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편지: '목숨값'을 하자'

18호 (2001년 10월호)

존경하는 K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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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형을 안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군요. 그동안 적지 않은 만남을 통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북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고, 형이 북한에서 겪었던 일, 지나간 추억들에 대해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웃기도 하고, 눈물 글썽거리며 함께 슬퍼하기도 하고, 또 때론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어깨 걸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묘한 인연입니다. 전생(前生)에 수 천 번의 만남이 있어야 현세(現世)에 옷깃 한 번 스치는 인연이 가능하다는데, 새들도 함부로 넘을 수 없는 철책을 사이에 두고 반세기 이상 분단된 나라에서 북쪽의 한복판과 남쪽의 저 끝에 살던 형과 제가 이렇게 만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이승복 어린이의 일화에 감동하며 반공소년의 결의를 다지고 있던 때, 형은 붉은 스카프를 매고 '어버이 수령님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머리가 굵어져 세상을 알고 운동권 학생이 되어 거리에서 반미구호를 외치고 있던 때, 형은 휴전선 어느 초소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제가 군에 입대해 신병(新兵) 교육을 받던 전방 철책의 어느 밤, 달빛에 총을 번뜩이며 북쪽 초소에 서있던 그 인민군 병사가 혹시 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살아오면서 한번도 저는 형 같은 사람을, 형 또한 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 상상도 못했을 텐데, 우리는 이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나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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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들과 자주 만나고 함께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남한 내 탈북인들의 숫자가 이제 1500명을 넘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탈북인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종의 환상과 편견을 갖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형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탈북인들도 '사람'이고, 탈북인 사회도 '사회'입니다. 그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사업을 해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지요. 분주히 사회 정치적인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을 잘 도와주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같은 탈북인 끼리 사기를 치고 법정에 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서로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도 보았고, 유흥에 빠져 사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월 수백 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월 십여 만원이 아쉬워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울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밌습니다. 탈출기(脫出記)중에는 액션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열차 밑바닥에 수십 킬로미터를 매달려온 이야기, 보름동안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하면서 밀림을 헤맨 이야기, 강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통나무에 몸을 의지해 몇 일 동안 떠내려간 이야기, 악어를 만난 이야기, 공안에 쫓겨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던 이야기…. 물론 우리에겐 '재미'일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죽음의 목전에서 맴돌았던 살 떨리는 기억들이겠지요.
그 고생을 다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남한 땅에 닿은 이야기를 듣다보면, 탈북인들은 모두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형도 인정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표현은 하지 않고 있다하더라도, '북한체제와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세상 어느 누구보다 높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 역시 인정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남한 내에 있는 탈북인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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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요. K형,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목숨값'을 하자는 것입니다. 가끔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건져 온 목숨인데, 어떻게 들어온 남한 땅인데 왜 저렇게 살까. 왜 저렇게 백수건달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낼까. 왜 저렇게 서로 싸울까. 서로 시기하고 질투할까. 물론 모든 탈북인들이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형을 두고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너무 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솔직해지려 합니다.
압니다. 이해가 됩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 헤쳐왔는데, 여기서 좀 행복하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며 살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저에게도 있습니다.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싶고, 자동차도 갖고 싶고, 흥청망청 술도 먹고 싶고, 좋은 곳 구경 가고 싶은 마음도 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K형. 언젠가 형이 말했듯 이제 우리 목숨, 덤으로 얻은 목숨 아닙니까. 남한 사람인 저도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죽었으면 진작 죽었을 목숨, 이제부터의 삶은 보너스 아닙니까. 헛된 재산 모아서 뭐하겠습니까. 원래부터 그랬듯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면 되지요. 헛된 욕망 가져서 뭐하겠습니까. 어제는 나를 위해 사선(死線)을 넘었던 삶, 이제 나 때문에 죽었을 사람 위해 써야지요. '목숨', 그 값어치를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값'이라고 하면 무언가에 대한 대가로 들려 조금 귀에 거슬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에 대한 대가냐 구요? 당연히 '억세게 운이 좋은 대가'이고 '김정일을 미워하는 대가'입니다. 여전히 동토의 땅에서 학정에 신음하고 있을 동포들, 오늘도 한국행을 꿈꾸며 이국 땅을 떠돌고 있을 동포들… 그들이 바라는 것을 먼저 이룬 대가, 그들이 그토록 하고 싶은 증언과 주장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가, 저는 이것을 '목숨값'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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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교회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없지만, 생생하게 목소리까지 떠오르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돈으로 환산해보면 어느 정도 될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몸에 있는 철분(Fe)을 모아 못을 만들면 몇 개나 만 들 수 있고, 기름을 짜내어 비누를 만들면 몇 장을 만들 수 있고, 수분을 물로 저장하면 몇 병의 물이 나오고, 이것들을 내다 팔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
좀 잔인한 이야기지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아직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나 봅니다. 아무튼 몇 천 원 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물질적 요소를 추출·조합하여 다른 물질로 만든 후 값어치를 따지면 실로 얼마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인간의 가치는 개별적 육체의 구성성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내재된 능력, 또는 사회적 협동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문득 목사님의 이런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앞서 형에게 버릇없이 이야기한 '목숨값'에 대한 물음 때문입니다. 육체의 물질적 가격은 몇 천 원이 안될지 몰라도 세상 어느 목숨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목숨을 어떠한 일에 썼느냐에 따라 역사는 그 가치를 기록할 것입니다. 단언하건대, 2천만 동포의 끔찍한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목숨을 그들을 구출하고 해방하는데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알고도 외면하거나 다른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은 위선자요, 애써 알려하지 않거나 덮어두려는 사람은 게으름뱅이거나 악랄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몸으로 느낀 탈북인은 '너무도 당연히' 북한민주화운동을 해야할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형을 비롯한 탈북인들이 입을 열지 않으면 누가 북한의 진실을 이야기합니까. 형을 비롯한 탈북인들이 용기를 내지 않으면 누가 김정일과 맞서 싸우겠습니까. 형을 비롯한 탈북인들이 헌신하지 않으면 누가 북한 민중을 위해 살며 싸우려 하겠습니까. 그것이 싫다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K형. 탈북인은 북한민주화운동의 전위(前衛)를 담당할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저보다 형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서로 시기하지 말고, 질투하지 말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단결하였으면 합니다.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 세상의 가장 분명한 악(惡)과 맞서 싸울 진용을 갖추어 나가야 되지 않느냐고, 한사람 한사람 손을 잡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현시기 단결은 북한민주화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탈북인이 단결해야 북한 민중도 단결시킬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바야흐로 또 한번의 가을입니다. 오늘은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한 것 같아, 감정에 겨워 너무 보채기만 한 것 같아 죄스럽습니다. 전생에 무슨 큰 인연이 있었기에, 이젠 정말 친형처럼 느껴지는 형이어서 허물없이 다 털어 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다음에도 웃으며 만나, 좋은 이야기 나누도록 합시다. 긴 호흡으로 손잡고 가야 할 대장정에, 앞장 서 나아가는 형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형과 형의 가족에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