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인식'에 도달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4호 (2000년 6-7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바안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노래가 입가에 맴돕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정말 변했을까 의심도 하고 걱정도 하고, 경계심을 풀지 말자고 단도리를 하기도 하지만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이런 화해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그 동안 주민을 못 먹여서 흔들흔들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상이 남북정상회담 덕분에 다소 올라갔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체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주민이 굶어죽든 말든 군사력 증강이라는 수밖에는 낼 수 없었던 김정일위원장도 이제는 ‘일단 밥은 먹게 하고 보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정말이지 북한주민들에게도 햇살이 비칠 터입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남한 사람들의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김정일이 해온 일을 생각하면 남한 사람들의 ‘김정일 신드롬’이 가당찮다고 할 노릇이지만, 이 참에 남한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 동안 북한은 애써 옆으로 치워둔 흉물같은 것이었습니다. 300만이 굶어죽어 간다고 할 때도 “내 눈으로 안 보니 모른다”는 투로 우리는 얼마나 냉랭했습니까?

그런데 확실히 남북정상회담 덕분에 남한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북한투자나 경협에 관한 책은 나오자 마자 품절이 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TV를 통해서 '멋있다', '친근하다'는 등의 칭찬을 듣습니다. 가족중에 월북자가 있다는 사실이 말 못할 비밀같은 것이었다가 이번 8.15 이산가족방문단에 포함된 북한에 있는 내 가족이, 북한에서 썩 잘 나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현재의 화해 무드속에서 비전향장기수도, 월북자가족들도 말할 수 없이 기쁜 선물을 받은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남한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실향민들과 납북자, 국군포로 가족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변죽만 울리고 끝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다음 기회를 기대해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상호주의 안 해도 좋다! 참고 기다리마." 남한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그런데 지난 6월 30일 사단법인 좋은벗들은 [북한주민의 북한사회 경제에 대한 인식 및 태도 조사]라는 노작을 발표했습니다. 행방불명된 가족 있는 사람 86%, 배고파서 자주 학교 못 가는 아이 있는 집 76%, 장마당이 필요하다 100%, 아파도 제대로 치료 못 받은 사람 98%, 이렇게 숫자로 보는 북한의 현실은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우리가 본 평양의 거리, 초대소, 평양산원 이런 것들과는 사뭇 달라서 당혹스럽습니다.

적어도 좋은벗들에서 이 좋은 화해무드를 깨기 위해 이런 조사결과를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미적거리다가, 그러나 용기를 내서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요? “북한이란 북한정권이 아니라 북한의 민중이다. 북한민중에게 햇볕이 가기에 현실은 아직 너무 아득하다.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고 민족화해니 통일이니 말할 수 있겠나.” 이 지당한 경고는 어쩌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우리 의식에 대한 으름짱과도 같습니다. 지난 제 1회 NKnet 포럼에서 “남한 사람들에게 통일은 관념이지만, 북한 사람들에게 통일은 삶이자 희망이다”라고 한 법륜 스님의 말씀도 다시 한번 새겨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은 북한민중에 대한 관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고민은 남북정상회담으로 북한민중들이 어떤 희망을 얻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흑(黑) 아니면 백(白이)라고 말하기 쉽지만, 지금 우리가 역사적인 대 프로젝트가 시험되는 현장에 서 있는 것이라면 현실의 다면성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지혜로워져야 되는 것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