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열 두 번째 이야기

“장사의 능수들”

생존경쟁이라는 북한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 백성들만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군인들도 뒤질세라 장사에 더욱 극성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회의 현실을 군대만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타산이 밝고 멋들어지게 해먹는지 일반 사람들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북한에서 군대는 장사하기에 너무나도 편한 조건에 있다. 우선 군대의 특수성으로 인해 군대는 오직 군대 내에서 단속할 수밖에 없다. 또 일반 사회 차량은 연료가 없어 다닐 수 없어도 군대에는 연료가 공급되니 군대 차량은 임의의 순간에 기동할 수 있고, 길거리를 아무렇게나 달려도 군대 경무관을 제외하고는 세울 수 없다. 그런데다 요즘은 군사제일주의 시대이니 군대가 하는 일에 누가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 장사하는 차들은 거의 다 군대 차량이다. 사회 사람들이 돈을 주고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군부대에서 직접 장사에 나선다. 하다못해 군부대에 배정된 물고기라도 외진 곳에 싣고 나가 팔아먹고 돈을 번다. 정 벌이가 없으면 차를 끌고 나가 장사꾼들을 태워주고라도 돈을 번다. 북한에서 장사꾼들을 돈 받고 실어다주는 차의 대다수는 군대 차량이다. 이런 차를 타면 장사길을 다녀도 공산군의 성화를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사람들은 누구나 다 군대 차량을 이용하려고 한다.

또 군대 명칭을 딴 외화벌이 기관들이 얼마나 많은지, 북한에서 돈을 번다는 기업소는 모두가 다 군부대 간판(차량번호판)을 달고 있다. 인민군 군단, 사단급의 각 부서들까지 간판을 빌려주고 돈벌이를 한다. 명목상으로는 “전사들의 식생활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일부 고위급 군관들의 돈벌이에 이용될 뿐이다. 무슨 ‘4?25훈련소 외화벌이’요, ‘총참모부 외화벌이’요, ‘작전국 외화벌이’요, ‘강건군사학교 외화벌이’요, 좌우간 더 이상 간판이 없어 붙이지 못할 정도로 많다.

내 친구 중 공병국(工兵局) 외화벌이 사장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전사들을 동원해 대합조개잡이를 하여 벌은 돈 2만 불을 가지고 어디론가 달아난 적이 있다. 그를 잡으려고 숱한 사람들이 찾아 나섰지만 붙잡지 못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그는 홀연히 나타났다. 걱정을 많이 했던 나는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보다는 어떻게 하여 그 많은 돈을 횡령하고도 아무 일 없이 나타났는지 더욱 궁금하였다. 그가 하는 말이 “황해도 해주에 나가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서 “돌아와서 윗대가리들에게 1만 불씩 찔러주니 아무 소리 안하고 ‘원래사업을 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전사들은 어쩌고?”하고 물으니 “그 사람들이 전사들 생각할 것 같으면 외화벌이도 안 해”라고 대답했다. “전사들 핑계 대고 다 자기네 해먹자고 하는 것이지.” 훗날에도 그는 계속 아무 일 없이 외화벌이 사장을 하였다.

전사들은 기껏해야 굶주림에서 벗어나려고 도적질이나 강탈을 하지만 사관 이상은 장사를 한다. ‘돈이 있으면 장관이 아니라 장관할아버지도 할 수 있다’는 사회의 법칙은 그들로 하여금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고 하도록 만든다. 일정한 지위와 권한을 가진 상관들은 자기의 직위를 이용하여 돈을 멋있게 번다. 사회에서 함부로 다루다가는 깜장콩알(총알)을 먹을 수 있는(‘공개처형을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 통제품(사회 반출이 금지되는 군대 물품. 예를 들어 군복이나 무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건드린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인민군 모국 물자공급소장의 병 치료를 위해 신의주에 간 적이 있었다. 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정말 놀랐다. 인민군 대좌(대령)였는데 얼마나 잘 사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백성들은 강냉이 한 줌이 없어 굶어죽는데 그의 집에는 군견 네댓 마리가 이밥에 고기를 먹으면서 집을 지키고 있었으니 도무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는 국가의 통제품인 동(銅, cu)을 장사하는 사람이었다. 자기의 직위를 이용하여 국경경비대는 물론이고 아는 사람이 많으니 장사도 정말 크게 했다. 중국 측과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국경경비대원들이 약속된 장소에서 철수한다. 그러면 자동차로 한번에 동을 몇 톤씩 싣고 나가 팔아먹고 돌아오곤 했다. 일반 사회인이 이런 일을 했다가는 총살을 몇 백 번 당했는지도 모른다. 동 한 킬로그램을 떼어냈다가 사형장의 이슬이 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군대’라는 특수성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다. 정말 선군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