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여덟 번째 이야기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북한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60청춘 90환갑’이라는 말을 자주 써왔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시기가 닥쳐오자 이 말도 옛말로 되어 버렸다. 이제는 새로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바로 ‘60이 동갑’이라는 말이다. 나이 60이하는 다 동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이라는 말도 있다.

1920년에 태어난 늙은이든 1990년에 태어난 어린애든, 19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동갑이라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도덕기풍을 확립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유치원시절부터 학교 교과과정에는 ‘공산주의 도덕’이라는 과목을 설정하여 가르친다. 그런데 선군시대에 와서는 ‘도덕’이란 말이 사전 속의 사어(死語)로 되어버렸다. “군대가 제일이니 사회에서는 모두가 군대를 윗사람으로 존경해야한다”는 것이다. ‘장군님의 전사들’은 도덕이라는 말조차 하기 싫어한다. 도덕이 왕가물이 들었다나 뭐라나.

군인들은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보고도 “형님 담배 한 대 달라”면서 손을 내민다. 안주면 피우던 담배도 빼앗는다. “이놈,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아느냐? 너만한 손주가 있다. 도덕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그러면 새파란 군인 녀석은 노인에게 이렇게 대든다. “하, 이 형님…… 고만한 나이에 까부네. 세상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지금 60이 동갑이라는데 도덕 좋아하시네. 그런 건 배고파서 먹어 치운지 언제라고.” 전사들은 사회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항상 반말이다. 부모 같은 사람들이 전사들 앞에서는 이랬어요 저랬어요 해야 하지만, 그들은 ‘야’, ‘하라’, ‘말라’, ‘이래라’, ‘저래라’ 반말만 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약간이라도 심기를 뒤틀리게 하면 작살이 나는 판이니.

술은 왜 그렇게들 먹는지 온갖 핑계를 다 만들어내 마셔댄다. 술을 하루라도 안 마시고는 견디지 못하겠는지 술을 구하러 다니는 전사들과 술 먹고 얼굴이 뻘개진 전사들이 길가에 수두룩하다. 지루한 군인살이, 술을 마시면서 위로하며 보내려는 심산인지 매일 매일 술이다. 술에 취해서 노래하는 놈, 춤추는 놈, 군복도 제대로 걸치지도 않은 채 비틀비틀하면서 정말 제멋대로다. 사회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非)사회주의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한다. 건전한 사회기풍을 ‘장군님의 전사들’이 절반은 흐리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