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일부 기자들은 도대체 양심을 어디에 팔아먹었나
24호 (2002년 4-5월호)

1.

사람의 심장을 쿵쿵 울리고 두 눈에 눈물을 펑펑 쏟게 하는 글을 써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의 맨 밑바닥까지 샅샅이 끄집어내 마치 신들린 듯 원고지에 휘갈기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댑니다. 치솟아 오르는 감정이 떠나가면 어쩌나 안달하며, 그럴 때는 생각의 속도를 집필(執筆) 속도가 따라갈 수 없어 “내가 말하면 누가 내 목소리를 받아 대신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었을 법도 합니다.
북한과 관련된 글을 쓸 때는 이러한 감정을 억누르려 무척 애를 씁니다. 특히 단체의 편집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발언)이 우리 조직의 입장과 일치하는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 꼼꼼히 따져보게 됩니다. 또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성에 호소하고, 정확한 팩트에 입각해 쓰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이성이 '돌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인민들은 굶고 있고 외부세계와 완전히 절연되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데, 자신은 남한 언론사 사장들을 불러 놓고 당나귀 고기를 뜯으며 “이것이 하늘소 고기”라고 자랑하고, 포도주는 프랑스산이 좋다느니 NHK는 광고가 없어 좋다느니 망발을 주절거리는 정신나간 녀석을 앞에 두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이놈을 당장 찾아가 목을 졸라 죽이리라" 생각하며 이빨을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남한의 일부 언론이나 단체, 인사들을 상대할 때는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참을 인(忍)’자를 열 백 번도 더 뇌리에 새깁니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많으니 몇 명쯤 쏴 죽여도 괜찮다”는 인간백정을 두고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돌았군 돌았어”하는 욕이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기 0.1mm 직전에 도달하지만, ‘주적(主敵)은 김정일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김정일이지 저들이 아니다, 저들도 단지 속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감정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으며 부르르 떨리는 펜을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인간이기를 거부한' 북한정권에 합류하여 똑같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해 버린 듯한 사람들이 되풀이하는 망언과 역겨운 행동을 보며 “도대체 내 인내력을 시험해보자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2

지난 4월 2일자(통권 649호) 시사저널에는 ‘한반도’라는 면에 "집단 망명, '북한 붕괴 시나리오' 첫 장인가", “부시 덕에 NGO도 매파세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특별취재팀’이라는 이름으로 된 이 기사들은 지난 3월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25인 탈북자 사건에 대한 뒷이야기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에서 시사저널은 탈북 기획 그룹의 ‘완벽한 기술’과 ‘막대한 자금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국 CIA의 공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워낙 터무니없어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전반적으로 기사는 탈북자들의 주중 재외공관 진입과 난민지위 요구시위에 대해 시종일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배후에 미국이, 특히 보수강경파의 지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 강조점을 찍고 싶어 안달인 듯 합니다.
우선 그 ‘특별취재팀’이라는 정체부터 수상합니다. 언론사에서 특별취재팀은 굵직한 사건이나 현안에 대해 여러 기자가 하나의 팀을 이뤄 팀장 지휘아래 여러 곳에서 취재를 진행하면서 마치 퍼즐 맞추기 하듯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필요가 있을 때 구성됩니다. 그런데 이번 시사저널의 기사를 보면 특별한 팩트의 제시도 없이 그저 이랬을 것이다 저랬을 것이다, 아니면 이러한 소문이 있다는 것을 취합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새롭게 취재하여 발굴한 내용은 몇 군데 없고 지금까지 진행된 사실을 주절주절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실마저도 철저히 주관적인 시선에 입각한 것에 불과하지요. 이 정도의 기사라면 한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한나절이면 시나리오 쓰듯 쓸 수도 있었을 텐데, 고작 이런 기사를 조작하기 위해 그 무슨 ‘특별’취재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었나 의문이 생깁니다.
특히 기사는 자신들이 비판할 대상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고 그 사람들의 큼지막한 사진까지 실어놓으며, 마치 수배전단처럼 사진 밑에 ‘해외파 강경론자인 누구’라고 써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취재원에 대해서는 '소식통' '정통한 한 전문가' '어느 대학 교수'라는 식으로 출처를 철저히 숨기고 있습니다. '나는 숨기고 너희는 까발리겠다', ‘한번 떠들 테면 떠들어 보아라’는 비겁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취재도 하지 않고 작문(作文)했거나 그냥 들리는 소문을 주섬주섬 주워담느라 확인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해봤을 것입니다. 기사(記事)란 ‘사실을 적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사저널은 기사라기 보다는 소설, 잡문(雜文)에 가깝다고 해야겠습니다.

3

한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시사저널에 글을 쓴 기자가 자꾸 '반북단체' ‘반북활동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에 대해 ‘국내의 대표적인 대북강경파 비정부기구’라고 하고, 일본의 북한인권단체인 RENK는 ‘반북단체’로, 피에르 리굴로 씨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반북활동가’라고 쓰고 있습니다. 또 북한민주화운동을 적극 주장해온 잡지인 격월간 시대정신도 ‘대북강경파 잡지’라 하고, 지난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회의에 대해서도 ‘강경파 중심의 북한인권관련 국제회의’라면서 “유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국제회의장 근처에라도 와보고, 당시 참석자 한 명이라도 만나보고 쓴 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반북(反北)’이라는 표현에 우리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시사저널은 7·80년대 남한의 군사정권에 반대하여 활동하던 단체와 인사들도 ‘반한(反韓)단체’ 혹은 ‘반남(反南)·반한인사’라고 부를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또 지금 한국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간혹 정권교체나 퇴진을 주장하는 운동권에 대해서도 ‘반정부인사’ 혹은 ‘대남 강경파 단체’라고 명칭을 변경할 의사는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지 않겠지요. 그럼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북한인권문제와 북한정권의 실정·학정에 대해 규탄하는 사람들을 놓고 ‘반북’이나 ‘강경’의 허울을 뒤집어 씌우는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명예나 거창한 수식어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과 북한 인민을 사랑하고 그들의 자주성을 신뢰하는 입장에서 진행되는 우리의 운동이 '북한 자체를 반대하는 운동' 혹은 '북한이라는 나라 자체를 없애려는 운동'으로 왜곡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반대하는 것은 김정일이지 북한이 아니며, 김정일은 북한과 동격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사저널은 지난 스페인 대사관 진입 사건에 대해 "120만 달러가 들었다", "이번 일로 한 몫 잡은 사람이 많다는 소문이 베이징 외교가에 나돌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까무러칠 노릇입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9·11 테러 이후 국제적인 지원 자금이 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쏠리면서 재정난에 허덕이게 된 대북관계 비정부기구나 국제기구들이 가장 큰 돈줄인 미국 정부의 정책 선회에 맞추어 자극적인 행동에 앞장섰다"는 정말 '자극적인'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정적인 소설을 더 이상 논한다는 것 자체가 역겹습니다.

4

하나의 신문이나 언론사가 꼭 한결같은 입장을 견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자마다 생각이 다르고 하루에도 수 백 개의 기사가 쏟아지니 거기에 담겨 있는 의식 역시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또한 정세가 변화하고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유연하게 입장을 다듬어 나갈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논조(論調)’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신문·언론의 기본적인 색깔이자 굵직한 흐름 말입니다. 이 측면에서 시사저널은 중구난방 좌충우돌이고, 또 비겁합니다.
북한인권NGO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한 649호 바로 앞 호에 시사저널은, 탈북자 25명이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하기 직전 그들을 30시간 동안 단독 취재하여 ‘특종’을 냈습니다. "쇠창살 뜯어 삼켜 자살을 기도하고..."라는 제목을 통해 시사저널은 탈북자들이 보고 겪은 북한 참상과 탈북 동기 등을 상세히 보도하였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25cm 가량의 참대나무 젓가락을 집어 삼켜 십이지장에 쇳대가 박혔던 남자 탈북자의 이야기, 보위부에 끌려 갔다가 “중국 남자 불알을 몇 개나 맛보았냐”고 수모를 당하고 잔혹하게 얻어맞은 여성 탈북자의 이야기, 임신 6개월 된 여자가 뇌출혈로 유산하는 것도 봤고, 20세 중반 가량 되는 여자를 강제 유산시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개천 여성 정치범수용소의 경우에는 조감도까지 상세하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몇 일 후 뒤통수를 때리듯 시사저널은 'CIA의 공작'을 운운했습니다. 그래, CIA의 공작이라고 합시다. 공작금 왕창 받고 그러한 일을 벌였다 칩시다. 쇠창살을 뜯어 삼켜 죽을지언정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북녘 땅, 그곳에 있는 동포를 구출하는 것이 우선이지, CIA든 CIA 할애비든 공작을 하건 지원금을 받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만약 CIA가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구출했다면 오히려 칭찬해주고 훈장 줄 일 아닙니까? 게다가 시사저널은 ‘국내의 한 대학교수’라고 취재원을 소개하며 그가 유럽의 대북정책 담당자 및 비정부기구 담당자들을 만나보고는 "(그들의 주장이) 미국의 인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는데, 그게 무슨 충격 받을 일입니까? 수 백 만 명의 인민들을 굶겨 죽이고도 태연히 당나귀 고기 뜯고 샴페인 원샷하는 '충격적인' 지도자가 존재하고서는 북한인민의 처지에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한 것을 충격적이라니, 어느 대학교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교수라는 사실이 저는 오히려 충격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특별취재팀’이라는 것을 만나고 싶어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 본부장이 시사저널을 항의 방문했을 때, 특별취재팀 대신 나타난 시사저널 한 관계자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난민’을 운운했다고 합니다. 그는 멕시코나 쿠바에서 미국으로 불법 입국하는 사람들을 탈북자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나본데, 저는 멕시코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때려죽이고 쏴 죽인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멕시코 정부에서 그들의 코를 철사로 꿰어 본국으로 끌고 간다는 소문은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자에게 자신의 부모와 누이가 그렇게 능욕을 당한대도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하듯 미소를 머금고 추리소설을 써대며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밀려들면 어쩔 셈인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목까지 푹신하게 감싸주는 회전의자에 앉아 평소 탈북자들에게 눈꼽만치도 관심을 갖지 않고 외면하던 사람들이, 감시와 체포의 두려움에 떨며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탈북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주중 대사관과 영사관에 쇄도하고 민간단체들이 이것을 돕자 CIA 공작과 정치적 배경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습니다. 시사저널 편집장은 648호 편집장의 편지 “얼굴 없는 특종을 내보내며”를 통해 특종을 낸 것을 의기 양양해 했습니다. 환히 웃는 그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저는 양심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특종을 좋아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