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체가 수용소나 다름없다

강철환 기자가 강연한 북한 인권포럼 "북한 정치범 수용소엔 사람이 없다"에 참가했을 때, 참석자 대부분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로 영화에서 '수용소'의 개념을 익혀온 남한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라고 하면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죄수 복장을 하고 머리는 빡빡 깎인 채 특별히 지어진 막사에서 집단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그런 수용소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일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에서는 특정지역을 격리하여 대자연 그대로를 감옥화 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주민들이 살고 있던 마을과 산천을 격리하고 그 속에 정치범들만 수감하는 자연 감옥소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을 인공위성으로 관찰한다면 일반 마을과 같이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판단될 뿐이다. 주민들이 살고 있어도 그들은 정치범으로 수감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공위성은 알 리가 없다. 형식은 일반 사회인데 내용은 철저히 탄압과 학살로 일관하는 그곳의 실정을, 직접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정치범 관리 방식은 없었다. 참으로 김일성, 김정일은 독재도 독창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겉은 수박처럼 시퍼래도 속은 주민들의 빨간 피로 물든 곳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다.

북한에는 정치범 수용소 외에도 각종 수감 시설이 존재하고 있다. 교화소, 집결소, 단련대, 구류장, 927....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가혹한 인권탄압은 모두가 똑같다. 이런 곳에서 지금 수십 만의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 당신이 고운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에도, 쥐를 잡아먹고 이와 전쟁을 벌이고 엉덩이가 썩어 들어가도록 앉아 있어야 만 하는 북녘의 수인(囚人)들이 있다. 굶주림을 못이겨 훔쳐먹었다는 이유로, 국경을 넘어 중국에 건너갔다는 이유로, 남한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이유로.... 이들은 무슨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 모두가 잠재적인 수인들이고, 북한 땅 전체가 수용소나 다름없다. 그러면 북한에는 어떤 수용소들이 있는지 그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관리소 (정치범 수용소)

현황 및 역사

북한 주민들은 정치범 수용소를 'OO호 관리소'라 부른다. 북한 당국에서는 기록상 조선인민경비대 예하 부대처럼 위장하고 있다. 예컨대 강철환씨가 수감되었던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는 '15호 관리소'라고 부르지만 기록상으로는 <조선인민경비대 2915부대>로 위장하고 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역사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다. 1947년도에 지주, 친일파, 종교인 등 계급투쟁의 타도 대상들만 수용하는 마을 형태의 수용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다가, 6.25전쟁 후 1958년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 탄광지역에 최초로 통제구역을 설치했다.

북한은 1958년부터 실시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을 통해 전주민의 1/3인 320여만명을 '적대군중'으로 분류, 6천명을 인민재판으로 처형하고 7만여 명을 내각결정 제149호에 의해 산간벽지로 추방하였다.

또한 1968년~70년 사이에는 '주민재등록사업'을 실시, 모든 주민들을 핵심-동요-적대 등 3계층 51개 부류로 구분하고 이들 중 '위해하다고 지목되는 자'나 김일성 김정일 세습체제 비판자 등을 구금시켰는데 이들을 격리수용한 곳이 바로 '정치범수용소'다.

함경남도 요덕 수용소의 역사를 보면 1958년경 요덕군 용평리의 일부 지역에 지주, 자본가, 종교인, 치안대(6.25 전쟁 당시 점령지역에서 치안관리를 위해 한국군이 조직했던 무장단체) 가담자들을 따로 거주시키고 수용했다. 1959년에는 당시 민족보위상이었던 최용건이 직접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요덕군 용평리, 평전리, 구읍리 일부, 대석리, 대숙리 등 5개 리를 합쳐 하나의 수용소로 만들었다.

위와 같은 수용소들이 1990년 초만 해도 11호부터 25호까지 일련번호를 달고 12군데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ㅇ아시아감시위원회(Asia Watch)와 미네소타변호사 국제인권위원회(Minnesota Lawyers International human Rights Committee) 등 국제사회의 여론과 ㅇ중국이 개혁 개방됨으로 인한 외부로의 노출우려, ㅇ그리고 전쟁 발발과 같은 유사시 정치범들을 중심으로 제 2전선을 형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국경지대에 집중됐던 일부 수용소는 모두 폐쇄하고 현재는 다섯 군데가 위치하고 있다.


- 수용대상

여기에는 ㅇ김일성, 김정일의 독재체제에 대하여 비난한 사람 ㅇ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는 이유 ㅇ도서 출판물에 게시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오손(汚損)시킨 이유 ㅇ외국의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유 ㅇ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귀국한 귀국자들이 "외국이 북한보다 살기 좋았다"는 추억의 말 한마디에 '반혁명분자' '조국반역자' '인간 쓰레기'로 규정돼 수감된다.

또한 "반혁명분자는 3대를 멸살 시켜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어린이들을 포함한 가족, 친척들까지 재판도 없이 은밀히 수용소에 감금한다. 이런 사람들이 20여만 명에 달한다.

초기에는 적대계층 가운데서 종파분자, 반당, 반혁명분자, 과거의 지주, 친일파, 종교인 및 월남자 가족, 북송교포 가운데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자유세계를 동경 찬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당의 간부로 있다가 김일성 우상화와 김정일 후계자 강화 과정에 체제 비난으로 밀려난 반당, 반혁명분자들로 수용대상의 성격이 바뀌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미제의 고용 간첩', '혁명의 파괴분자'로 불리어진다.

매 수용소마다 범죄의 유형에 따른 특성이 있다. 함경남도 화성군 제16호 관리소는 주로 김일성 우상화 단계에서 종파분자, 반당 반혁명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14, 15호 관리소는 김정일 후계과정에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자유세계를 동경 찬양한 자, 탈북 북송자(북한을 탈출했다가 해외에서 체포되어 북송된 자)들이 대부분이다.

수용소 내에는 '완전통제 구역'과 '혁명화 구역'으로 지역이 구분된다. '완전통제 구역'의 수용자들은 종신형이며, '혁명화 구역'의 수용자들은 결정된 형이 없이 사상 전향 상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내보낸다. 혁명화 구역에서 전향자로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완전통제 구역으로 옮겨져 종신형에 처해진다. 따라서 혁명화 구역은 사상전향의 시험장이라 하겠다.

- 관리소에서 수인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탈북자의 수기를 읽어본 어떤 분이 "정치범을 관리하기에도 힘이 들텐데 모조리 죽이지 북한 정권이 왜 굳이 수용소를 운영하는가" 하고 물어온 적이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수용소는 북한사회의 협소한 경제규모로 보면 중요한 '생산원'이다.

각 수용소의 지리적 특성을 보면 그곳의 수감자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안남도 개천시 일대는 탄광지구이다. 따라서 14호 관리소는 석탄생산이 기본이며 요덕 15호, 화성 16호, 회령 22호는 농업지대이다. 여기서는 농산물 생산이 기본이다. 청진시 25호 관리소는 자전거, 재봉틀을 비롯한 생필품을 기본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물들은 보위원들의 식량 또는 그들의 소비품으로 충당되며 사회에 내보내지기도 하는데 대개 그 품질이 좋다.

- 관리소와 일반사회는 구조상 어떻게 다른가?

관리소 안에도 일반 사회와 같이 학교, 병원, 상점을 설치하고 있으나 보위부원들의 지시 하에 운영되고 있고 모든 경비는 조선인민경비대가 담당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수인들의 탈주, 소요방지를 위해 철저한 감시, 통제체계를 갖춰 운영한다. 외곽 경계선에는 3~4m 높이의 4~6중 철책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탈주가 용이한 곳에는 전기철조망, 지뢰밭, 함정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 외곽의 울타리에는 2㎞간격으로 7미터 높이의 감시망루를 세워 감시하고 있다.

수용소가 설치된 인근 마을에는 보위부 산하의 '수사대'라는 기관이 있다. 수사대의 임무는 AK 소총으로 무장하고 수용소의 외곽 철책 선을 순찰한다. 혹시 수용소 내부 비밀을 탐지하기 위해 접근하는 외부 주민을 감시, 적발하고, 수용소 탈출자들을 제때에 신고하도록 주변 주민들을 교양한다. 수사대원들은 수용소내의 학교 교사(수용소 내에서는 학교 교사도 보위부원이다)나 관리를 담당하였던 보위부원들이 대부분이다.

1970년대 말경 함경북도 회령시 행영리(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동)에 소재하고 있는 정치범 수용소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수용소의 어린이들이 탈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은 노예로 취급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식이라도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여 어린 자식이 어떻게든 탈출하도록 유도한다. 탈출하여 성공하면 좋은 것이고 체포되어 처형돼도 짐승처럼 살기보다는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수용소의 경비선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해도 인근 마을 주민에 의해 신고되고 즉시 체포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말도 떼기 전에 부모들과 함께 수용소에 수감됐으므로 북한의 일반 사회에 대하여 세상물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수용소를 탈출하면 굶주림을 참지 못해 인근 마을에 들어간다. 마을 주민들은 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린다. 일반 사회의 아이들과는 모습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먹지 못하여 깡마른 상태에다가 보위원들의 구박과 매질 속에서 자랐기에 어딘가 어리숭하다. 주민들은 그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먹을 것을 주면서 안심시키고 보위부나 수사대에 연락망을 통해 신고해 버린다. 한편 보위부에서는 신고자들에게 양복지(옷감) 또는 기호품을 지급하여 신고 정신을 독려한다.

외부의 주민들이 수용소 구역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외부 주민들이 도토리를 줍거나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철조망을 넘는 것이다. 물론 '위수 구역(접근 금지 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구역이므로 도토리나 송이버섯이 많다. 그 유혹을 못 버려 수용소의 외곽 철책선을 넘어 버리는 것이다.

순찰대에 발각되어 체포되면 경비대에 억류되어 보위부에서 심문 및 조사를 받는다. 그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고 지난 기간의 사상동향을 조사 받는 것은 당연하다. 조사과정에 특수한 상황이 없다면 조사내용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서약과 함께 풀려난다. 억류 기간은 보통 7~10일이다.

- 수인들에 대한 대우는 어떠한가?

일단 수용소에 수감되면 주민으로서의 권리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도 일체 박탈당한 채 생산력을 제공하는 도구로 존재하게 된다. 예컨대 공민증을 박탈당하고 선거권, 교육받을 권리 등도 제약받는다. 식량, 생필품 배급은 물론 결혼, 출산 등도 금지시킨다. 또한 면회 및 서신연락 금지 등 외부와 연계가 일체 차단된다.

북한의 일반 사회에서는 공민증만 소지하고 있으면 열차를 탈수는 없어도 거주지 도내(道內)는 여행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서는 마을과 마을사이, 집과 집 사이도 자유로이 왕래 할 수 없다. 또 일반사회에서는 아무리 형식적인 북한의 선거일지라도 무조건 참석해야 하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형식적인 선거 자체가 없다.

학생들의 교육은 노동을 시킬 수 있는 정도, 즉 셈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학습을 시킨다. 또한 출산을 막기 위해 가족 세대인 경우 이동 작업에 동원시켜 집단 노동을 시킨다.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이다. 수감자가 독신인 경우에는 무조건 병영(집단 막사) 생활이다.

수인의 일과는 작업반의 성격 및 계절에 따라 다소 상이하나 농장 작업반의 경우 새벽 5~6시경 기상, 저녁 8시까지 작업을 실시하고 사상교양과 인원점검 후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탄광 작업반은 동, 하절기 구분 없이 1일 3교대로 작업하는 등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작업은 개별 도급제를 실시한다. 과제를 미달하면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고 폭행도 당한다.

주식은 강냉이와 감자, 밀, 보리로 수확기에 각 1회 배급하며, 공급량은 종류에 관계없이 1인 1일 기준으로 탄광은 600g, 지역지구는 500g이나 최근에는 식량사정을 이유로 100~200g 정도 배급된다.

최근 일반 사회도 수용소의 식량 사정과 비슷하지만 장사를 하든 무얼 하든 지역 안에서는 약간의 자유가 있으나 수용소 안에서는 변소 출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수인들 속에서 공포 중의 공포는 일단 유사시(전쟁이 일어나면) 한 명도 남김 없이 모두 사살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6.25전쟁 당시 정치범들을 미처 처형하지 못하여 그들에게 수많은 노동당원들이 잡혀 죽었다는 교훈을 되새긴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일반 사회와 수용소를 비교해보면, ㅇ수감자들은 의무적인 노예노동이라는 것 ㅇ열악한 환경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 탈출을 시도하는 자에게 즉시 총살 혹은 교수형, 타살, 수인들끼리 때려죽이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 ㅇ수용소 안에서는 열악한 조건과 고된 중노동으로 수인들이 죽어도 그 어떤 책임이 없다는 것 ㅇ생존의 본능을 이용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폭력으로 억누르고 굶주림의 고통으로 서서히 죽인다는 것이다.

최근에 북한의 일반 사회를 보면 수용소의 생활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다. 일반 사회도 수용소의 생활 준칙과 많이 닮아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압록강 2천리, 두만강 7백리의 50미터마다 국경 경비대가 진을 치고 굶주림과 정치적 압박을 피해 중국으로 탈출하는 탈북자들의 생존을 가로막고 있다. 북한이 거대한 수용소로 된 셈이다.

세계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지도를 펼치고 지구상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를 짚는다면, 당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안남도 개천, 함경남도 요덕 화성, 함경북도 청진 회령을 손가락으로 가리켜야 한다. 그야말로 '현존하는 지옥'들이다.


2. 교화소

- 수감 대상 및 현황

교화소는 남한의 교도소와 같은 형태다. 남한의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의 생활형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교화소는 인민보안성에서 관리한다. 인민 보안성의 임무는 ㅇ반국가 행위의 감시와 적발, 처벌 ㅇ반혁명 행위의 감시와 적발, 처벌 ㅇ회색분자, 불평분자, 종파분자, 지방주의자 등 일체의 불건전 요소 적발, 제거 ㅇ출신성분 및 신원조회 ㅇ출입국자 신원조사 ㅇ외국방문객의 감시 ㅇ지방치안유지 ㅇ각종 범죄단속 ㅇ국가기관 고위간부의 경비 및 지역경비 담당 ㅇ교통질서 및 방화대책 ㅇ인구조사(유동인구, 실종자 파악) ㅇ감시인사찰 ㅇ신분등록사업(출생, 사망, 결혼신고, 거주이동업무) ㅇ비밀문서 보관, 관리 ㅇ교화소 및 노동 교양소 운영 관리 ㅇ철도경비 ㅇ국가 및 공동재산, 개인재산 보호 ㅇ선박 출입관리 ㅇ반항공조직 운영 등이다.

북한에서 범죄자로 체포된 사람 가운데 체제비난을 비롯한 정치적 범죄는 보위부로 넘기고 기타 범죄는 보안성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보위부와 보안성이 공동 수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교화소에는 재판 후 형을 받은 경제범이나 강력범들, 단순 탈북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감형은 1년 이상부터다. 현재 북한에는 10~15만 명의 수인들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ㅇ함경남도 단천시 ㅇ평안남도 증산군 ㅇ황해북도 사리원시 ㅇ강원도 천내군 등에 교화소를 두고 있다. 북한에서는 '00호 교화소'라고 부른다.

이외 소년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황해북도 사리원 '소년 교화소',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민군 교화소'가 있다. 인민군이 관리 운영하는 인민군 교화소는 평안남도 신양군 지동리에 소재하고 있다.

- 운영실태

수감자들의 생활은 정치범 수용소의 운영실태와 다를 바 없지만 보안성에서 관리한다는 것, 가족단위가 아니라 본인만 수감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한 서신 거래, 면회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곳의 수인들도 강제노동에 동원돼 물품 생산을 한다. 이들이 생산하는 농산물과 생필품은 보안성의 보안원들에게 지급된다. 예컨대 평안남도 개천시 교화소(현재는 평안남도 증산군으로 이동)에서는 보안원들의 가죽신을 생산했다. 개천 교화소 실태에 대해서는 <꼬리 없는 짐승들>의 저자 이순옥씨가 증언했고 최근에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진행한 <북한 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 지해남씨가 증언하여 그 실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교화소 죄인들 역시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생활조건은 너무도 열악하여 수인들이 기아와 질병, 영양실조로 죽어 나가지만 보안원들은 그대로 방치한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남한에서 36년 간 옥살이를 해온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가 함경남도 정평군 교화소를 방문하고 "내가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살았더라면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라는 말에 11호 교화소를 해체시켰다고 한다. 그 소문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한의 교도소에 비할 바 없이 생활환경이 열악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징역살이가 끝나면 자기가 원래 살던 거주지 행정위원회 노동과에서 새로운 직업을 배치 받는다. 대부분 어렵고 힘든 3D 업종, 즉 탄광, 광산들에 배치해 버린다.


3. 강제노동수용소(강제노동단련대)

- 수감 대상

강제노동수용소(단련대)를 북한 주민들을 일명 '깡판' 또는 '꽃바크'라고 한다. 수용자들은 경범죄자(輕犯罪者)들인데 폭력배, 암거래와 절도자, 3~30일 이상의 기업소 무단결근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생활총화 3달 이상 불참자 등 사회질서 위반자 또는 간부들의 괘씸죄에 걸린 자들이 대상이 된다.

강제노동단련대는 최근 상황과 같이 범죄율이 급증했을 때는 무단결근자나 생활총화 불참자 등 일반적인 사회 질서 위반자들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위법자들까지 수용한다. 최근에는 탈북자들이 급증함에 따라 법적으로 형벌을 주기에는 경미한 단순 탈북자들을 수용하기도 한다.

- 운영실태

강제노동단련대 관리는 해당 지역의 인민 보안성에서 담당한다. 각 도, 시, 군과 3급 이상의 기업소들에 설치되어 있다. 3급 기업소들에서는 당위원회의 지도 아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관리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에 있는 강제노동단련대는 최소한 23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각 도, 시, 군마다 한개씩을 가정해도)

수용기간은 1~6달 정도이다. 이곳에도 일과와 내부 생활준칙이 정해져 있다. 새벽 5시 기상, 5~6시 점호 및 청소, 7시 식사, 오전 8시~저녁 8시까지 작업을 실시하고 사상교양과 인원점검 후 밤 10시 잠자리에 든다. 일과 규정은 시간표대로 짜여져 있다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보안원은 자기의 기분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킨다. 강제노동 단련대의 사명이 수인(囚人)을 쉬게 하지 않고 강제 노역으로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안원들은 단련대 수인들을 강한 고역에 시달리도록 하는 것이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먹을 것은 제대로 주지 않고 계속 일만 시킨다.

강제노동단련대는 정부 또는 기관으로부터 하달되는 공식적인 작업계획량이 따로 없다. 고된 노동을 시켜야 한다는 목적 하에 짐승 취급하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협동농장에 수용소 수인들을 데리고 가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보안원들은 농장에서 생산한 남새(채소)를 공짜로 받는다. 그냥 여기저기 자신의 노예처럼 끌고 다니며 일을 하도록 하고 그 대가는 자신이 다 챙긴다. 정말 이렇게 보면 보안원은 노예주나 다름없다. 노예들의 생산력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마르크스가 말한 노예제 사회의 작은 재판(再版)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현재 북한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강제노동단련대 수인들은 때에 따라 보위부, 보안부의 건물 건설 또는 보위원, 보안원, 당간부들의 살림집 건설에도 동원된다. 보안원들도 상급 간부 또는 기관에 아첨을 떨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수인들이 작업장으로 오갈 때는 대열을 지어 "비(非)사회주의를 뿌리뽑자!"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한다. 이런 형태의 행진은 수용자들에게 정말 치욕적인 일과가 아닐 수 없다. 해어질 대로 해어지고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시내를 행진하며 '나는 죄인이요'하고 드러내는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 우파로 몰린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군중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 지인(知人)들이 있을 경우 수용자는 얼굴을 들 수 없다. 역으로 그 강제노동단련대 수인들의 행렬 속에 사랑하는 자식 또는 오빠, 누나, 남편, 아내가 끼어 있다면 나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 같아 극도로 주눅이 든다.

주민들을 굶겨 죽이면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 것이 무슨 죄라고 이러한 수치심을 견뎌내야 하는가. 정말 부끄러워 할 자, 얼굴을 못들고 다녀야 할 자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 내부생활준칙

다음은 강제노동단련대의 내부 생활준칙이다. 수인들은 이러한 형태의 생활준칙을 모두 암기해야 한다.

1. 자기가 범한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 범죄투쟁에 적극 참가해야 한다.
2. 노동에 성실히 참가해야 하며 매일 작업과제를 초과 수행해야 한다.
3. 노동안전 규정을 자각적으로 지키며 사고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4. 규정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지키며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5. 보안원의 승인 없이 장난, 오락, 노래, 쓸데없는 말, 암호를 쓰지 말아야 한다.
6.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말아야 한다.
7. 보안원의 승인 없이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말며 지정된 잠자리를 이용해야 한다. 8. 내부 비품을 철저히 애호 관리해야 한다.
9. 위생문화 사업에 모범적으로 참가하며 내부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10. 반장, 부반장, 경비, 호실장, 작업조장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체계를 밟아 제기할 수 있다.
11. 도주하거나 규율을 위반했을 때에는 엄격한 처벌을 받으며 정상에 따라 재판에 회부된다.
12. 비판에 성실하고 생활에 모범적이며 노동에 성실히 참가하고 반범죄 투쟁에서 큰 공로를 세웠을 때 기한 전에 출소 할 수 있다.

- 강제노동단련대에서 굶어죽지 않고 나름대로 편하게 살아가는 수단

첫째, 반장, 부반장, 경비와 같은 소위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자리에 있으면 보안원의 지시에 따라 본인은 일을 하지 않고 깡판생(수인)들을 작업장에 끌고 다니며 시켜먹기만 할 수 있고 밥도 빼앗아 먹을 수 있으며 뇌물도 챙길 수 있다.

그러자면 본인이 주먹도 쓸 줄 알아야 하지만 강제노동단련대를 관할하는 담당 보안원 또는 보안부 감찰과나 그 이상의 간부들과 안면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에 의하여 반장, 부반장, 경비와 같은 권력자리가 임명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친분관계를 가지자면 큰 뇌물이 제일 좋은 약이 된다.

둘째, 반장, 부반장에게 뇌물을 끊임없이 바쳐 좀 편한 일을 하도록 배려 받는 것이다. 이들에게 필터 담배나 술, 하다 못 해 중국에서 입고 나온 옷이라도 바치면 편한 일을 시키든지 아니면 경비를 서도록 한다. 또 환자라고 하면서 하루쯤 휴식을 얻을 수도 있다.

탈북자들은 6개월 간의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다시 탈북을 시도한다. 아무리 중국에서 돈을 좀 벌어왔다고 하더라도 수용소에서 뇌물로 모두 바쳐지기 때문이다. 강제 노동 기간에 고된 중노동을 하면서 100그램도 되나마나한 찌꺼기 음식을 먹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으려면 중국에서 입고 나왔던 옷이라도 빵 몇 조각과 바꿔 먹어야 살 수 있다. 작업장에 나가면 간혹 장마당의 빵 장사꾼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그때 재빨리 사먹는다.

고역을 면해 보려고, 또 얼마 되지도 않는 밥마저 뺏기지 않으려면 수용소의 권력자들에게 뇌물로 섬겨야 한다. 따라서 출소 만기(滿期)가 되면 역시 누더기 옷에 빈주먹이다. 살자면 탈북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처지다.

출소 후에는 대부분 자기 거주지로 되돌아가지만 보위부에서 관리하는 이력서 란에는 이제 성분분류 중 '복잡계층'의 대열에 끼여든다. 따라서 그들의 앞 날은 꽉 막혀있고 힘든 3D 업종에 배치된다.

4. 집결소

1990년 초반까지 집결소는 ㅇ열차 여행 과정에 공민증 또는 통행증(출장 및 여행증명서) 미소지자, ㅇ여행 목적지 위반자 또는 여행 기간 위반자, ㅇ여행 목적지 확인 미납자(여행 목적지에 갔다 돌아 올 때는 숙박 거주했던 인민반과 보안소에서 통행증 뒷면에 숙박 확인을 받아야 함) 등 주로 '철도 질서 위반자'들을 수감하는 곳이었다.

단속에 걸린 사람의 직장 또는 거주지 분주소에 통보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벌금을 매긴 후 근무하는 직장 또는 거주지 분주소에서 호송원이 올 때까지 강제노동을 시키는 곳이 집결소다. 따라서 집결소는 철도의 환승(換乘) 역에 설치되어 있다. 대표적인 집결소로는 평양시 간리역 집결소, 함경남도 고원역 집결소, 함경북도 길주역 집결소, 평안남도 신성천역 집결소, 황해북도 사리원역 집결소 등이다.

이곳에서는 3~6달 동안 벌목노동, 건설노동을 시킨다. 일과 및 내부 규칙은 강제노동단련대와 같다. 최근에는 탈북자들이 급증하면서 각 도마다 강제노동단련대와 같은 형태의 집결소를 설치하고 고된 노동을 시킨다.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집결소가 생겨난 것이다. 또 단순 탈북자들도 집결하여 함경북도 어랑군 발전소 건설장과 같은 '대상건설장'(국가가 지정한 대형 건설 공사)에서 강제노동을 시킨다고 한다. 이곳에는 강제노동단련대 출소 후에 다시 탈북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보낸다. 결국 그곳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죽으라는 것이다.


5. 9.27 집결소(9.27 수용소)

1998년 9월 27일 김정일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유랑 걸식하는 어린이들을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고아원에 수용하라"는 지시를 내려 생겨난 수용소다. 이 지시에 따라 각 시, 군마다 '9.27상무'가 조직되고 여관을 거점으로 '부랑하는 어린이' 즉 꽃제비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통일연구원은 2000년 1월 19일 배포한 연례정세보고서 「통일환경과 남북한 관계 : 1999~2000」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가출하여 장마당과 역전, 다리 밑 등에서 기거하는 (북한의) 꽃제비들이 20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어린이들이 모두 9.27 수용 대상이다.

이곳에는 어느 정도의 식량과 의복을 지급하지만 먹을 것을 찾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아이들에게 수용 생활은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도 보내주긴 하지만 9.27에 수용된 아이들을 주위에서 곱게 볼 리 없다.

학급에서 왕따 당하고 북한 사회의 또다른 소외계층으로 자라난다. 그래서 9.27 수용소가 주로 고층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은 기를 쓰고 탈출을 기도한다. 커튼을 찢어 길게 늘어뜨려 줄을 타고 내려가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심지어 고충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불구가 되는 어린이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 세상 어느 나라 어린이들도 겪어 보지 못한 불행을 북한 어린이들이 겪고 있다.


6. 구류장

- 수감대상

북한의 구류장은 남한의 구치소와 같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구류장은 보위부 구류장과 보안부 구류장이 있다. 보위부 구류장은 정치범, 보안부 구류장은 경제범들이 해당된다. 탈북자들의 경우 단순 탈북자는 보안부 구류장에, 탈북 후 남한의 교인, NGO관계자, 기타 외국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탈북자들은 정치범으로 보위부 구류장에 감금된다.

보위부 구류장에 감금된 정치범들은 예심을 거쳐 정치범 수용소로, 보안부 구류장에 감금된 수인들은 예심 후 재판을 거쳐 인민보안성에서 운영하는 교화소로 보낸다. 또한 재판까지 받을 필요가 없는 자들은 강제노동단련대나 집결소로 보낸다.

북한의 구류장은 각 도, 시, 군의 보위부, 보안부에 설치되어 있다. 앞에서 남한의 구치소와 같은 형태라고 했지만 그 운영은 물론 하늘과 땅 차이다. 남한의 구치소에서 책도 보고 운동도 한다는데 북한의 구류장에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 북한의 구류장이 남한의 그것처럼 식사도 괜찮고 자유가 보장된다면 너도나도 구류장에 가겠다고 할 것이다.

북한의 구류장에서는 계호원(간수)들이 수인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을 일종의 쾌락처럼 여기고 있다. 북한의 구류장에 대하여서는 Keys 제25호(2002년 6월호) 특집 '탈북자들의 탈출과정과 송환 후의 운명'에서 밝힌바 있다.

- 운영실태

탈북자가 구류장 대기실에 들어서면 계요원들은 구타를 하며 그들의 옷을 벗긴다. 옷에 붙은 단추, 지퍼, 팬티의 고무줄까지 다 떼어버리고 모든 물건을 회수한다. 심지어 여성들의 팬티나 브래지어까지 회수한다. 그 다음 수감번호를 알려주고 감방에 처넣는다. 감방은 지역별로 형태와 넓이가 모두 다르지만 보통 원형과 4각형에, 넓이는 2~8㎡ 정도이다. 감방의 바닥은 나무마루로 되어 있고 한쪽 모서리에 변소구를 설치하고 있다. 뒤쪽에는 겨우 기어서나 들어갈 수 있는 철판 출입문이 있다.

한 감방에 적게는 9명, 많게는 15명씩 수감된다. 수감자는 바로 앉은 상태에서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만약 꼼지락거리다가 계요원에게 발각되면 철창 사이로 손 또는 발목을 내밀고 각목세례를 받는다. 때로는 감방 안에 찬물을 들이부어 추위 속에 떨도록 고통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이, 벼룩, 빈대가 피부를 물어뜯어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쩌다 운동시간 30분을 주면 저마다 벌거벗고 이잡이에 여념이 없다. 보통 한사람이 하루에 100여 마리의 이를 잡아 죽여도 감방 안의 이, 벼룩, 빈대는 없어지질 않는다. 머리 서캐(이의 알)은 머리카락이 희어질 정도로 내려 앉아 젊은이도 늙은이로 보일 정도이다.

위생상태는 둘째치고 감방에서 주는 식사로는 몸을 유지할 수가 없다. 사람 몸이 소화할 수 없는 옥수수 껍질이 절반이나 섞인 가루 또는 삶은 통강냉이 70~80알, 계요원들이 먹다 남긴 멀건 국물 반그릇씩을 주는 것이 고작이다. 밖에 있다면 생풀이라도 뜯어먹으련만 여기서는 주는 음식 외엔 입에 넣을 것이 없다.

대소변도 계요원의 승인 하에서만 볼수 있다. 예를 들면 "선생님! 4호 감방 222번 소변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문의했을 때 "보지 말아" 하고 계요원이 기분에 따라 명령하면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한달 정도면 누구나 영양실조에 걸린다. 계요원들은 수감자들의 항문(肛門) 상태를 보고 영양실조를 확인한다. 항문이 심하게 열려 있으면 며칠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본다.

- 예심 중 피의자가 사망했을 경우는?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탈북자든 일반 범죄자든 모두가 예심 기간이다. 따라서 자신이 지은 죄를 숨김없이 말하도록 잠시도 쉬지 말고 고통을 주는 것이 구류장의 사명이다. 감방에서는 계요원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취조에 불려나가서는 예심 담당자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한다.

수감자들은 너무도 지독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바늘을 먹고 빈 침을 삼키는 등 모진 고통을 면해 보려고 자살을 꾀하지만 죽는 것도 쉽지는 않다. 또한 모진 고문으로 없는 일도 있다고 말하고 보안원, 보위원들의 요구에 순응하여 더 큰 죄를 뒤집어쓴다. 결국 2년형에 해당하는 죄가 4년형으로 가중된다. 보위원, 보안원들은 사업 성과를 쌓기 위해 수인들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힌다.

한편 조사과정에 고문에 시달리고 영양실조로 굶어 죽어도 그 죽음에 대하서는 누구도 책임이 없다. 죽고 싶으면 죽으라는 것이다. 한국에 와서 보니 피의자를 고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고문을 했다가 피의자가 사망하자 해당 경찰관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북한에서는 조사 받다 죽는 것쯤은 너무도 만연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구류장 수감 기간은 1달~6달 또는 그 이상이다. 보위부 구류장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비밀자료를 모두 들춰 낼 때까지 몇 년 동안이고 계속 조사한다.


結語 : 북한 땅 전체가 그대로 '수용소'다.

북한의 조선말 대사전에는 '수용소'의 의미를 "낡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따로 수용하는 곳"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국어사전에는 수용소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맡거나 가두어 두거나 하는 곳"이라 풀이하고 있다.

수용소의 성격은 인간이 인간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가, 아니면 활동의 제약을 목적으로 하는가, 탄압을 목적으로 하는 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북한의 수용소는, 그리고 북한 체제 자체는 후자(後者)의 의미에 훨씬 가깝다.

북한의 사회체제는 인간이 인간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들에 대한 생존권 탄압이 거의 국가의 목적처럼 되어 있다. 북한에서 인간의 생명권, 평등권, 자유권은 헌법 위에 군림(君臨)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에 의해 좌우 된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은 김일성, 김정일을 무조건 숭배하도록 인간을 기계화한다.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자유로운 활동을 박탈하고 강압적인 통제하에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도록 인간을 개조해 버린다. 북한의 헌법상에는 인간의 권리를 그럴 듯하게 표기하고 기구까지 차려놨지만 북한은 헌법을 중시하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김정일의 즉흥적인 지시가 곧 법이고 지상의 과제이다.

북한 사회는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사회가 아니라 활동을 제압하는 사회로 변했다. 김정일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의 사명도 변했다. 인민을 보위하는 군대가 아니라 북한의 겉면을 철책으로 둘러치고 북한 주민들의 탈출로를 막는 것이 주 사명으로 되고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을 주임무로 하지 않고 자기 나라 인민들이 외부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국경의 군대는 지구상에 북한이 유일할 것이다.

농장마다, 도로마다, 철도마다 군인들이 총창을 들고 근로자,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조선인민군대가 정치범 수용소의 경비대 군인인양, 주민들은 마치 죄인인양 대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제는 북한 전 지역이 거대한 수용소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일반 사회는 '주민들의 생존권을 탄압'하는 농도 낮은 수용소라면 각기 다른 명칭으로 설치된 수감시설들은 '수감자들의 생존권을 말살'하는 지독한 수용소다. 굳이 인권 탄압의 강도(强度)를 구분하자면 일반사회 < 강제노동단련대, 집결소, 9.27집결소 < 교화소 < 관리소(혁명화 구역 < 완전 통제구역) 쯤 될 것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외부 세계에서는 그 규모나 특징에 있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대 인간은 가능한 인간의 도덕성, 윤리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생존해보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정반대다. 생존해보려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는 것이 그의 본성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북한의 독재자는 분명히 수욕주의자(獸慾主義者)다. 수욕주의란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규범을 무시하고 관능에 따라 동물적 욕망만을 채우려고 하는 주의를 말한다.

북한이 스스로 수용소의 의미를 '낡은 사회'에서 설치하는 기구라고 규정했듯이, 북한 전체가 수용소가 되어 있으니 북한은 그야말로 낡은 사회다. 낡은 사회의 것들은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김정일은 총대를 부둥켜안고 주민들을 지독하게 관리하는 독재 수단 강화에만 머리를 굴리지 말고 과감히 수용소들을 해체하여야 한다. 북한체제를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현명한 영도자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