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운동의 순수성?
45호 (2004년 6-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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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창립된지도 어언 5년이 되어갑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1999년 12월 10일에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1948년 12월 10일은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날입니다. 그날 이후 세계인에게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 친근하게는 ‘인권데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1999년 여름부터 ‘북한민주화’를 주된 목표로 하는 단체 결성을 준비했던 우리 창립 멤버들은 지구 역사상 가장 가혹한 인권탄압을 당하고 있는 북한 인민을 압제의 수렁에서 해방하기 위해 세계인이 힘을 모으자는 의미에서 12월 10일을 창립총회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만 5년이 다가옵니다. 여전히 고통받는 북한 인민을 생각하면 햇수를 더해 가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늘 말씀드렸듯이 우리 단체가 존재할 의미가 없어지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은 변함 없지만, 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상근활동가들과 회원들,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는 많은 분들의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우리 단체의 존립이 가능했다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는 12월 10일, 우리 단체는 창립 5주년을 기념하여 ‘계속 전진’의 각오를 다지는 조촐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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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창립 당시 명칭은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한 네트워크’였습니다. 이것을 줄여 ‘북한민주화네트워크’라고 불렀으며, 이제는 이것이 정식명칭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영문으로 줄여 ‘NKnet(엔케이넷)’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단체활동을 하는 과정에 북한 실정(實情), 북한문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쟁점 사항, 그리고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많은 질문을 접했습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 본지 Keys의 <Q&A>란을 통해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입장을 전해드리고 있고, 창립 당시에도 이를 소책자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 (‘북한민주화 Q&A’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질문 가운데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인권운동단체가 맞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질문이 담고 있는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김정일 정권 타도’를 주장해왔습니다. 창립선언문에도 “나라 안팎의 양심과 연대하여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한 민중이 해방되는 그날까지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히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이 북한 인민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는 ‘궁극적 해결책’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정권 타도를 목표로 하는 것은 인권운동의 ‘순수성’과 어긋난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인권운동단체가 맞느냐”, 즉 “정권타도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인권운동단체라 할 수 없다”는 질문 혹은 단정(斷定)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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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回避)(?)할 생각은 없습니다. ‘김정일 정권 타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순수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굳이 순수하다는 평가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뒤돌아서기 전에, ‘순수하지 못한’ 사람의 변명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
남한을 비롯한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권문제란 대개 ‘인간적 차별과 편견에 관한 문제’입니다. 즉 피부색이 다르다고 취학이나 취업에서 차별을 받거나, 국적과 인종이 서로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동성애자라고 하여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마련되지 않았다거나 하는 등 대개 ‘소수자(少數者)의 권익 보호’를 인권운동의 주요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른바 ‘마이너리티(minority) 운동’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그러한 차별과 편견은 대개 체제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에 기인하기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체제의 문제라 하더라도 대개는 체제의 전면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제 자체를 타도해야 할 필요성 역시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문제를 보십시오. 공개처형의 문제, 정치범 수용소, 학살과 고문, 통행증제도, 선거의 자유 부재, 집회·결사·언론의 일체의 자유 부재……. 이것이 북한 사회의 주류(主流)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해서 생겨난 문제들입니까? 이것이 북한에서 소외 받는 일부 계층만이 당하고 있는 고통입니까?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고 제도적이지 않은 문제가 없으며, 나아가 체제의 본질적이고 전면적인 모순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않거나 특별히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순수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은 가당찮습니다. 북한의 현실을 정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타도’라는 말이 너무 강한 어감을 갖고 있어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사람도 거부감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이 북한인권·민주화운동의 전진과 확대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점차 ‘정권교체’ 혹은 ‘독재정권의 종식’ 등 순화된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정권교체라 하면 ‘선거를 통한 합법적 정권교체’라 오해할 수 있고, 그러한 교체가 전혀 불가능한 북한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타도’가 정확한 표현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용어를 계속 사용해야겠다는 오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고도 중요한 점은, 어떠한 용어를 사용하든 북한 정권의 본질과 북한 문제 발생의 원인, 그 해결의 방도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바뀐다면 당연히 그 표현도 바뀌어야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아니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가망이 없기에 오늘 우리가 북한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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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북한민주화운동을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발판으로 삼거나 어떠한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권타도를 목표로 한 북한민주화운동이 그 순수성을 의심받는다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겨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민주화운동의 지원기지라 할 수 있는 남한에서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의심과 비난 역시 재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이 만약 입신양명이나 금전적 이득을 바랬다면 한국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에 적극 동조하는 단체를 만들어 그러한 경로를 통해 입각(入閣)하던지 정부의 민간단체 보조금이나 무난히 받아가면서 살았지 오늘과 같은 고난의 길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창립된 시점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몇 달 전이었고, 한국정부의 대북유화정책과 나란히 5년을 흘러왔습니다. 우리가 북한민주화 이외에 다른 욕심이 있었다면 그동안 몇 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5년을 전혀 흔들림 없이, 조금은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체제전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을 걱정의 뜻으로 건네는 사람이 있고 공격의 뜻으로 건네는 사람도 있습니다. 걱정의 뜻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걱정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앞으로 좀 더 유연한 활동의 방식을 찾아가겠다고 먼저 답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 북한의 인권문제가 완전히 체제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한데 자꾸 우회적(?) 해결의 방도를 찾으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것이며 미래에 더 큰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격의 뜻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도, 그 공격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단호히 되묻겠습니다. “그러는 당신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나 있느냐”고 말입니다. 특히 김정일 정권과 비교하자면 하찮은(?) 독재정권에 불과한 남한의 역대 정권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타도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이 ‘김정일 타도’ 구호에 발끈하고 이제는 우리를 “불순한 사람들”이라고 공격하고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체제전복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좋고 도구, 장식품, 간판, 명함, 헛짓거리, 미친 짓, 그 무엇이라고 말해도 좋으니,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발로 밟아도 좋으니, 하여간 저 잔혹한 김정일 독재정권이 하루 빨리 무너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순수함이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있는 현실에 눈감고 자꾸 덮어두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순수한 북한인권운동은 너무도 분명히 보이는 악의 실체인 김정일 정권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수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순수’와 ‘불순’을 가르며 자신들의 순수함과 우리들의 불순함을 강조하려는 사람들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순수한 우리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김정일 정권 타도 운동은 순수한 북한인권운동이자 ‘진실한’ 북한인권운동입니다. 진실한 우리의 승리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