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극우 꼴통 알바'입니다

32호 (2003년 2월호)

1

무엇이 ‘보수(保守)’이고 또 무엇이 ‘진보(進步)’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동안의 관습과 체제, 운영방식을 존중하고 그것을 유지·관리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는 경향을 보수라 알고 있고, 반면 그 문제점을 개선하고 개혁하는데 중점을 두는 경향을 진보라 알아왔습니다. 지금의 체제와 질서를 만들어왔고 그 과정에 자신의 땀과 눈물을 보탰던 기성세대들은 대개 보수적인 분들이 많고, 사회에 첫발을 내민 젊은 세대들의 경우 그러한 성장 과정을 잘 알지 못하니(알더라도 교육을 통한 간접체험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대개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사람의 사고 내면에도, 예를 들어 과학·기술분야에는 상당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반면 문화·예술 방면에는 꽤나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등 두 가치관이 뒤섞여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들은 소리인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어떠한 사업을 검토해보고 “바꾼다고 해서 크게 좋아질 게 없으니 그냥 그대로 두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수주의자이고, “바꾼다고 해서 크게 혼란스러울 게 없으니 한번 바꾸어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진보주의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보수와 진보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울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사고방식의 조그만 차이일 뿐이니까요.

2

한국에서 있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토론방이 열렸기에 “인민을 굶겨 죽이면서 핵·미사일 개발에만 열중하는 김정일은 과연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인가”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변이 여럿 올라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의 글이 기분을 씁쓸하게 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지만 대강 이런 형태의 욕설이었습니다.
“이 극우 꼴통 알바 놈아, 너희들을 심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이 좌(左)이고 또 무엇이 우(右)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급진파는 의사당의 좌측에 앉고 온건파는 우측에 앉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대개 시장경제에 비판적이고 성장보다는 분배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좌파적 마인드이고, 시장경제를 지지하면서 자유로운 이윤추구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파적 마인드라고 알고 있습니다. 분배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계급적 적대감에 기반해 독재를 정당화하는 단계에까지 접어들면 극좌(極左)가 되고, 자기 공동체의 이익에 집착하여 외국인이나 타민족을 배척하는 단계로까지 접어들면 극우(極右)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을 규탄하는 제 글이 어떤 지점에서 우파적이었는지, 더구나 ‘극우’라고 불릴 정도였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제 근무를 일컫는 아르바이트(Arbeit)를 통신용어로는 ‘알바’라고 줄여 말하는데, 제 글에 답변했던 그 사람은 제가 아무리 성의 있게 물어보아도 계속 특정 정당과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며 저를 그들의 ‘알바생(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라고만 하더군요. 더 이상 응대해봤자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3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이제 좌와 우의 경계는 거의 허물어져 가는 듯 합니다. 좌파 정권으로 출발했던 정부가 나중에 펼치는 정책을 보니 이웃나라의 우파 행정부보다 더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에 적극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분명히 모양새는 우파 정권인데 전임 좌파 행정부가 세워놓은 복지정책을 오히려 확대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좌와 우의 개념은 여느 사회의 그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민족주의로 튼튼히 무장한 한국의 자칭 좌파는 유럽에 갖다 놓으면 오히려 극우라 불릴만하고,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자칭 우파들이 제시하는 정책은 유럽에서는 오히려 좌파 정부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극우라는 평가를 받는 몇몇 인사들의 글을 꼼꼼히 읽어보니 그들의 지나친(?) 애국심을 제외하면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을 극우라고 하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맥을 짚어가다 보면 결국 지금 한국에서 좌와 우의 경계는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에서 갈라지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에 옹호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은 좌파로, 북한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거나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파로 분류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한국 사회의 좌와 우를 구분하는 방식이(꼭 그런 식으로 편을 갈라야 하는지!) 과연 옳은 것인지 역시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북한 정권에 옹호적인 것을 좌파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 사실만은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세계 도처에서는, 좌파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북한 정권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라는 것입니다. 프랑스 좌파신문의 간판 격인 『리베라시옹』이 <북한에 대한 침묵을 깨자!>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리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사실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4

사실 저는 ‘극우’나 ‘수구’라는 지칭에 대해서 그리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에 보면 그러한 말을 듣는 것을 커다란 명예훼손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던데, 썩 기분 내키지는 않지만 극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고 수구라고 불린다면 또 어떠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이지 누가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라 여기고 있습니다. 간혹 “당신은 좌냐 우냐”하고 따져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는 단호히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이지 좌도 우도 아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만약 ‘김정일을 반대하는 것’을 극우라 여긴다면 저는 극우 중 최상의 극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극우라고 불리는 말을 자랑스런 영광으로 여기겠으며, 그 반대편에 선 좌익을 철저히 혐오하겠습니다. 좌익이 얼마나 성스러운 가치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와 손잡으려는 좌익과는 상대도 하지 않겠으며 평생 왼쪽 길로도 걷지 않겠습니다.
‘꼴통’이라는 말은 머리의 속된 표현인 ‘골통’을 세게 발음한 은어로 보이는데, 아마도 머리가 멍청한 사람을 이르는 말인 듯 합니다. ‘김정일을 반대하는 것’을 꼴통이라고 한다면 저는 꼴통 중에서도 막강 꼴통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식견 있는 지도자’라 추켜세우는 것이 양식(良識)이라고 한다면 양식과는 담을 쌓고 살겠으며, 평생 그냥 무식한 놈으로 남겠습니다.
그렇게 극우가 되고 꼴통이 되겠습니다. 굳이 나는 극우 꼴통이 아니라고 항변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솔직히 그렇게 시인하겠습니다. 또한 밤을 새워 알바 노릇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정일을 타도하고 북한 땅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새날을 여는 데 내 한 몸이 100만 분의 일이라도 도움된다면, 기꺼이 2천만 북한 인민의 알바가 되겠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알바들이 세계 각지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호로 나이 네 살을 먹는 서른 두 번째 Keys를 띄우며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