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두 번째 이야기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처음에 군대에 나가 신병훈련을 마치고 해당 중대에 배속되었다. 중대장과 정치지도원 그리고 소대장과 인사를 마친 뒤 분대에 배치되었다. 입대하기 전 사람들이 그렇게 무서워하고 또 아무나 다 이기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 보였던 공산군. 내가 그런 군인이 되어 이제 군복무를 시작하게 되니 마음이 이상야릇해졌다. 병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거수경례를 힘차게 들어올렸다.

“대원 △△△. 오늘부터 ×분대에 배치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계급장에 두줄배기를 단 - 나중에 알고 보니 부분대장이었다 - 사관(士官)이 걸어나오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이 새끼 키 정말 크다. 그런데 군복이 좀 작구나”라고 하고는 “야, 네 군복 벗어라. 내 것하고 바꾸어 입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신입병사들에게 새 군복을 입혀서 부대에 보내기 때문에 내 군복은 완전히 새 것이었으나 그의 군복은 찢어진 곳을 기울대로 기워 입은 것이었다. 군대는 상하관계가 뚜렷하므로 나는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군복을 바꿔 입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계급장에 한줄배기를 단 자가 다가와 신발을 벗더니 “야, 뻔뻔이(전사 견장을 단 병사를 이르는 말). 신발 좀 바꾸어 신자”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신발까지 헌 것을 신게 되었다.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저녁이 되자 분대장이 왔다. 내가 새로 왔다고 인사를 하니까 나를 보더니 “야, 너 가서 소랭이에 물 좀 떠오라. 발 좀 씻게스리”라는 말이 첫인사에 대한 대답이었다. 내가 물을 떠다주자 앉아서 발을 다 씻더니, 이번에는 그 물을 가져다 버리란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너도 앞으로 구대원(고참)이 되면 다 이래”라고 했다. 내가 더는 참을 수 없어 흘겨보았더니 “요새끼, 개만한 새끼가 재수 없게스리”하면서 단번에 주먹이 날아 들어왔다. “야, 부분대장! 이 새끼 교양 좀 하라. 이런 새끼들은 처음부터 신발을 잘 신겨야 해." 그리고는 3명이 집단구타를 했다. 난 너무 억이 막히고 밸이 나서 그날로 탈영해버렸다.

나의 친구가 여담 삼아 한 이야기다. 그저 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담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지금 북한군의 전반적인 현실이다. 지금 북한에서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군대에 나간 자식이 사관들에게 매를 맞아 병신이 되지나 않을까, 아니면 도적질, 강도질을 하다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배고파서 영양실조에 걸려 잘못되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도 있지만, 그보다도 상관들에게서 구타를 당하거나 나쁜 일을 하다 병신이 되는 것을 더 걱정한다.

군대는 집단생활 속에 상하관계를 정확히 구별하는 곳이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하게 되어 있다. 군대에 나가면 “처음부터 신발을 잘 신긴다”면서 온갖 궂은 일, 힘든 일을 다 시킨다. 사관들의 옷 빠는 일, 발 씻을 물 떠오는 일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도적질, 강도질까지 좌우지간 별의별 일을 다 시킨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불복하면 집단구타를 가한다.

얼마 전 「동아일보」에 “한국군의 60%정도가 군 생활중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군대는 집단생활이고, 또 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싸움질도 있고 구타도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군의 구타 실태는 한국군에 비하자면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마 거의 100%가 구타를 몇 수십 번씩 당했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사들은 탈영하는 것을 하나의 ‘술래잡기 놀이’처럼 여긴다. 달아났다가는 잡혀오고, 매를 맞고는 다시 달아나고, 또 잡혀오고 맞고 달아나고……. 북한의 철도역이나 기차칸, 공공장소 등 경무관(한국군의 ‘헌병’에 해당)들이 나서서 단속하는 곳에는 항상 탈영했다 붙잡힌 군인들이 방을 꽉 채우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배고파서 탈영한 것이 아니라 사관들의 심한 구타와 부당한 처사를 참을 수 없어 달아난 전사들이다. 북한군이 그렇게 자랑하던 관병일치(官兵一致 ; 군관과 사병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친형님, 친누이처럼 돌봐주는 다정한 군대)의 기풍은 백두산 호랑이가 하도 배가 고파 먹어버렸는지…….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