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총이다

37호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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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총기를 개인이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는 나라가 몇 개국이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우 사적인 총기소유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군사용 총기의 경우 절대 개인이 소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산짐승 등을 잡는데 사용되는 엽총(獵銃)이나 공기총의 경우에도 개인이 소지하기가 까다롭습니다. 엽총은 구입과 함께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경찰서 무기고에 영치(領置)해두어야 합니다. 분명히 자기 돈을 내고 산 총이건만 필요할 때 경찰서에 가 사용목적을 밝히고 한시적으로 꺼내 쓸 수 있습니다. 공기총의 경우 개인이 소지할 수 있으나 법적으로 규정된 일정 구경(口徑) 이상의 총은 역시 관할 파출소에 영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때 총 전체를 맡기는 것은 아니지만, 총의 발사과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노리쇠 뭉치를 떼어내 영치함으로써 그 기능을 상실토록 하고 있습니다.
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스총을 제외하고 호신용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서 총기는 수렵용(狩獵用)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허나 수렵을 하려고 해도 아무나 총을 쥘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렵면허에 합격하고 안전강습을 받아 면허증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수렵시기도 해당 정부 부처에서 지정해준 기간에만 가능하고, 수렵대상 동물도 제한되어 있으며, 지금은 조금 완화되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매해 한 개 도씩 돌아가며 그곳에서만 수렵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99년에 강원도에서만 수렵이 가능하다면 2000년에는 충청남도에서만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구입한 총기를 임의로 개조하거나 구조를 변경하는 것, 혹은 개인적으로 총기를 제작하는 것도 불법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구입한 공기총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공기압을 더 강하게 만든다든지, 스스로 쇠를 깎고 조립하여 일정 파괴력 이상의 총기를 만들어내면 관련법에 의해 처벌받게 됩니다.


2.

이렇게 장황하게 국내의 총기관련 법규를 소개하는 이유는, 개인의 총기소유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북한 정부가 라디오를 대하는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습게도 북한에서는 라디오가 ‘총’입니다.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 사는 김갑돌 씨가 라디오를 샀다 하면 그는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그는 지체 없이 관할 분주소로 가야 합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파출소와 같은 곳입니다. 만약 약간 미적거리다가 재수 없이 그 기간 중에 가두검열(불시에 집안을 검열하는 제도)이라도 걸리면, 일단 라디오를 압수 당하는 것은 둘째치고 정치적인 처벌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위기를 모면하려면 담당 보안원에게 뇌물도 꽤나 바쳐야 합니다.
라디오를 분주소에 가져가면 어떤 경위로, 어디에서 구입을 했는지 상세히 신고해야 합니다. 마치 한국에서 총기구입신고를 하듯이. 그리고나서 라디오를 분주소에 맡겨놓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총기를 경찰서나 파출소에 영치해 놓듯. 며칠 후 분주소에 찾아가면 그 라디오를 돌려줍니다. 그러나 갑돌 씨에게 돌아온 라디오는 채널이 뜯겨서 북한의 국영 라디오 채널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마치 공기총의 노리쇠 뭉치를 떼어내 총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 듯. 돌려받은 라디오를 집으로 가져온 갑돌 씨는 화가 나서, 혹은 호기심에 채널이 고정된 부분을 뜯어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발각되면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만약 개인적으로 부품을 조립해 다(多)채널 라디오를 만들어 소지하고 있다 걸렸다면, 정말 이것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총기를 임의로 개조하거나 개인적으로 제조하면 처벌을 받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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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라디오는 총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총기를 이용한 무장강도 사건이 과거보다 빈번하게 발생하여 총기밀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개인의 총기소유가 손쉬웠다면 이러한 사건은 더욱 빈발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한국정부의 엄격한 총기소유규제가 사건과 사고, 강력범죄를 줄여 사회안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정권의 라디오 규제는 주민들의 귀를 꽁꽁 틀어막아 정권유지에 절대적 기여를 해 왔습니다.
북한실정에 눈이 어두운 일부 사람들은 북한 사회의 이러한 안정(?)의 비결을 ‘자발적인 충성심’에서 찾습니다. ‘그래도 주민들이 김정일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그런 장기집권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입니다.
그럼 이러한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만약 어느 서방기자가 한국의 낮은 총기관련 범죄율을 소개하면서, 한국 국민들의 도덕심과 자발적인 준법의식에서 그 원인을 찾으며 감탄했다고 합시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가슴 뿌듯한 보도일 테지만, 이러한 원인분석이 가능하려면 총기소유와 관련해 한국과 비슷하게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춘 나라와 상대비교를 하던지, 아니면 한국의 총기소유를 자유롭게 해 그러고도 과연 범죄율이 낮은지 드러난 결과를 놓고 평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민들이 북한정권을 진정 자발적으로 믿고 따르는지 평가하자면 비슷한 통제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와 상대비교를 하던지, 아니면 북한 주민들을 자유롭게 해 그러고도 과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김정일을 지지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과 비슷한 통제체제를 갖춘 나라가 현재 지구상에, 나아가 역사적으로도 존재한 바 없으니 결국 방법은 후자를 택해야 합니다.
“한국의 총기소유를 자유롭게 해 그러고도 과연 범죄율이 낮은지 드러난 결과를 놓고 평가”하는 방식이 대단히 악의적인 실험이라는 것을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정한 실험집단을 설정해 놓는 방식도 가능하겠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을 자유롭게 해 그러고도 과연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김정일을 지지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악의적인 실험인가? 북한 정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악의적인 실험이겠으나, 인권적 견지 ? 북한 주민들의 입장 - 에서는 지극히 정당한 ‘실험’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자’는 이 당연한 실험에 반대하는 사람은 이미 민주주의자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실험설계도 가능하겠습니다. 일정한 실험집단을 북한과 똑같은 상황으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한 명의 지도자를 설정해놓고 실험참가자들의 모든 정보통로를 차단한 다음, 그 사람의 위대성에 대해서만 수개월, 수년, 수십년 동안 반복하여 주입시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합니다. 서로서로 감시하게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수용소에 보낸다든지 공개처형해 버립니다. 그런 사회에서 봉기나 항쟁이 가능한지 실험해보자 - 이것이야말로 악의적 실험이며, 친(親)김정일주의자들은 아마도 이런 실험을 바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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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오는 8월 15일부터 남북한이 동시에 상대방을 비방하는 모든 방송을 중단하자고 제안한 바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방송해오던 대남선전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을 8월 1일부터 중단했습니다.
참으로 가소로운 제안입니다. 남과 북이 창과 방패를 들고 사상전(思想戰)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난방송을 중단하자는 것은 ‘상호간에 창을 내려놓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여전히 견고한 방패를 들고 있는 격입니다. “그럼 우리도 방패를 들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은 악의적 실험을 하자는 말입니다. 가장 좋은 방향은 서로간에 창과 방패를 모두 내려놓는 것입니다.
대남선전방송 중단은 일단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북한정권이 쥐고 있는 방패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多)채널 라디오 소유와 청취를 북한 주민들에게 전면 허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병행되지 않은 대남선전방송 중단은 기만전술에 불과합니다.
바야흐로 대세는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북한 정권에 개혁개방과 인권실현,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지금 잔뜩 겁을 먹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 목소리를 듣고 세계적 흐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을 막으려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라디오는 총입니다. 주민들은 그 총을 들 것입니다. 아무리 납땜하고 압수하고 처벌해도, 고정된 채널을 몰래 뜯어내어 기어이 듣고 또 들을 것입니다. 외부에서 들여온 라디오를 신고도 하지 않은 채 몰래 감춰 두고 밤마다 꺼내 들을 것입니다. 방해전파를 아무리 쏘아댄다 해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착같이 안테나를 올려 시끄러운 혼신음 속에 자유의 메아리를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짜 총을 들게 될 것입니다. 김정일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군사적 행동이나 외교적 압박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