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일곱 번째 이야기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북한 사람들은 거짓말 잘하는 사기꾼을 ‘봉이 김선달’이라고 부른다.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봉이 김선달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봉이 김선달에 대한 옛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 이 사람이 원래 사기꾼은 아닌데 북한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봉이 김선달을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의 대명사처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많지 않던 김선달의 제자분들이 차츰차츰 늘어나더니 지금은 정말 누가 진짜 봉이 김선달의 제자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이다.

옛날에도 이런 사람은 더러 있었다. 입당을 못하고 제대하게 되었는데 장가는 가야겠지, 그런데 여자 측에서 “입당을 했는가”하고 조건을 걸더란다. 그래서 중매쟁이에게 입당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보러 가는 날 아버지의 당증(黨證) 주머니에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맹원증을 넣어 당원이라고 처녀를 감쪽같이 속여 장가를 갔다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래도 이것은 장가를 가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니 ‘가짜’ 봉이 김선달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봉이 김선달들이 곳곳에 창궐하는데, 하나같이 시퍼런 군복을 입었다나 뭐라나.

한 아주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이 아주머니는 쌀을 받아서 넘겨 파는 장사(일종의 도매 및 수송업자)를 하는데 입쌀배낭을 하나씩 진 군인들이 쌀을 팔겠다고 하더란다. 사회사람들은 일전이라도 더 받으려고 따지지만 군인들은 그래도 좀 싸게 주려는가 싶어 쌀 두 배낭을 넘겨받았다. 집에 들어와서 쌀배낭을 바닥에 쏟아보니 처음에는 입쌀이 나오더니 그 다음에는 모래가 나오더란다. 두 배낭이 절반이상은 모래였다. 맨 밑에는 모래를 넣고 그 위에 입쌀을 넣는 수법을 썼던 것이다. 군인들에게 싼 가격에 쌀을 넘겨받았다고 기뻐했다가 결국은 큰 손해만 보았단다. 그저 하나의 일화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실제 있는 일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선군시대에는 군대가 일반 주민도 단속할 수 있으니 경무관(한국군의 ‘헌병’에 해당) 완장을 낀 군인들이 장사꾼들의 짐도 검색할 수 있고, 공민증을 확인하는 것도 응당 가능하다. 그런데 웬 경무관이 갑자기 그렇게 많아졌는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나타나는데, 누가 진짜 경무관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다.

짐을 지고 길을 가는 행인 앞에 자동보총을 둘러메고 경무관 완장을 찬 군인이 나타난다. 단속을 나왔다면서 짐을 수색하고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빼앗아간다. 억울하지만 다시 짐을 챙겨 얼마쯤 가다 보면 방금 경무관이 단속하고 갔는데 또 다른 경무관이 나타난다. 진짜 경무관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전사들은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물건을 빼앗을까’ 이런 궁리만 하는 모양인지 그 수법들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한 늙은이가 딸네 집에 가는데 전사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정말 마음이 착하기도 해라. 나 지금 딸이 해산해서 가는 길이네. 우리 사위도 여기 어디서 중대 정치지도원을 한다네.” “아, 그래요.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전사는 친절하게도 늙은이의 짐을 대신 들어주었다. 그런데 한참 짐을 들고 가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좀 뜸해진 곳에 이르니 어느새 날래 달아나 버린다. “이놈아 거기 섰거라!”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다. 딸네 집에 도착한 늙은이는 이 어이없는 사연을 사위에게 전해주었다. 사위가 군관이긴 하지만 요즘 군대는 모두가 똑같은 놈들뿐이니 도대체 어느 놈인지 알 턱이 있는가. ‘어느 놈이 감히 우리 장모님의 짐을 가지고 달아나?'하고 괘씸해하면서도 ‘다른 대대놈이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애를 썼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밖에서 누가 사위를 찾는다. “정치지도원 동지, 만날 수 있습니까?” 사위가 밖에 나가보니 자기 중대의 전사다.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다. “왜 그래?” “정치지도원 동지. 오늘 우리 집에서 누가 왔다갔습니다. 그래서 정치지도원 동지네 집에서 맛을 좀 보라고 고향의 특산물인 이면수와 가재미, 그리고 이 미역은 사모님이 해산을 했다니까 우리 부모님이 특별히 보낸 것입니다.” 손에 물건을 건네주고는 인사를 꾸벅하고 잽싸게 돌아간다. “햐, 그 새끼. 보기와는 다르다. 벌써 철이 들었나?” 집안에 물건을 가지고 들어서는데 장모님이 “무슨 일이냐?”하고 묻는다. “우리 중대 전사가 방금 왔다 갔는데 내 처가 해산을 했다고 자기네 집에서 물건을 보내왔답니다.” “내가 우리 딸 시집은 정말 잘 보낸 것 같다. 오늘 다 잃어버려서 어찌할까 했더니 한시름 놨다.”

흐뭇하게 웃은 늙은이는 전사가 전해주고 간 물건을 보더니 눈이 두 배로 커진다. “아니, 이게 내가 잃어버린 그 물건 아닌가? 옳구나, 아이구! 그 백당놈의 새끼가 맞구나! 그놈을 가만 놔둬? 그 도적놈, 사기꾼 같은 놈을…….” 정말 큰일이 났다. 그 전사는 모든 것이 끝이다. 아첨을 해서 점수를 따자고 잔머리를 굴렸는데 하필이면 정치지도원 장모님이 걸려들건 뭐람?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