

북한은 겉으로는 사람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존중하는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을 제일 믿지 못하는, 가장 '주체사상답지 못한' 사회이다. 북한사회에서 주민들이 다양한 정보매체들의 소식을 접하며 자기 삶의 위치와 자세를 자연스럽게 가꿔 나가는 모습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은 현대사회의 가장 유력한 정보매체인 TV문화에 대하여, 북한의 실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어떠한 TV 수상기가 있나

현재 북한 내에 TV는 국내산을 포함하여 일본제, 중국제, 러시아제 등 200만대 정도가 보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제 TV는 재일귀국동포들이나 조총련을 통하여 국내에 보급됐다. 잘 나가는 간부들이나 재일귀국자들은 '히다찌' 상표의 컬러TV를 주로 소유하고 있다.

1970년대 말경에 조청련을 통하여 다량 수입된 흑색 TV는 북한에서 '소나무' 상표를 붙여 핵심계층 부류에 속하는 피살자 가족(6.25 전쟁 중에 국군에 의해 피살된 가족), 전사자가족(6.25 전쟁 중 또는 군복무과정에 전사한 인민군 가족)을 선발 선택하여 국정가격(600원)에 팔아줬다.

러시아제TV는 노동자들이 러시아에 벌목노동을 갔다 돌아오면서 개별적으로 들여왔다. 1980년대에 북한주민들은 러시아 벌목노동에 뽑혀가기 위해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갖은 수단을 다했다. 목적은 3년 동안 벌목노동을 하면 아무리 못 벌어도 TV하나는 가지고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서는 TV를 살수 없고, 살 수 있다해도 노동자의 월급(월 60~70원)으로는 4000~5000원(7월 1일 경제조치 이전 가격)에 달하는 TV를 일전 한푼 쓰지 않고 모아도 6~7년에 달한다. 러시아제 TV 주상표는 포톤, 엘렉뜨론과 같은 흑색TV다.

중국제는 1980년 말경 중국에 친척이 있는 주민들의 왕래로 묻혀 들여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TV는 가장 저질품이지만 이것을 소유한 집도 서민이라고 말할 수 없다. TV가 없는 집도 많기 때문이다. 국산은 남포시 항구구역 도지동에 소재한 통신기계공장에서 만들던 대동강 상표가 주를 이룬다. (현재 이 공장은 군수공장으로 전환되면서 군수용 IT기기만 생산한다고 한다.) 그것도 브라운관식이다. 1989년경에 일본으로부터 반도체소자가 수입되면서 집적회로를 조립할 수 있었고 삼일포와 같은 컬러TV를 생산하게 됐다.

TV보급률은 대략적인 통계로는 2세대 당 한 대씩 보급되어 있는 것으로 집계되지만 현실은 4세대 당 한 대 정도 있을까 하다. 그것도 평양, 남포, 개성, 원산, 함흥 등 대도시에 해당된다. 그 외 지방도시들에는 평균 8세대 당 한 대가 있을까 하다고 보면 된다.

북한내 채널은 3개로 간단할 뿐만 아니라 방영프로도 단순하다. 처음 한국에 와서, TV앞에서 리모콘을 손에 들고 어떤 채널을 볼 것인가 자꾸 돌려보는 남한 사람들을 보며 '참 복(福)도 많은 사람들이다'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재밌고 유익한 채널들이 많은데 볼게 없다고 자꾸 돌려대니 말이다. 북한주민들에게도 하루빨리 이런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래본다.
북한에서는 채널을 '통로'라고 하고 TV프로그램을 '방송순서'라고 한다. 그러면 북한의 TV방송의 사명, 각 TV방송국의 프로그램편성 및 내용, 송신형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Ⅱ. 북한 TV방송의 사명

북한의 TV방송은 김정일 우상화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동당의 가장 위력한 선전선동 매체로서 당의 노선과 정책을 구현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국내외의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사명을 지닌 민주국가들의 방송 목적과는 정반대다. 민주국가 방송들의 지나친 상업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북한의 TV보다는 천 만 배 낫다. 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사회에서는 각 방송국들이 독자성을 가지고 주민들을 상대로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의 기본요건을 갖추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시청자를 곧 주인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TV의 주인은 김정일이다. 따라서 북의 TV는 정확성과 현실성에 입각하기보다는 미화(美化)하고 과장하는 원칙에서, 객관성보다는 김정일 개인의 주관에 맞춰 우상화에 전적인 무게를 두기 위해 노력한다.

TV방송의 활동원칙과 요구도 그렇지만 형법내용도 위압적이다. 북한의 형법 제46조에는 '당의 검열기준에 위배되는 내용을 보도하거나 출판할 경우 반동선전 선동죄로 사형 또는 전 재산을 몰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더구나 법보다도 더 무서운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 10대원칙(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은 보고, 토론, 강연을 하거나 출판물에 실릴 글을 쓸 때에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여 오직 수령의 발언만 유일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TV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명도 이제는 인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고 싶고 열을 알면 백, 천, 이 세상 모든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인민들을 한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김부자(父子) 일가족 역사만 되풀이하니 인민의 정서에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국내의 것을 다 알아버린 인민들이 외부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울타리 밖을 나서지 못하던 봉건사회의 처녀들이 그네를 뛰면서 멀리 울타리 밖을 흘깃흘깃 내다보던 것처럼 말이다.

Ⅲ. TV 방송국 종류와 방송 내용

북한은 조선중앙TV, 만수대TV, 교육문화TV 등 3개 TV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① 조선중앙TV

북한의 전지역에서 시청할 수 있는 유일한 TV채널이다. 1963년 3월 3일 북한의 유일한 평양TV방송으로 방영되어 오다가 1970년 4월 15일 조선중앙TV로 개칭됐다. 송출방식은 PAL방식이다. 평양에서 송출이 시작되어 각 도마다 설치된 TV중계소를 통해 각 군의 중계소들까지 확대하여 주민지대들에서 TV시청을 한다.

중앙TV의 방영시간 편성은 다각성이 부족하다. 남한처럼 방송국 자율에 의해 방송시간을 연장한다든지 갑작스레 조정한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평일에는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6시간,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오후 3시부터 11시 30분까지 11시간 30분을 방영한다.

프로 편성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조건에서는 거의 고정 됐다. 애국가의 주악으로 막을 열고 김일성, 김정일 장군의 노래 합창으로 시작하여 그 날 방영되는 TV순서를 알려준다. 주로 오후 5~6시 사이에는 청소년 학생들을 위한 아동방송시간, 6~7시 사이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와 관련한 영상기록물들을 방영하거나 구호나무를 비롯한 사적물 소개, 7~8시 사이에는 사회문화 생활을 비롯한 당의 경제정책과 관련한 내용, 9시 종합보도(종합뉴스)에 이어 예술영화 또는 텔레비전 소설(TV 드라마) 방영으로 끝을 맺는다.

특수한 경우란 김일성 김정일의 생신이나 당창건기념일, 공화국창건 기념일과 같은 각종 기념일, 새해 1월 1일에는 기념대회 연설을 실황중계(생방송)하는 등 평소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프로를 구성한다. 이때에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TV를 시청하도록 한다.

북한주민들이 '조선의 TV는 한 주일만 보면 볼 것은 다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작품 창조보다도 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선전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어 그 효과성을 높이자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동지애의 노래'10분 짜리 영상이 방영되면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호소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들은 '왜 저런 노래를 TV에 내보내는가'고 의문을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주민들에게 싫증이 나도록 방영프로가 수십 번씩 반복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 송환된 장기수들이 '동지애의 노래'를 부르던데 북한 주민들에게 이 노래는 정말 짜증나는 '원수의 노래'다.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지겹다고 채널을 돌려버렸다가 정치범으로 끌려간 경우도 있다.)

주민지대에서 TV는 보통 6통로(6채널)에서만 방영된다. 평양과 가까이한 평안남도 일대에서는 군(郡) 중계소에서 송신하는 6통로와 평양에서 송신하는 것을 5통로에서 직접 받아 볼 수 있다. 중국과 가까이한 국경지대에서는 통로를 바꾸면 중국에서 송신하는 TV를 볼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보안성(경찰청)에서는 집집의 TV채널부위에 봉인딱지를 붙여놓고 시시각각 봉인 상태를 검열한다. 주민들은 봉인에 표가 나지 않도록 하여 중국TV를 보다가 검열이 닥치면 봉인을 붙여놓는 수법을 쓴다. 중요한 것은 집안 단속을 잘하는 것이다. 자식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가서 중국TV를 보았다고 자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른들은 되도록 자녀들이 잠든 깊은 밤에 중국TV를 시청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에너지 사정으로 주민들이 TV를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이것도 평양시에만 해당되고 지방도시들에서는 거의 시청할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간부들, 돈 꽤나 있는 주민들은 자동차 밧데리(배터리)를 자체 구입 설치하여 TV를 시청한다.

밧데리 역시 TV보다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국내생산은 저질품인데다 얼마 안되는 자동차들에도 공급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그 자체는 개인이 소유하기 어려운 국가생산물이다. 선호하는 밧데리는 일본산인데 재일귀국동포들에 의해 국내에 얼마간 뿌려진다. 일반주민들이 밧데리를 구입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경제관리조치 이전 장마당에서 국산 밧데리는 5000원 정도에 팔렸다 한다.

② 만수대TV

1983년 12월 1일 개국했다. 주민들은 12통로로 방영한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12통로'라고 부른다. 1970년대에 중앙TV로 금요일 오후 조선말 제작 외국영화를 방영하던 것을 새롭게 전이했다고 볼 수 있다. 평양 시민 및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영화를 주로 방영한다.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에 있는 외국인들을 의식하여 만든 텔레비전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만수대텔레비전은 평양시 사동구역 오류리에 있는 인공위성 중계소를 통해 남한 텔레비전을 비롯하여 세계 수십 개 나라 텔레비전을 받는다. 이것을 종합하여 김정일에게 보이고 그로 하여금 세계의 움직임을 제때에 파악하도록 한다는데 그 주임무가 있다.

방영시간은 토, 일요일과 명절에만 방영한다. 방송시간은 토요일에는 오후 4시~저녁 10시까지 5시간, 일요일에는 아침 9시~오후 1시, 오후 4시~ 저녁 10시까지 10시간이다. 프로그램 편성은 외국영화를 제외한 모든 프로가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선전이다. 하지만 새것에 굶주려온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외국영화에만 있다. 외국영화를 봐야 영화 볼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영화는 자막처리를 하는 경우는 없고, 모두 조선말로 번역(더빙)하여 방영한다. 주로 구 쏘련영화, 중국영화, 인도영화, 동유럽 구 사회주의권 나라 영화를 방영한다. 예컨대 구 쏘련영화 '익측없는 전선' '우리가 다 맡자'같은 전쟁영화와 중국영화 '공산당원' '대도화' '붉은 수수밭' '여자 별동대'같은 공산당활동을 조명한 영화 등을 들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의 관심은 이러한 영화들에 나타나는 남녀간의 애정표현에 집중된다. 북한 영화에서는 남녀간 애정표현이 싱겁지만 외국영화는 비교적 그 관계가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 주민들은 대개 남존여비사상에 짙게 물들어 있는데, 외국영화를 통하여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기도 한다.

만수대TV는 평양 인근 주민들만 시청할 수 있는 일종의 '특혜'다. 주민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만수대TV를 시청하는 날'로 간주한다. 평양과 가까이한 지방주민들은 만수대TV를 시청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한다. 별도로 12통로 안테나를 만들어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설치하는가 하면 형광등 또는 윰버치(알루미늄 대야)를 이용하여 대용 안테나를 제작하기도 한다. 평양 주민들이 평양시와 만수대TV 방영구역에서 추방되거나 이사를 하게 되면 제일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 중의 하나가 12통로를 시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③ 개성TV

개성TV는 1971년 4월 15일 개국했다. 1997년 2월 16일 대남 대내 TV방송으로 분리, 개편하면서 조선교육문화TV로 개명했다. 주로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북한체제를 선전하며 남한을 비방하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방영시간은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5시간을,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와 오후 3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방영되고 있다.

개성 주민들을 제외한 북한의 주민들은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개성TV가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개성은 분계선 지구인데다 보안성에서 승인하는 특별통행증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으므로 개성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개성TV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Ⅳ. 인민들의 간절함, 그들은 알까?

이상과 같이 북한의 주민들은 바깥 세계의 모든 정보에서 차단되어 김일성김정일에 세뇌된 채 살고 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이 가장 정확한 정보로 간주하는 것은 TV, 방송, 신문을 비롯한 노동당 강연제강 보다도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입소문'이다. 열차칸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전해지는 소문은 빠른 소식은 못돼도 신빙성이 있고 귀담아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김정일 독재체제가 끝장 나는 날, 그날은 북한 주민들이 알권리 - 인간의 권리를 되찾는 날이다. 그 날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글을 마치면서, 주민들은 이렇게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놓으면서 정작 자신은 '어제 KBS 뉴스를 보았다'느니 '드라마 여인천하를 재밌게 보고 있다'느니 'NHK는 광고가 없어서 좋다'느니 하는 망발을 자랑스럽게 지껄이는 김정일의 정신머리, 그리고 이런 인간에게 장단을 맞추면서 '개방적인 인물'이라고 추켜세우는 남한의 일부 정신나간 언론과 인사들의 행태를 지적해주고 싶다. 12통로를 한번 봐보겠다고 방안에서 안테나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인민들의 간절함을 그들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