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권시계는 순안공항 플랫폼에서 멈추는가
12호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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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① 충성하라 ② 효도하라 ③ 출세하라 ④ 말조심하라
어느 퀴즈 프로그램에 출제되었던 문제입니다. 출연자가 4명이었는데 3명이 연거푸 틀려 결국 아무도 맞춘 사람이 없었습니다. 답은 뭘까요? 바로 4번 '말조심하라'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통계치에 의해 뒷받침되는 답은 아니지만 탈북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에서 요 '입' 한번 잘못 놀려 황천길을 간 사례는 셀 수도 없습니다. 작업도중 외국노래를 흥얼거려 맞아 죽은 사람, 부부간의 잠자리에서 당을 비판했다가 끌려간 사람, 김정일 관저에서 보고들은 사실을 발설했다가 총살당한 사람…
남한에선 예전에 흔히 국가보안법을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했습니다. 집을 강제 철거하는 철거반에게 '야, 이 빨갱이만도 못한 놈들아'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이유로, 혹은 서해에서 조업 중 납북되어 평양시내를 둘러보고 온 사람이 동료들이 막걸리 한잔 걸치다 평양 갔다온 소감을 자꾸 묻자 '평양에 높은 아파트가 참 많더라'고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딱지가 붙어 쇠고랑을 찼던 웃지 못할 지난날이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한 사회의 자유도(自由度)를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 할 자유, 손 들 자유를 얼마나 보장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직접적인 폭력행위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이 자유세계의 기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자유도는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비약적으로 증대되어 온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유도는 아직도 제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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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관심을 불러모으며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차차 일반적인 방문으로 정례화 되어 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혈육을 찾는 간절함과 그들이 나누는 지난날의 애틋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이번에 남한을 방문한 북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북한을 방문한 남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남한을 방문한 북한 사람들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김정일 장군님의 은덕'이라는 그들의 칭송은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 시내를 둘러보니 너무 외세에 의해 찌들려있더라는 소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내려 상봉 장소인 호텔까지 기껏해야 한시간을 둘러본 사람들이 어찌 그리 단박에 한국사회를 평가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호 Keys에 실린 장인숙 님의 증언대로 철저한 교육을 받고 북한정권이 시킨 대로 했을 게 분명한데,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와 너무도 대비되는 우리의 태도가 의아할 따름입니다. 물론 우리 방문단이 북에 가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갔다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들이 말하는 북한에 대한 평가에 있습니다. 단 몇 박 몇 일, 그것도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지정된 몇 곳만을 둘러보고 밤이 되면 꼼짝없이 호텔 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그들이, 자신있게 북한체제를 호의적으로 평가하곤 합니다. 이것도 물론 꼭 부정적으로 평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단 몇 박 몇 일을 갔다 와 놓고선, 북한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너희들이 뭘 알아'하는 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번도 북녘 땅에 발을 디뎌보지 못한 사람보다는 조금 낫겠지요. 그러나 3박 4일 '전시장'을 갔다 온 거나 사진·방송으로만 본 거나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더욱 큰 문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 중 상당수는 정말 북한에서 한평생을 살다온 사람, 직접 그 체제에서 살면서 몸으로 느껴본 사람들의 주장은 또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내원이 모시고 간 '전시된' 북한사람들의 이야기는 순박하고 솔직한 이야기고, 황장엽씨의 증언, 수천 탈북인들의 증언은 '짜 맞춰진 연극'이랍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 이토록 당당한 무지와 오만을 만들어주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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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입단속' 행렬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물론 남북화해에 있어서는 남한이 대국(大國)적 입장에서 좀더 양보하고 계속 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라고 합니다. 현시기에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남북화해과정에 걸림돌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현시기에 남북화해를 추진하는 것은 북한 민중의 인권실현을 가로막는 걸림돌입니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북화해와 북한민주화운동은 정부와 NGO의 분담아래 함께 병행하여야 할 운동입니다. 남북화해는 남과 북의 민중이 평화롭게 사는 체제를 만들고자 함이지 독재자를 옹호하고 지원해주는 작업이 아닙니다. 말 할 것은 말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지 진정한 의미의 남북화해도 가능하게 됩니다. 순안공항 플랫폼에 내려서면 눈과 입을 꼭 다물고 호텔에 갇히든 사진기를 뺏기든 아무 말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서 벙어리에 장님이 될 것이 아니라, 할 말은 해야 그것이 '통일'이고 '자유'입니다.
이번 호 Keys는 재일 조총련이 추진하였던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다루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가 망국의 한을 씹으며 식민지 인질이 되어야 했던 이들은 해방이후 세워진 인민의 나라에 되돌아가 다시 한번 인질이 되었습니다. 일본인 처 1800여 명의 생사도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은 상당수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1987년 납북되었던 이재환씨가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살아서 걸어 나갈 수 없다는 곳 -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는 날이 바로 북한이 민주화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