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편지: 대북 전력지원 + "a"
13호 (200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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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12일부터 16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이 2백만kw의 전력지원, 우선적으로 50만kw 지원을 요구하여 대북 전력지원 문제를 놓고 한국 내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찬성과 반대측이 근거로 내놓는 수치 역시 제각각 입니다. 2백만kw는 북한의 총 발전설비용량의 3분의 1에 해당되며 남한의 23분의 1로, 2백만kw에 대한 전력지원 비용은 연간 1조8천억 원이나 들고 50만kw 공급비용만도 7천억 원이 소요된다는 주장에서부터, 국내소비감소로 적체상태에 있는 1천만 톤의 무연탄 중 일부를 발전연료로 공급해주면 문제가 없으며 그 비용도 7백35억 원이면 충분하다는 주장, 남한의 최대전력생산능력은 4천3백여 만kw이고 성수기 최대 소비량은 3천7백여 만kw로 예비율이 13%에 달하므로 2백만kw 지원은 문제가 없다는 주장까지 다양합니다.
반대측의 주장은, 무리한 대북지원에 매달리게 되면 남한경제까지 흔들릴 수 있어 국민감정상 인정받기 힘들 것이고, 전력지원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이 아니라 북한경제에 대한 구조적 보완의 측면이 크기 때문에 그리 서둘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력지원이 북한의 군사력증강에 전용될 수 있다는 점,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등 상호주의적 대가 없이 무조건 퍼주기만 하는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합니다. 반면 찬성측은 대북 전력지원이 남북관계를 더욱 진전시킬 수 계기라고 이야기합니다. 북한이 전력을 남한에 의존하게 되므로 그만큼 남북관계에 공고한 신뢰감이 유지되며 남북경협의 발전을 위해서도 추진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산가족문제 등 남한의 주된 관심사를 해결하는 데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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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지원이 인도주의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북녘 땅 많은 인민들이 아직도 전기공급을 받지 못해 방에 불도 제대로 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흥청망청 전기를 써대는 우리로선 부끄러워 할 일이죠. 현대인의 생활에서 '전기'가 필수적인 요건중의 하나임을 감안할 때 대북 전력지원을 '인도주의적' 조치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인도주의적 조치라고 하지 않고 경제협력의 발판이라 하든, 막 퍼주기 식이라 하든 무엇으로 불러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지원에 굳이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돕는다'는 것은 주는 사람도 마음 뿌듯해 할 인간적 감정으로 베푸는 것이지, 내가 이걸 주면 당신은 이걸 해줘야 한다는 건 지원이 아니라 '거래'에 가깝습니다. 줄 때는 과거와 미래를 따지지 말고 사심 없이 일단 줘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의아해 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 북한이 해주라는 대로 다 내주면서 김정일 정권의 생명줄을 늘여주자는 것이냐, 납북자 문제 등은 포기하라는 것이냐고 호통치실 분들의 따가운 시선이 벌써 눈앞에 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부터 이른바 '상호주의'라는 것도 '북한 인민의 관점에서' 고려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에게서, 대북 전력지원의 대가로 북한 청소년 5000명 정도를 남한에 초청해서 한 달 정도 한국과 몇 개 외국을 구경시켜주는 것이 어떠냐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심코 듣고 있다가 이 대목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대북 전력지원의 대가로 북한 청소년 남한 방문을 제안한다…. 정말 그럴 듯한 생각 아닙니까. 이러한 '대가'라면 대가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지원'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몇 가지 고민과 반성이 되더군요. 왜 사람들은 줄곧 상호주의를 남한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요구해 왔을까.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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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해보고 싶은 일은 모두 북측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한의 빈민촌, 노숙자들이 고단한 삶을 쉬는 지하철 역이나 보호소도 괜찮습니다. 운동권 인사를 만나도 좋고 '제국주의 점령군' 주한미군 기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남조선의 헐벗은 아이들을 찾아보아도 좋고,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사파 대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각종 집회나 행사에 참석해보는 것도 좋고,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인기가수들 앞에서 열광하는 체육관 공연장에 가보아도 좋습니다. 그밖에도 북에서 요구하는 곳이라면 남한의 구석구석, 보여달라는 대로 다 보여주어야 합니다. 초청 받은 북한의 청소년들에게 말입니다.
외국에도 좀 보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제국주의의 회유와 압력에 굴복하여 사회주의의 길을 포기하였다'는 동유럽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협조를 구해 그곳의 현재도 볼 수 있게 하고, '친선과 단결의 혈맹' 중국의 여러 도시들도 마음껏 볼 수 있게 지원해주어야겠습니다. 물론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남측에서 모두 부담하여야겠지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자본주의 황색 바람을 불어넣으려 한다'고 북에서 부담스러워 하면 남에서도 똑같은 수의 청소년을 북으로 보내주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1000명씩, 그리고 대학생을 2000명 정도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대학생 중에는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중'이라는 한총련 대학생들을 모두 참여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 방문 프로그램은 북에서 모두 짜도 좋고, 우리 학생들이 원하는 곳을 자율적으로 골라 보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북에 가서 김일성의 시신 앞에 절을 하든, 장군님 만세를 부르든, 김일성 대학 학생들과 반미집회를 개최하든 절대 남한에서는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남북이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 민족끼리' 1만 명의 학생들이 서로 오고 가는 대행사를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5000명이 너무 많다면 한 1000명 정도로 축소해도 좋습니다. 5000이든 1000이든 이만큼 튼튼한 '통일후비대' 육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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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Keys』는 <2001년 3월 청진인민의 삶>을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는 말은 많지만 인민들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 너무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남한의 학생 수 천명이 북녘 땅 곳곳에서 현지통신을 보내온다면 우리의 궁금증도 한꺼번에 풀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 보다 심각한 북한 교과서 문제>도 눈 여겨 볼 내용입니다. 매 단원보다 '경애하는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먼저 머리에 새겨 두어야 했던 이 학생들에게도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독립기념관에 가서 3·1운동 관련 자료와 모형을 보면서 무엇이 잘못 됐는지 지적도 하고, "조선의 해방은 김일성 장군님이 조직 령도한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가 가져다 준 위대한 결실"이라는 북한 교과서의 내용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남한의 역사왜곡'과 논쟁할 기회 역시 열어 주어야 합니다. "비싼 약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주사한대 맞지 못하고 숨져가는" 남한의 현실을 둘러보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미제놈들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녘땅 어린이들"과 고무줄 놀이하면서 남한 어린이들이 잠시라도 삶의 시름을 잊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좋은 현장 학습, 체험 학습이 어디 있습니까? 대북지원의 조건으로 앞으로는 이런 것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